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문화 신문예 新文藝

2022.06.2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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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예

新文藝 


알려지지 않아서 더 값진 잡지 


글·사진 서상진 세계잡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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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예> 창간호 표지(서상진 소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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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판권(서상진 소장본)


신문예 : 1958년 6월 10일 창간

편집 겸 발행인 : 윤영(尹瑛)

주간 : 장만영 

발행처 : 정양사

정가 : 100~200환

면수 : 50~150면 내외, 월간 

표지화·컷 : 백영수, 이준, 박고석, 변종하, 빌론 

책크기 : 15㎝×20.8㎝



잡지 <신문예>는 1958년 세상에 조용히 얼굴을 내밀었다. 굳이 ‘조용히’라고 한 것은 1950년대 후반은 이미 <현대문학> <자유문학> 등이 문예잡지 시대를 힘찬 걸음으로 내딛고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신문예>는 주목받지 못하였다. 만사에는 역시 시기가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한다. 


쟁쟁한 이름의 작가들-시인 한하운, 김현승, 아동문학가 목일신, 이주홍, 소설가 박경리, 김정한, 신석정의 <문학적자서전>과 여류화가 천경자의 <진강의 영혼> 등-이 글과 그림으로 풀어낸 탄탄한 출발도 앞서 달리는 쟁쟁한 책들의 명성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도 적었다. 필자가 소장한 마지막 16호는 잡지 면수가 50면으로 줄었고 내용도 출판사 광고 지면으로 거의 채워져 문예 잡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인 장만영이 주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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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예> 창간호 목차(서상진 소장본)




필자는 창간호부터 16호까지 소장하였는데(11호가 결호) 그 15책을 서지학적으로 소개한다.월간으로 매월 발행하다가 통권 14호를 8, 9월호 합본으로 만들었고 통권 16호도 11, 12월호 합본으로 해서 잡지 면수도 50면으로 대폭 줄여 발간하였다. 주간 장만영은 5호까지 기록이 보이고 6호부터는 주간에서 빠졌다. 


창간호에 ‘엽서수필특집’호가 실려 있는데 실린 글 사이 사이에 ‘하이네’의 시를 집어넣은 것이 이채롭다. 그중 14면에 눈이 머물 수밖에 없다. 지금은 절대 볼 수 없는 글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먼저 소개한다.


‘어머님의 임종’

지금 어머님의 임종이오. 캄플주사로 조금 

안정이 되었지만 불과 삼 사시간 내로 임종

을 볼터이오. 이후에 편지할 일이 있거든 ‘창

전리 김동인 방’으로 하시오. 비통한 일이 눈

앞에서 실현되오. 


‘사랑하는 아내에게’

아이의 병은 어떠한지, 혹은 죽지나 않았는

지 걱정이오. 그러나 운명이야 어찌하리오. 

내 판결 언도는 24일(금일) 오전 9시, 그러나 

아환(兒患)이 중하거든 올 필요가 없소. 병 

중한 유아와 수심의 당신의 정경이 가긍하

오. 애써 위로 받으시오 동인.


모두 소설가 김동인 작고 후에 발표된 글이다.


어머님의 임종을 앞둔 자식의 초조하고 곧 닥칠 임종을 감당하려는 비통한 마음이 무겁게 드러나 있다. 거리를 울리는 앰뷸런스 소리와 차가운 병실의 하얀 벽 대신에 무겁게 내려앉는 인간의 깊은 슬픔이 깔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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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서양화가 변종하·박고석 표지화, 프랑스 화가 자크빌론 표지화(서상진 소장본)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당시(일제강점기 말기)에 옥고를 치르며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보낸 편지로 그 표현은 자못 사무적이고 담담하다. 그러나 가슴 한구석을 차고 올라오는 무거운 남자의 슬픔에 주목하게 되고 만다. 현대의 모든 일상이 속도에 휩쓸려 빠르게 없어지고 마는데 비해 하나하나 눈에 읽히는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매호 특집으로 

2호- 해외 걸작 만화특집

3호- 나는 시를 이렇게 쓴다

4호- 현대인의 생활, 취미특집

5호- 등화가친

6호- 의사 지바고 특집

7호- 전국 고교생 문예콩쿠르

13호- 교내 문예활동의 방향

14호- 소월의 시를 말한다

15호- ‘문학하는 태도’에 대해 김팔봉, 염상섭, 전영택, 이무영이 각각 글을 써서 무게감을 더했다. 9월호를 펼치니 또 눈길을 사로잡는 이름이 있다. ‘동인을 말한다. 주요한’이라는 부분에서 요한의 말을 들어보자.


