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호 마루대문 청와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다

2022.06.2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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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다


글 백은영 사진 이경숙



지난 5월 10일 출범한 윤석열 정부가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이른바 ‘용산 시대’가 열렸다. 청와대는 윤 대통령의 약속대로 국민에게 개방됐고, 취임식에 맞춰 활짝 열린 청와대를 찾는 이들의 표정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취임식 며칠 후 청와대 경내를 둘러보게 된 기자 또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올라왔다. 풍수를 잘 모르는 기자의 눈에도 한눈에 ‘명당’임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청와대 안에서 보는 북악산과 인왕산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더 기운이 있어 보였다. 그저 산이 주는 기운만으로도 보국안민과 태평성대를 그려볼 만 했다. 이제 이 좋은 기운을 받은 국민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가는 조화로운 세상을 잠시 그려봤다. 천년에 가까운 세월을 두고 이곳의 주인들이 바뀌며 나라의 흥망성쇠를 겪어왔지만, 이제는 흥할 날만을 기대하며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 그 역사와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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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청와대가 74년 만에 국민에게 전면 개방됐다. 사진은 청와대 본관 모습.




국민의 쉼터로 돌아온 청와대

청와대를 국민 모두가 누리는 열린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가 진행됐다. 지난 5월 10일 오전 6시 30분 청와대에서 북악산으로 통하는 등산로를 완전 개방하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같은 날 오전 11시 청와대 정문 개문 기념행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들이 청와대를 찾는 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북악산은 1968년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입산이 금지됐다가 2006년 이후 일부 구간이 개방됐으나 여전히 청와대와 북악산은 서로 막혀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번 청와대 개방과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등으로 54년 만에 다시 열린 것이다. 이번 북악산 등산로 완전 개방으로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새롭게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정문 개문 기념행사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우리의 약속’을 주제로 한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희망의 울림’을 상징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지면서 마치 축제를 방불케 했다. 특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4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지역주민과 학생, 소외계층 등 국민대표 74명이 정문을 통해 함께 입장하는 광경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과거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자 권력의 상징이었던 곳이 이제는 국민의 쉼터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자,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듯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청와대 개방과 함께 마침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유산 축제인 ‘2022 봄 궁중문화축전’ 기간이 맞물리면서 궁중문화축전 최초로 옛 경복궁 후원이었던 청와대 권역에서도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돼 그 의미를 더했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시청과 종로, 을지로 등 도심 사무실 밀집지역의 북쪽에 위치한 푸른 기와의 청와대. 이번 청와대 국민 개방으로 광화문과 경복궁, 북악산(서울성곽)으로 이어지는 역사공간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일각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 경내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개방하면서 청와대 일대와 북악산 전면 개방 효과가 생겨 국민들의 휴식, 산책, 역사탐방 등이 가능해진 점과 북악산-서울성곽-숙정문-청와대-경복궁-광화문으로 이어지는 한양도심축이 복원되는 것도 기대되는 일이다. 


그 시작은 고려 이궁

현 청와대 권역은 고려 문종 22년 남경(서울)의 이궁(離宮, 별궁) 건립(1068년), 숙종(1104년) 때 남경 궁궐이 중축된 곳으로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 후원인 상림원으로 서현정, 취로정, 관저전, 충순당 등 건물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모두 소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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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한양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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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74년 만에 국민에게 전면 개방된 후 일주일이 지난 5월 17일.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청와대 본관으로 향하고 있다. 




고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도읍이었던 개경(지금의 북한 개성)과 함께 서경(평양), 동경(경주) 세 곳을 삼경으로 뒀으며, 숙종 때 동경 대신 이곳에 이궁을 설치하고 남경으로 삼았다. 여기서 남경이란 ‘남쪽의 서울’이란 뜻이다. 풍수적으로 길지에 속한 곳으로 숙종의 허락을 받아 3년여의 공사 끝에 궁궐이 완성되자 1104(숙종 9)년 숙종은 대신과 내관들을 대동하고 남경을 찾아와 10여 일을 머물렀지만 정식으로 천도하지는 않았다. 


한편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95년 이궁의 남쪽에 경복궁을 창건했으며, 세종이 경복궁의 북문 밖 일대를 후원으로 지정해 경무대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되면서 이 일대는 오랜 세월 방치되다가 1860년대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제 모습을 찾는 듯했다. 경복궁을 중건한 고종은 현 상춘재와 녹지원 인근에 용문당과 융무당 같은 건물을 세워 과거와 무술 시험을 열었으나 일제강점기 경복궁 후원 건물들이 헐리는 수난을 당해야 했다. 


1929년 조선총독부 통치 20주년 기념으로 개최한 조선박람회가 경복궁과 옛 후원 자리에서 열리면서 이곳의 조선시대 및 대한제국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됐다. 이후 일제는 1937년부터 1939년에 걸쳐 조선박람회 이후 한동안 공원으로 남아있던 옛 후원 자리에 조선총독의 관사를 지었으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최고 권력자들의 관저 부지로 활용됐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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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복지. 1990년 2월 20일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194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군정사령관 관저로 사용되던 구 조선총독 관저를 이양받아 대통령 집무실로 이용하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경복궁 북원에 있던 넓은 터의 이름을 따서 경무대(景武臺)라고 불렀다. 청와대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이 경무대 본관의 청기와 지붕에 착안한 데서 시작됐다. 청와대라고 하면 떠올리는 건물인 본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신축한 것으로 이때 본관과 관저, 프레스센터인 춘추관이 함께 신축됐다. 


