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인물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 수석壽石, 도道를 만나다

2022.11.24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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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
 

수석壽石, 도를 만나다 


글 백은영 사진 임혜지 사진제공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다. 무엇보다 자연과 벗하기를 좋아하며 그 안에서 시 한 수 읊는 것을 즐겼다. 산수가 미려한 곳을 찾아다니는 것을 낙으로 여겼으나, 어디 그게 쉬운일인가. 그래서 택한 것이 바로 산수경석(山水景石)을 집안으로 들이는 일이었다. 강이나 바닷가의 돌밭 또는 산중에서 기이하게 생긴 돌을 수집해 그 묘취를 즐기는 취미 바로 ‘수석(壽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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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무념무상



삼라만상이 담긴 돌, 수석

“두 손으로 들 정도 이하의 작은 자연석으로 산수미의 경치가 축소돼 있고 기묘함을 나타내고 회화적인 색채와 무늬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 또한 환상적인 추상미를 발산해야 하며 시정이 함축돼 있어 정서적인 감흥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수석의 사전적 정의다. 수석에 문외한이라고 해도 그 생김새가 기묘한 돌은 한눈에 들어오는 법이다. 인간의 손으로 가공되지 않은, 세월에 의해 자연 그대로 창조된 수석에는 산과 골짜기, 폭포와 같은 산수 경치가 그려지기도 하며 곤충이나 새, 사람 또는 탑과 같은 옛 유물 등 삼라만상의 형상이 담기기도 한다. 그 생김이나 색감 등에 따라 형상석, 무늬석, 색채석, 추상석, 전래석 등으로 구분되며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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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인생 40년 회고전 <임진강 황석 상처와 고통의 표정전>에서 만난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의 모습




수석壽石,

누군가에게는 한낱 돌에 불과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그 돌이 가진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는 것.




기록을 보면 인류가 돌을 가까이 두거나, 돌을 가공하거나 혹은 돌을 신성시하거나 하면서 늘 함께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한낱 돌에 불과해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그 돌이 가진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는 것. 수석은 그런이들의 눈에 띄어 비로소 하나의 이름으로 재창조 되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여기 수석인들만의 것으로 인식되던 ‘수석’의 위치를 예술의 경계로 끌어올린 이가 있으니 바로 인상석의 대가 일석(一石)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이다. 어느덧 수석 인생 40년을 맞이한 이완우 원장이 말하는 탐석(探石)과 수석(壽石) 그리고 임진강 황석(호박돌)과 함께한 15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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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 기원



공허함을 채워준 만남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어딘지 모를 공허함과 외로움을 느꼈다는 이완우 원장. 그가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것이 수석(壽石)을 모으는 일이었다. 


“강돌, 바다 돌. 그렇게 수석을 찾기 시작했어요. 보통 수석을 찾는 것을 ‘탐석’이라고 해요. 수석을 예술로 생각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탐석을 ‘작품활동’이라고 표현하죠. 탐석 자체가 이미 예술행위의 시작인 거죠. 그렇게 예술작품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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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




이완우 원장은 삼성물산(에스에스패션)에서 20여년을 지냈다. 이후 화랑을 열고 미술품 중개업을 하기도 했지만 IMF 이후 시작했던 터라 계속되는 적자 속에 결국 화랑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이들에게까지 피해를 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때부터였다. 그는 더욱 ‘돌’에 집중했고 지금까지 40년 수석 인생을 살아올 수 있었다. 이 원장이 지금까지 그 이름을 찾아준 수석만 3000여 점에 이른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를 통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임진강변의 호박돌들도 그랬다. 이완우 원장이 그들을 찾아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임진강 황석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표정을 가진 인상석이 되었다.


“우리가 돌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돌이 우리를 선택한다고도 볼 수 있어요. 내가 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돌이 먼저 나에게 손을 내민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기에 우리 수석인들은 지성으로 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또 경외하는 석덕(石德)을 쌓는 마음이 중요해요. 좋은 수석을 만났다는 것은 자신이 쌓아온 석덕과 지성을 어여삐 여겨 하늘이 점지해 주신 자연의 선물이라고 감사하는 겸양을 길러야 해요.”


