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호 마루대문 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보는 명작

2021.10.01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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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만나러 갑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보는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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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인왕제색도>



글 백은영 사진 남승우 사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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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언젠가 때가 되면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주로 본래 자기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떠돌고 있는 국외 (불법·부당) 반출 문화재 환수에 자주 쓰이는 용어이지만, 이번엔 좀 특별한 곳에 사용해도 될 것 같다. 바로 ‘이건희 컬렉션’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지난 2020년 10월 작고한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고(故) 이건희 회장의 개인 장 미술품을 그의 사후에 유족이 기부한 세기의 기증품을 말한다. 유족 측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소장품만 해도 1만 1023건 약 2만 3000점에 이른다. 


기증품 중에는 국보 제216호 <정선 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보물 제2015호 <고려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이 포함돼 있다. 특히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바로 눈앞에서 본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우리에게 교과서 그림으로 친숙한 이중섭의 <황소>나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등도 만날 수 있으니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문화와 예술의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이건희 컬렉션’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환지본처’가 아닌가 한다.


그림의 떡 NO! 향유의 예술!

‘이건희 컬렉션’을 통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9797건(2만 1600여 점),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미술품 약 1226건(1400여 점)을 기증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선 필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추성부도(秋聲賦圖, 보물 제1393호)> 등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돼 있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했다. 그야말로 문화의 보물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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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천수관음보살도>

보물 제2015호,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과 모네,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및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회화가 대다수를 이루며, 회화 이외에도 판화, 소묘, 공예, 조각 등 다양하게 구성돼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한다. 


‘이건희 컬렉션’은 한국 고고미술사 및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하는 수준 높은 작품들로써 각 기관의 문화적 자신이 풍부해졌을 뿐 아니라, 이를 계기로 해외 유명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는 “미술관의 경우 그동안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미술작품을 보강하는 계기가 됐다”며 “한국 근대미술사 전시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내다봤다. 또한 발굴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었던 박물관 역시 우리 역사의 전 시대를 망라한 미술, 역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재들을 골고루 기증받아 고고·미술사·역사 분야 전반에 걸쳐 전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누군가의 소장품이 아닌 모든 사람이 함께 보고,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만나게 되는 ‘이건희 컬렉션’. 그중 몇 작품들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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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인왕제색도>, 79.2x138.2㎝, 1751, 국보 제216호, 국립중앙박물관

Tip. 한 그림 안에 두 가지 시점 공존. 평생의 친구 사천 이병연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이 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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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추성부도>, 56x214㎝, 1745, 보물 제1393호, 국립중앙박물관

Tip. 중국 송대 구양수(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그림으로 그린 시의도(詩意圖).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마음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잘 표현함





그림에 담긴 이야기, 이야기에 담긴 그림

지난 7월 21일 일반에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중 단연 눈에 띄는 대표작으로 많은 이들이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1751)>를 꼽는다. 조선 초기의 걸작으로 꼽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 1447)>와 함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인왕제색도>에서 ‘인왕제색’이란 비가 갠 모습의 인왕산을 말한다. 정선이 나이 70세를 훌쩍 넘겨 지금의 경복궁 서쪽에 있는 인왕산(338m)의 실제 경치를 보고 그린 산수화다. ‘최고의 진경산수화가가 그린 최고의 진경산수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그의 그림을 실제로 보면 마치 산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필선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특히 그림 속 인왕산을 두르고 있는 운무(구름)는 흡사 인왕산에 산신령이라도 살고 있을 것 같은 묘한 신비로움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다. 진경산수화라면 지금의 사진처럼 실제와 가깝게 그려야 할 터인데, 인왕제색도는 실제 경치와는 사뭇 다르다. 사실 진경산수화란 우리나라 산하를 직접 답사해 그린 산수화로, 화가가 본 자연경관에 당시 느낀 감흥과 정취가 녹아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왕제색도>에는 중앙에서 높은 산을 올려다본 시점과 집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점이 동시에 등장한다.


이 그림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가 있으니 바로 정선의 둘도 없는 평생지기 친구이자 시인인 사천 이병연(1671~1751)이다. 정선이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이병연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고, 1751년 5월 29일에 숨을 거두게 된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이병연이 사망하기 사흘 전까지 서울에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한다. 


정선이 비 갠 후의 인왕산을 그리게 된 데는 그가 살던 곳이기도 했지만, 평생지기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게 마음으로 그려 탄생한 그림이 바로 조선 후기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는 <인왕제색도>다. 


다음은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다.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구양수(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그림으로 표현한 시의도(詩意圖)로 단원이 죽기 전 그린 작품이다. 삶과 죽음의 심오한 인식을 그림 속에 녹여냈다. 그림 왼쪽에는 <추성부> 전문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 말미에 단원은 ‘을축년 동지 후 삼일, 단구(丹邱)가 베껴쓰다’라고 적었다. 이를 토대로 <추성부도>가 제작된 해가 1805년이며, 이는 단원이 죽기 전 해로 추정된다. 즉 <추성부도>는 그의 마지막 기년작이자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으로 인식된다. 