한편 1990년 2월 20일 청와대 관저를 신축하는 과정에서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고 해서체로 각자된 암벽이 발견되기도 했다. 청와대 본관에서 동북쪽으로 계곡을 지나 150m 정도 떨어진 가파른 지역이다. 화강암을 깎아 만든 가로 250㎝, 세로 120㎝ 크기로 말 그대로 천하에서 제일가는 복 받은 땅이라는 의미다. 당시 청와대는 금석학의 대가 임창순 옹에게 감정을 부탁했고, 300~400년 전에 제작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청와대, 옛 경복궁 후원의 유적 

1868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세 세운 용문당과 융무당은 1928년 일제에 의해 철거당한 뒤 1929년 용산의 일본 사찰 용광사로 이건됐다. 그러던 것이 해방 후 1946년 원불교에서 용광사를 인수해 용무당은 법당으로, 융무당은 생활관으로 사용했으며 2006년 전남 영광군 원불교 경내로 이건해 용문당은 원불교창립관으로, 용무당은 옥당박물관과 찻집으로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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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정(서울시 유형문화재). 경복궁 후원에 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풍년을 기원하며 현 영빈관 인근에 조성된 경농재도 있었다. 1893(고종 30)년 풍년을 기원하는 뜻으로 지은 재당이다. 동시에 신무문 밖 후원에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한 논밭도 있었다. 당시 조선의 전국 8도(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를 따서 8구역으로 나눈 것으로 ‘팔도(八道)배미’라고 불렀다. 


현 관저 인근에는 풍수지리적 명당이자 길지(吉地)로 여겼음을 볼 수 있는 ‘천하제일복지’가 각자된 암벽이 있으며, 근처 천하제일복지천에 1868년 고종 때 경복궁 후원 조성 시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오운정, 침류각, 벽화실 등이 있다. 1989년 청와대 대통령 관저 건립 시 현 위치로 오운정, 침류각을 이건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오운정은 경복궁 후원에 지었던 오운각의 이름을 딴 건물로 ‘5색 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곳과 같다’는 의미다. 침류각은 1900년대 초의 전통가옥으로 경복궁 후원이었던 지금의 청와대 경내에 있는 누각건물로 북궐(北闕)의 부속 건물로 추정된다. 역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은 통일신라(9세기) 불상으로 1912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이전됐다가 역시 1989년 청와대 대통령 관저 신축 시 현재 위치로 이전됐다.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 조각의 높은 수준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2018년 4월 20일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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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류각(서울시 유형문화재)



1966년 사적으로 지정된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영조의 어머니인 숙빈 최씨를 비롯해 영친왕의 어머니 귀비 엄씨 등 일곱 분의 사당이다. 


북악산에 오르다

북악산(정식 명칭: 백악산)은 한양의 북현무이자 주산으로 도성의 조형원리와 사상적 체계로서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 또한 정궁(경복궁) 후원의 식생경관을 유지해 자연과 문화적 요소가 결합된 복합적인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악산 동편 기슭에는 신라 진평왕 때 건립한 절터로 알려진 법흥사(法興寺) 터가 있다. 지금은 축대와 추춧돌 등이 남아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된 ‘서울 한양도성’은 서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조선 시대 도성(都城)으로 둘레는 약 18㎞이다. 남대문과 동대문 등의 성문과 암문(暗門), 수문(水門), 여장(女墻), 옹성(甕城) 등의 방어시설을 갖추고 있다.


북악산 정상에 있는 두 개의 바위도 눈여겨볼 만하다. 선사시대에 소망을 기원하며 작은 돌로 바위 표면을 갈아낸 홈인 성혈(性穴)이 있는 바위와 새 모양의 바위가 그것이다. 또한 북악산 정상에서 삼청동 쪽 방향 8부 능선에 돌출해 있는 부아암(負兒岩)은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여 북악산의 상징과도 같다. 이 바위는 서로 포개진 두 바위가 마치 아이를 업고 있는 것처럼 보여 ‘부아암’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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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일제강점기 일제의 만행 중 하나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산마다 쇠말뚝을 박은 것인데, 북악산 숙정문 북서쪽 약 400m 지점에 있는 ‘촛대바위’ 상단부에도 쇠말뚝이 박혔다. 이 바위의 정남쪽 방향으로 경복궁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후 이 바위의 쇠말뚝을 제거하고 우리 민족의 발전을 기원하는 촛대를 세우며 이름을 ‘촛대바위’라고 정했다.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돌아온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국민에게 개방돼 국민의 쉼터이자 공원으로 돌아온 것은 어쩌면 정해진 일인지도 모른다. 일제에 의해 궁궐이 헐리고, 산머리에 쇠말뚝이 박혔지만 우리 민족의 정기까지는 끊을 수 없었다. 혹 막혀 있던 정기가 있다면 이번 청와대 개방을 시작으로 다시금 그 정기가 흐르고 흘러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날들을 이겨내고, 사시사철 푸른 정기를 뿜어내는 희망의 날들이 계속되기 만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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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촛대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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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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