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호 인물 “서각을 통해 저를 발견할 수 있었죠” 서각으로 제2의 삶을 꿈꾸다 유석 우정우 현대서각 작가

2021.06.28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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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을 통해

저를 발견할 수 있었죠”

서각으로 제2의 삶을 꿈꾸다

유석 우정우 현대서각 작가 


글. 이예진 사진. 남승우 사진제공. 우정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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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이어족’이라는 말이 뜬다. 그리고 ‘N잡러’까지. 파이어(FIRE)족은 Financial Independencem Retire Early의 첫 글자를 따 만든 신조어로 빠른 시기에 돈을 모아 조기 은퇴하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N잡러는 2개 이상의 복수를 의미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job’, 사람을 뜻하는 ‘~러(er)’가 합쳐진 신조어로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최근 이러한 단어들이 뜨는 이유로는 곧 다가올 ‘100세 시대’를 대비하기 위함도 있으며 그로인한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한 조사에서는 직장인 2명 중 1명은 “부업을 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평일에는 본업에 충실하면서 주말에 모든 시간을 투자해 제2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이가 있다. 바로 나무에서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유석 우정우 현대서각 작가다.


삼성맨에서 나무맨으로

“서각은 단순해요. 이 단순한 세계에 빠지면서 모든 것을 천천히 잊게 되는 것 같아요.”우 작가는 처음부터 서각을 전문으로 한 이가 아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평일에는 회사를 다니는 일반 직장인과 다름이 없다.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며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그가 나무를 만지기 시작한 것은 약 8년 전부터다. 


우 작가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기에 관심이 있던 목공을 생각했다. 그러다 가구, 짜맞춤 교육 등을 받다 보니 가구에 나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부여하고 싶었다. 그래서 소개를 받고 서각을 시작하게 됐다”고 계기를 설명했다. 


처음 봤던 서각은 그의 눈에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그는 “처음 서각을 봤을 때 솔직히 단순하다고 생각했다”며 “칼이나 망치 한 자루를 들고 2~3시간 동안 머리를 처박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왜 저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에 의구심도 들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막상 손에 칼과 망치가 쥐어진 순간 나무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작은 가구를 위해 보조 수단이었는데 지금은 서각 자체에 빠졌죠. 하다 보니까 ‘서각’이라는 게 태초의 본능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옛날 원시인들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서 나무, 돌에 그림이나 각을 했듯이 말이죠.”그렇게 재미로 시작한 서각은 주말의 ‘나’를 온전히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는 “서각은 할수록 빠져든다. 평소 직장, 인간관계, 가정, 경제 등 여러 고민들이 있는데 서각을 하는 동안에는 그 모든 것들을 천천히 잊을 수 있다”고 말하며 본격적으로 서각에 뛰어든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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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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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김용택 시)>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단순한 서각이라고 하기엔 다양한 색감을 자랑한다. 그의 스승은 전통서각의 명인이지만 그는 조금 더 표현하고 싶은 욕심에 색감을 넣는 현대서각으로 손길을 옮겼다. “훌륭한 두 사부님 밑에서 전통서각을 배웠습니다. 다만 전통서각은 글 자체를 따라하고 아주 단순해야하는데 저를 표현하기엔 조금 한정적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현대서각으로 옮기게 됐습니다.”


서각으로 ‘나’를 표현하다

느지막이 시작한 서각은 그를 조금 더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사실 우 작가가 예술에 손을 댄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동아리 활동으로 대회 수상도 했다는 그.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미대를 생각했었지만 당시에는 예술을 하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얘기에 기계과를 지원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지금 다시 시작한 게 좋다. 너무 일찍 예술을 시작했으면 거기에만 빠져서 가족도 등한시하고 예술만 바라봤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적당하게 아이들도 키우고, 시간·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더 풍부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지만 그래도 어느덧 전시를 여는 정도가 됐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수원 행궁길 갤러리에서 그는 첫 전시회를 가졌다. 코로나19로 주변에 많이 알리지 않았지만 인근에 화성행궁을 보러온 일반인들이 의외로 많이 들렸다. 우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서각을 알릴 수 있었다. 대부분 오신 분들이 전통서각은 알지만 이렇게 색 입힌 것은 처음본다면서 현대서각을 좀 더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 전통, 현대를 떠나 서각을 모르는 분들에게 나무에 있는 것을 글자나 그림으로 나타내는 ‘서각’ 자체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의미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서각에 푹 빠져있었다.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서각 홍보에 열심이었다. 그건 그가 서각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이번에 열었던 전시의 주제 ‘나무에 새기는 마음’처럼 그렇게 그는 나무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우 작가는 “이번에 전시를 열면서 지인들이 찾아왔는데 다들 놀라워했다. 다들 내가 나무로 무언가를 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을 작품에 쏟았는데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에 시작할 때 꿈꿨던 제2의 삶을 잘 걸어왔다고 느꼈다”고 말하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보고 싶은 작품

