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인물 ‘조형언어’를 아시나요? 미술사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2021.10.26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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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조형언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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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투각 용봉 앵무새 영기문 자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약 력

2005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설립

2000~2007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초빙교수

1997~2000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1994~2003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1986~1997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세상에는 수많은 언어가 존재한다. 이들 언어는 글과 소리는 달라도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거나 서로 소통하는 수단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여기 비록 글도 소리도 없지만 자신의 뜻을 분명히 전달하는 독창적인 언어가 하나 있다. 바로 ‘조형언어’다. 이 조형언어 하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체의 조형예술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세계 최초로 ‘조형언어’를 찾아낸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을 통해 조형언어가 갖는 의미를 들어본다.


글 백은영 사진 남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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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고려청자 전시실에서 도자기의 형태와 문양을 좀 더 면밀하게 조사하고 있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남다른 심미안을 갖다

‘반골(反骨)’이라 불려도 괜찮다. 잘못된 것은 비판해서라도 바로잡아야 하고, 옳다는 확신이 들면 세상의 권세나 권위,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방식을 고수한다. 새로 찾아낸 것이 옳다면 기존의 학설을 과감하게 뒤집을 줄 알며, 또한 과감하게 버릴 줄도 안다. 그렇게 세계 최초로 ‘조형언어’를 찾아낸 그는 전 세계의 모든 조형예술품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고 세상에 알리는 데 남은 생을 바치기로 했다. 올해 여든한 살이 된 노학자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이야기다.


일향(一鄕) 강우방(姜友邦) 원장은 1941년 고구려 수도 국내성과 가까운 만주 안동에서 12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훗날 그는 부모님의 고향이 서울인 데 반해 자신은 고구려 땅에서 태어난 것에 자부심을 가지며 남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만주 안동에서 태어난 것은 어쩌면 고구려의 정기를 받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고구려 고대 무덤 벽화의 문양들을 기적적으로 풀어내고 그것이 확장돼 세계 모든 나라의 조형예술품을 해독하게 됐으니 말이죠.”



 세계 미술작품 1만 5000여 점 채색분석해

 경주박물관장까지 30년 세월 박물관과 함께


 이화여대 교수 등 거치며 후학양성에도 힘써

‘세계 최초’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 학자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한 강 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반전의 연속이다. 아니 그 반전 속에서도 한결같은 줄기가 있으니 외려 ‘뚝심’이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강 원장은 독문과에 입학한 후에도 전공과목보다는 철학이나 종교학, 영문학에 더욱 관심을 뒀다. 여기에 더해 민속학과 미학 등에도 관심을 보이며 몰두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공은 소홀해지고 졸업할 때 평점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학 재학 당시 강 원장은 7년 동안 서예 동아리에 들어가 여초 김응현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 당시 서예계의 태두였던 여초 선생이 수제자로 삼고 싶을 만큼 뛰어난 기량을 보였으나 강 원장은 서예를 접게 된다. 유화에도 관심이 컸던 그였다.
 
“당시 살던 집이 서울대 미대 손동진 교수 옆집이었어요. 자연스레 교수님 화실에서 데생, 스케치, 유화 등을 배우며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에 관심을 가졌으나 결혼 후에 유화도 그만두게 되었죠.”

그렇게 전공과는 상관없이 철학이나 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다. 어쩌면 태생부터 그는 남다른 심미안(審美眼)을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평생 한 분야에만 집중해도 그 기량을 충분히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강 원장은 그 ‘틀’을 깨고 철학과 예술 전반을 두루 아우르며 자신만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학위보다 학문적 성숙함 택해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에 입문한 그는 15년을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5년을 경주국립박물관에서 양쪽을 오가며 각각 연구했다. 2000년 경주박물관장에서 퇴임할 때까지 그야말로 30여 년을 ‘박물관’과 함께했던 인물이다. 퇴임 후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교편을 잡은 그는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평생 일탈의 삶과 학문을 고집’해 온 것이다. 



“학부 평점이 C학점에 석사학위가 없었기에 외국 대학에 갈 수 있는 자격은 원천적으로 막혀 있었죠. 학위에 관심이 없던 저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가 한국미술사를 독학했어요. 그렇게 연구에 매진하던 중 1975년 해방 후 한일관계가 처음으로 좋아져서 역사적인 ‘한국미술 5000년 전시’가 대규모로 일본 국내에서 순회 전시했을 때였어요. 일본 정부 측에서 젊은 학자를 키우고 싶다고 했을 때 최순우 관장님이 나를 천거해 가게 되었는데 일본재단으로부터 매월 상당한 금액을 받았는데 당시 한 달 수령액이 한국에서의 1년치 월급에 맞먹었었죠. 그때 받은 돈은 답사와 미술사 관련 서적을 구매하고 작품을 촬영하는 데 모두 사용하고, 한국에서는 일본 돈을 쓰지 않기로 선언했었어요.”이후 ‘한국미술 5000년 전시’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으면서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1980년 같은 내용의 전시가 진행됐고, 미국 내 순회 전시 때 보스턴박물관에 파견됐던 강 원장은 한국미술 국제심포지엄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발제에 나서게 된다. 


