2022년 7월호 칼럼 사랑을 아는 야자나무

16일 전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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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아는 야자나무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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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밀림에 아이가 없는 추장의 아들 부부가 있었다. 젊은 부부는 마주 앉기만 하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째서 아이를 낳지 못할까요?”


“그러게나 말이오. 아이를 얻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다 할 텐데.”


어느 날, 아내가 밖에 나갔다가 기쁜 얼굴로 돌아와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아이를 얻을 좋은 방법이 있대요. 야자나무에게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정성스레 빌면 야자나무가 소원을 들어 준다는 거예요.” 


“그게 정말이오? 당장 숲속에 가서 야자나무에게 빕시다.”


“보통 야자나무에게 빌면 안 되고, 강물 속에서 자란 야자나무에게 빌어야 한대요.”


“강물 속에서 자란 야자나무라면 우리 집안이 대대로 섬겨 온 야자나무 아니오? 야자나무가 돌보아 준 은혜로 우리가 이제까지 잘살아왔는데, 왜 야자나무에게 빌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어서 가서 기도해요.”


그날부터 젊은 부부는 강가에 가서 강물 속의 야자나무에게 정성을 다해 빌었다.


“야자나무님, 저희 부부가 자식을 낳게 해 주십시오.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합니다.”


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빌고 또 빌었다.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만 힘썼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부부의 꿈속에 똑같이 야자나무가 나타나 말했다.


“너희 부부의 정성이 보통 지극한 게 아니구나. 소원대로 아들을 낳게 해 주마. 이 아이는 사랑에 쉽게 빠지고 사랑밖에 모르는 젊은이로 자라날 것이다.”


야자나무는 부부의 소원을 들어 주었다. 부부는 열 달 뒤에 잘생긴 아들을 낳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나이가 되자 이렇게 가르쳤다.


“강물 속의 야자나무는 우리 집안이 대대로 섬겨 온 나무란다. 절대로 함부로 대해선 안 돼. 버릇없이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나뭇가지를 꺾고 나무껍질을 벗기는 일은 하지 마라.”


아들은 이 말을 귀에 못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세월은 흘러 아들은 늠름한 젊은이가 되었고 한마을에 사는 처녀를 사귀게 되었다.


야자나무가 예언한 대로 아들은 사랑에 쉽게 빠졌다. 사랑밖에 모르는 젊은이답게 온종일 처녀와 붙어 다녔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숲속에 앉아 놀 때, 처녀의 목걸이가 뚝 끊어지고 말았다. 진주에 실을 꿴 귀한 목걸이였다. 처녀는 끊어진 목걸이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를 어쩌지? 실을 구해 와야 하는데. 야자나무 껍질에서 뽑은 단단한 실이 필요해.”


아들은 이 말을 듣고 숲속으로 달려갔다. 야자나무 위로 올라가 칼로 껍질을 벗겼다. 그러고는 껍질에서 실을 뽑아 들고 왔다.


처녀가 말했다.


“강물 속의 야자나무 껍질에서 뽑은 실이어야 하는데. 숲속의 야자나무 껍질에서 뽑은 실보다 몇 배 더 단단하거든.”


아들은 사랑하는 처녀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었다. 그 순간만큼은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도 무시해 버렸다. 강가로 단숨에 달려가 강물 속의 야자나무 위로 기어 올라갔던 것이다.


아들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야자나무 껍질을 벗기려 할 때였다. 갑자기 야자나무의 밑동이 쩍 벌어지더니 아들을 삼켰다. 그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붙어 버렸다.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온 식구들이 그를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어머니는 아들을 찾아 강가에 이르렀다. 물속에 뿌리 내린 야자나무 앞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물 위에 아들의 모습이 비쳤다.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반가워 소리쳤다.


“아들아, 어디 있니? 지금 내 목소리가 들리니?”


그러자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저 좀 구해 주세요. 야자나무 속에 갇혀 있어요. 제가 사귀는 처녀의 목걸이가 끊어져, 껍질을 벗겨 실을 뽑으려고 야자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이렇게 되었어요.”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을 구하러 야자나무에 다가갈 수 없었다. 조상 대대로 야자나무를 극진히 섬기고 손도 대지 말라는 엄한 계율 때문이다. 그리고 섣불리 다가갔다가는 아들처럼 나무 속에 갇힐 수도 있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 힘으로는 너를 구할 수가 없구나.”


어머니는 눈물을 머금고 그곳을 떠났다.


그다음 강가에 온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도 물 위에 비친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눈물을 흘리며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에 이어서 강가에 나타난 것은 추장인 할아버지였다. 어머니,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도 손자를 구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아들의 애인인 처녀였다. 처녀는 숲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애인이 오지 않자 걱정되어 찾아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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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는 애인의 모습을 보고 애인의 목소리도 들었다. 순간, 야자나무 앞에 납작 엎드려 큰소리로 외쳤다.


“야자나무님, 사랑하는 사람을 풀어 주세요! 풀어 주세요!”


처녀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야자나무에게 빌었다. 야자나무는 사랑을 아는 나무였다. 처녀의 애타는 호소에 밑동을 조금 열어 보였다. 그리하여 나무 속에 갇힌 애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처녀는 이것을 보고 힘을 얻어 더욱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야자나무님, 저는 애인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 수가 없어요. 저한테는 제 생명보다 귀한 사람이에요. 제발 제 애인을 돌려보내 주세요!”


