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마루대문 천년의 시간 넘어 영원한 찬란함 꿈꾸다

2021.06.28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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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시간 넘어

영원한 찬란함 꿈꾸다 


글, 사진. 장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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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을 통일한 신라, 그 천년의 시간. 이 모든 것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라졌다 할지라도 찬란했던 역사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백제는 물론, 고구려의 항복을 받아내고 당나라 군사까지 축출하면서 신라는 완전하게 한반도의 주인공이 됐다. 신라인이 쌓아온 천년의 시간은 세계 역사상 유례에서도 찾기 힘든 긴 왕국이었다. 무엇이 그토록 신라인의 정신을 강하게 만들었고, 어떻게 긴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왜 한 순간에 그 찬란함은 물거품처럼 사라진 걸까. 탐방팀은 신라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경주(옛 ‘서라벌’)에서 그 답을 찾아봤다.


왕의 탄생, 천손 사상

경상북도 동남부에 위치한 경주는 동쪽으로는 동해, 서쪽으로는 청도군과 영천시,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북쪽으로 포항시를 접하고 있다. 경주는 산세가 어우러지는 다른 도시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벌판이 눈앞에 넓게 펼쳐지는데 ‘과연 서라벌이구나’라고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도시 어디를 가나 사찰·유적·석탑 등의 문화재를 만날 수 있다. 역사 보존을 위해 주변으로 큰 건물을 짓지 않고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서다. 그래서일까. ‘살아있는 문화의 도시’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땅이다.


현재 이름인 경주는 935(고려 태조 18)년 부터 불렸다. 원래 신라는 건국 초기(기원전 57년)에서 신라 멸망(935년)까지 서라벌, 금성 등 다양한 이름을 가졌었다. 이 땅은 긴 시간만큼 유구한 역사가 깃든 문화재가 참 많다. 


특히 ‘나정(蘿井)’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이다. 이곳은 문루가 없고 안내판이 하나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철책 안쪽으로는 노송이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고, 그 한쪽에 우물터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오면, 문화재인데 빈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건국 설화처럼, 이곳이 천년 왕국의 첫 시작을 알린 곳이라면 오히려 지금의 소박함이 더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신라 건국 설화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잘 담겨있다. 옛날에 진한 땅에 사는 6촌장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번개 같은 이상한 기운이 나정으로 내린다. 그런데 이 우물가에 하얀 말이 무릎을 꿇고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이를 신기하게 여겨 가까이 가보는데, 말은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는 알만 남게 된다. 그 알에서 한 아이가 나오니 그 모습이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잠시 후 사람들이 동천(東天)에서 아이를 씻기자 몸에서 광채가 났다. 그러자 새와 짐승은 춤췄고 천지가 진

동하고 하늘이 환해졌다. 그 아이 이름을 혁거세라 하고, 박과 같은 알에서 나와 성을 박(朴)이라고 했다. 박혁거세가 13세 되던 해(기원전 57년) 그는 왕이 되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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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우물인 ‘나정(蘿井)




이곳 나정을 중심으로 보면 사방에 문화재가 참 많다. 차로 5분 거리에는 신라의 천문관측소인 ‘첨성대’가 있는데,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인근에는 ‘내물왕릉(신라 제17대 왕 무덤)’ ‘동부사적지대(여러 사적이 모인 곳)’도 있다. 


또 고목들이 우거진 자연 숲인 ‘계림(鷄林)’이 있다. 이곳은 신라 건국 때부터 있던 숲으로, 원래는 ‘시림(始林)’으로 부르다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으로 ‘계림’이 됐다. 이와 관련된 설화도 <삼국유사>에 잘 담겼다. 탈해왕 4(65)년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에서 서리(西里)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큰 빛이 내린다. 호공이 그곳에 가보는데 황금상자가 나무 끝에 걸려있고 하얀 닭이 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이에 즉시 왕에게 달려가 고하고, 탈해왕이 직접 이곳에 와서 황금 상자를 열게 되는데 그 안에 사내아이가 누워있었다. 그를 궁궐로 데리고 와 이름을 ‘김알지’라고 짓는다. 이처럼 신라 건국 신화 속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손(天孫) 강림 사상이 잘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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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鷄林)’



그런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국가의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기원전 37년경) 건국 신화를 보면, 하늘의 신인 해모수와 물의 신인 하백의 딸 유화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해모수가 잠시 하늘로 간 사이에 유화는 금와왕의 도움으로 궁궐에 살게 되는데, 그 당시 유화는 해모수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다. 유화가 큰 알을 하나 낳게 되니 여기서 ‘주몽’이 태어난다.


