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호 칼럼 벽에 새긴 이야기, 뉴질랜드 거리 예술

2025.07.15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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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에 새긴 이야기, 뉴질랜드 거리 예술


글·사진 박춘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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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걷다 보면 종종 뜻밖의 순간에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도 아닌, 한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 한 조각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그림은 누가 그렸으며 왜 그렸을까?” 그것은 예술을 넘어 그 도시가 살아온 이야기이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과 희망이 담긴 목소리다. 누군가는 거리의 벽화를 낙서나 장식으로 치부하지만 그것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벽화는 말이없는 듯 말을 걸고, 눈이 없는 듯 우리를 응시하며, 그 시대의 사회와 공동체의 정체성을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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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의 역사는 장구하다. 기원전 약 3100년경 고대 이집트인들은 무덤과 신전의 벽에 신과 왕,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림을 남겼다. 당시 사람들에게 벽은 그냥 구조물이 아니라 이야기를 새기는 캔버스였다.


로마, 마야, 아즈텍의 신전 벽에도 신화, 종교, 권력, 일상, 인간의 숨결이 번져 있었다. 놀랍지 않은가?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거리 벽화는 수천 년 전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표현 욕구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을 담은 유서 깊은 전통의 연장선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붓이나 스프레이를 들고 또 다른 이야기를 벽 위에 펼치고 있을지 모른다.


벽화는 붓으로 그린 시간이자 물감으로 남긴 삶의 흔적이다.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이며 벽을 마주한 우리에게 말없이 속삭인다. “이 벽을 바라보면 그때의 문화가 보일 거예요.” 고대의 사람들은 말이 아닌 그림으로 세상을 이야기했다. 그들이 걷던 거리, 품었던 신념, 사랑하고 두려워했던 존재들, 복잡하게 얽힌 정치와 권력의 줄다리기까지 모든 것이 벽에 담겨 있다. 색상 하나, 선 하나에도 그 시대의 감정과 긴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벽화는 미적인 장식을 넘어선다. 그것은 공동체의 이야기를 공유하던 방식이었고 마음을 담는 그릇이자 세상과 소통하고 이해하려 했던 창이었다. 말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그림으로 진실을 남겼다. 그림은 침묵을 깨고, 보이지 않는 목소리를 전했다.


