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칼럼 크라이스트처치의 작은 세계 축제 ‘컬처 갈로아’ 가 갖는 의미
크라이스트처치의 작은 세계 축제
‘컬처 갈로아’ 가 갖는 의미
Culture Galore
글·사진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뉴질랜드는 200여 민족이 어우러져 운영되는 다민족·다문화 국가다. 많은 민족이 어우러져 살다 보니 문화 간 충격·갈등으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고자 뉴질랜드 역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표방한 다문화사회를 조성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매년 다양한 다문화축제가 지역마다 열리고 있다. 이는 인종 간의 이해를 돕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종 우월주의를 지양하며 사회통합을 추구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뉴질랜드 다문화축제는 뉴질랜드 현지인과 이민자가 함께 벌이는 평화축제다.
그들이 벌이는 노력 가운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행사의 특징이라면 인기 연예인 또는 유명한 공연단을 굳이 초청하지 않은, 지역 참여자 위주로 운영된다. 축제라고 하면 흔히 음주 문화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행사의 원활한 운영·진행을 위해 행사장 내에서는 엄격히 금주를 실시하고 있으며, 행사장 내 어디에서도 알코올류를 판매하거나 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행사장에는 각 국가의 전통음식, 음악·무용 공연, 공예품 전시, 페이스 페인팅 등을 선보인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뉴질랜드로 이주해 온 것은 약 800년 전이다. 그 후 18세기부터 유럽인의 이주가 시작됐는데, 불과 50년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백인의 이민만을 허용해 왔다. 따라서 그때까지 뉴질랜드는 마오리 문화와 백인 문화를 주축으로 한 ‘양문화주의’였다. 그러나 점차 이민자의 비중이 늘어나자 2001년부터 정부 부처 소속으로 소수민족 사무처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하는 주요 업무는 이민자 지원 정책인데 직원 선발 시 소수민족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한다는 점이다. 다민족사회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배려야말로 조화, 혁신, 공영 그리고 생산성 향상을 꾀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에서는 각 민족이 성공스토리를 만들어 국가 사회에 기여해 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뉴질랜드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며 각 민족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한다. 뉴질랜드의 역사·문화·전통·관습을 아는 것은 적응력과 소통 능력의 핵심인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에 앞서 더 중요한 점은 서로 간의 따뜻한 인정과 배려심이기에 각 민족의 문화를 존중한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인구가 37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작은 도시로 연상할 수 있지만 뉴질랜드 전체 인구가 515만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전 세계에서 유입된 이민자들로 구성돼 문화의 다양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매년 2월 어느 주말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열리는 문화 행사가 있다.
5000명 정도가 참여하는 ‘작은 세계 축제’라 불리는 ‘컬처 갈로아(Culture Galore)’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는 행사인 ‘컬처 갈로아’ 행사는 노래와 춤 등 다양한 문화와 예술, 음식들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경찰, 소방서, 뉴질랜드 암협회 등 여러 기관과 사회단체들의 홍보부스도 설치된다.
시청과 구의회에서 지원하며 지난 2001년부터 개최됐으니 올해로 23년째를 맞이했다. 행사장에는 이민자와 지역민들을 위한 다양한 정보 제공도 하는데 각 나라 언어로 제작된 자료도 많다. 이러한 서비스는 소수민족들에 대한 배려이며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을 위해 소통망을 형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민자들을 위한 영어교육은 여러 교육기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영어교육 프로그램에서조차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하지는 않는다. 이민자의 모국어와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데, 이러한 면은 모국어가 이민자들의 삶과 문화의 일부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컬처 갈로아’ 행사는 야외 공원에서 열리는 행사로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모두 좋아하는 연중행사 중 하나다. 그래서 행사가 열리는 날에는 가족 단위, 친구 단위로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평소 볼 수 없었던 놀이기구를 선보이는가 하면 레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음식, 전통 문화 공연 등을 볼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이외에도 페이스 페인팅, 활쏘기, 바운스 캐슬, 경찰의 스피드 건(speed gun) 체험 등이 마련된다.
필자는 지난 2월 18일 행사가 열리는 크라이스트처치 아일람(ILam) 지역의 ‘레이 블랭크 공원(Ray Blank Park)’을 찾았다. 이날 한낮 최고기온이 무려 30도 이상까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행사장 주변 일대에는 교통체증이 벌어졌다.
행사장 입구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이 모였으며 경찰차와 경찰관들도 보인다. 경찰관 한 명이 웅크린 자세로 뭔가를 보면서 계속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는 어린이 한 명이 경찰관을 향해 뛰어오더니 바로 앞에서 다시 오던 길로 뛰어갔다. 경찰관은 스피드 카메라를 이용해 어린이들이 달려오는 속도를 측정해 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는 경찰관들이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는데, 세워진 오토바이 뒤로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늘어선 줄이 줄어들더니 경찰관이 어린이 한 명을 오토바이에 태운다. 그리고는 기념사진 촬영을 한다. 이 광경을 본 어린이와 그 부모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지역민과 경찰이 이웃처럼 정겹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암협회 부스에서는 피부암 등을 홍보한다. 뉴질랜드는 기후 특성상 자외선이 강하게 내리쬐는 나라다. 그래서 피부암 발생률이 비교적 높은 편인데 이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함이다.
뉴질랜드 지역민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30여 개 이상 국가에서 온 이민자들이 모인 행사장에서는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는 35개의 전통 먹거리 판매대가 마련됐고 20개 이상의 공연이 이뤄졌다. 행사장을 지나고 있는데 ‘불고기’ ‘비빔밥’이라는 익숙한 우리말이 들려온다. 주위를 보니 크라이스트처치 한인회에서 비빔밥과 불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무대 공연은 한국의 사물놀이를 비롯해 마오리족의 하카, 중국의 사자춤, 일본의 노래, 폴란드의 민속무용 등의 공연이 진행됐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사물놀이 의상을 입고 참가한 사물놀이팀은 참여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장단에 맞춰 참여자들은 함께 박수를 쳤다. 참여자들의 결속력을 높이고 한류의 토대를 쌓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