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호 문화 세계 최초의 신라 목판인쇄술Ⅱ

2022.10.16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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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신라 목판인쇄술Ⅱ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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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사리함에서 발견된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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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해체공사



일본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목판인쇄가 있기 전에는 인장을 사용하였다. 일찍이 629년의 <일본서기>에 ‘천황어쇄(天皇御壐)’라는 기록이 있고 704년에는 각 지방정부에 관인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인장들은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과 같이 먹을 묻혀 날인하였을 것이고 이들 인장의 대부분은 나무인장이었을 것이다. 

 

765년에 즉위한 일본 47대 칭덕천황(稱德天皇)의 불교에 대한 열정으로 100만 개의 작은 목제탑 안에 봉안할 100만 개의 부적(다라니경)을 인쇄할 것을 명령하여, 770년에 이 작업이 완성을 보게 되어 탑과 다라니경을 각 사찰에 봉안하였다. 이 다라니경은 동판으로 만들었으며 일본은 종이에 인쇄하였다는 확실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이 여자 칭덕천황이 만들게 한 목제탑과 다라니경 봉안 기록은 일본 정사(正史)인 <속일본기> 권30에 기록되어 있고 목제탑을 소장하고 있는 사찰에 인쇄물 원본도 상당수가 아직까지 남아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목탑과 다리니경을 소장하고 있다.


<속일본기>에 의하면 770년 4월에 8년간의 내란이 끝난 후에 천황은 서원을 발하고 높이 약 11.4㎝에 기단부 직경이 약 9㎝인 세 가지 종류의 탑 100만 개를 만들도록 하였고 각 탑에는 네 가지 종류의 다라니경 가운데 한 가지씩 복사한 것을 넣었다고 한다.


1966년 9월 6일 불국사 범영루 보수공사를 하던 공사감독이 8월 29일에 있었던 경주 일대에서 발생한 진도2 규모의 지진으로 석가탑이 심한 균열이 생기고 약 7도가량 서남쪽으로 기울어져 도괴(倒壞) 직전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때문에 1층 탑신 남쪽 부분 기둥에서 가로, 세로 각 30㎝, 두께 5㎝ 크기인 조각이 땅에 떨어져 나갔고, 2층 동쪽 갑석(甲石)에서도 벽돌 크기의 돌이 깨져 떨어져 나갔다. 또한 2층과 3층의 옥개석 갑석과 탑신에 금이 가고 일부 허물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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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사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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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될 당시의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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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세로가 약 6.5㎝, 가로가 약 52㎝가량 되는 인쇄지면을 13~14폭 이어서 

약 7m가량 되는 두루마리 형태다.




이 사건을 당시 교육부 문화재관리국이 석탑 훼손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문화재위원인 황수영 당시 동국대박물관장과 임봉식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장 등으로 구성한 조사단을 현지로 파견하여 조사하였다. 문화재위원들이 조사 결과 석가탑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도괴 위험으로까지 내몬 원인은 지진이 아니라 사리장치를 노린 전문 도굴범들이 탑신에 낸 구멍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 9월 30일에 열린 피해문화재 수습대책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석가탑에 대한 해체작업이 착수되었다. 그런데 석가탑 복원을 위한 해체작업을 진행하던 중 10월 13일 2층 탑신을 올리던 도르래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여 2m높이로 들어 올린 옥개석이 먼저 내려놓은 3층 탑신 위에 떨어져 탑신들이 파손되었다. 


이 사고를 수습하던 중 석가탑 2층 탑신석 윗면 가운데에 마련된 사리공 가운데서 금동제 사리 외함을 찾아내었고 이 외함 속에서 비단으로 싸고 실로 감은 목판 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을 발견하였다. 세로가 약 6.5㎝, 가로가 약 52㎝가량 되는 인쇄지면을 13~14폭 이어서 약 7m가량 되는 두루마리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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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백만탑 다리니경>




신라 기술공들은 청동으로 도장을 만들었으며 도공들은 나무에 새긴 형틀로 아름다운 무늬의 기와를 찍어서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런 기술은 사실상 그대로 목판 인쇄의 기술적 바탕인 것이다. 나무에 새긴 글씨틀에 먹을 칠해서 종이에 찍는 것이 인쇄이기 때문이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여러 학자들의 논문과 저서를 통해서 대체로 8세기 초(서기 706년 전후)의 목판본이라고 밝혔으며, 이러한 국내 학자들의 견해가 외국학자들에게도 받아들여져서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본은 석가탑에서 나온 다라니경 두루마리로 인정되고 있다.


‘다라니(陀羅尼)’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기도문이란 뜻이다. 이 <다라니경>이 신라에서 706년경에 인쇄되었다는 사실은 신라에서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목판인쇄물의 발달이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는 것을 뜻한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일본에서 770년대에 인쇄된 <백만탑 다라니경(百萬塔 陀羅尼經)>으로 알려져 왔다. 일본의 <백만탑 다라니경>을 찍어낸 기술은 이제 거의 틀림없이 706년경에 신라에서 시작된 목판인쇄술이 일본에 전해져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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