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호 칼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해괴한 일
글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뉴질랜드 사회에서 원주민 마오리족은 전체 인구의 약 15% 정도를 차지한다. 이러한 수치는 인종 구성면에서 뉴질랜드에서 두 번째로 크다. 현재 거주하는 마오리 부족은 약 50개인데 마오리족의 문화에는 다양성과 흥미로움을 자아내게 하는 특성이 있다. 그들은 신화를 중요시하는데 이를 방증이라도 하듯 뉴질랜드 북섬의 최북단에는 마오리 성지가 있다.
‘케이프 레잉가(Cape Reinga)’라는 곳으로 이곳을 마오리들의 영적 장소라고 여긴다. 마오리 신화에 의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케이프 레잉가 쪽으로 여행을 한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이 사회·경제적 지위나 계급에 관계 없이 모든 마오리들에게 적용되지는 않는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경
우는 하늘로 올라간다는 믿음 또는 산 위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마라에(Marae)’라고 불리는 마오리 특유의 부족 공회당.
마오리족은 이곳에서 공식적인 환영 행사, 결혼식, 장례식 등을 진행한다. (출처: 뉴시스)
마오리의 장례 의식(마오리어로 ‘탕이항아(tangihanga)’라고 함)을 보자. 애도 기간은 보통 3일 정도인데 이 기간에는 통곡의식을 진행한다. 울부짖음과 애도가 매장 때까지 밤낮 간격을 두고 계속된다. 이렇게 통곡의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세를 떠난 영혼이 본래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는 동안 한결같이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기원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장례의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다. 이처럼 마오리들은 영혼 불멸 사상을 갖고 있다.
마오리들이 늘 신성시하는 공간이 있다. ‘마라에(Marae)’라고 불리는 마오리 특유의 부족 공회당이다. 여기서는 공식적인 환영 행사,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열린다. ‘마라에’는 울타리로 만든 대지와 조각을 결합한 일종의 건축물인데, 마오리들의 중요한 부족 행사 또는 가족 행사를 여는 신성한 공동 공간이다.
이런 신성한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치러지는 행사는 장례식이다. 장례식이 열릴 경우 부족, 가족, 친척, 지인들이 모여 회의하고 슬퍼하고 기념하는 곳이다. 장례 기간 동안 부족의 연장자들은 어디에 시신을 매장할 것인가를 논의한다. 만약 논의에서 매장 장소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망자의 가족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집안 어른이 매장 장소를 결정할 수 있다.
망자의 시신은 ‘마라에(Marae)’로 옮겨지는데 이는 매장 전에 고별을 위해서 안치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오리들은 가족이 죽으면 장례식 전날 마라에 안에서 시신이랑 함께 자고 마지막 밤을 같이 보낸다. 그들은 조금도 두렵거나 무섭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런 일에 이미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서로 코를 맞대고 비비는 마오리족 전통 인사법 ‘홍이(hongi)’ (출처: 뉴시스)
장례식에는 망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장례식장 가운데에 망자의 시신을 놓는다. 장례식에 참석한 조문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하는데 망자가 생존했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일들을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한다.
그중에서도 조문객과 망자와의 관계에서 일어난 일, 망자에 대한 그리움, 원망,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하고 쌓아둔 이야기, 직·간접으로 경험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좋았던 일, 좋지 않았던 일, 섭섭했던 일 등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세군에서 운영하는 봉사업체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몇 년간 봉사를 했으며 어떤 역할을 했다” 또는 “언제쯤 돈을 빌려 갔는데 갚지 않았다” “어떠한 조언을 줘도 고집이 너무 세서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라고 하는 등 부적절한 관계까지 이야기해도 무방하다.
이런 이유는 장례식에서 나온 모든 이야기가 면책이 되기 때문이다. 또 굳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망자의 혼이 제대로 떠나지 못한다고 믿는 관념 때문이다.
