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문화 고려의 목판인쇄술과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Ⅰ

2022.11.24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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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목판인쇄술과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Ⅰ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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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불설예수시왕생칠경>



우리나라에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은 고구려는 소수림왕(372년) 때이고 백제는 침류왕(384년) 때 들어와 공인되었고, 신라는 가장 늦은 법흥왕(527년) 때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공인되었다. 이 시기에 일부 승려에 의하여 중국으로부터 불교서적이 입수되어 삼국에 경전이 전해졌으나 인쇄기술이 없던 시기라 경전의 보급은 매우 어려웠다.


통일 후 신라는 부강해지고 안정되어 문화 발전에 힘썼다. 당나라와도 우호 관계가 유지되어 두 나라 사이에는 사신의 왕래가 잦았으며, 이로 인하여 중국으로부터 서사(書寫) 재료, 경전과 불경들이 많이 전래되었다. 또한 신라에서는 유학생과 유학승(僧)을 당에 파견하게 됨으로써 신라의 학문은 더욱 발전하였고 불교 또한 크게 부흥하였다.


신문왕 때에는 국학을 세워 유학을 가르쳤으며 경덕왕 때에는 태학감에서 경학박사를 두어 유교의 경전을 가르쳤다. 이 시기에 신라에는 설총, 김대문, 최치원 등 훌륭한 학자가 나왔으며 이때 <계림잡전> <화랑세기> <고승전> 등 많은 책을 남겼다. 신라에서 처음 목판인쇄가 시작된 706년경 이전에는 한문에 정통한 사찰의 승려들에 의하여 불교 경전을 손으로 필사하여 승려들이 돌려 보거나 탑이나 불상 속에 봉안하는 전통을 이어왔지만 필사하여 만든 사경(寫經)은 아주 귀한 보물로 인식되었으며 그 유물들의 일부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불교 초기에 있어서는 사경으로 공덕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는 승려나 일반인을 막론하고 불경을 서사(書寫)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납탑(納塔) 공양하면 모두가 부처와 다름없는 경지에 이르며, 부처의 보호와 위력으로 모든 재앙을 물리치고 수복(壽福)함은 물론이고 소원 성취할 수 있다는 불설(佛設)에서 근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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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보책대장경>



그러나 사경을 납탑하는 일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사경 공덕은 정성껏 서사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경의 대량 생산에 사경 작업의 한계로 목판인쇄 기술이 생겨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된다.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인쇄된 706년경 전후로 시작된 신라의 목판 인쇄기술은 주로 불교의 경전을 인쇄하는 사업으로 왕실의 중점사업으로 발전하여 규모도 차츰 커져 왔고 불교를 중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목판 인쇄기술과 중국에서 전래된 제지기술이 고려에 잘 계승되고 더욱 발전하였다. 또한 우리나라 특산 재료인 닥나무나 마(麻) 등을 활용한 품질 좋은 한지(韓紙)를 생산했다. 신라의 목판인쇄술의 개발과 경전 보급에 큰 영향을 끼친 불교가 고려에 와서 나라의 국교(國敎)로 받들어지고 불교에 의한 국가의 부흥정책이 강화되면서 전국 각지에 사찰이 많이 생기고 불경의 간행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고려는 개국 후에 관제를 정비하면서 내서성(內書省)을 두었다가 성종조에 이르러 비서성(秘書省)으로 개칭하였다. 비서성은 국가의 중요한 문서와 유학의 경서, 불교의 경전 및 각종 서적들을 보관하고 관리하였다. 이 비서성이 국가의 행정문서와 서적을 편찬하는 업무를 맡아 하였기 때문에 전국적인 목판인쇄 출판사업을 담당하는 중앙기관이었다.


또한 비서성 내에는 비서각(秘書閣: 비각)을 설치하여 전국 각지에서 출판되는 서적들을 보관하는 국가 도서관의 기능도 수행하였으며 많은 판목들을 제조하여 보관하였다. 비서성의 서적출판 요구가 있을 때 직접 목판인쇄 출판사업을 수행하였다.


고려에 들어서 990년에는 서경에 수서원(修書院)을 두고 역사 서적을 필사하게 하였는데 이때까지는 유학경전은 목판인쇄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경·율·론 삼장을 일괄적 한자로 번역한 최초의 대장경은 <개보장(開三藏)>이라 하며, 북송관판(北宋官版)으로 촉본(蜀本)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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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장경>



현재 극소수의 잔권(殘券)이 전하고 있을 뿐이다. 권자본(券子本)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23행 14, 15자로 구성되어 있다. 송나라 태조가 개보 4(971)년에 대장경을 초조하게 하여 태평흥국 8(983)년에 13만여 판의 대장경을 완성하였다. 이후 수정과 증보를 거듭하였고 이렇게 완성된 <개보칙판대장경(開寶勅版大藏經)>은 거란, 고려등의 인접 국가로 전파되었다.


<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가 45년간 강설한 내용을 기록한 경장(經藏), 계율 및 그것을 해설한 율장(律藏)과 불경을 연구하여 주석을 해 놓은 논장(論藏)을 집대성한 경전으로 불교 경전 전체를 포함한다고 하여 일체경(一切經)이라 부른다.


경전은 석가모니가 열반하신 다음에 스승의 가르침을 정리하여 문헌으로 남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을 기억한 것을 모아서 편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에 이 <대장경>에는 제자를 비롯한 인도·중국 등지의 고승들의 문헌들까지도 경전에 포함되었으며 산스크리트(梵語)·팔리어(巴利語)로 만들어졌다. 이 산스크리트어 또는 팔리어의 대장경은 한역(漢譯)·티베트(西藏)대장경으로 번역되었고 이러한 한역서(漢譯書)와 서장(西藏)대장경을 다시 번역한 것이 몽골·만주 대장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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