수석, 예술이 되다

흔히들 수석은 일부 마니아층 즉 수석인들 사이에서만 향유하는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수석을 보면 탄성을 지르기도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렇기에 수석을 예술의 경계로 끌어 올리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수석이야말로 인공(人工)의 한계를

초월해 우리를 감동시키고 찬미하게 하는

수수한 자연미의 정화(精華)로서 돌 하나하나가

그대로 아름답고 신묘한 석상(石像)인 것”



사람의 손으로 새기거나, 그리거나, 만들지 않은 것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알리기까지는 이완우 원장의 노력이 컸다. 돌아보면 그가 40년 동안 인내하며 걸어온 수석 인생의 길은 곧 수석을 예술의 범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밑거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2014년 한국예술수석협회를 창립해 수석을 예술작품으로 발전시키는 데 앞장섰다. 단지 자연이 만들었다는 이유로 예술의 경계선 밖에 있었던 수석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예술 수석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개척해나간 것이다.


그는 협회 창립 이후 “수석이야말로 인공(人工)의 한계를 초월해 우리를 감동시키고 찬미하게 하는 수수한 자연미의 정화(精華)로서 돌 하나하나가 그대로 아름답고 신묘한 석상(石像)인 것”이라며 “점지받은 돌을 정성껏 손질해 좌대를 만들어 안치하고 돌과의 영적 교감을 통해 이름을 짓게 되면 마침내 수석은 하나의 예술품으로 완성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다름 아닌 예술행위 자체”라고 예술수석에 대해 정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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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인생 40년 회고전 ‘임진강 황석 상처와 고통의 표정전’에서 만난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이 

각각의 인상석들이 가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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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석(探石) 중인 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




국제PEN 한국본부 이사 이인평 시인은 지난 9월 23일 시작된 이완우 원장의 수석인생 40년 회고전 ‘임진강 황석 상처와 고통의 표정전’을 기념하는 평론 <이완우의 예술수석 세계>를 통해 “이완우의 수석은 한마디로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수석의 보편적 개념과 확연히 다른 예술성과 사회성에 기반하고 있다. 이완우의 수석들은 그 자신이 끊임없이 탐구해온 결과물로서 자기만의 개성을 기초로 한 예술적이면서 사회성이 내재된 의미로서의 결실임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어 “일반적인 수석에 비해 이완우의 수석은 조형성과 표현성을 중시해 선별한 예술적이면서도 실존적인 깊이를 천착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

“이완우 선생의 수석은 한국의 수석을

예술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미적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 또한 “임진강의 돌 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기 힘든 자연미의 독창적 형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반도 중심부에서 산출된 임진강 돌의 조형미에 대해 새로운 현대성을 부여해야 할 중대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본다”며 “이완우 선생의 40년 가까운 집념 어린 탐석의 과정에서 찾아낸 임진강 돌들의 여러 가지 오묘한 인간적 형상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새롭게 인식해야 할 미술사적 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더불어 “이완우 선생의 수석은 한국의 수석을 예술적으로 한 단계 도약시키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미적 가치가 정당하게 평가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완우 원장은 말한다. 수석은 단순한 돌이 아닌, 수수만년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견딘 끝에 자연이 만들어낸 완벽한 예술작품이라고 말이다.


“수석의 표피를 만져보면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있어요. 그 오랜 시간 동안 구르고 깨지면서 다듬어진 작품들. 임진강 황석은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입니다. 그냥 예술이 아니에요. 보통 예술품보다 위에 있는 상위 예술품으로 ‘원형예술(原型藝術)’이라고 할 수 있죠.” 


여기서 말하는 원형예술이란 그 고유성이 전혀 변질되거나 왜곡, 훼손될 수 없는 성질로 말미암아 원형의 절개와 순수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을 얘기한다. 특히 사람이 원하는 형태로 조석을 만들거나, 최종 수마(水磨)된 상태의 질감을 모방할 수 없는 임진강 황석(호박돌)이 가진 특질이 수석을 원형예술의 반열로까지 끌어올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임진강 황석의 진가를 알아본 이가 또한 이완우 원장이다. 그가 임진강 ‘호박돌’을 ‘황석’이라고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호박이 주는 상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마냥 ‘호박돌’이라고 부르기가 미안한 거예요. 어떻게 부를까 생각하다가 ‘황석’이라고 부르게 됐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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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2008년 임진강에 반한 첫 번째 작품




임진강에서 만난 ‘순교’

인상석. 사람의 얼굴 모양을 닮은 돌을 부르는 말이다. 특히 임진강 강물에 씻기고 깨지고 다듬어져 만들어진 천태만상의 인간군상의 모습은 더욱 사람의 표정과 닮아있다. 호박색 범주로 지칭되는 돌의 다양한 색상이 사람의 피부색과 유사한 까닭이다. 


