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인물 민족의 얼을 담아 민조시民調詩를 개척하다

2022.01.31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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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얼을 담아

민조시民調詩를 개척하다 


글 이예진 사진 박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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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이몸곁에

누운 산허리

고운 저 살결,


청산엔

내 눈물,

속살빛 내리네.


들연기

명주실깁

푸는 숨소리

푸는

맨살끈,


푸니라,

다 감겨,

하늘수

학나래.


- 신세훈, <민조시2, 속살빛>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다. 말은 뱉는 순간 흩어져 버리지만 글은 계속 남아있어 역사가 되면서 그 민족의 얼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시(詩)’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이를 통해 리듬을 가진다.


이처럼 문학은 글이 생겨난 시점부터 함께했으며 시 역시 오랜 세월 함께했다. 삼국시대말부터 ‘향가’가 유행했으며,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시대까지는 ‘시조’가 그 자리를 메꿨다. 이처럼 우리나라 정형시에서는 향가와 시조가 대표적인데, 그 가운데 ‘민조시(民調詩)’를 개척한 신세훈(申世薰) 시인을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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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훈 시인




<시학>에서 연영과로

신 시인의 이력 중 특이한 것이 있다면 대학 전공이다. 그는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기자 생활을 했다. 그것도 의과대를 가려다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 1년을 쉬고, 다음해 중앙대 연영과로 진학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의 이력에 궁금증이 솟는다.


연영과를 나온 시인. 특이하면서도 낯선 이력에 그 이유를 물었다. 신 시인은 “고등학교 문예반 시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시학>을 살 때는 문학 이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시론이 곧 연극론이었다. 책에는 서양 문학의 모든 예술론이 담겨있었다”면서 “‘나는 연영과로 진학해 문인 최초로 연극 이론을 통해 새로운 문학 이론을 개발해내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영과 진학 후 국문학과 수업을 듣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마 <시학>을 읽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국어국문학과로 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영과로 진학한 그는 국문학과 수업도 함께 들었다. “국문과가 연영과와 같은 문리대였어요. 그래서 국문과 수업인 현대시론, 소설론·평론 등의 수업 전부 수강신청을 해서 들었습니다. 특히 당시 중앙대 고전문학은 최고였어요. 저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렇게 신 시인은 연영과에서 배운 몽타주 기법을 문학에 접목해 1962년 대학교 2학년 이른 나이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형성기 온 데 지적 갈라진 퍼런 불허리 돌바람에 숨 끊어질 무렵. 구렁으로 분출된 용암 식어 바다 속을 뻗은 지맥으로 불기둥 치받쳐 외론섬으로 솟아난 땅. 땅위에 어떤 중량의 의미와 생명감으로 마침 목을 뽑아올리며 신록 풍성한 한여름 너 앞에 내가 마주 섰을 때. 후둑후둑 성긴 소나기가 왔다야.


그 시절 항시 물줄기만 눈앞을 담담히 흐르고 바람은 침묵한 깊은 계곡이며 어느 산허릴 불어가 영높은 한 화산의 혈맥과 뜨거운 그늘모롱일 돌아 놀 속 목숨으로 피어난 구름꽃의 입김에 내 영혼 화신으로 엉겨 붙어 황금빛하늘 아래 해바라기웃음으로 형상된 생성의 울타릴 돌아오는 또 한 무리 바람 떼로 출발했다야.


해바라기. 징처럼 안으로 출렁이어 소리내오는가 알 수 없는 누런 놋색꽃잎둘레는 원광의 미소같이 무지개달무리로 원만한 물맴을 지으며 꿈을 꾸는 물매화를 건드리다 강 건넌 습한 바람결에 서그럭 흔들리는 몸짓을 가누고 고향떠난 너의 하늘색옷자락을 적셔 조금은 마음색이 섦은 나의 입상이다야.


전쟁을 치른 너 입술위에 피멍든 아픔만 서리지 않았더라면 짙은 비극의 흔적 없이 딴 꽃대롱물줄기로 가난한 이야길 망정 피릴 불어 공중에 띄워보겠다야.


지금은 바람파편에 튀어버린 물방울같이 씨를 다 흩어버린 빈빈 가슴팍을 가서 가을이 꽉 안긴다. 서러운 눈의 내가 나에게 가서 꽉 안긴다. 이제 빙빙 이 빠진 얼굴을 이고 스스로를 가늠하던 고개를 저으며 사방 시월의 춤노래 속에서 메마르게 눈물 나는 광활한 광장에 내가 나를 안고 서서 울까보다야.


