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인물 운동치료체육학 박사 1호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장 “많은 이들이 운동치료로 척추 건강 찾는 것이 소망”

2022.04.2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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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치료체육학 박사 1호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장

“많은 이들이 운동치료로

척추 건강 찾는 것이 소망” 


글 백은영 사진 박준성 사진제공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장


척추는 몸의 기둥이다. 허리가 아프거나 불편하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는다. 무거운 물건을 들다가, 혹은 아침에 자고 일어나는 순간 갑자기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면서 움직일 수 없게 된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대부분은 수술이나 약물치료 등을 통해 증상을 완화시키지만 ‘완치’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먼 것이 또한 허리(척추) 통증이다. 여기 그 통증과 고통을 직접 경험하면서 수술이 아닌 운동치료를 통해 척추 원반 탈출증(디스크)을 이겨낸 이가 있다. 바로 전직 마라톤 국가대표이자 체육학 박사인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장이다. 


이홍열 원장은 경희대학교에서 체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체육학과 스포츠 의학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운동치료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온 인물이다. 그 결과 운동치료체육학 박사 1호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사실 그는 체육학 박사라는 타이틀 이전에 1984년 LA올림픽 마라톤 국가대표였으며, 같은 해 동아마라톤대회에서 42.195㎞를 2시간 14분 59초에 완주해 2시간 15분이라는 마의 벽을 깨뜨리며 한국 신기록을 세운 주인공이기도 했다. 촉망받는 마라톤 선수에서 운동치료체육학 박사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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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치료체육학 박사 1호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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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이홍열 박사가 지난 1984년 동아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14분59초로 골인해 한국 신기록을 세운 당시 모습. 오른쪽) 

실업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의 이홍열 박사 (제공: 이홍열 박사)



달리는 것이 행복했던 소년 

이 원장의 고향은 충남 논산 양촌면 거사리다. 당시 집에서 중학교까지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했는데 배차 시간이 길었다. 게다가 버스는 늘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버스를 타지 못할 때면 먼저 버스에 탄 친구에게 가방만 맡기고는 학교를 향해 무작정 달려야 했다.


버스를 못 탈 때면 학교까지 달려가

버스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한 적도

육상에 소질 있는지 테스트 받기도


그러던 어느 날, 버스보다 먼저 학교 앞 정류장에 도착한 그를 보며 친구들이 “홍열이, 네 머리에 호빵 쪄도 되겠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교복 입고 비포장도로를 열심히도 달렸던 것 같아요. 어느 날은 버스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얼마나 열심히 달렸는지 교복 모자를 벗으니 머리에서 정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거예요. 땀에 옷도 흠뻑 적었지만 뭔지 모를 성취감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뛰다보니 재미도 있고 즐거운 거예요.”이 원장은 혹시 자신이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이던 그는 당시 마라톤 명문학교로 꼽히던 대전 대성고등학교를 찾아가 육상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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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디스크 운동치료로 좋아진 사례(이홍열 박사). 왼쪽은 1998년 7월 26일, 

오른쪽은 2016년 3월 2일 촬영한 MRI사진으로 한눈에도 많이 좋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제공: 이홍열 박사)




“당시 체육선생님을 만나 육상을 해보고 싶은데 아직 경기에 나간 적이 없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으니 테스트를 받아보고 싶다고 말했죠. 그렇게 테스트를 받으러 나간 장소에는 전국 육상 상위권 안에 드는 선배들을 포함해 고등학생 선배들 20명 정도가 연습을 위해 나와 있었어요. 운동장 15바퀴를 돌라고 했죠. 그날 제가 6명 정도를 재친 모습을 보시고는 ‘운동에 소질 있다’고 해주셨죠.”


결국 이 원장은 당시 육상 명문이었던 대전 대성고등학교에 들어가 육상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그의 실력은 초반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학년 때 충청도 크로스컨트리 10㎞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전국대회에 나가면 고등학생 부문 1위를 차지하고는 했다. 고 3때는 전국종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5000m와 10000m에서 쟁쟁한 선수들을 재치고 1등으로 결승점에 도착했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그는 당시 대한육상연맹 회장이었던 (주)진로의 장익용 회장의 눈에 띄어 대학 진학 대신 실업팀에 들어가게 된다. 눈여겨볼 것은 이 원장의 영입과 동시에 (주)진로에 마라톤팀이 창설됐다는 점이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장익용 회장의 큰 결단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훈련으로 인한 무릎 부상으로 슬럼프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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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열 박사가 방송 강의에서 척추 디스크가 운동치료로 좋아진 사례를 소개하는 모습 (제공: 이홍열 박사)



부상 그리고 터닝 포인트

선수 생활 동안 우수한 기록을 선보이며 국제 및 전국대회에서 100회 이상 1위를 차지했던 그였지만 선수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실업팀에 들어오면서 과도한 훈련으로 무릎 부상을 당했어요. 침을 맞아도 무릎이 붓고 굽혀지지 않으니 밤에 잠도 오지 않았어요.”


