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호 역사 고려의 첨단무기 발명과 발화군 편성

2021.09.01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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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첨단무기 발명과

발화군 편성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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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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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신라시대에 화약을 사용했는지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화약과 유사한 강력한 발화 물질을 전투 시 화공에 사용했다는 것은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이고 고려시대에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공민왕 5(1356)년 이전에 화약병기가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들은 〈고려사〉에 등장하는 대포(大砲), 포차(砲車), 발화(發火), 화시(火矢)라는 단어가 전쟁기록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에 각종 무기의 제작에 관한 내용이 〈고려사〉 병제(兵制)에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덕종 원년(1032) 3월에 박원작이 해당 관청을 시켜 ‘혁차(革車)·수질노(繡質弩)·뇌등석포(雷騰石砲)를 제작하게 하고 또 팔우노(八牛弩)와 24종의 병기를 변방의 성에 설치하게 하십시오’라고 건의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혁차는 전쟁에 사용하는 수레로 흔히 병차(兵車)를 통상적으로 가리키는 명칭인데 원래 차(車)를 가죽으로 감쌌기 때문에 유래된 것이다. 수질노는 쇠뇌라고도 하는 힘이 세고 멀리 나가며 명중도가 높은 기계식으로 작동되는 활의 일종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천보노와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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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대포




석포는 돌을 멀리 던져 성벽이나 성문 등을 부수는 데 사용한 공성(攻城) 무기의 한 종류이다. 석포의 명칭을 뇌등(雷騰)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일부 학자들은 화약병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의 견해로는 이 석포의 성능이 벼락처럼 빨리 날아간다는 의미에서 뇌등이란 용어를 석포에 붙여 신무기임을 강조한 것이라 판단된다. 


박원작은 한국 화약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무선(崔茂宣)보다 약 300년 앞서 상사봉어, 서면병마도감사로 재임하면서 뇌등석포 이외에 수질노를 개량한 수질구궁노, 천균노 등의 우수한 첨단무기를 만들어 왕에게 상을 받았으며, 이 무기들은 동·서 변방 진지에 배치해 실전에 사용하였다. 박원작은 상주 박씨 가문에서 자랑하는 고려시대 문중을 빛낸 3인의 무인(武人) 중에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의 자주국방을 위하여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최초의 첨단 병기 발명가이며 제조기술자이다.


발화는 화약을 전투 무기로 사용하였다고 보는 유력한 단서인데 〈고려사〉 병제 숙종 9(1104)년에 다음과 같이 발화군 편성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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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12월. 윤관의 건의에 따라 처음으로 별무반을 설치하였다. 문무산관과 이서들로부터 상고·노비 및 주(州)·부(府)·군(郡)·현(縣)에 이르기까지 말을 가진 모든 사람을 신기군으로 편성하고, 말이 없는 자는 신보·도탕·경궁·정노·발화 등의 부대로 편성하였다. 그리고 나이 20세 이상인 남자로 과거 응시자가 아닐 경우 모두 신보군에 소속시키고 양반과 더불어 각 군진부의 군인은 일년내내 훈련을 받게 했다. 또한 승려를 선발해 항마군을 조직하였다.” 


고려 숙종 때 새로 설립한 별무반의 발화군이 바로 화약을 화공에 사용토록 조직된 부대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화약은 고려 말 최무선이 발명한 화약보다 폭발력 등 성능이 떨어지고 화포 내에 장착하여 먼 거리에 포탄을 날려 보내기 위한 화약이 아니고, 군 막사나 저장고를 불태우거나 기병들에게 위협을 주는 화공전에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강력한 화염을 생성시키는 초기 흑색화약이라고 볼 수 있다. 발화군은 흑색화약 덩어리로 화살이나 쇠뇌에 부착하여 적군에 타격을 주는 불화살 즉 화시를 사용하는 활과 쇠뇌, 불붙은 화약 덩어리를 날리는 석포로 무장된 부대라고 판단된다. 



별무반

고려 숙종(1054~1105년) 때 여진(女眞)을 정벌하기 위해 편성된 군사조직.

당시 동북면행영병마도통이었던 윤관(尹瓘)은 여진족과의 패배 원인에 대해 여진군의 주력이 기병(騎兵)이었던 반면 고려군은 주로 보병(步兵)이었던 점 등을 들어서 숙종에게 별무반을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과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병(僧兵)으로 구성된 항마군(降魔軍), 도탕(跳盪)·경궁(梗弓)·정노(精弩)·발화군(發火軍) 등의 특수군으로 조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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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고려사〉의 화약 사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기록을 보면 통일신라 이후 고려 초에서 중반까지 중국 원나라의 몽고군이 화포에 사용한 화약과 동일한 성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강력한 발화 성능을 갖춘 원시적인 흑색화약이 부분적으로 제조되고 실전에 사용되었다고 본다. 

 

화약을 중국이 먼저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더 우수한 화약을 발명한 것은 바로 고려의 최무선이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전구를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보다 71년 앞선 1808년 영국의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가 처음 발명하였다. 이때 공개된 아크등은 빛이 너무 강하고 소음과 냄새 때문에 가정에서 사용하기가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서 보급이 안 되고 추후 등대 등 산업용으로 일부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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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험프리 데이비가 처음 발명한 전구에 대한 신문 기사를 읽고 전구가 빛을 밝히는 시간을 하루 정도 늘리면 돈을 벌겠다고 생각해 자신의 연구소에 있는 연구원 수십 명을 동원하여 전구의 빛을 내는 소재를 개량하기 위해 2000여 번의 실험을 통해 40시간 사용 가능한 탄소 필라멘트 전구를 1879년에 새로 발명하게 되었고 이것 때문에 세계 모든 사람이 전구는 에디슨의 발명품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증기기관도 제임스 왓트가 처음 발명한 것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앞선 몇십 년 전 제임스 뉴커먼이란 사람이 처음 발명하였고 제임스 왓트는 제임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을 수리하는 기사로 일하다 새로운 피스톤을 개량하여 실용적인 증기기관을 발명하였다. 그가 이 제조기술을 특허 내고 생산해 전세계에서 사용하게 되었고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되게 함으로써 유명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발명의 얘기에 비추어 볼 때 최무선이 화약을 발명하였다고 하여도 무리한 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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