“심포지엄에서 영어로 ‘삼국시대 미술과 통일신라미술의 과도기적 양상’에 대해 발표하게 됐어요. 매우 어려운 주제였죠. 그때 하버드의 미술사학과 로젠필드 교수가 듣고 그날 저녁 리셉션 때 저를 1년간 하버드대 방문교수로 초청할 것을 즉각 제의했어요. 1주일 후 로젠필드 교수가 전화로 부르더니 박사학위가 없으니 미술사학과 박사과정이 어떻겠냐고 수정 제안했죠. 저는 방문교수보다 배울 수 있는 대학생이 외려 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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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청자 투각 용봉 앵무새 영기문 자발.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4만여 개에 달하는 보주들

이 양각돼 있어 그 정교한 금속 기법에 놀랐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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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은 도자기에 표현된 

다양한 문양을 채색분석해 오는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강 원장은 석사학위도 없는 자신이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발탁된 것은 심포지엄에서의 발표가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날 이후 미국 전역에 ‘강우방’이라는 이름이 널리 퍼졌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학자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박사학위를 밟던 그였지만 학위는 취득하지 않고 수료하게 된다. 이와 관련 강 원장은 박사학위는 대학교수가 되는 데 유리할 뿐 학문적 성숙과는 전혀 무관함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위논문은 귀국해서도 가능한 작업이기에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낼 바에야 나머지 1년 동안 미국 전역의 유수 박물관에서 세계의 미술품을 조사하는 게 더 유익하다 싶었어요. 그때의 체험이 오늘날의 제가 있게 된 좋은 밑거름이 됐죠.”평생을 미술사학자로서 국내외 전 세계의 미술품을 연구하고, 강연하며 학자로서의 책임을 다한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해왔던 수많은 국내외 강연의 주제들이 최초의 연구성과라는 점이다. 최근 5년 동안의 국내외 활동만 적어보면 얼마나 광범위하게 열정적으로 활동했는지 알 수 있다. 최근 8년의 행보만 봐도, 2014년 7월 그리스 Athens Institute for Education and Research 주최 국제심포지엄에서 발표한 ‘Architecturalization of the Forest of Cosmic Tree of the Greek and Roman five Ordes’로 그리스 신전 건축 개념의 근본적인 오류들을 지적했던 것이 그러했고, 이듬해인 2015년 4월 프랑스 Waset 주최 국제심포지엄에서 ‘Transcendental Birth of the Column from the Full Jar’를 발표하며 파리의 노트르담 고딕사원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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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에서 채색분석 작업을 하고 있는 강우방 원장의 모습.



같은 해인 2015년 봄에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3번의 발표와 강연을 진행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해 6월에는 일본 데츠카야마대학(帝塚山大)에서 한·중·일 와당에 대한 최신 연구성과를 강연했으며, 2016년 5월에는 열흘간 파키스탄 간다라유적을 답사하고 학회를 통해 ‘간다라미술에 나타난 영기화생의 도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9년에는 일본 문화청과 국립교토박물관 공동 초청으로 일본의 국보 코지마 만다라(10~11세기)를 발표해 일본 학자들에게 충격을 주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강 원장은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한국이 이제는 일본의 영향을 극복하며 오히려 일본을 가르치게 되었음을 일본 학자들이 처음으로 인정하게 된 역사적 발표였다”고 추억했다.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

강 원장은 지난 2020년 1월 인사아트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를 진행하며, 동명의 저서 <강우방의 눈, 조형언어를 말하다(무본당)>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그가 평생을 거쳐 연구하며 세계 최초로 찾아낸 ‘조형언어’가 세상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이다.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니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그가 또 한 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조형예술품에 담긴 의미를 세계 최초로 밝혀내고 있으니 바로 ‘도자기’에 담긴 비밀이다. 이 비밀은 그가 찾아낸 ‘조형언어’를 통해 풀 수 있다. 현재 그는 <천지일보>에 관련 내용을 연재하고 있다.


“세계미술품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도자기에 드높은 사상과 정신이 담겨 있음을 깨닫고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어요. 전공자들조차 도자기는 음식이나 술을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도자기의 형태와 안팎에 베풀어진 문양들을 함께 풀어야 도자기의 참 의미를 알 수 있지요. ” 


강 원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도자기의 문양은 도외시됐고, 그 형태를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도 거의 없었다. 형태와 문양은 일체여서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강 원장은 “갖가지 도자기 형태와 문양의 관계는 도자기가 모두 영기문(靈氣文)에서 화생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도자기에 표현된 문양은 단지 장식적인 것이 아닌 ‘문양은 일체를 화생시키는 영기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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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화백자 연적에 표현된 둥근 보주를 살펴보고 있는 

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의 모습.

 


“우주에는 영기(靈氣) 혹은 성령(聖靈)이 가득 차 있어요.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옛 장인들은 그것을 갖가지 문양으로 창조했고, 바로 그런 문양을 포괄적으로 영기문이라 부르는 것이죠.”


20여 년 전 고구려 벽화를 연구하면서 학문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강우방 원장. 이후 지금까지 세계의 미술품 1만 5000여 점을 채색분석하면서 그 안에 담긴 조형언어를 찾아낸 그다. 여기서 ‘채색분석법’은 미술품을 단지 보는 것에서 끝내는 것이 아닌 그 안에 있는 비밀을 ‘읽어내는’ 방법으로 이 역시 강 원장이 세계 최초로 개척한 독자적 해독법이다. 이 해독법은 도자기는 물론 건축·조각·회화·금속기·복식 등에 나타난 문양 또한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체의 모든 조형예술품에 담긴 비밀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여든이 넘도록 쉬지 않고 달려온 한 미술사학자의 열정과 인내가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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