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호 칼럼 가정 폭력의 역사 및 가정 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
가정 폭력의 역사 및 가정 폭력
예방을 위한 노력
글 박춘태 박사
인공 지능 등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이롭게 한다. 하지만 인간 소외를 가속화하는 면도 없지 않다. 과학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서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소외시켜 범죄 행위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범죄행위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모두가 우려하고 있다.
폭력은 그 동인과 무관하게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가중시킨다. 특히 가정 폭력은 사회·국가적 문제를 넘어 인류의 삶·존엄성과도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가정 폭력의 양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신체적 폭력, 정서적 학대, 경제적 학대, 성적 학대 등이다.
모든 사람은 가정 폭력이 없는 집에서 살 자격이 있다. 폭력 없는 미래를 향한 여정! 그것은 길고 도전적일 수 있지만 그 여정을 혼자서 걸을 필요는 없다.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 낙인과 수치심을 고착화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도 폭력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일부 국가에서 가정 폭력이 아직도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예를 들면, 아프리카 민주콩고공화국, 세네갈, 잠비아 등이다. 또 인도, 방글라데시 등에서는 결혼 지참금을 이유로 여성들이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1961년 인도에서는 ‘지참금 금지법’이 제정되어 지참금 관련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해 왔다. 그러나 지참금 관련 폭력은 은폐되거나 여전히 만연한 상황인데, 이는 가정 폭력에 대한 인식과 법적 제재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가정 폭력의 역사는 장구하다. 고대사회에서 가정 폭력은 일반적으로 문제시 되지 않았다. 가부장제 사회 구조였기에 남성은 가정을 통제하고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들을 훈육할 권리를 가졌다.
중세 유럽에서도 남편이 아내를 통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었다. 이 또한 법률과 관습 등에 의해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가부장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권위 등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를 ‘자연의 순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여성의 권리 및 개인 인권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었다. 19세기 말에는 활발해진 여성운동을 통해 가정 폭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세기 들어와서는 페미니스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1970년대에 가정 폭력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뉴질랜드는 이민자들로 구성된 국가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기존의 문화와 새로운 문화사이에서 적잖은 갈등을 겪는다. 특히 언어 장벽, 문화 장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태평양 지역의 이민자들도 꽤 있는데 이들 역시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남성은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수 있고 여성은 순종적 역할을 하는 그릇된 관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관습 때문에 폭력이 정당화되고 훈육 수단의 문화적 틀이 형성돼 왔다.
뉴질랜드에 이민 온 한 사모아인이 있다. 사모아에 있을 때 그는 매년 아내의 생일을 챙겼다. 그러나 뉴질랜드에 온 이후 일에 매진하다 보니 아내의 생일을 깜박 잊어버렸다. 아내는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지 않은 남편에 엄청난 배신감이 들었다. 생일날 늦은 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체적 폭력과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 이에 남편은 여러 차례 용서를 구했으나 진정될 기미가 없자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그녀는 경찰에 인계돼 조사를 받았는데 자택에 일정 기간 거주할 수 없으며 거리 두기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몹시 억울한 듯 조사하던 경찰에게 “남편이 아내의 생일을 잊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면서 “사모아에서는 아내의 생일을 잊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라고 소리 높여 말했다. 같은 섬나라이지만 문화적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모아 문화에서는 아내가 자신의 생일을 잊은 남편을 신고하면 감옥에 구금된다. 남편이 부인의 생일을 잊으면 차라리 감옥에 있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할 정도다. 사모아에서 부부 간의 애정을 위해 제정된 법이라지만 잊어버렸다고 해서 가정 폭력으로 번지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또 다른 예가 있다. 뉴질랜드 이민자 중에서는 남편만 자신의 모국에 가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자신의 모국에서 해 온 관련된 일을 뉴질랜드에서 찾기가 힘들거나 하더라도 큰 성과를 낼 수 없는 경우다. 이런 연유로 남편은 뉴질랜드에 남아 있는 가족들과 따로 떨어져 생활한다. 그런데 문화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일부 가정에서 큰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인들은 집집마다 큰 창고가 있다. 이는 고장이 나서 수리할 필요가 있으면 스스로 수리해야 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고에는 수리를 하는 데 사용되는 각종 도구, 잔디를 깎는데 사용되는 기계 등 상당한 기자개가 보관돼 있다. 자신의 모국에 간 남편과 떨어져 지내던 한 여성 이민자가 집수리를 위해 수리공을 불러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고민 끝에 평소에 친구처럼 지내던 키위(뉴질랜드 현지인) 남성에게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고 성공적으로 수리를 끝낼 수 있었다. 그 이후에도 몇 차례 그녀는 키위 친구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남편이 방문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내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키위 남성과는 친구로만 지내고 있으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해할 수 없었고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말았다. 아내는 경찰에 신고했고 그는 일정기간 거리를 두면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다.
뉴질랜드에서 가정 폭력은 중대한 범죄로 간주된다. 가정폭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는데, 가정법원에서 발급하며 신청하는 사람과 자녀를 법적으로 보호해 준다. 보호 명령에는 가해자가 할 수 있는 행위와 할 수 없는 행위가 열거되어 있다. 예를 들면 가해자는 기물의 파괴나 파괴 위협을 할 수 없다는 등이다. 뉴질랜드에서는 이민자들이 가정 폭력 없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지역사회 프로그램과 집단적 접근 방식 채택이다. 또 피해 여성들을 보호하는 여성피난처(Women’s Refuge)가 있다.
일부 남태평양 국가에서 이민 온 남성들은 파트너를 통제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가정 폭력이 용납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또 다른 오해는 성경 구절의 잘못된 해석이다. 하와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기에 여자가 남자에게 통제당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더불어 뉴질랜드 사회에서 그들이 믿고 있던 성별 규범이 도전받는다고 여긴다. 이런 면을 감안하여 남성이 아내를 동등한 관계, 다시 말하면 평등한 관계의 파트너십을 강조하여 그들의 생각을 바뀌도록 한다. 가정 폭력을 예방하고 중단하려면 사랑과 존중에 대한 잘못된 문화 및 사고방식을 분별해 내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에서는 폭력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 순찰팀(Community Beat Team)’을 배치하여 안전 확보를 강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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