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마루대문 결국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2022.04.2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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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벌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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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한 주민이 포격으로 파괴된 아파트 건물을 절망적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금 2022년 맞아요? 진짜 전쟁이 이렇게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물론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렇게 평화롭던 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전세계의 이목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로 향해 있다. 바로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고조된 갈등의 결과물이었다. 이에 전세계에서는 경악을 금치 않고 있으며 러시아를 향한 제재를 진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왜 총칼을 겨누게 된 것일까.



유럽의 곡창,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현재 서쪽으로는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 북쪽으로는 벨라루스,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민의 70% 이상이 우크라이나인이지만 러시아인도 17% 이상의 비율을 보인다. 그래서 우크라이나어 외에 러시아어도 많이 사용된다.


지형적으로는 비옥한 흑토로 덮여있어 세계 3대 곡창지대다. 전 세계 밀 수출의 10%, 옥수수 수출의 18%를 차지하며 이와 함께 천연가스·석탄 등의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높은 산맥이 없어 과거부터 땅을 둘러싼 전쟁이 잦은 지역이었다. 현재 기록상으로 기원전 8세기부터 우크라이나 땅에서 사람이 산 것으로 전해진다. 수 세기동안 여러 민족을 거친 이 땅은 882년에 키이우 루스 공국(키예프 루스 공국)이 세워지면서 역사에 전면으로 등장한다. 


키이우 루스 공국은 동슬라브 민족의 최초 봉건국가로 키이우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12세기 초반까지 발전한 키이우 루스 공국은 1223년부터 몽골군의 침입을 받으면서 1240년 멸망되고 만다. 몽골의 지배는 2세기에 걸쳐 이어졌으며 이후 16~17세기에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코사크족에 의해 다스려지기도 했다. 18세기 폴란드가 해체되면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동부와 서부를 분할 점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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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체르니히우 민간인 거주지역이 러시아의 공격으로 불타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때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악연은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1917년 러시아제국이 무너지면서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독립국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을 선포한다. 역사 전면에 ‘우크라이나’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독립국가는 곧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련)에 흡수됐다. 1922년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일부가 되는 대신 조약체결이나 영사관할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외교 주권을 갖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선포했다. 



모스크바 중앙정부, 우크라이나 민족의식

말살하기 위해 억압정책 시행하기도 

우크라이나, 1945년 유엔 회원국 가입



우크라이나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소련의 곡물 생산지가 됐으며 주요 산업단지로 성장했고 다량의 핵무기까지 배치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민족의식을 꾸준히 높이자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우크라이나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기 위해 억압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당시 스탈린은 인위적인 기아 정책(홀로도모르)을 시행했으며 우크라이나 농민 800만 명이 아사하거나 전쟁·기근 등으로 우크라이나를 떠나면서 인구가 대폭 감소되는 일도 있었다.이렇게 우크라이나는 근대로 들어서면서 격변의 시기를 거친다. 


키이우는 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가 되면서 당시 소련에서 제3의 도시로 성장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소전쟁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그대로 휩쓸려 들어간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전쟁에 소련 군인으로 징병됐으며 민간인들이 학살당하기도 했다. 결국 나치 독일에 의해 점령된 우크라이나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1945년 러시아, 벨라루스와 함께 유엔(UN)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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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빈니차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폴란드 행 버스를 타고 

우크라이나를 벗어나는 가족과 작별하며 포옹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독립했으며 ‘중립국’ 선언을 했다. 하지만 소련시절 핵무기가 배치됐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구소련의 핵탄두와 ICBM 등의 투사체를 모두 폐기하는 대가로 경제적 지원과 안전을 보장받는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를 작성했다. 당시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카자흐스

탄, 벨라루스와 함께 1996년 6월까지 비핵화를 완료했다. 


크림반도와 나토 가입

우크라이나는 비핵화 후 러시아와 <우호친선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두 국가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끊임없이 우크라이나를 노렸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벗어나기 위해 서유럽 사회의 문을 두드렸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는 2004년 오렌지혁명과 2014년 존엄혁명으로 친러 지도자를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내부는 여전히 친러 성향의 인물들이 많았고 남쪽 흑해를 향해 돌출된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긴장감이 고조됐다. 크림반도는 1954년 소련 공산당이 우크라이나에게 친선의 의미로 양도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소속이 됐다. 1991년 우크라이나 내의 크림자치공화국이 성립됐고 소련의 해체 후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 속하는 것으로 투표를 통해 결정이 됐다. 하지만 2014년 러시아는 무력을 동원해 크림반도를 장악했으며 크림자치공화국과 세바스토폴시가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해 크림공화국으로 통일했다. 이후 주민투표를 실시한 결과 90% 이상의 찬성으로 다시 러시아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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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방공호로 이용되는 지하철역 승차장에 시민들이 대피해 있다. (출처: 뉴시스)



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내전 지역인 돈바스를 지원하기까지 이르렀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 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들이 많아 최근에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독립된 공화국인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을 선포하기도 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략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우크라이나 국민은 2019년 헌법에 ‘북대서양조양기구(NATO, 나토) 가입’을 명시한 개헌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친유럽을 표방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렇게 되자 러시아는 더욱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는 나토방위군과 직접적으로 맞대게 되기 때문에 안보적으로 큰 위협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불편한 감정을 지난해부터 꾸준히 고조시켜왔다.


