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칼럼 뉴질랜드는 왜 세계 최초의 보편적 참정권을 수립한 국가가 되었는가?

2021.07.2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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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왜

세계 최초의 보편적 참정권을

수립한 국가가 되었는가? 


글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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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9년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를 방문한 이래 19세기부터 영국을 비롯해 유럽에서 뉴질랜드에 이민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정착을 위해 개척자의 정신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문화 충돌을 일삼거나 방탕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로 많았다. 마오리족과의 충돌, 과도한 음주, 마약, 가정 파괴, 성폭력 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특히 술을 좋아하고 마시는 남성들이 점점 늘어갔다. 주류산업은 번창하였고 주류관련업체는 사업 로비에 혈안이 돼 있었다. 이에 따라 술집과 술집에서 종사하는 여성 종업원들은 자연스럽게 점점 늘어만 갔다. 뿐만 아니라 일부 남성들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만들어 밤낮이 없을 만큼 술을 마시는 횟수가 잦았다. 문제는 술을 마시고 즐기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조차 음주 문화를 형성하여 동료·가족 간의 논쟁 또는 폭력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됐다. 술 취한 남성이 길을 가던 여성을 상대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걸거나 폭력을 휘두르는가 하면, 남편이 술에 취한 채 부인이나 아이들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일삼기 일쑤였다. 가정은 물론 학교 및 사회적 폭력·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그야말로 사회 전반적으로 질서가 없었고 혼란스러웠다. 사람들은 술이 가정과 사회적 근간을 흔드는 주범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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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조짐이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드디어 여성단체에서는 뉴질랜드 의회 청원을 결정하게 되었다. 청원 내용은 ‘여성의 술집 종업원 고용을 금지한다’는 것과 ‘청소년 대상 술 판매 금지’였다. 하소연하다시피 한 청원이었지만 의회는 의견을 묵살했다. 그럼에도 여성단체는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은 여성들이 남성들과 동등한 권리를 갖고 이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법안 마련·통과에 방점을 뒀다. 그것만이 만연한 알코올 문화와 폭력, 갈등, 가정 파괴 등을 해결할 수 있으며 진정한 공존과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여성참정권’ 획득이 절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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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국회의사당




‘기독교 여자 절제회’ 뉴질랜드 지부

 금주·금연·절제 운동 펼쳐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열정 쏟아




그리하여 여성참정권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로 한다. 그 중심에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 1847~1934)가 있었다. 영국 리버풀 출신으로 1867년경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정착한 이민자다. 1874년 미국에서는 ‘기독교 여자 절제회(WCTU)’라는 단체가 창립됐고 2년 뒤인 1876년에는 뉴질랜드 지부가 설립됐다. 설립 목적은 생활을 전반적으로 개혁하자는 데 있었다. 당시 뉴질랜드나 미국은 공통적으로 알코올 문화, 성폭력, 마약 등이 심각하게 사회 근간을 형성하고 있었다. ‘기독교 여자 절제회’ 뉴질랜드 지부에서는 ‘금주, 금연, 절제’ 운동을 벌였는데 케이트 셰퍼드를 주축으로 이뤄졌다. 또한 이 단체에서는 여성참정권 운동에도 열정을 쏟았는데, 구성원으로 유럽 여성은 물론, 원주민 마오리 여성도 일부 포함됐다. 1888년 케이트 셰퍼드는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의회에서는 ‘서명받지 않은 청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이유로 부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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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트 셰퍼드, 여성참정권 청원서 제출 

실패 거듭하며 3만 2000명 서명 받아

1893년 9월 19일 여성참정권 법안 가결




이듬해인 1889년, 그녀와 동지들은 마침내 서명자 명부를 만들기로 했다. 아울러 뉴질랜드 남섬과 북섬 등 전국을 돌며 캠페인을 벌이는가 하면, 설득력 있는 대중 연설도 했다. 그들은 혼란한 사회 상황과 사회적 문제를 설명하며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방안은 여성참정권 보장임을 역설했다. 그녀의 뜻에 감동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적극적으로 지지를 보내는 여성들도 점점 늘기 시작했다.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해마다 서명자 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1891년부터는 해마다 청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기로 하였다. 1891년에 서명한 여성이 9000명대였는데 1892년에는 2배가 넘은 약 2만 명이 됐다. 1891년에는 부결됐지만 1892년에는 가결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청원서를 다시 제출했다. 그러나 또 부결되었다. 여전히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 차례의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1893년에는 무려 3만 2000명이나 서명을 했다. 서명자 수치가 놀라울 정도인데 이는 당시 뉴질랜드 성인 여성 전체 인구의 약 66%가 서명에 참여한 셈이었다. 청원서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뉴질랜드 의회는 크게 놀랐다. 서명을 포함한 청원서의 길이가 약 270 에 달했기 때문이다. 1893년 9월 19일. 뉴질랜드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졌다. 마침내 보편적인 여성참정권 법안이 의회에서 가결되었다. 결과는 20대 18. 전 국민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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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10달러 지폐에 그려진 케이트 셰퍼드(Kate Sheppard, 1847~1934)




이로써 뉴질랜드는 여성참정권이 보장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1893년부터 뉴질랜드에서 여성들이 선거권을 행사하게 한 케이트 셰퍼드는 세상을 변화시킨 위대한 실천가였다. 훗날 많은 국가에서도 이 법안이 가결됨으로써 현대 여성 인권 보장의 효시가 되었다. 뉴질랜드 10달러 화폐를 살펴보면 한 여성 운동가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케이트 셰퍼드이다. 1991년부터 1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졌는데 그 권위와 파워가 얼마나 센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끈질긴 노력 그리고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없었더라면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날 뉴질랜드는 여성을 우대하는 나라 중의 한 나라가 됐다. 그 이면에는 세계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끌어낸 리더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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