우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됐다. 여태껏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타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서각을 하면서 나만의 명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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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병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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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덕내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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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옹이를 활용한 작품 <산유화(김소월 시)>



면서 “모든 세상사 다 잊고 오롯이 나무와 칼 그리고 그 칼이 지나가는 길만을 느끼면서 집중하는 그 시간이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를 준비하면서 ‘나’만 생각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전시회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이 일반인들에게 한눈에 띄는 것도 좋지만 다시 보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게 더 좋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래서 그런 작품을 만드는 게 앞으로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시장을 돌아보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소개로 전시장에서 첫 눈에 들어온 작품은 <네덕내탓>이라는 작품이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담고 있는 뜻이 묵직했고 작품의 이미지도 강렬했다. 그 역시 <네덕내탓>이 강렬하다고 말하면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은 <산유화>로 꼽았다. 지난 3월에 완성한 작품으로 실수도 많고 가장 애를 먹인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우 작가는 “옹이를 바위로 표현한 작품인데 사부님이 아이디어를 주셨다”면서 “다들 처음에 볼 때 나무가 맞냐고 물어본 작품이다. 아무래도 옹이는 작업이 어렵다보니 나 역시 작업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천천히 보면 실수가 꽤 보인다”면서도 “완성도 측면에서 봤을 때 흡족하다. 이렇게 또 보니 뿌듯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그런 그에게 영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 작가는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한자를 어려워하니 다가가기 쉬운 시들을 찾는다”며 “시집을 보고 먼저 내 마음에 와닿는 시를 고른다. 그리고 주변이나 사부님께도 여쭤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고 나서 이 시가 주는 의미를 통해 어떤 작품을 만들지 구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을 듣고 천천히 작품을 둘러보니 시를 형상화한 작품들이 많았다. 우 작가는 “<그리움>이라는 작품은 마음속에 뜨거운 감정이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색감이나 조형을 나타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자리에 머물지 않고

평일에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 오롯이 작품에 힘 쏟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다만 옆에서 아내가 많은 도움을 줬고 스승님들 역시 좋은 분들을 만나 여기까지 왔다고 그는 전했다. 그는 아내에 대해 “내 작품을 아주 냉철하게 평가해주는 고마운 시선”이라며 “일반인의 시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그런 부분을 잘 이야기 해준다. 그래서 작품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자꾸 물어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를 향해 “가족들의 응원과 보이지 않게 끊임없이 지원해주는 마음으로 내가 긴 시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작품을 향한 시선 외에도 이번 전시에서 아내는 큰 힘이 됐다. 


평일 본업으로 인해 전시장에서 자리를 비워야 할 때 아내가 직접 큐레이터 역할을 하며 손님들을 맞아주고 주변 지인들도 초대해 자리를 채워주는 든든한 지원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스승님들을 향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우 작가는 “처음 전통서각을 시작하고 한 단계 더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넘치는 열정을 이끌어주실 분을 찾고 있었다. 마침 단초 선생님과 호산 선생님을 만나 나의 열정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며 스승님을 향해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큰 스승님들은 그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목표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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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8일부터 5월 2일까지 수원 행궁길 갤러리에서 진행됐던 전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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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우 작가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 아내와 함께




“전시를 진행하면서도 스승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큰 방향은 스승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명인 마스터의 길도 도전하고, 또 은퇴 후에는 자그마한 공방도 마련해서 일반인들이 쉽게 서각을 접할 수 있도록 교육도 해보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히 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하겠죠.”


제2의 삶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정우 작가. 그는 계속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해보지 않은 길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다는 포부를 보였다. 


누군가는 그를 향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안정된 직장을 두고 왜 사서 고생하냐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고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를 하는 날까지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자신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하고 싶다는 우정우 작가. “세상에 조금 더 나를 비추면서 인정과 비난을 함께 받으며 그 과정을 통해 격에 맞는 서각인이 되고 싶다”고 한 그의 앞길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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