러시아 보이콧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21일 연설에서 ‘도네츠크 인민공화국’과 ‘루간스크 인민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평화유지군’을 파견하겠다고 말했다. 그와 동시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라며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적 공간의 필수 불가결한 일부”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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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가 지난달 12일부터 러시아 은행 7곳 등을 결제망에서 차단했다.

사진은 지난달 3일 서울 강남구 전략물자관리원(KOSTI)에서 작업자들이 ‘수출통제 및 제재 대상 주요 국가’ 지도를 새롭게 교체하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이에 대해 유럽연합과 미국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며 러시아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금융기관 2곳을 제재했으며 러시아 국채가 미국 및 유럽에서 거래되지 못하도록 했다. 독일은 ‘노드스트림2’ 사업을 중단시키면서 러시아 제재에 나섰다. 노드스트림2 사업은 러시아에서 독일로 이어지는 1230㎞의 천연가스 송유관으로 러시아 에너지 사업 중 하나다. 


유럽연합과 미국, 러시아에 제재 단행

독일은 ‘노드스트림2’ 사업 중단하기도

일본과 한국 역시 러시아 제재에 동참



이처럼 미국을 비롯한 유럽연합은 러시아의 침공 이후 본격적인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우방국가인 일본과 한국 역시 제재에 동참했다. 이에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를 떠나기 시작했으며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나 피치는 러시아 기업에 부여했던 신용등급을 철회하기도 했다. 


신용평가 철회는 투자자들에게 제공되던 기업 분석·전망이 중단돼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경제적 제재 외에도 문화계에서도 ‘보이콧’ 바람이 불고 있다. 클래식 음악계는 러시아 음악가들을 향한 ‘캔슬컬처(Cancel Culture)’를 단행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러시아 출신의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배제됐으며 독일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는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21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중 1명이었던 자의 굴욕이었다. 게르기예프 외에도 러시아계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 ‘알렉산드르 말로페예프’,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등도 예정됐던 공연에 배제되거나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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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화상을 통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연설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G7 정상에게 러시아와의 무역을 완전히 금지하고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무기를 지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출처: 뉴시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미국 헐리우드 영화산업의 주요 시장이지만 헐리우드는 이번 사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워너브라더스의 ‘더 배트맨’, 월트디즈니의 ‘터닝레드’, 소니 픽쳐스의 ‘모비우스’ 등 지난 3월 주요 개봉작들이 러시아에서 볼 수 없었다. 월트 디즈니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우크라이나 침공과 비극적, 인도주의적 위기를 고려해 러시아에서 영화 개봉을 중단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화산업과 연계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는 “현장 상황을 고려해 러시아에서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러시아 내 서비스를 중단시켰다. 중국에 본사를 둔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도 서비스를 중지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외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보이콧에 동참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 인텔을 비롯한 IT·반도체 기업과 비자, 마스터, 골드만삭스 등의 금융업, BMW, 포드, 보잉 등의 자동차·항공, 나이키, 아디다스, 유니클로 등의 패션, 맥도날드, 코카콜라등의 식품도 러시아 사업 철수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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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우크라이나인들이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러시아 규탄 및 전쟁 중단 촉구 집회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처럼 전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세계에 충격을 줬다. 전쟁 초반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곧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것이라고 봤다. 러시아는 세계 2위 군사대국으로 현역 병력만 90만 명으로 우크라이나 20만 9000명의 4배가 넘는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함께 결사항전의 모습을 보이며 한 달이 넘게 버티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 군인 최대 1만 50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며 유엔에서는 이번 전쟁으로 사망한 민간인이 10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결국 전쟁은 모든 것을 무(無)로 만들어버리며 모든 이에게 슬픔을 안긴다. 전쟁으로 벌써 300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발생했다. 그러한 가운데 전쟁이 시작되고 화제가 됐던 영상이 있다. 우크라이나에 침공했던 한 러시아 군인이 잡히자 우크라이나인들이 빵을 제공하면서 러시아의 가족과 영상 통화를 걸어주는 장면이었다. 모든 것이 쑥대밭이 되는 와중에도 인류애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가운데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모습 또한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이와 같이 오랜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함께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를 위한 조약과 기구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 벌어지는 전쟁을 바라보며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과연 사람의 뜻으로만 평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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