‘조선문단에 독립불기의 괴물이 있으니 그 이름은 김동인이라’고 한 것은 서해 최학송의 평이다. 동인의 글은 소설이거나 수필을 막론하고 유아독존하고 방약무인하다고 말한다. 염상섭의 꾸준함에 비교해 동인의 그런 결과를 그가 살던 시대적 환경인 계몽주의와 인격적인 유래라고 본다면서 그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을 한두 개만 읽어서는 파악될 수 없으며 동인의 전체를 읽어야 한다고 작품집을 권하고 있다. 아마 동인의 작품집이 출간된 일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책 광고로 읽을 수 있는 당시의 관계적 사회양상이다. 


<신문예>는 고등학생의 작품도 실었는데 이는 당시의 문예 잡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이다. 7호부터 15호까지 ‘전국 고등학생 추천작품’을 시, 수필, 소설 분야로 나누어서 실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훗날 유명 문사가 되어 있다. 김화영(경기고)·김승옥(순천고)·김원일(대구농고) 등인데, 이들은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잡지 <신문예>를 통해서 미약하게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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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서양화가 이준의 글과 그림. 오른쪽) 전국 고등학생 문예 당선 작품 지면(서상진 소장본)


 

<신문예>에 작품들을 발표한 문인들을 소개하면 시에 김수영, 한하운, 신봉승, 김규동, 서정주, 김남조, 전봉건, 조병화, 장 호, 김요섭, 신석정 등이 있다. 소설에 정한숙, 김동인(유고), 오상원, 이호철, 이범선, 유승규, 김중희, 이봉구, 정 환 등이 있다. 수필에 유 엽, 차범석, 안수길, 계용묵, 김남조, 박목월, 마해송, 조병화, 천경자, 박일송, 이어령, 박종화,김춘수, 양주동, 김현승, 전영택 등이 있다. <신문예>에 작품을 발표하였지만 조명받지 못한 잡지에 실린 탓에 잊힌 작품도 더러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매호 만화가 김성환의 글과 그림도 게재하였다. 여류시인 김지향의 <시인소묘. 내가 본 시인군상>은 공초 오상순, 김광섭, 이하윤, 서정주, 장만영 시인을 여류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글로 독자에게 재미를 더한 페이지다.


그중에서도 김동리는 <창작과정과 그 방법>을 1958년 11월호부터 10회에 걸쳐 연재하였다. 그리고 김춘수도 <시를 어떻게 읽고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5회에 걸쳐 연재하여 문학 지망생들에게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서양화가 이준(1919~2021년)은 그간 문예지에 실은 표지화나 컷은 많으나 글과 그림은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신문예 2호에 그 귀한 자료가 소개되어있다. 


소설가 김승옥(1941~)의 시가 전국고등학생 추천작품 1959년 4월호에 게재되어 있어 소개한다(당시 전남 순천고교 재학 중, ‘가이내’는 ‘소녀(少女)’를 뜻하는 말이고, 원문 그대로 옮겼음). 김승옥은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생명연습>으로 당선되었고, 1965년에 <서울, 196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77년에는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1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24세라는 젊은 나이로 대한민국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 기록은 현재까지도 찾아보기 어렵다. 




몸 떨리는 계절


김승옥


국화(菊花) 송이에 머문 가을 오후의 소시대한 얼굴에, 우리의 자글대는 눈빛을 

하아얀 운동장처럼 되려 쏘아보자.

그리하여 꽃불보다 화려하게, 우리에게 자리로 마련해 주는 등성이가 있으면, 

엄마, 엄마, 여기 구슬, 어린날 어른대는 불 빛에 그만 동댕이쳤던 구슬알을 

보았네, 하자.


산(山) 빛에 그늘 앉아, 우리가 옴지락도 할 수 없을 때, 나아무, 나아무 나무 나

무, 말배움하며

살빛 가지를 품 안에 넣고 쓸어 보면 마음 한 자락 적시며 드는 밀물이 있네,

죽는 사람은 경련하고

산 사람도 경련하고

몸 떨리는 마음 한 가지로 볼 붉히는 예삔 가이내는,

책상 귀를 박박 긁다가, 낙엽들이 뚜룩거리는 뽀얀 가로(街路)로 달리고 만다.


요새 와서 한결 소리내어 구비치는 하늘에,

휘파람 소리 같은 구름이라도, 마음아 오라 오라, 하면

포도(舖道)는 발소리 멈추고 그 틈바귀 사이 초롱거리는 불이 켜지고

물 빛은 푸르고 물 빛은 푸르고

그러면 가이내는 기쁘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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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진

1954년생

학력 독학(晝耕夜讀)

수상 문화관광부장관 표창(미디어 발전 공로), 잡지 전시 수십 회(국립도서관 외)

각종 매체에 잡지 관련 글 발표, 서울대 외 잡지 강의, 서울대 자문위원 역임, 현 군산대학교 자문위원

저서 <표지목차로 보는 전북 지역 잡지> 공저

이메일: jabgibo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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