어쩌면 내부를 흐르는 바람의 갈갈한 울음으로 꽉 차있을 나와 너는 밤의 계절을 뛰어나와 아침을 맞아야 한다. 몸을 씻어야 한다. 허지만 갈 길마다 갈린 엇길에 여러 마리 꽃실배암 따비틀고 지싸우는 마른풀두렁을 지나 낮닭도 울었던 마을에 하나둘 등잔불 꺼져가면 내사 원을 쳐다보거나 겨울잠 안자던 배암을 생각한다. 물먹은 바람은 조용히 달무릴 돌아가고 해바라기 이 빠진 가슴 강물처럼 그리 길게 울것다야.


끝 간 데 없는 수류 따라 밤무지갤 그려 쫓아 전설의 식물 여름동안 물오른 목줄기가 제 씨앗을 사랑할 추수기에 씨통을 공간에다 흔들어버린 얼마 후. 싸늘한 까치놀로 벋은 가을가지들 겨우내 바람을 찢어야 물줄기 외로운 우리 영토 휘감아 휘휘 달음치고 다시 봄맞이 얼음꽃이 녹을 즈음 나무피부 속으로 봄여름나무같이 꽃물 오르겠지만 고운 언어로 기별 약속만 전갈한 뒤로 영영 겨우낸가 이야기가 없다야.


- 신세훈의 <강과 바람과 해바라기와 나> 전문(196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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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문학> 사무실에서 만난 신세훈 시인



신 시인은 “당시 문인들이 제목을 지을 때 보통 ‘강’ ‘바람’ ‘나’ ‘너’ 등 이렇게 잡았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모아서 몽타주해 쓴 것”이라며 “이것이 곧 연극 기법을 시에 적용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산문시라도 시는 운율이 있어야 한다. 운율이 없으면 시가 아니기 때문에 산문율을 적용했다”며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우리 장단·호흡에 맞추다보니 3·4·5·6조 정형시를 새로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정형시, 민조시(民調詩)

신 시인은 그렇게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민조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민조시란 우리 한민족의 민간 장단으로 흘러 내려오는 율조의 소리를 문자의 뜻 위에 얹어 만든 정형시로, 우리말의 소리마디를 3·4·5·6조의 정형률에 맞춘 것이다.


우리에게 향가와 시조가 내려오고 있음에도 신시인은 왜 새로운 정형시 민조시를 개척했을까. “우리의 시가를 넘겨받은 일본은 정형시가 5종이나 되고, 그중 ‘하이쿠’는 세계적으로 홍보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하이쿠와 같은 정형시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넘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역사 기록에도 백제 왕인 박사가 ‘난파진가’라고 해서 맨 처음 전해주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향가, 고려가요(여요), 시조 등을 분석하니 우리말의 장단가락이 3·4·5·6조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3·4·5·6조를 기본 골격으로 정했죠.”



일본의 다양한 정형시, 우리에게서 넘어가

신 시인, 3·4·5·6조 운율의 민조시 개척

시조 역시 3·4·5·6조 운율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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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훈 시인




그는 시조(時調)에도 3·4·5·6조가 들어있다고 설명했다. 신 시인은 “시조는 형식만 다를 뿐 3장6구 12음보로 되어 있다. 초장이 3·4, 3·4조로 되어 있고, 중장도 마찬가지”라며 “5·6조는 종장에 있는데, 3장 6구의 종장에 보면 ‘3·5·4·3’으로 되어 있는데, 거꾸로 돌려 읽으면 ‘3·4·5·3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6조는 초장에 3,중장에 3, 종장 첫 구에도 3, 끝에도 3으로 끝나 ‘3’이 앞뒤 서로 합하면 6조와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수학처럼 딱딱 들어맞는 시의 형태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또 그는 이 운율이 지금 유행하고 있는 트로트와 접목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 시인은 “우리 전통 속 3·4조는 지금의 트로트 풍으로 결국 우리 가요의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조시’를 정착시키기 위해 했던 노력을 설명했다. 그는 “1990년 경에 ‘한국일보 문화센터’ 강의를 하다가 ‘민조시’라는 이름을 정했다”며 “처음에는 민조시 제목을 ‘3·4·5·6조’로만 적었는데, 글을 보내는 잡지나 신문에선 계속 ‘민조시’란 말을 삭제시켰다. 그래서 나중에는 부제처럼 적으니까 삭제하지 않아 그대로 ‘민조시’라는 이름을 정착시키기 시작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청소년문학은 그들의 상상 언어로

민조시 외에도 신 시인은 ‘청소년문학’ 개척에도 힘썼다. 지금은 ‘청소년문학’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지만 30년 전만 해도 따로 분류돼 있지 않았다. 물론 그 이전에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같은 글이 있었으나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고 과(科)도 나눠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신 시인은 ‘청소년문학’이라는 분과를 한국문인협회에 개설했다.


