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칼럼 동물 친화적 뉴질랜드인들의 일상과 비행기를 멈추게 한 동물 한 마리
동물 친화적 뉴질랜드인들의 일상과
비행기를 멈추게 한 동물 한 마리
글·사진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최근 필자가 크라이스트처치의 팜스몰(Palms Mall)이라는 곳에 쇼핑을 간 적이 있다. 주말이라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쇼핑몰 입구에는 동물 반입 금지라든지 자전거 및 스쿠터 반입 관련 반입 금지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일반적으로 동물 반입은 금지돼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덩치가 꽤 큰 개 한 마리가 개의 목줄을 쥔 사람과 같이 쇼핑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쇼핑몰의 안전을 관리하는 시큐리티 가드 (security guard)도 보인다. 하지만 시큐리티 가드는 지나가는 개에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고 본 체 만 체 한다. 그러더니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어느 한 가게에 개를 데리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들어가고 나오는 관계로 사람들끼리 가끔 부딪치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부딪치기만 하면 서로가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다.
모르는 사람끼리 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터치(touch) 문화를 좋아하지 않은 뉴질랜드인들의 습관이 배여있기 때문이다. 인파로 붐비는 가게다 보니 개 역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 개는 전혀 짖지를 않는다. 상당히 훈련 받은 개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 물건을 사기 위해 여기 저기 두리번 거리다가 한 곳에 머문다. 개의 등에 뭔가쓰여져 있는 것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등에는 바탕이 녹색으로 된 천을 두르고 있었으며 글씨가 쓰여져 있었다. 영문으로 쓰여진 글자는 ‘안내견’이었다.
몇몇의 사람들은 안내견을 쓰다듬기도 한다. 안내견은 이러한 상황에도 익숙한 듯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뉴질랜드 사람들이 동물 친화적인 면도 있지만 동물을 가족처럼, 때로는 이웃처럼 생각하는 면이 많다.
동물을 보호하는 실천적 다른 사례를 보자. 올해 2월 27일 뉴질랜드 남섬 끝자락에 위치한 더니든 공항(Dunedin Airport) 활주로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오클랜드(Auckland)를 출발한 항공기가 오후 2시경 더니든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항공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면 이동 과정에서 속도는 줄이되,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급제동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착륙 직후 터미널까지 이동하는 과정에서 급제동하는 일이 일어났다. 항공기가 갑자기 멈춰 선 것이다. 이로 인해 기내에서는 한차례 소란이 일어난다.
잠시 후 공항 소방차가 출동하기 시작한다. 좌석에 앉아 있던 항공기의 모든 탑승자들은 깜짝 놀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가 궁금했다. 기장의 눈에 이상한 물체, 다시 말하면 활주로에 무단침입자가 나타난 것이다. 잠시후 해당 항공기 기장의 안내방송이 이어졌다. 그는 승객들에게 “조종사 경력 중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안내 방송을 해야겠다. 활주로 위에 고슴도치가 있다”라고 말했다. 조종사가 활주로를 건너던 야생 고슴도치 한 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이 방송을 들은 승객들은 안도하며 웃기도 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려의 상황을 유쾌한 상황으로 만들었다. 공항 소속 소방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고슴도치는 활주로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고슴도치는 빠르게 현장에 도착한 공항 소방대원들에 의해 안전한 곳으로 피할 수 있었다.
고슴도치 출현으로 인해 공항 도착까지 5분 정도가 지연됐다. 하지만 어느 승객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공항 관계자는 “공항은 고슴도치를 포함한 모든 야생 동물의 생명이 존중받고 있다. 비행 중 어떤 야생동물들의 생명도 뺏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목표다”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펼칠 고슴도치 관련 정책때문이다. 2050년까지 고슴도치를 비롯한 국외에서 들어온 외래종에 대한 근절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고슴도치의 경우 뉴질랜드에 천적이 거의 없다는 점과 고슴도치가 생태계 파괴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슴도치 근절은 뉴질랜드 내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강력한 조치다. 그렇다면 고슴도치의 개체수를 줄이면 생태계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딱정벌레, 귀뚜라미, 갈매기 등의 생태를 보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뉴질랜드에서 서식하는 고슴도치의 상황을 보자. 원래 뉴질랜드에는 고슴도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애완용 고슴도치가 유입되었다. 이 고슴도치가 결국 야생으로 나가서 재래동물을 대량으로 포식하고 있어서 최상위 포식자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결과 고슴도치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고슴도치는 숲과 가정집의 정원에서 서식하는데, 잘 뛰지 못하는 귀뚜라미, 재래종의 도마뱀, 새의 알 등을 주식으로 한다. 그런데 큰 문제는 천적이 없는 상위 포식자라는 점이다.
그동안 뉴질랜드에서는 외래종이 유입될 경우, 사냥, 포획, 독 등을 이용해서 절멸시켰다. 그러나 고슴도치는 예외적이다. 뉴질랜드에서 발간된 어느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고슴도치의 위장에서 무려 283개의 귀뚜라미 다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슴도치 한 마리가 하루에 약 60마리의 귀뚜라미를 잡아먹는다는 꼴이다. 아울러 더 놀라운 점은 고슴도치의 먹이사냥이다. 고슴도치 몇 마리에 위성 항법 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를 부착하여 움직임을 조사했는데, 해발 2000미터 지점에서도 먹을 것을 찾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뉴질랜드는 동식물을 사랑하고 보호한다. 그럼에도 외래종의 근절은 종의 다양성을 중시하는 생태계 보존을 위한 일련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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