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칼럼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와 요정 이오

2025.02.16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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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와

요정 이오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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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신들의 왕이 된 제우스는 처음에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와 결혼했다. 메티스는 제우스에게 구토를 일으키는 약을 주어 크로노스가 삼킨 형제들을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메티스가 제우스에게 말했다.


“여보, 기뻐해 주세요. 저한테 아기가 생겼어요.”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제우스는 메티스가 임신했다고 말하는데도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큰일 났네. 할머니 가이아가 언젠가 내게 그런 말을 했지. 메티스에게서 태어날 내 아이가 나를 쫓아내고 신들의 왕이 될 거라고….’


제우스는 가이아의 예언이 마음에 걸렸다.


‘어렵게 얻은 왕위를 자식에게 빼앗길 수 없어. 내 왕위를 노리고 있다면 자식이라도 내겐 원수야.’


제우스는 망설임 없이 메티스를 단숨에 삼켜 버렸다. 그리하여 왕위를 빼앗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달 뒤 제우스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얼마나 아픈지 견딜 수가 없었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불러 다급하게 말했다.


“내 머리 좀 도끼로 쪼개 주어라! 머릿속에 뭔가가 들어 있는 듯하니….”


프로메테우스는 도끼를 들어 제우스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머리를 쩍 가르고 갑옷으로 무장한 여신이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 이 여신이 바로 전쟁과 평화의 여신 아테나다. 제우스가 메티스를 삼킨 뒤에도 계속 자라, 어른의 모습으로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제우스는 메티스 다음으로 법과 이치의 여신인 테미스와 결혼했다. 그가 테미스 사이에 얻은 자식이 계절의 여신인 호라이 세 자매와 운명의 여신인 모이라이 세 자매다.


그 뒤 제우스는 자신의 누이인 헤라와 결혼했다. 헤라는 올림포스 최고의 여신으로 신성한 결혼과 가정을 책임지는 결혼의 여신이었다. 그는 전쟁의 신 아레스, 불과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청춘의 여신 헤베,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아 등을 낳았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으로 올림포스 궁전에서 헤라 왕비와 살았다.


헤라는 제우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제우스는 헤라의 눈을 피해 걸핏하면 바람을 피웠던 것이다.


하루는 헤라가 올림포스 궁전 정원을 산책하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졌다. 헤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낮에 왜 별안간 캄캄해졌지? 무슨 일이 생겼나?’


헤라는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먹구름이 뒤덮여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틀림없이 남편 짓이야. 무언가 부끄러운 일을 저질러 그것을 감추려고 먹구름을 일으킨 거야. 내 눈을 속일 수야 없지.’


헤라는 먹구름을 헤치고 제우스가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먹구름이 앞을 가려 제우스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양반이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어디 숨어서 바람을 피우고 있나?’


헤라는 제우스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 제우스가 갈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 때 제우스는 요정 이오와 강가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앗! 저기 헤라가 오고 있어요!”


이오가 먼저 헤라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제우스의 얼굴에 당혹의 빛이 흘렀다.


‘큰일 났네. 아름다운 요정과 같이 있다고 바가지를 긁힐 텐데.’ 


제우스는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다.


“이오야, 헤라에게 들키면 곤란하니까 잠시 암송아지로 있지 않겠니?”


“예, 알겠어요.”


이오가 승낙하자 제우스는 재빨리 이오를 암송아지로 변신시켰다.


헤라는 남편 곁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이 송아지는 어디서 났어요?”


“응, 그게 저….”


제우스는 당황하여 말을 더듬거렸다.


헤라는 암송아지를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절대로 내 눈을 속일 수야 없지. 저 송아지 속에 틀림없이 아름다운 요정이 숨어 있을걸.’


헤라는 속마음을 감추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송아지가 참 이쁘네요. 누구 것이죠? 혈통은요?”


제우스는 헤라가 계속 질문을 던지자 더듬더듬 말했다.


“응, 그게 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로운 품종이야. 주인은 없고….”


“어머, 그래요? 이 송아지를 저한테 선물로 주실래요?”


헤라의 갑작스런 부탁에 제우스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헤라의 눈을 피하려고 암송아지로 변신시킨 내 애인인데…. 주기 싫다고 하면 나를 의심하겠지?’


제우스는 마지못해 암송아지를 헤라에게 넘겨주었다.


헤라는 암송아지를 손아귀에 넣자 아르고스를 불렀다. 아르고스는 머리에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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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네가 이 암송아지를 맡아 돌보아라.


달아나지 않게 밤낮으로 감시해야 한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잠잘 때 두 개밖에 눈을 감지 않습니다. 제가 밤에도 아흔여덟 개의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무슨 수로 달아나겠습니까?”


아르고스의 말은 사실이었다. 암송아지로 변한 이오는 아르고스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기 때문에 도망칠 수가 없었다.


