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호 기획 신라의 화약무기 사용 진실

2021.07.2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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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약무기 사용 진실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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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통일 신라에서 화약무기를 사용하였다고 우리가 주장하면 아마도 중국 4억 명이 뒤집어질 것이며, 한국이 염치도 없이 자기들의 세계적인 발명품을 도둑질하고 있는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몰염치국’이라고 성토할 것이다. 신라의 화약무기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그 원인이 있다. 


<삼국유사> 내 ‘태종 춘추공’에는 661년의 한산성(북한산성) 전투가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왕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이미 돌아간 후에 신라왕이 여러 장수에게 명하여 백제의 잔적을 뒤쫓게 하고 한산성에 주둔하니, 고구려와 말갈 두 나라의 군사가 포위해 와서 서로 공격하였다. (중략) 그리고 상부 산에 단(壇)을 쌓고 신술(神術)을 쓰니, 갑자기 큰 독처럼 생긴 광휘(光輝)가 생겨나 이것이 단위로 떠올라 별이 되어 북쪽으로 날아갔다. (중략) 한산성의 군사들이 구원병이 오지 않음을 원망하며 서로 바라보고 울 뿐이었다. 적들이 급히 공격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광휘가 남쪽 하늘에서 날아와 벼락이 되어 30여 개의 포석(砲石)들을 쳐부수니 적의 활, 화살, 창, 칼들이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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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삼국유사>의 ‘광휘’에 대한 해석을 이종호·박택규 공저의 <한국의 과학기술 이야기2>에서 저자는 ‘광휘’는 신라군이 쏜 것인데 그 ‘광휘’란 문자의 뜻으로 보아 ‘눈부시게 밝은 불빛’을 내는 무기로 보고 ‘신술’은 당시 ‘신기한 기술’이란 화약무기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였다. 이어서 저자는 “신술을 쓰니 큰 독처럼 생긴 광휘가 생겼다”라는 표현을 두 가지로 해석하였다.

 

“첫째, 광휘는 현대의 로켓과 같은 분사 추진 무기로서 흑색 추진 화약가스의 불을 뒤로 뿜으면서 날아가는 모양이 똑같다고 보는 것이고, 둘째는 흑색 화약을 포에 채워 발화하였을 때 포신이 짧아 화약이 포신 안에서 다 타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서도 계속 연소됨으로 불길과 함께 독처럼 생긴 탄이 날아갔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느 것이든 이 기록이 전하는 ‘광휘’는 흑색 화약을 쓴 무기가 틀림없다는 점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신라가 당나라와 군사적 동맹을 맺고 있었고, 그 이전부터 당나라의 여러 가지 문물이 신라에 유입되었을 것을 보아 당나라 화학 관련 서적인 <단경(丹經)>도 신라에 전해졌을 것이다. 신라인들도 도교에 관심도 많았을 것이고 <단경>과 같은 서적을 통하여 단약을 만들다가 화약을 만들어서 군사적으로 화공에 사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필자는 신라가 한산성 전투에 시범적으로 신라의 첨단무기인 천보노(千步弩)에 화약을 장착하여 발사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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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보의 거리(약 800 )를 날아간다는 천보노에 화약 덩어리를 부착하여 불을 붙여 발사하면 화약 불덩어리가 빛을 발하며 적진에 날아갈 것이고 이것이 바로 광휘와 같은 상태가 될 것이다. 신라의 첨단 비밀병기인 천보노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669년 겨울, 신라에 온 당나라 사신은 황제(당 고종)의 명령이라 하여 구진천을 당으로 데려가 쇠뇌를 만들게 하였다. 당나라는 신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 정복전을 치르면서 구진천이 만든 쇠뇌의 위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더욱이 당 고종은 부왕(父王)과 김춘추와 맺은 약속을 무시하고 백제, 고구려 땅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신라까지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으므로 그런 그에게 신라의 쇠뇌는 가장 두렵고 탐나는 무기였다. 


구진천을 데려와 그 기술의 비밀을 알면 신라마저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첨단무기로 유용하게 쓸 수 있으리라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당나라로 불려가 만든 구진천의 쇠뇌는 겨우 40 밖에 나가지 않았다. 당 고종이 그 이유를 묻자 현지의 재료가 불량해서 멀리 날아가는 쇠뇌를 만들 수 없다고 대답했다. 당 고종은 신라에서 재료를 구해 와서 다시 고쳐 만들도록 명령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80 정도 화살이 날아갔다. 구진천은 신라에서 나무를 가져오면서 바다를 건넜기 때문에 

나무에 습기가 배어서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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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고종은 화가 치밀었다. 구진천이 한 말은 핑계에 불과하고 일부러 엉터리 쇠뇌를 만든 게 아닌가 의심하면서 잘 만들면 큰 상을 내리고, 만약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무거운 벌을 내리겠다고 위협까지 했지만 구진천은 결코 그 재주를 보여주지 않았다.”

 

위의 <삼국사기> 내용은 당나라가 661년 한산성 전투에서 화약이 장착된 천보노의 위력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천보노를 개발하고자 669년 당 고종이 신라의 쇠뇌 기술자인 구진천을 무리하게 데려간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당나라의 입장에서는 화약은 자신들이 잘 아는 것이고 오로지 천보노만 필요했을 것이다. 


현재 천보노의 유물이나 그림이 전해지지 않으나 나당전쟁의 격전지였던 임진강에서 출토된 화살촉을 학자들이 검토하여 유추해본 결과 철촉의 길이가 22㎝이며 날 부분만 15㎝다. 일반적인 화살촉보다 3배 이상 크다. 화살촉의 크기에 비례하면 화살의 길이는 140㎝로 일반적인 화살보다 60㎝나 더 길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에서는 화약의 제조방법이 까다롭고 취급하기가 곤란하여 통일 신라 이후 추가 개발 및 보급이 안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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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삼국유사>에 있는 ‘광휘’의 내용이 신화적인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적진에 전투 시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진 것이 아니고, <삼국지>에서와 같이 제갈공명의 동남풍을 불게 하는 도술이 아니라면, 일연은 당시의 신라 고서기록에 있는 폭발성 화약무기의 진위가 긴가민가하여 ‘광휘’라는 단어로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Homer’s Iliad)를 보면 그리스가 트로이를 무너트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트로이 목마(Trojan Horse)가 등장하는 신화적인 얘기가 있었는데, 수천 년 후 독일의 고고학자인 ‘하인리히 슐레이만’의 터키 유적지 발굴에 의하여 역사적인 진실로 밝혀진 바 있다. 언젠가 통일 신라 시대의 고분이나 산성 유적지에서 실제 화약에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거나 정확한 문헌이 발견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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