가야(서기 42년) 건국 신화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부족장 9명은 백성과 함께 구지봉이라는 산에 올랐다. 그때 부족장들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겠다’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데, 하늘에서 보자기가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온다. 그 안에는 여섯 개의 황금빛 알이 들어 있었다. 이 알에서 6명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가장 처음 태어난 아이에게 ‘수로’라고 이름 짓는다. 이 아이가 바로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이다. 나머지 아이들도 ‘대가야’ ‘아

라가야’ 등 다섯 가야의 왕이 된다. 


종합해보자면, 우리나라의 건국신화는 단군 신화 이래 천손(天孫) 강림 사상이 잘 담겼다. 알은 곧 아기의 탄생을 뜻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강림한 이 아이가 다스리는 땅의 백성은 택한 선민이 된다. 이처럼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신화로 인해, 한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결국, 천손 강림 사상은 단순히 시대의 건국을 넘어 후손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어떤 한 뜻을 품고 구전으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을 깨달아야겠다.


대중 불교 아닌 귀족불교

경주는 천년의 신라 역사를 간직한 거대한 보물 창고다. 그중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리는 경주 남산은 크고 작은 불교 유산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동서로 4㎞, 남북 8㎞로 뻗은 이 산은 금오봉(해발 468 )과 고위봉(494 )이 오롯이 마주 보고 있다.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조선 전기 학자인 김시습은 금오봉의 이름을 딴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용장사에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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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금오봉(해발 468 ) 정상



<삼국유사>에는 남산을 ‘사사성장 탑탑안행(寺寺星張 塔塔雁行)’이라고 했다. ‘절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탑은 기러기가 줄지어 서 있다’는 말이다. 향토사학자 고(故) 윤경렬 선생은 ‘남산을 보지 않고 신라를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럴만한 것이 푸르게 우거진 산 어디를 가나 눈길을 머무는 자리에는 불상과 불탑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평평한 둔덕, 산기슭 등에서는 신라인들의 강인한 정신이 담겨 있었다. 


특히 상선암 위로 봉우리를 향해 오르다 보면 숨 멎을 듯 한 진풍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인데, 6m높이로 크고 웅장해 천년의 신라인의 향기가 잘 묻어있다. 자연 암반을 파내어 만든 이 불상의 몸을 약간 뒤로 젖히고 반쯤 뜬 눈으로 속세의 중생을 굽어 살펴보는 듯했다. 또 머리 뒷부분은 바위를 투박하게 쪼아 내어 마치 금방이라도 나올 듯 했다. 금오산 정상을 지나 산세를 즐기다 보면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도 만날 수 있다. 용장사 법당터보다 높은 곳에 세워진 이 탑은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랫 기단으로 삼아 산 전체를 기단으로 여기도록 고안됐다. 윗부분이 없어졌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 높게 보이고 자연미가 조화된다. 이처럼 남산은 산 전체가 신라 불교의 정신적 영지(領地)이자, 예술적 보고(寶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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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천문관측소인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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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삼국시대 신라의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해지는 굴식 돌방무덤 우)남산에서 드물게 선각으로 여섯 분의 불상이 두 개의 바위에 새겨진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그런데 여기서 잠시 생각해볼 것이 있다. 신라는 삼국 중에서 가장 먼저 건국됐지만 불교를 가장 늦게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교문화가 가장 융성했다. 불국사, 황룡사 9층탑 등이 바로 그 증거물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삼국 중 유독 신라에서 불교문화가 꽃 피운 걸까. 바로 신라 불교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원광법사와 ‘불국토’ 건설의 청사진을 선덕여왕과 함께 실현해 간 자장율사의 공이 컸다. 이들은 ‘미륵’이라고 하는 ‘미래의 부처’가 언젠가는 서라벌에 다시 올 거라고 하는 신앙심을 고양시켰고, 그 결과 불교문화를 절정에 이르게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맹점도 존재했다. 흔히 불교하면 모든 중생을 구원하는 대중 불교를 떠올린다. 그러나 신라의 불교는 대중 불교가 아닌 귀족 불교였고, 특수 계층과 귀족층만이 누렸다. 더 쉽게 말하자면, 특수 계층에서 왕권 강화와 국토 확장 등을 위해 불교를 활용한 것이었다. 당연하게 불교는 국교가 됐고, 신라 곳곳에 많은 석탑과 불상을 짓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처럼 신라 천년의 역사를 이어간 불교문화 속에는 모순이 존재했다. 이를 감추기 위해 그 찬란함은 어쩌면 더욱 빛나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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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하나된 종교, 그 끝은?