“2008년이었어요. 임진강에서 ‘순교’를 만난 거죠. 수석을 걷어 올리는 순간 ‘순교’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후부터 단순히 수석이 아닌 예술작품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죠.”


이 원장은 그날 찾은 수석에 ‘순교’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순교를 만난 것을 두고 “하나님께서 점지해 주신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날 이후 그는 수없이 많은 임진강 황석을 만났다. 같은 표정의 인상석은 하나도 없었다. 인상석 하나하나에 그들만의 이야기와 사연이 담겨 있었고 그에 맞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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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우 대한민국수석진흥원 문화원장은 “하나님께서 점지해 주셨기에 ‘순교(임진강 황석으로 된 인상석)’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제게 (인상석을 만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땅속에 묻혀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지만 제 눈에 띄어 세상에 드러나고 이름까지 붙게 됐으니 말이에요.”


수석을 향한 그의 애정은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임진강 황석으로 만들어진 인상석을 향한 그의 애정은 남다르다. 지난 2008년 순교를 만난 이후 인상석을 향한 그의 시선은 그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듯 신앙적 차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돌에도 수명이 있다면 인간의 한시적인 삶은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수수만년 구르고 씻겨 마침내 그 모습을 드러낸 수석을 그저 한낱 ‘돌’로만 치부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함일 수 있다. 외려 장구한 세월, 물살에 흐름에 자신을 맡겨 깨지고 깎여 모난 데 없이 잘 다듬어진 수석을 보면서 사람들은 인생의 희로애락과 영원을 생각한다. 불로장생을 상징하는 열 가지 사물 ‘십장생’ 중 하나가 돌이지 않은가. 게다가 수석은 물에서 꺼낸 것이 아닌가. 물 또한 십장생 중 하나니 ‘수석(壽石)’이 갖는 의미가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이 원장 또한 임진강에서 건져낸 인상석들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깨닫고 있는 것이다.


돌을 알고부터 수석을 했고 수석을 하면서 예술수석을 했으며, 예술수석을 하다 보니 원형예술을 생각하게 됐다는 그는 “작품은 언제나 점지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구도의 길에 나선 수도자들이 등장하게 되고 사람 된 도(道)를 꺼내 들게 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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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예수



이 원장이 말하는 도(道)란 무엇인가. 이는 한국에서 쓰는 수석(壽石)이라는 한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수석의 한자가 다르다. 한국에서는 목숨 ‘수(壽)’자를 쓰는 반면 일본에서는 물 ‘수(水)’자를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기이하게 생긴 돌이라 해 기석(奇石)으로 부른다.


수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동양사상을 이해해야 하고 그중에서도 노자의 <도덕경> 8장에 나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를 이해해야 한다. 상선약수란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말로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의 성질을 최고의 이상적인 경지로 삼는다는 말이다. 또한 노자는 말과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도(道)’라고 표현하면서 그 도(道)에 가장 가까운 것이 ‘물’이라고 정의했다. 그렇기에 일본이 수석의 한자를 ‘水石’으로 표기하는 것은 이런 동양사상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壽石’ 으로 표기하는 우리는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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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우침




이완우 원장은 이에 대해 “목숨 ‘수(壽)’는 한민족 특유의 유불선 사상의 토대에서 발현된 것으로 ‘도(道)’ 그 자체로 볼 수 있다”며 “水石은 드러난 현상에 대한 의식이라면 壽石은 숨겨진 본질 존재에 대한 의식이기에 목숨 ‘수(壽)’야말로 영원하고 항상 있는 숨겨진 ‘도(道)’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칫 어렵게 들릴 수 있는 말이지만, 억겁의 세월을 통해 물에 씻겨 하나의 형태를 갖춘 수석에는 무한한 역사성과 함께 생명성이 담긴 조물주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영향을 받아 잠시 ‘水石’으로 표기했다가 어느 순간 다시 ‘壽石’으로 고쳐 부른 것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 임진강은 고대로부터 아픔과 전쟁, 분단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만 무한한 세월 속에서 구르고 깨져 다듬어진 임진강 황석처럼 머지않은 미래의 그 어느날 비극의 상처를 딛고 통일과 평화의 상징이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임진강에서 건져 올린 천태만상의 인상석들도 활짝 웃어 재낄 것만 같은 상상을 하며 일석(一石) 이완우 원장의 40년 회고전 <임진강 황석 상처와 고통의 표정전>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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