뉴질랜드의 거리 예술, 특히 벽화는 장식을 넘어섰다. 그것은 도시를 회복시키는 힘이었고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싸는 치유의 예술이었다. 어떤 이는 그 앞에서 위로를 받고 또 어떤 이는 새로 시작할 용기를 얻는다. 예술가들은 붓을 들고 묻는다. “이 도시가 아름답게 되길 바라나요?” 그 질문은 벽 위에 하나하나 색으로, 선으로 남겨진다. 인종과 문화의 경계를 넘어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꿈, 아픔을 견디며 다시 일어서는 모습, 이 모든 것이 거리 벽화 속에 스며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념비가 되고 사람들의 의지와 연대를 상징하는 마음의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 슬픔도, 희망도, 질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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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의 거리를 걷다 보면 마치 미술관 속을 유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빌딩과 담벼락이 하나의 캔버스가 되고 그 위에 펼쳐진 색채들은 하나의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벽화들, 그 속엔이 나라의 문화적 다양성과 사회적 메시지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도시의 얼굴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벽화가 유독 발달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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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예술에 대한 존중과 태도에 있다. 특히 ‘다름’을 존중하고 ‘표현’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거리라는 무대 위에서 예술가들은 스프레이와 붓을 손에 들고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이야기한다. 그이야기에는 원주민 마오리 문화에서부터 현대 도시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때론 소외된 이들의 속삭임이고 때론 연대의 외침이며, 때론 웃음 속에 숨겨진 진심이다. 이 모든 감정들이 뒤섞여 만들어낸 색채는 도시를 더욱 살아 숨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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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약 180개의 민족 언어가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다. 마오리, 유럽계, 아시아계, 태평양 제도 출신 등 서로 다른 문화적 뿌리를 지닌 이들이 함께 살아가며거리의 벽은 그들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어떤 벽에는 전통 마오리 문양이, 또 다른 벽에는 용이 그려져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벽화는 각 민족이 품고 있는 기억과 꿈, 고유한 서사를 담아내는 이야기의 집이다. 그렇게서로 다른 사람들이 벽을 통해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고 그안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존중하는 문화가 자라난다. 그뿐만이 아니다. 뉴질랜드의 벽화는 자연과 사람을 잇는 가교이기도 하다. 하늘을 닮은 푸른색, 바다를 닮은 곡선, 산과 숲을 담은 형상들이 도심 속 벽에 피어난다. 그 그림 속에서 나무의 숨결, 바람의 소리, 바다의 냄새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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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뉴질랜드의 거리는 낯설고도 생동감이 있었다. 도시의 골목과 벽면, 버려진 공터와 전봇대 아래엔 새로운 언어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색채였고 선이었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은 것도, 미술관의 조명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속엔 당대 청년들이 품은 절박한 외침과 꿈틀거리는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 현상은 그래피티(Graffiti, 공공장소에 그려진 그림, 낙서 또는 메시지)를 넘어서는 문화적 반향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은 사회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 벽에 그려진 그림은 사회의 경직된 틀을 무너뜨리는 해방의 기호였고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 시작은 거칠고 불안정했다. ‘불법’ ‘낙서’ ‘도시 미관 훼손’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사람들은 느꼈다.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기척 그리고 그 안에 깃든 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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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며 이 거리의 언어는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했다. 예술이란, 반드시 전시관의 벽에 걸려 있어야 하는가?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했고 그 질문이 거리를 바꾸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거리의 예술은 더 이상 불청객이 아닌, 도시의 역사와 감정이 공존하는 캔버스가 되었다. 그 시절 벽을 마주하던 청춘들은 지금 뉴질랜드 거리예술의 뿌리가 되었다. 그들의 외침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에 스치고 햇살 아래 반사되며 우리 곁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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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의 뉴질랜드는 거리의 언어가 조금씩 변해가던 시기였다. 거리 예술은 더 이상 반항의 상징만이 아니었다. 그 벽화 하나하나에 공동체의 숨결, 도시의 꿈 그리고 청춘의 희망이 담기기 시작했다. 오클랜드와 웰링턴, 뉴질랜드의 대표 도시들에서는 청년 예술가들이 거리의 벽을 무대로 삼아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때론 빈곤에 대해, 때론 인종과 정체성, 환경 문제에 대해, 무채색의 콘크리트 벽이 이들의 손끝에서 생동하는 메시지가 되었다. 예술을 넘어 소통의 통로 그리고 공감의 공간이 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지방자치단체와 예술재단들이 거리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공공 프로젝트로 정식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웰링턴에서는 거리 예술을 일종의 시민의 권리로 여긴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벽화 공간이 마련되고 예술가들은 자유롭게 거리 위에 상상과 이야기를 펼친다. 그렇게 벽화 작업은 도시 곳곳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낙후된 구역은 색을 입으며 다시 태어났고, 시민들은 자부심을 품고 골목을 걸었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벽화를 따라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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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과 2011년, 뉴질랜드의 남섬 크라이스트처치는 두차례의 강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일상을 지키던 수 많은 건물들이 붕괴됐고,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잃은 채 거리로 나앉았다. 도시 전체가 충격과 공포, 상실감에 잠식되었고, 크라이스트처치는 더 이상 이전의 그 도시가 아니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력감과 두려움 속에 방황했다. 그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거리의 벽화가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벽화는 그 어떤 위로보다 따뜻하고 힘이 있었다. 무너진 벽면 위에 피어난 그림들은 공동체가 함께 겪은 상처를 어루만지는 손길이었고, 희망을 다시 붙잡게 해주는 작은 빛이었다. “우리는 함께 이겨낼 수 있다.”와 같은 무언의 메시지가 색채를 타고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서로 손을 맞잡은 사람들의 모습은 공감의 상징이자 회복의 언어였다. 벽화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은 잠시나마 아픔을 내려놓았고 서로에게 미소를 건네기 시작했다. 절망의 균열 속에 희망의 씨앗이었으며 재건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남단, 고요한 바다와 고풍스러운 건축물이 어우러진 도시 더니든(Dunedin)에는 한쪽 벽면을 가득메운 거대한 문어 벽화가 있다. 그 앞에선 사람들은 감탄을 멈추지 못하지만 더니든의 어부들은 “우리의 파트너지!”라고 말한다. 문어는 그 도시의 생계였고 일상이었으며 자연과 맺은 오랜 인연의 상징이었다. 이 도시의 삶은 바다와 함께 숨 쉬었고 그 바다에는 언제나 이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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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랜드 시내를 걷다 보면 때때로 뜻밖의 순간이 우리를 멈춰 세운다. 높은 빌딩들 사이 벽 한켠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고래 한 마리. 푸른빛 물결을 배경으로 유유히 헤엄치는 듯한 이 고래 벽화는 한 편의 시처럼 다가온다. 항구 도시 오클랜드에 고래는 그 상징성만으로도 이미 익숙한 존재다.


