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호 문화 안토니오 가우디를 보다

2021.12.1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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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가우디를 보다 


글 · 사진  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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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중정에서 바라본 하늘



500년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왔던 도시 바르셀로나. 세계적인 건 축가인 안토니오 가우디의 건축작품들이 대부분 이 도시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곳은 또한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했던 곳으로 안토니오 가우디와 화가 피카소, 미 로 그리고 달리가 이곳 출신으로 문화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나의 유럽여행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도시 중에 하나이다. 유럽여행은 건축순례에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 건축가 지오폰티도 그의 책 <건축예찬>에서 “이탈리아의 절반은 하느님에 의해 나머지 절반은 건축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스 페인의 바르셀로나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사 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을 비롯한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을 찾는 사람들이기 때문 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4년에 착공돼 10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완공까 지 더 걸릴 것으로 예정돼 있다. 그럼에도 그 외양만으로도 이미 20세기 최고의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성당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주제로 한 이 성당은 탑 높이가 107m나 되어 서 관광객들마다 고개를 한껏 젖히고 탑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또 하나의 진풍경을 연출한 다.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 땅에서 커다란 4개의 옥수수가 솟아오른 형상으로 보이는데 다른 성당과는 전혀 다른 나선형 기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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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건너편에서 바라본 전경



이 성당의 디자인은 기존 양식의 파괴라고 볼 수도 없고 더욱이 파괴 자 체로 그치지 않는다. 더욱 크고 풍부하며 광대한 상상력의 창조로 이어짐으로써 그의 무한한 생각들이 우리를 압도한다. 


가우디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로마 건축 양식과 고딕의 요소를 혼합한 아르누보 양식을 도입해 환상적인 건축 공간을 연출한 거침없는 상상력과 자유 분방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하듯 그의 건축물은 모두 기하학적인 곡 선 구조를 지니고 있다. 곡선 구조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의 일부 처럼 보이는 것이다. 


가우디는 신은 인간을 통해서 창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믿고 품위가 있는 예술 창조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의 글 중에 “독창성이라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라는 말 은 모든 것의 근원은 신이 창조한 대자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가우디에게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대자연에서 영감을 찾 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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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외부 디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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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외부 디테일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 축은 이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야기 한다.” 


가우디는 어렸을 때 다리를 다쳐 친구 들과 어울려 놀지 못하고 아버지와 함께 유년 기를 보냈다. 구리 세공업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구리 세공을 통 해 공간에 대한 인식을 다지면서 자라날 수 있 었다. 또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서 자연 스럽게 집 근처의 자연 속에서 곤충이나 꽃들 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인공 건축물과 자연의 조화라는 가우디 건축의 특성은 아무래 도 이러한 유년기 환경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 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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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카사밀라 저택 야경



가우디는 17세 때 건축 공부를 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대학에 입학해 8 년 만에 졸업했다. 1883년 성가족 성당을 짓기 시작하면서 신앙심이 깊어진 그 는 1910년 이후 죽기 전 15년 동안을 성당 짓는 일에만 매달렸다. 물론 그의 작 업은 그 혼자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며 경건한 구도자로 살려고 노력한 그의 주변에는 든든한 재력가들이 그를 도와주고 후원 했다. 


바르셀로나의 갑부였던 에우세비오 구엘 백작은 만년에 이상적인 정원 도시를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바르셀로나 시가와 항구 그리 고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페라다산 남쪽 구릉지대를 확보하고 가우디에게 모 든 상상력을 동원한 정원도시의 실현을 부탁했다. 그것이 바로 20세기 건축가와 미술가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구엘공원이다.  


가우디는 60채의 저택과 음악회장, 강연장, 식당, 학교 등의 시설을 이 대지 위에 세울 예정이었다. 정원도시라는 형식을 통해 건축과 자연을 결합시키 고자 하는 전대미문의 시도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14년에 걸친 공사에도 불구하 고 구엘 백작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이 계획은 미완성이 되었고 공원만이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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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카사바트로 저택의 정면 상세



구엘공원은 가우디의 독창성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으로 공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적인 면의 절묘한 결합으로 조경과 도시계획 분야에 대한 초현실주의적인 해석 이 발휘됐다. 18세기 영국의 낭만주의적 고딕식 정원의 후예인 이 정원은 구불구불 한 곡선 형태의 벽, 벤치, 동굴, 깨진 도자기와 유리로 구성한 현란한 모자이크로 장 식된 아케이드 등의 혼합물이다. 나무가 세워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구엘공원의 자연스러운 통로들은 인간이 얼마나 자연과 밀접한 동물인지 새삼 일깨워준다. 꽃 모양이나 나무 모양 등의 괴물들은 자연에서 보았던 것이기도 하고, 전설의 세계로 부터 얻은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문고리, 발코니의 철제 난간 등 사소한 부분들에까지 세심한 디자인을 연출한 그의 노력은 가히 놀랄 정도다. 


그의 작품 가운데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구엘 술창고는 그렇게 많이 알려 진 곳이 아니다.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카라프라는 지역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3층짜리 건물로 1층은 포도주 창고, 2층은 거실, 3층은 다 락방으로 사용되었다. 측면은 삼각형이며 지붕은 매우 기울어져 있는 형태로 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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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밀라 저택의 옥상 굴뚝 모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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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밀라 저택의 옥상 굴뚝 모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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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밀라 저택의 옥상 굴뚝 모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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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밀라 저택의 옥상 굴뚝 모양들



르게 경사를 이룬다. 경사진 지붕 위에 조그마한 동탑이 있고 굴뚝의 모양도 매 우 특이하게 디자인되었다. 바다 쪽으로 나 있는 집의 끝부분에는 마치 중세시대 의 고성과 같은 망루가 있어 동화에 나오는 집처럼 느껴진다. 정문에는 초소 형 태의 작은 돌집이 있는데 철제문 또한 가우디의 특징적인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 져 있다. 


이곳은 과거에는 주변이 온통 포도밭이었으나 지금은 황무지로 변했다. 외부가 온통 돌로 덮이고 지붕까지도 돌집 모양으로 언뜻 보면 작은 교회처럼 보 인다. 지금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카페로 개조돼 젊은 연인들이나 가족 들이 나들이를 즐기는 곳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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