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칼럼 프리 푸드 마켓과 푸드 뱅크
프리 푸드 마켓과 푸드 뱅크
Free food market & Food bank
뉴질랜드의 식품 재활용
글 박춘태 박사
지난해 12월 어느 날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 city) 시내에 갔다. 오후 4시 20분 쯤 어떤 도로를 지나고 있는데, 도로 한쪽 인도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그 길이가 무려 50미터 정도 됐다. 버스 정류장도 아닌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줄을 서 있는 한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프리 푸드 스토어(free food store, 컨테이너 가게의 일종으로 무료로 식품을 나눠 주는 가게)’에 오후 4시 반부터 들어갈 수 있는데 대기하고 있다고 한다. 가게 입구에는 안전복 또는 유니폼을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도 오픈을 기다리는 듯했다. 드디어 4시 반,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하는데 일일이 번호표를 받았다. 그리고는 가게 안에서 또 줄을 섰다. 식품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받기 위함이었다.
프리 푸드 스토어는 입장과 동시에 식품 분배가 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분배 시간이 오픈 1시간 후인 오후 5시 반부터다. 약 1시간 동안 대기해야 한다. 자칫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하는 시간이 사람들을 지치게 할 수도 있는데 이들을 위한 배려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가게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공간이 꽤 넓었다. 대기하는 동안 쉴 수 있는 테이블, 의자, 소파가 여러군데 비치돼 있었다. 대화를 하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5시 반이 되자 TV 스크린에 순번이 나오기 시작하자 바구니를 들고 줄을 섰다.
‘프리 푸드 스토어’는 식품을 기부받아서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직접 가게를 방문하여 취사선택하게 돼 있다. 따라서 이용자 중심으로 운영된다. 식품의 균등 분배를 위해 식품마다 일정 수량까지만 선택할 수 있어서 비교적 적정 분배가 이뤄지고 있다. 크라이스트 처치에 ‘프리 푸드 스토어’가 오픈한 것은 2018년 10월 5일이었다. 그 이유는 약 20개의 카페가 팔고 남은 음식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두 번 식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 가게의 특징은 사회 소외계층 등 특정한 사람들만 이용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게 운영자 베스 허트(Beth Hutt)는 “저희 가게는 모든 손님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실제 아우디 같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그가 프리 푸드 스토어를 열게 된 계기는 음식 낭비를 카페 현장에서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이 음식을 집에 가져가지 않거나 나눠주지 않으면 모두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문을 닫은 후 멀쩡하던 빵이나 샌드위치를 쓰레기로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라고 했다.
‘프리 푸드 스토어’ 설립 이전에, ‘푸드 뱅크(food bank)’가 설립됐는데 푸드 뱅크의 설립 동기와 역사를 보자.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에서조차 음식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지역 및 환경에 따라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 심지어 굶어 사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트에서는 음식 또는 식재료가 상당히 폐기되는 현상도 일어났다. 멀쩡한 식품이지만 유통기간의 경과, 포장에 이상이 있는 경우 등이었다.
이를 본 미국의 ‘존 반 헨겔(John van Hengel)’은 이러한 식품들을 모아 결식자, 식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 가난한 이웃에게 제공하기로 결심한다. 지금으로부터 59년 전인 1965년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방안이 ‘뱅크 푸드’ 설립이었다. 1967년 드디어 최초로 미국에서 ‘세인트 메리스 푸드 뱅크(St. Mary's Food Bank)’가 설립됐다. 운영자가 식품을 받아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분배했다. 현재 200여 개의 푸드 뱅크가 미국 전역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약 6만 1000개에 이르는 자선기관에 식품을 제공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 푸드 뱅크는 비영리기관으로 2008년에 설립되었다. ‘구세군 푸드 뱅크(Salvation Army food bank)’ 등 종교 기반의 다양한 기관도 있으며, 식품을 기부받는 곳은 지역민 또는 단체 등이다. 2022년 기준으로 뉴질랜드에서 ‘푸드 뱅크’는 150개가 넘는다. 모든 푸드 뱅크가 사정이 같은 것은 아니다. 기부량의 불균형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푸드 뱅크의 운영 주요 주체는 자원봉사자다. 그만큼 자원봉사자의 역할이 크다 할 수 있다. 이들의 업무는 기부하는 식품을 싣고 내리는 일, 정리 정돈, 식품 물품을 포장하고 필요한 각 가정에 배송해야 한다. 이 외에 재고 관리, 기부자와의 연락, 이벤트 참여, SNS를 통한 정보 전달 등의 업무를 수행하여 운영의 원활함에 기여한다. 푸드 뱅크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참여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즐거운 경험을 제공한다.
한 젊은 여성 자원봉사자는 “늘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이런 활동이 빈곤층과 식량부족을 줄여 사회적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자원봉사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그런데 푸드 뱅크 제도는 운영자와 수요자 입장에서 충분한 만족도를 확보할 수 없었다. 수요자는 원하는 식품만을 필요할 때에 받기 쉽지 않다는 점이 있었고 운영자는 자원봉사자를 이용해 식품을 수요자에게 배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러한 한계를 개선, 보완한 방안이 등장했는데, 그것이 ‘프리 푸드 마켓’이다. 이처럼 양 기관을 통해 이뤄지는 잉여 식품의 활용은 식품의 낭비 및 폐기를 줄이며, 환경 보호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함으로써 복지 공동체를 구현한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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