주목할 것은 종교가 정치와 하나 되었을 때 그 끝은 어떠한가다. 우리가 단순히 신라의 불교문화를 넘어서 종교라는 측면을 함께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를 보면, 국가라는 것은 반드시 종교와 맞물려 탄생해왔다. 신라의 탄생과 천년의 기간 속에도 불교는 항상 함께했다. 이후 한반도를 차지한 고려도 불교문화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교는 정치, 권력과 또다시 하나되면서 종교라는 근본이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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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암반에 6 높이로 크고 웅장하게 만든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교를 앞세운 권력은 항시 망국으로 이어졌다. 천년 왕국을 이은 신라는 고려에 의해 멸망당했고, 종교와 정권이 뒤엉킨 고려도 세력 다툼에 결국 종말을 맞이했다. 이후 역성혁명으로 이씨 왕조라는 조선이 탄생된다. 이때 조선은 불교가 아닌 유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였고, 이전 것을 청산하고 새 시대를 열게 된다. 그러나 조선 왕조도 이전과 결코 다르지 않았다. 종교와 권력은 어느새 하나 되어 서로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구한말, 외세의 침탈을 불러들였고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는 참혹한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이것이 정치와 권력이 하나 돼서 맞이하는 한 나라의 마지막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비단 그때뿐이겠는가. 오늘날도 종교와 정치가 하나되는 양상은 반복되고 있다. 종교가 본래의 본질만을 추구한다면 사실 권력이라는 부분은 굳이 필요 없다. 하지만 정치와 종교가 또다시 서로 위력을 위해 하나 되니 부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 역사처럼 오늘날도 종교 세상을 말세(末世)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 왜 종교와 정치가 얽히는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종교(宗敎)’라는 한자를 자세히 알아야한다. 으뜸 종(宗)에서 ‘갓머리(宀)’는 하늘을 뜻하며, 이는 ‘보일시(示)’와 대비되는, 즉 봉인된 하늘의 ‘비밀’을 의미한다. 본래 알 수 없던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은 ‘계시(啓示)’이고, 그 감춰진 것을 보여주고 알려주니 ‘으뜸의 가르침’이 된다. 하늘의 것을 알려줄 때 비로소 참 종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니 오직 그를 통해서만이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는 게 아니겠는가. 기독교 경서인 <성경>에 보면 ‘범사에는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은 이룰 때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는 지금까지는 보여주고 알려주는 때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세상에는 종교라는 말은 있었지만 진짜 종교가 없었고, 신앙인조차 종교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니 정치와 어울리는 게 어쩌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창조주가 하늘의 비밀을 열어 알려주는 때요, 참된 종교가 비로소 나타나게 됐다. 그러니 이 시점에서는 이전의 역사는 반면교사 삼고, 늦기 전에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는 새 세상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곳이 바로 신천지(新天地) 시대다. 신라가 보여준 천년이 찬란함. 그 시간을 넘어 보여주는 새 시대의 영원한 찬란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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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맞닿은 듯 높게 보이는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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