“청소년문학에는 소설·희곡·시 모두 포함이 됩니다. 예전에는 중고등학교 연극반이 연극을 하려고 해도 그들에게 맞는 희곡이 없었어요. 동극(童劇)을 하기에는 나이가 맞지 않고, 성인극을 하기에는 어려웠죠. 그래서 청소년 세계에서 그들의 상상력과 언어, 문화에 맞는 청소년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각은 현재 계간지 <자유문학>을 발간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우리나라 문학은 외국과 달리 정형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문인이 장르에 갇혀있다. 수필의 경우 신문·잡지에만 맞는 규격 수필이 있어 <팡세> 같은 장편수필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청소년문학에도 청소년소설(청소설), 청소년시(청시), 청소년희곡 등을 지속적으로 개척하면서 제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자유문학>을 발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발간하고 있는 <자유문학>은 1991년부

터 계간지로 시작해 벌써 30년이 넘는 시간(통권 122호째)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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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훈 민조시선> 표지(제공: 신세훈)



그렇게 그가 개설한 ‘청소년문학’이지만 현재의 이 땅 ‘청소년문학’에는 청소년 정서엔 맞지 않는 글들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어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신 시인은 “최근에 나오는 청소년 작품집에 적힌 글 중 마약, 술 등의 성인 소재가 들어가는 경우를 봤다. 이는 맞지 않는 것이다. 아동 문학에 그런 것이 들어가는 것을 봤나. 청소년 문학도 아동 문학처럼 그들에게 맞는 언어와 문화가 포함되어야 한다”며 “흥미 위주의 글로 변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척 분야이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따로 없다. 사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도 영국 교과서에 실리니까 나중에서야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면서 “외국에는 청소년 문학을 잘 가려낸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예로 들면 주인공이 청소년이면서 그것이 바로 청소년문학이다. 외국은 이런 기준으로 작품을 잘 가려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문학, 그들의 언어로 만들어져야

<자유문학> 청소년문학 개척 위해 발간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야 해”



그러면서 청소년을 향한 염려도 잊지 않았다. “먼 장래를 보고 순조롭게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인생의 행복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볼 때 참 안타깝습니다. 1등 교육, 입학을 위한 경쟁 교육에 치중하게 되면 인간성이 망가집니다. 인문학적인 교양을 통해 인성을 쌓아야 어떤 어려움이 부딪혀도 스스로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급하다고 앞에 있는 이익만 추구하면 안되고,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신세훈 시인은 80세를 넘겼음에도 문학에 대한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모습은 노장(老將)에 가까웠다. 그는 한국 문학계를 여전히 걱정하고 있었으며 앞으로의 미래 역시 자기의 일인 것처럼 염려하고 있었다. 그는 최근 문학계에 대해 “컴퓨터, TV, 게임 등 미디어가 발달하면서 문학이 밀리기 시작했다. 독자층 역시 엘리트 교육을 지향해오면서 젊은 독자층이 없어졌다”면서도 “그렇다고 문학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다. 한 줄의 시라도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면 결국 그 시는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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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훈 <자유문학> 대표



그러면서 “우리 문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개성있게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 그래서 독자들에게 그때 그때 필요한 정신적인 양식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후배들을 향해 일침을 날렸다. 또 “문학의 원래 본질은 개척해나가는 정신과 창조의 정신이다. 독자가 없더라도 문학인은 개척해야 한다. 1922년 영국 시인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이 <황무지>를 발표했을 때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승이자 독자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가 있어서 <황무지>가 남을 수 있었다”며 “모든 예술 분야에서 개척자는 외롭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엘리엇의 <황무지>는 오늘날 영국 현대시문학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이는 에즈라 파운드의 과감한 편집을 통해 이뤄졌다. 결국 신 시인은 깊이있는 독자 한명만을 위해 글을 쓰더라도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그 글은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2022년 신년호 마루인으로써 올해 있을 대선에 대해 한 마디를 부탁했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멀어져 있는 우리 민족끼리 화합을 해야 합니다. 남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배짱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어렵다면 중립국 선언을 해서라도 남북한이 의사소통을 하고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적대감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있는 동북아를 중심으로 아시아 연방을 만들어 서방의 세력과 맞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동서양이 조화롭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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