잦은 무릎 부상으로 선수 생활 접어

대학에 진학해 체육학 전공하며

운동치료로 재활할 수 있는 방법 찾아


마산에서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됐을 때다. 10000m에서 1위를 하고, 다음날 마라톤 풀코스를 뛸 때였다. 날씨도 굉장히 무더웠다. 37㎞정도 뛰었을 때까지만 해도 1위를 유지하며 달리던 그였다. 뒤를 돌아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수한 성적으로 앞서가고 있던 그에게 한 아주머니가 양동이에 담긴 물을 갑자기 끼얹은 것이다. 더위에 고생하는 선수를 생각하며 한 행동이었지만 그에게는 독이 되어버렸다. 


“정신은 멀쩡하게 깨어있는데 몸이 굳어버렸어요. 근육이 굳어져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거예요.”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그는 결국 기권을 하게 되고 이 일은 그에게 지금까지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로 남았다. 아직까지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는 그다. LA올림픽 때도 그는 끝까지 부상투혼을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앞선 선수들과 함께 넘어지면서 뒤에 오던 선수가 그를 밝고 지나가는 바람에 무릎 뼈가 보일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많은 양의 피가 흘러 이미 신발은 피로 흠뻑 젖어 뛸 때마다 찌걱거렸다. 그는 37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고(故) 손기정 옹이 휠체어를 준비한 채로 마중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배의 부상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이 아직도 생각난다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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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열 박사가 마라톤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제공: 이홍열 박사)




뛰어난 기량과 끈기도 잦은 부상에는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그는 선수 생활을 접고 대학에 진학해 체육학을 전공하게 된다. 비록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가 겪었던 부상과 슬럼프는 운동치료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하나의 밑거름이 됐다. 

 

운동치료로 부상에서 회복돼

선수 시절 잦은 무릎 부상을 입었던 그는 침을 맞는 것 외에 재활하기 위해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그날그날 자신의 상태에 따라 달리는 속도와 거리를 조절하면서 달리는 것을 쉬지 않았다. 자신의 몸 상태에 따라 관절에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면서 달리다보니 어느새 많이 회복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이 원장은 생각했다. “아! 운동으로 진짜 치료가 되는구나!” 1990년대 초반 디스크가 터져 응급실에 실려 갔던 그는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무릎 부상을 운동으로 극복한 경험이 있던 그는 그길로 헬스장에 등록했다. 허리를 비틀고 움직이면서 근육을 키웠다. 처음에는 극심한 통증이 동반됐다. 그렇게 일주일,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기에 이르렀다. 수술 없이 운동치료로 재활에 성공한 것이다. 


“디스크는 신경이 없어 통증을 느끼지 못해요. 늘어진 근육이 가지신경을 눌러서 통증을 느끼는 거죠. 그래서 근육을 고쳐야 해요. 근육은 수술이나 시술 등을 통해 만들어지거나 고쳐지지 않아요. 근육은 본인이 노력해서 만들고 고칠 수밖에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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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열 박사가 마라톤교실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제공: 이홍열 박사)



이 원장이 방송이나 각종 초청 강의를 통해 알리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척추나 관절로 인한 질환은 운동치료를 통해 얼마든지 최상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운동치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치료에 많은 효과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나라 최초로 ‘운동치료영상’을 만들게 됐어요. 영상을 보고 누구든지 따라할 수 있게 만들었죠.”


디스크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디스크를 둘러싼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치료는 허리디스크뿐만 아니라 척추측만증, 일자목, 거북목, 무릎 퇴행성관절염, 오십견 등에도 적용할 수 있다. 


모두 현대인의 고질병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자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겪게 되는 현상이지만 운동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치료의 장점 중 하나는 환자 스스로가 운동 강도를 조절할 수 있어 무리하지 않는 이상 부상의 위험이 적다는 것에 있어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적어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발명하다

이 원장의 꿈은 소박하면서도 원대하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운동치료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에게 적용해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나 삶의 질까지 향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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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열 박사는 디스크를 비롯해 관절로 인한 질환을 운동치료로 충분히 회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운동치료 강의를 통해, 또 영상을 만들어 누구나 운동치료의 원리를 깨닫고 따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운동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카이로트렉션’이라는 척추견인기를 만들어 재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카이로트렉션은 눌렸던 신경을 펴주는 역할을 해서 환자가 스스로 운동할 수 있게 돕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덜 아플 수 있을까를 계속 연구하고 있다는 이홍열 원장. 그는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중 하나인 ‘복대’에 주목했다. 장기를 압박하지 않고 심장이나 폐의 기능에 영향을 주지 않는 ‘복대’를 만들고 싶었다. 강의나 특강을 다닐 때면 사람들에게 직접 개발한 복대를 사용해보게 했다. 착용만으로도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4년 동안 개선할 점을 찾아 보완해나갔다. 이미 특허가 

나온 지 2년 정도 됐으며, 이제 곧 시판도 눈앞에 두고 있다. 


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야외활동이 정체돼 있지만 이 원장이 20여 년 동안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것이 있으니 바로 ‘마라톤교실’이다. 마라톤교실을 통해 함께 걷고, 달리면서 사람들의 재활을 돕고 운동치료의 효능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이홍열 박사. 그의 마지막 그 한 마디가 봄날의 햇살처럼 따스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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