조문객이 마라에를 방문하면 늙은 여자가 소리 높여 통곡하면서 조문객을 맞이한다. 그리고는 조문객과 인사를 나누는데 특이한 점은 악수하거나 목례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마오리 전통 인사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만이 가진 독특한 인사가 있는데 서로 이마와 코를 맞대고 코를 비비는 형태다. ‘홍이(hongi)’라는 인사법이다. 무슨 의미로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것일까. 같은 숨을 나누고 서로의 영혼을 교환하고 섞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당신과 나는 하나입니다.’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2019년 3월 18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알누르 모스크 밖에서 금요일 총격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철야 운동 중 학생들이 하카를 공연하고 있는 모습. (출처: 뉴시스)
작년 11월 어느 날 뉴질랜드 현지인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다.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 및 친구들이 고인을 기억하며 추모했다. 유족 및 친구들이 나와 고인에 대해 편지를 써서 낭독했다. 편지 내용에는 재미있었던 일, 즐거웠던 일이 있어서 슬픔에 잠긴 침울한 분위기를 때로는 웃음으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사위 되는 분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고인과의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 생각났다.
그런데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장례 차량까지 운구할 때 일어난 일이다. 고인의 친구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데 갑자기 ‘쿵쿵 쾅쾅 쾅쿵쾅’의 큰소리를 낸다. 마치 장례식장이 떠나갈 듯하다. 다른 곳을 응시하던 사람들도 일제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어찌 된 일인가. 참석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우렁찬 구호에 맞춰 여러 명이 합세하더니 위협적인 표정, 세차게 발구르기, 혀 내밀기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슴과 허벅지를 격렬하게 치는 등 열정적으로 몸을 움직인다. 바로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인의 의식인 ‘하카(Haka)’다. 하카는 과거 전시에서 부족 전사들의 용맹, 힘, 기량 등을 어필하며 상대를 위협했던 것으로 오늘날 용맹, 단결력을 상징한다. 각종 공식 행사는 물론 스포츠 경기에서 경기를 하기 전에 우위를 과시하는 의식, 졸업식, 결혼식 등에서 자주 한다.
그런데 엄숙해야 할 장례식에서도 하카를 하니 놀라운 일이다. 왜 그런가. 하카에는 추모와 존경의 의미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례식에서도 하카를 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다른 일례로 몇 년 전 뉴질랜드 ‘북파머스턴 남자 고등학교(PNBHS)’라는 곳에서는 전교생이 운구차 앞에서 하카를 한 적이 있다. 그 학교에 재직 중이던 한 선생님의 장례 행렬에서였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애도 의식 그리고 슬픔에 잠긴 상주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는 차원에서 보여 준 파워풀한 의식이라 할 수 있다.
마오리족 장례는 화장을 하지 않고 관을 매장하는 전통적 관습이 있다. 관을 매장하는 동안에 반드시 금기해야 할 사항이 있다. 보석이나 금전을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아야 하며,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을 먹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매장 후 모두 집으로 돌아와서는 축하 만찬을 갖는다. 이는 장례식이 잘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다.
또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마오리가 다른 지역에서 사망하면 고향으로 시신을 옮겨와서 장례를 치른다. 그것이 뉴질랜드 안에서 일어나든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든 마찬가지다. 일례로 호주에서 마오리가 사망하면 시신을 마오리가 태어난 뉴질랜드의 고향까지 운구해야 한다. 그 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매일 약 80건의 장례식과 추모 예배가 열린다.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사망자의 60%가 화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에 마오리인족들의 장례 의식도 바뀌고 있다. 우선 매장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뉴질랜드 공동묘지를 보면 생화 또는 조화가 꽂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뉴질랜드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 묘를 자주 찾아간다는 의미이다. 공동묘지가 기념공원으로도 불린다. 어찌 보면 해괴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기념공원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이는 주민들이 편안하게 조깅, 산책, 소풍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마오리족 장례는 고인에 대한 추억, 기억, 고인과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기회 그리고 삶을 기념하는 시간이다. 거기엔 눈물, 엄숙, 웃음, 유머가 공존한다.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근간으로 한 흥미로운 전통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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