여기서 그림을 잠깐 살펴보자. 그림 속 초가집 둥근 창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구양수다. 그의 시선 끝에는 한 아이가 있고, 그 아이는 왼쪽 팔을 들어 달이 뜬 곳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아이의 맞은편에는 학으로 보이는 새 두 마리가 역시 달이 뜬 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잎이 떨어져 앙상해진 나무까지 작품 전체에서 뭔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여기서 ‘추성부’는 ‘가을소리에 관하여’라는 의미로 어느 가을밤에 방에서 책을 읽고 있던 구양수가 밖에서 들리는 소리가 궁금해 아이를 불러 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심부름하는 아이는 소리의 근원을 찾지 못했으나 혹 무슨 소리가 들렸다면 그건 아마도 나무들 사이에서 나오는 소리이지 싶다고 덧붙여 전한다. 아이의 그 한마디에 문득 깨달음을 얻는 구양수. 그렇다 구양수는 ‘가을의 소리’를 만물이 쇠하여지는 소리로 들은 것이다. 인생의 허무함과 노년의 비애를 느꼈던 구양수와 이에 공감하는 죽음을 앞둔 단원의 심적 상태를 <추성부도>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생 그 쓸쓸함이 묻어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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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281.5x567㎝,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1만 1023건 약 2만 3000점 기증

근대미술사 전시·연구에 큰 역할

고고·미술사·역사 전반에 기여해




교과서 밖을 나온 그림들

“어디서 봤던 그림이더라?” 일부러 찾아보진 않았지만 한 번쯤은 봤던 그림들. 교과서 밖을 나온 유명 작품들도 ‘이건희 컬렉션’ 목록에 포함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작품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는 김환기(1913~1974)의 <여인들과 항아리(281x568㎝, 1950년대)>를 들 수 있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색면으로 분할된 배경에 사슴, 여인, 도자기 등을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 배치한 작품으로 도자기를 들고 있는 반라의 여인들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이 시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대형작품에 속하며, 당시 그가 한국의 전통미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따라다닌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4~1955년께 최고의 재벌로 흥성하던 삼호방직의 총수 정재호가 길이만 5m가 넘는 대작을 김환기에게 의뢰하게 된다. 당시 김환기는 열성적으로 작업하며 그림을 그렸으나 정 회장의 부인이 가슴을 드러낸 세여인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는지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심기가 불편해진 김환기는 주문자를 설득하는 대신 작가의 서명을 일부러 써넣지 않는 묘수를 택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운영난에 처하게 된 소장자 쪽이 1980년대 초 당시로서는 거액인 4~5억 원의 가격에 삼성가에 처분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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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30x97㎝, 1954, 캔버스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노동하는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린 박수근(1914~1965)의 <절구질하는 여인(130x97㎝, 1954)>도 빼놓을 수 없다.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그는 광복 이전에는 주

로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지만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됐다. 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어렵게 생활했으며,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예술작품 속 다양한 이야기 공존

교과서 밖으로 나온 작품들 多

함께 향유하는 문화가치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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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 26.5x36.7㎝, 1950년대, 종이에 유채, 국립현대미술관




<절구질하는 여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을 화면 한가운데 클로즈업해 그린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띠는 화면에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로 대상을 묘사했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해 만들어 낸 표면의 거친 질감에서 소박한 정취가 느껴진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황소가 고개를 틀고 울부짖는 듯한 순간을 그린 이중섭의 <황소(26.4x38.7㎝, 1950년)>. 황소의 머리를 화면 한가득 묘사함으로써 소가 내뿜는 힘찬 기운을 강조한 작품이다. 평안남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중섭(1916~1956)은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분카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자유미술가협회전을 중심으로 작품활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전쟁 때문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피난 생활을 했으며, 전쟁 중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가면서 가족 간의 이별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작품의 주된 주제가 됐다. 전쟁이 끝난 후 돈을 모아 가족을 만나려는 생각에 활발히 작품을 제작하며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질환 등에 시달리다 1956년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황소>는 이중섭이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당당한 기세를 읽을 수 있다.


모네와 샤갈을 만나다

전시회나 인터넷, 혹은 작품을 소재로 만든 다양한 제품 등을 통해 만났던 끌로드 모네와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 다수를 소장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멋쩍게 상상해보게 되는 작품들도 이번 기증 목록에 그 이름이 올랐다. 


기증 작품 중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끌로드 모네(1840~1926)가 지베르니의 자택에 연못에 핀 수련을 주제로 제작한 250여 점의 작품 중 하나인 <수련이 있는 연못(Le Bassin Aux Nympheas, 1919~1920, 100x200㎝)>, 러시아의 유대인계 가정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

부하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Les amoureux aux bouquets rouges, 1975, 92x73㎝)>, 프랑스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폴 고갱(1848~1903)의 <무제(Untitled, 1875, 114.5x157.5㎝)> 등이 대표적이다. 


고 이건희 회장 유족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은 미술사적 가치는 물론 그 규모에서도 미술관 역사상 최대 기록이다. 근·현대미술사를 아우르며 20세기 초 희귀하고 주요한 국내 작품에서부터 해외 작품까지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비약적으로 보강시켰다. 전체 1488점 중 한국 작가 작품 1369점, 해외 작가 작품 119점으로 구성돼 있다. 부문별로는 회화 412점, 판화 371점, 한국화 296점, 드로잉 161점, 공예 136점, 조각 104점, 사진 및 영상 8점 등으로 고루 분포돼 있다. 여기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유영국, 변관식, 이응노, 권진규 등 한국미술사 거장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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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MMCA)은 기증자의 뜻을 기리고자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내년 3월 31일까지 서울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34명의 주요작품 58점을 먼저 선보이며,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주축으로 ‘수용과 변화’ ‘개성의 발현’ ‘창작과 모색’ 등 세 개의 주제로 나누어 진행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은 아쉽게도 이달 26일까지만 진행된다.


무슨 이유로, 어떤 계기로 소장하게 된 작품들인지는 면면이 알 수 없다. 다만 그 많은 소장품이 이제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돼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손에 쥔 것을 놓는다는 것은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예술품들이 누군가의 손을 떠나 대중에게 공개되고, 그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다는 것. 문화와 예술이 가진 진정한 가치는 어쩌면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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