야자나무는 처녀의 피 끓는 애원에 마음이 움직여 밑동을 더 넓게 벌렸다. 그리하여 애인은 나무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 그대의 사랑이 나를 살렸어요!”


“우리 이제는 헤어지지 말아요!”


두 사람은 꼭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다음 순간, 무슨 조화인지 두 사람의 몸은 스르르 녹아 기름이 되었다. 맑고 향긋한 기름이었다. 


그 뒤 이 기름을 바른 사람은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아름다운 얼굴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신화 이야기 해설


아이를 낳기 바라는 마음은 우리나라나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나 똑같다. 추장의 아들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래되었는데 아이를 낳지 못하자 야자나무에게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정성스레 비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 여자가 시집을 가서 자식을 못 낳으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의 죄를 지었다고 해서 집안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아니면 첩을 맞아들여 아들을 낳거나 씨받이를 들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를 이을 아들을 낳는 것이 조상에 대한 의무이고 효도의 으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제사를 지내 줄 후손을 얻으려고 아들을 낳으려 한 것이다.


유교 사회가 아닌 아프리카에서는 사냥이나 농사를 도울 일꾼을 얻으려고 자식을 원했다. 특히 아프리카는 할아버지, 아들, 손자 등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 사회였다. 부모가 늙어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아들은 부모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 주고 죽었을 때 장례까지 치러 줄 아들을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젊은 부부는 아이를 얻으려고 야자나무에 빈다.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 아이를 얻으려고 삼신할머니에게 빌었는데, 삼신할머니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맡은 여신으로 아이를 점지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삼신할머니는 아기가 태어나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돌봐 준다고 여겼다. 그래서 아기가 태어나 3일째 되는 날에는 흰 쌀밥과 미역국을 삼신할머니에게 바쳤다. 아기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잘 돌봐 달라고 빌면서 말이다.


아들을 낳게 해 달라고 치성을 드린 대상은 삼신할머니뿐만 아니라 해, 달, 산, 강 그리고 칠성님, 부처님, 조왕님, 미륵님, 나무, 바위 등 아주 다양했다. 아들을 바라는 사람의 소원이 신에게 전해져야 하기에, 백일기도를 드리거나 굿을 하는 등 온갖 정성을 다 쏟았다. 그 밖에 아들 형제를 낳은 엄마의 옷을 얻어 와서 입으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기도 하고, 밤·대추·호두 등이 효험이 있다고 하여 그것을 먹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나무에게 비는 까닭은 무엇일까? 옛날 사람들은 모든 자연물에 저마다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나무도 예외가 아니어서 큰 나무에는 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고 숭배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이를 낳게 해 달라는 등 자신의 소원이 있으면 나무에게 직접 빌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상수리나무를 수호신으로 모셨다. 그래서 수시로 찾아와 소원을 빌었는데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감사의 표시로 숲속에 가서 항아리를 깨뜨렸다. 

항아리는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물건이어서 신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신들의 소중한 물건을 바친 셈이었다.


이번 이야기에서 젊은 부부는 강물 속에서 자란 야자나무가 ‘우리 집안이 대대로 섬겨온 야자나무’라면서 ‘야자나무가 돌보아 준 은혜로 우리가 이제까지 잘살아 왔다’고 말한다. 따라서 절대로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며 버릇없이 나무 위에 올라가거나 나뭇가지를 꺾고 나무껍질을 벗기지 말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아들은 그 당부를 귓등으로 듣고 사랑하는 처녀를 위해 야자나무 위로 기어 올라간다. 그래서 칼로 야자나무 껍질을 벗기려 하다가 야자나무 속에 갇혀 버린다. 이런 이야기가 생긴 것은 나무를 함부로 건드리면 나무에 있는 신의 노여움을 사서 벌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옛날 사람들은 나무에는 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고 숭배했다. 그래서 큰 나무를 뽑거나 베면 그 사람이 죽는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나무를 베지 않을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베어야 할 때는 나무에게 먼저 용서를 구했다. 중앙아프리카에 있는 바소가 족(族)은 나무를 베기 전에 나무에게 우선 제사를 지냈다. 산양 한 마리와 닭 한 마리를 나무에게 바치는 것이다. 그러고는 나무를 베기 시작하는데, 첫 번째 도끼질을 해서 나무에 상처를 내면 나무꾼은 그 상처에 입 맞추고 나무의 진액을 빨아먹었다. 그렇게 해서 피를 마셔 형제가 되듯 나무꾼은 나무와 형제가 되는 것이다. 이런 절차를 밟지 않으면 나무 속에 있는 신이 노하여 나무를 베자마자 추장과 그의 가족들을 죽인다고 믿었다. 


옛날 사람들은 나무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아픔을 느끼고 감정을 지녔기 때문에 나무를 함부로 베거나 꺾지 못하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무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집을 짓는 목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옛날 목수들은 나무에 못질을 하지 않고 요철을 만들어 연결했다. 그것은 나무에 못질을 하여 나무를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무에 금이 가면 “이크! 나무가 아프구나”하고 말했다니, 목수들이 나무를 얼마나 사람처럼 귀하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이번 이야기에 보면 아들이 야자나무 속에 갇힌 줄 알면서도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그를 구하러 가지 못한다. 야자나무를 극진히 섬기고 손도 대지 말라는 엄한 규율 때문이다. 하지만 처녀는 달랐다. 사랑하는 애인을 구하려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야자나무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애인이 나무 속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진실된 사랑이 나무의 마음까지 움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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