이 고래는 도시를 대표하는 해양 생물을 넘어 한 시대의 슬픔과 경고 그리고 희망을 담은 매개체로 자리 잡았다. 무심코 지나치던 이들도 고래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발걸음을 멈춘다. 그 눈동자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이 깃들어 있다. 슬픔과 절박함, 고요한 외침, 예술가는 일부러 그 눈에 침묵의 경고를 담았다고 했다. 무너져가는 해양 생태계, 소리 없는 절멸 속에서 고래가 건네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뉴질랜드 거리 예술의 또 다른 강렬한 인상 중 하나는 벽마다 살아 숨 쉬는 마오리 문화다. 그곳엔 마오리의 전통 문양과 상징들이 현대적인 색감과 세련된 스타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것은 이 땅의 뿌리 그리고 그 뿌리에서 자라난 정체성과 기억의 이야기다. 마오리의 상징은 잊히지 않고 오히려 더 또렷이 새겨지며 도시 곳곳을 살아 숨 쉬게 만든다. 어떤 문양은 조상의 숨결을 담고 있고 어떤 상징은 자연과의 조화를 말하며, 또 다른 벽화는 투쟁의 역사와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도심 한복판, 평소처럼 스쳐 지나던 거리에서 문득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거대한 벽화가 있다. 높이55m, 폭이 27.5m의 이 벽화는 한 여성의 얼굴을 담고 있다. 그 표정은 담담하면서도 어딘가 슬프고 손끝에 걸린 붉은 가면은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하다. 꽃으로 장식된 머리, 청색과 붉은색이 교차하는 의복, 그녀를 휘감는 금빛의 선들은 동양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녀가 손에 쥔 가면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사회적 가면일지도 모른다. 벽화 속 그녀는 그 가면을 벗기려는 걸까? 아니면 다시 쓰려는 걸까? 그녀의 주변에는 나비가 한 마리가 유영하듯 떠 있다. 변화와 자유를 상징하는 나비는 이 벽화에 또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어쩌면 이것은 상처와 억압을 넘어 스스로의 진짜 얼굴을 찾는 여정 즉 정체성과 자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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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초대형 벽화는 크라이스트처치 출신 제이콥 야익(Jacob Yikes)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그는 매년 열리는 플레어 스트리트 아트 페스티벌(Flare Street Art Festival)의 일환으로 이 작업을 맡았다. 250리터의 페인트, 200개의 스프레이 캔, 하루 14시간 넘는 고된 작업,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야익은 도시 한가운데에 서서 혼신의 열정을 벽 위에 쏟아 부었다.


이 벽화는 한 인간의 집념이자 도시에 바치는 찬가였다. 그러나 탄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장 큰 난관은 ‘높이’였다. 12층 높이의 벽면에 작업하려면 특수 리프트 장비가 필요했지만 대부분의 리프트는 ‘테 카하(Te kaha)’ 스타디움 건설 현장에 투입되어 있었다. 주최 측은 도시 전역을 뒤져 단 하나의 리프트를 찾는 데 성공했고 그제야 야익은 다시 붓을 들 수 있었다. 크라이스트처치의 이 벽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도시에 새기고 있는가?


벽화는 도시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매년 열리는 거리 예술 축제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새로운 벽화들이 탄생한다.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도시의 벽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미래를 상상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감정을 공유하며 새로운 미래를 함께 그려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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