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호 칼럼 뉴질랜드인의 자연 친화적 문화와 해글리 공원
뉴질랜드인의 자연 친화적
문화와 해글리 공원
글 박춘태(중국 북경화지아대학교 기업관리대학 교수)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해글리 공원(Hagley Park)’
올해 초 어느 날 뉴질랜드 남섬 더니든(Dunedin) 지역에 있는 한 쇼핑센터를 방문했다. 가게에서 쇼핑을 하는데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강남스타일’ 노래가 흘러나온다. 특히 K-pop을 좋아하는 뉴질랜드인들은 더 흥겨움을 느끼는 듯하다. 그때 마침 5세 내지 6세 정도로 보이는 몇몇 뉴질랜드 어린아이들이 부모를 따라 같은 가게로 들어왔다. 그들은 쇼핑이 몹시 즐거운 듯 걸음을 멈추더니 몸을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춤을 추고 또 몇 걸음 가다가 멈춘 후 춤을 추는 행동을 반복한다. 때로는 뛰어다니면서도 연신 싱글벙글한 모습이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자칫 한순간에 다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부모들은 물론 근무하는 직원들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필자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자세히 보았다. 어찌된 일인가. 아이들 모두가 맨발이었다. 필자는 그들의 부모에게 맨발로 다니는 이유를 물었는데 “건강에도 좋을뿐더러 환경이 깨끗하고 안전하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면서 쇼핑할 때만 맨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동네 산책을 할 때도 맨발로 걷는다고 했다. 놀라운 점은 이런 현상이 어린아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캔터베리대학 중앙도서관을 방문했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한 학생이 있었는데 역시 맨발이었다. 주위를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자연 친화적 생활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자연친화적 뉴질랜드인들
‘공원의 도시’ ‘정원의 도시’로
불리는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이번엔 자연 친화의 다른 예를 보자. 2019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하기 몇 달 전 일이다. 뉴질랜드를 가족 단위로 여행하던 한국인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여행을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가는 목적지마다 미리 예약된 숙소를 이용했다. 크라이스트처치로 온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렌터카를 이용해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캐시미어라는 지역에 가기로 돼 있었다. 캐시미어 지역은 크라이스트처치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지역이어서 한눈에 시내 전체를 볼
수 있으며 산책로, 등산로,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게다가 험준한 산이 아닌 언덕으로 돼 있어서 평소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이들 부부는 날씨가 맑게 게인 하늘을 보면서 캐시미어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캐시미어 방문이 크라이스트처치 전체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냥 들떠 있었다. 그런데 운전한 지 10여 분이 지나자 약한 빗줄기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점점 굵어졌다. 마침내 장대 같은 폭우로 변했다. 운전을 하던 남편에게 아내가 갑자기 ‘숙소로 다시 돌아가자’고 말한다.
남편은 단순히 비가 오기 때문에 비를 막기 위한 비옷이나 우산 등을 가지러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예상은 빗나갔다. 아내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아침에 세탁한 빨래를 밖에 널어놓았는데 폭우가 내리니 이를 집안으로 들여놓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숙소 담당자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느꼈기에 그들은 바로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연락은 됐지만 담당자는 그때 다른 곳에서 일을 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초지종 세탁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냥 그대로 놔두라는 것이 아닌가. 장대 같이 쏟아지는 폭우에도 말이다.
뉴질랜드인들은 빨래를 하면 건조하기 위해 건조기를 사용하는 것보다는 밖에 널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오존층이 얇아 강한 햇볕이 내리쬐어 세탁물이 빨리 마를 뿐 아니라 살균작용까지 함으로써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장대비가 내려도 빨래를 잘 걷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들의 인식으로는 우선 뉴질랜드 빗물이 깨끗하다는 점과 날씨 예측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내리던 폭우가 갑자기 그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점으로 봐서 그들은 자연을 거역하기보다는 순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남섬 최대의 도시로 ‘평원의 도시’ ‘공원의 도시’ ‘정원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도시 전체가 녹색환경을 띠고 있어 집은 푸르른 숲과 나무 사이에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
지형적 측면에서 대부분이 평평하며 공원과 정원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 어디를 가나 주택의 경우 기본적으로 정원을 갖고 있으며 지역 곳곳마다 공원이 있다. 크라이스트처치가 뉴질랜드 남섬에서는 가장 크지만 뉴질랜드 전체에서는 3번째로 큰 도시다. 도시 이름을 얼핏 들으면 ‘크라이스트’와 ‘처치’의 합성어로 판단하여 마치 교회를 연상케 할 수 있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해글리 공원(Hagley Park)’
뉴질랜드는 넓은 면적에 비해 국가 전체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이므로 크라이스트처치는 3번째 도시임에도 인구가 약 37만 명에 그친다. 이는 총인구의 7.5%에 해당된다. 공원의 도시라 불릴 만큼 약 1200개의 크고 작은 공원이 있는데, 300명당 한 개의 공원이 있는 셈이다. 크라이스트처치 건축물의 특징이라면 고층 빌딩 또는 아파트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주택들은 대부분이 단층 또는 2층으로 지어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울러 지은 지 100년가량 된 주택을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옛것을 소중히 여기고 이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중심부를 달리다 보면 도로 양 옆으로 큰 공원이 보인다. 바로 ‘해글리 공원(Hagley Park)’이다. 면적만 해도 165헥타르(1.65㎢)로 광대한 도시 공원이라 할 수 있다. 공원은 크게 ‘남 해글리공원(South Hagley Park)’과 ‘북 해글리공원(North Hagley Park)’으로 구분된다. 공원에는 늘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들 그리고 반려견과 걷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공원에 반려견을 데리고 출입한다면 문제는 없을까. 반드시 목줄을 매야 할까. 그런데 목줄을 푼 상태의 반려견이 꽤 있다. 주인이 뭔가를 던지자 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힘껏 달린다.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극적으로 물체를 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물체를 물고 주인에게 다시 온다. 이런 현상이 여러 차례 반복된다. 이는 반려견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경우 확실히 통제가 이뤄지므로 목줄을 매지 않아도 된다.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해글리 공원(Hagley Park)’
해글리 공원의 유래를 보자. 영국 이민자들이 최초로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에 도착한 것은 1850년 12월이었다. 초기 이민자들은 정착할 집을 마련하기 위해 북 해글리 공원 부지에 오두막을 지었다. 당시 해글리 공원 부지는 관목, 초지, 자갈이 뒤섞여 있는 습한 지대였다. 그야말로 쓸모없는 지대였다. 그러나 이민자들은 도심에 녹지 공원을 만들고, 호수를 만들어 시민들이 레크리에이션을 즐기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의견 일치를 본 그들은 공원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게 됐다.
그때 크라이스트처치에 성공회 교회를 설립한 영국인 리틀턴 경이 떠올랐다. 여러 차례 회의를 거친 결과 리틀턴 경의 영지 이름인 해글리를 따기로 했다. 그래서 공원 이름을 해글리 파크(Hagley Park)로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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