아르고스는 낮에는 암송아지를 풀밭에 데려가 마음껏 풀을 뜯어먹게 했다. 그리고 밤에는 목덜미를 끈으로 묶어 놓았다. 물론 아르고스는 암송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엄중히 감시했다.


이오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르고스에게 울면서 사정했다.


“아르고스님, 저를 풀어 주세요.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하지만 아르고스의 귀에는 이오의 말소리가 ‘음매, 음매!’ 하는 소리로만 들렸다.


“이놈의 송아지가 왜 자꾸 울지? 맞기 전에 뚝 그쳐!”


아르고스는 눈을 부릅뜨고 이오를 위협했다. 이오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오가 풀밭에 있는데 이오의 아버지와 언니들이 다가왔다.


“송아지가 참 아름답네. 귀엽고 깜찍하게 생겼어.”


아버지와 언니들은 감탄을 하며 송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이오는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다.


“아버지, 저 이오예요! 언니들, 오랜만이야!”


이오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아버지와 언니들의 귀에는 그 말소리가 여전히 ‘음매, 음매!’ 하는 소리로만 들릴 따름이었다.


아버지는 풀 한 다발을 이오 앞에 내밀었니다. 이오는 풀을 먹고 아버지의 손을 핥았다.


‘가족들이 나를 몰라보다니….’


이오는 눈물이 나왔다.


‘무슨 수를 쓰든지 내가 누구인지 알려야 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오는 발굽으로 모래 위에 ‘이오’라고 자기 이름을 썼다. 아버지는 그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네가 바로 이오니? 너를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아니? 네가 암송아지로 변하다니…. 차라리 너를 아주 잃는 편이 덜 고통스러웠을 텐데….”


아버지는 이오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을 했다.


아르고스가 다가와서 눈을 부라렸다.


“뭐 하는 짓이야? 남의 송아지를 붙잡고…. 썩 꺼져!”


아르고스는 이오의 아버지와 딸들을 멀리 쫓아 버렸다.


아르고스는 이오의 아버지와 딸들이 송아지를 훔쳐갈까 걱정되었다. 그래서 사방이 탁 트인 언덕 위에 앉아 이오를 감시했다.


제우스는 올림포스 궁전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이오가 고통을 겪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이오를 저대로 내버려 둘 수가 없어. 아르고스의 감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해.’


제우스는 헤르메스를 불러 명령했다.


“헤르메스야, 아르고스를 없애 버려라.”


“예, 알겠습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의 명을 받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헤르메스는 양치기로 변장을 하고 피리를 불며 양 떼를 몰고 갔다.


아르고스는 그 피리 소리를 듣고 헤르메스를 불러 세웠다.


“여보게, 젊은이. 피리 소리가 기가 막히게 좋군. 이 바위에 앉아 내게 피리 소리를 들려주지 않겠나? 여기는 양을 먹이기 좋은 곳이라네. 싱싱한 풀이 많거든. 게다가 시원한 그늘도 있다네.”


헤르메스는 아르고스 옆에 앉아 피리를 불었다. 그리고 아르고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사이 날이 저물어 버렸다.


헤르메스는 이야기를 하여 아르고스를 잠재우려고 했다. 하지만 아르고스는 아무리 졸려도 몇 개의 눈은 여전히 뜨고 있었다.


‘안 되겠다. 좀 더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어.’


헤르메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부는 피리가 생겨난 이야기였다.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아주 길게 이어졌다.


아르고스는 졸음을 참기 어려운지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모든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았다. 헤르메스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에잇!”


칼을 뽑아 들어 아르고스의 목을 베어 버렸다. 그러고는 이오를 풀어 주었다.


헤라는 이 사실을 알고 아르고스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내가 아끼는 아르고스가 죽었구나. 불쌍한 것!’


헤라는 아르고스의 머리에서 눈들을 빼내어 공작 꼬리에 달아 주었다. 이때부터 공작은 꼬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헤라는 이오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오를 괴롭히려고 등에 한 마리를 보냈다. 이오는 악착같이 쫓아오는 등에를 피해 바다를 헤엄쳐 달아났다. 이 바다는 이오의 이름을 붙여 ‘이오니아 해’가 되었다.


이오는 등에의 추적을 피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이집트 나일 강에 이르렀다.


제우스는 이오가 겪는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헤라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바람을 피우지 않겠소. 이오를 용서해 주시오.”


“좋아요. 당신 말을 믿겠어요.”


헤라는 제우스의 항복을 받아낸 뒤 이오에 대한 복수를 그만두었다.


제우스는 이오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렸다.


이오는 처음에 몸에서 털이 빠지고 뿔이 없어지더니 눈과 입이 작아졌다. 그 다음엔 발굽이 손과 발로 바뀌고 아름다운 요정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뱃속에는 이미 제우스의 아이가 있었다. 이오는 곧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뒷날 이집트 왕이 되는 에파포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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