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호 칼럼 뉴질랜드 공공도서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2024.05.11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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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공공도서관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글 박춘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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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맑게 하고 유익함을 주는 곳이 있다. 지식의 확장·교육, 역사와 문화 보존 그리고 책을 축적하고 학문과 책을 읽는 공간인 도서관이다. 주된 역할은 모든 사람이 신뢰성 있는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며, 빠른 정보를 확보하려는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서관은 인류가 문자를 만든 이후에 건립되었다. 최초의 공공도서관은 580년 전인, 1444년 산마르코 도서관이다(Library: An Unquiet History, 2004). 도서관 건립에 앞서 책의 역사는 더 장구하다. 자연을 이용해서 책을 만들었는데, 야자나무 잎, 뼈, 나무껍질, 돌로 책을 만들었으며 기원전 1200년경에 이뤄졌다.

시대 변천에 따라 도서관 이용 대상도, 용도도 달랐다. 로마 시대에 와서 도서관은 큰 변화를 한다. 그전까지는 황제들의 궁전 또는 신전에만 도서관이 건립돼 왔기 때문에 일반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없었다. 그러나 로마시대에 이르러 일반인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이 이뤄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세계 대공황 시기에 도서관은 안식처로써 사람들이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장소였다. 목욕탕에 도서관이 설립된 시기도 있었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통치기간에 설립된 공중목욕탕이 바로 그것인데, 목욕을 하면서 또는 목욕 전·후 책을 읽었다. 목욕탕이 하나의 문화시설로써의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서관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것은 르네상스 이후였다. 모든 도서관에는 각각의 특징과 분위기가 있다. 뉴질랜드 공공도서관은 지역 사회의 중심지로 인식되고 있으며 문화적·사회적 활동을 지원한다. 그러하기에 지역민들에게 풍부한 문화생활을 제공한다.


뉴질랜드에 설립된 공공도서관 수는 329관이며 직원은 2500명 정도다. 2000명당 1명이 도서관 직원인 셈이다. 뉴질랜드에서의 지역 도서관 건립은 19세기 중·후반에 이뤄진 것이 많은데, 이는 1850년대부터 유럽이민자들의 유입이 시작된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정원의 도시라 불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도 지역마다 공공도서관이 있다. 각 도서관은 규모면에서, 또 소장하고 있는 장서면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이는 이용자들의 수요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책을 읽는 곳, 컴퓨터를 이용하는 곳, 카페를 이용하는 곳이 구분돼 있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서 이용자들의 상호작용과 문화생활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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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2명의 사람이 옆에서 서로 대화를 한다. 그런데 대화의 목소리가 커서 책을 읽는 주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정도다. 청각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인가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대화 내용을 들어보니 ‘포럼을 여는데 주제는 무엇으로 하며, 어디서 할 것인지, 또 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등을 대화하는 정도다. 대화 시간이 짧게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10분 정도로 길게 하는 경우도 있다. 도서관이라는 공공장소에서 대화자들은 장소도 옮기지 않은 채 말이다. 놀라운 점은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종종 있다는 점이다.


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도서관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말을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살아 있는, 역동적인 도서관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의 편의를 고려한 적절한 소음 수준 유지가 아쉽다. 어느 누구하나 조용히 하라고 그들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그저 자기 할 일만 할 뿐이다.


그들은 도서관을 공동체의 공간으로 인식하되 대화와 토론의 커뮤니티 공간이라고 한다. 수다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중 한명은 “대화를 하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듣는 것은 좋은 일이다. 도서관 방문자 10명 중 3~4명은 책을 빌리지만, 10명 중 6~7명은 도서관 내에서 다른 활동을 하며 또 하고 싶어 한다. 도서관은 조용히 사색하고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화와 토론을 위해 연결하는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도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돕는 다양성과 포용성을 겸비한 장소다”라고 말했다. 배려 문화에서 색다른 문화 차이를 느끼게 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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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웰링턴에 있는 도서관 전경



근본적으로 도서관의 주목적은 지식과 정보의 확보에 있지만 지식과 정보의 공유, 커뮤니티 활동의 창구라는 점에서 삶을 바꿀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이는 도서관이 역동적이며 ‘함께’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할 수 있다.


작년 어느 날 크라이스트처치 홀스웰 지역에 있는 ‘홀스웰도서관(Halswell library)’에 갔다. 그런데 한글이 쓰인 태권도복을 입은 어린이와 학생들이 도서관 건물로 들어가지 않는가. 무슨 일인가 궁금했다. 신기하게도 도서관 건물 내에 태권도 연습장이 있다고 한다.


안내도를 보고 도서관 복도를 따라 맨 끝에 위치한 태권도 도장을 갔다. 태권도장은 같은 도서관 건물에 있기는 하나 장서가 있는 곳과는 확실히 구분돼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태권도 하는 한국인 자녀보다 키위(뉴질랜드 현지인) 자녀들이 더 많았다. 그들 모두는 태극마크가 표시가 된, 그리고 한글로 쓰인 ‘태권도’ 도복을 입고 힘차게 태권도를 한다. ‘차려’ ‘준비’라는 한국어 구령에 맞춰 하는 동작은 마치 예술과 같다. 이 광경에 뻗어가는 우리의 국력을 실감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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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건물에 또 다른 특이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야외 수영장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 어른 할 것 없이 웃고 떠들며 즐겁게 수영을 즐기고 있다. 물론 도서관 내에서는 수영장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 이렇듯 뉴질랜드에서의 도서관 운영은 지역마다, 또 도서관의 특성(학문 목적, 일반 목적, 취미 및 문화활동 목적, 커뮤니티 활동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으며 그에 동반한 역할과 기능도 다르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출자의 도서가 연체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연체료를 물게 돼 있다. 이것은 오랜 관행이었다. 연체료의 정당화 주장은 빌린 도서를 제날짜에 반환함으로써 다른 이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체료를 없애자는 운동이 제기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연체료가 대출자의 도서 반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연체료로 인해 이용자에게 발생하는 장벽, 도서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크다는 점이다. 연체료를 없애면 과연 도서관 이용이 늘어날까?


실제 어떤 지역에서 아동 자료 대출에 연체료를 없앴는데 대출이 약 8% 증가했다고 한다. 연체료 때문에 대출을 주저하는 사람도 있으며 도서관 이용을 제한하기도 한다. 반납이 늦은 사람들에게 연체료를 부과하기보다는 대출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아울러 빌린 책을 정확한 날짜에 반환하는 이용자들에게는 상 또는 보상을 제공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이처럼 뉴질랜드의 도서관에서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의 역할과 도서관 이용자들의 편의 확보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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