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칼럼 남반구 최대의 시계박물관에서 발견한 시간을 담은 예술

2025.05.03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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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 최대의

시계박물관에서 발견한

시간을 담은 예술


글 박춘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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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북섬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항구 도시 팡가레이(Whangarei). 그 도시 한복판에 작은 박물관이 있다. ‘클랩함 국립시계박물관(Claphams National Clock Museum)’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시계 전시장이라기보다 사람과 시간, 기술과 열정이 조용히 숨 쉬는 시간의 미로다. 박물관에는 디지털도, 스마트폰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최신 기술보다 깊은 울림을 준다. 왜냐하면 이곳의 시계들은 단순히 시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에 들어서면, 마치 동화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단순한 수집 공간이 아니라 시간의 철학과 기술, 미학이 살아 있는 이야기의 공간이다.


무려 1000점 이상의 시계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는 이곳은 남반구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겉보기엔 그냥 오래된 앤티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 시계는 숨을 쉬고 있다. ‘째깍, 째깍’하는 소리는 세월을 뚫고 지금까지 살아온 시계의 심장박동이다. 앤티크 벽시계부터 기이한 장난감 시계, 태엽으로 작동되는 괴짜 발명품까지 시계의 세계가 이렇게 다양하고 재미있을 줄은 미처 몰랐던 사람들을 깨우는 순간이다.


그 시작은 한 사람의 순수한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이름은 아치볼드 클랩함(Archibald Clapham)! 1903년 영국에서 뉴질랜드로 이주한 그는 틈만 나면 시계를 수집했다. 그에게 시계는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이야기였고 기술이었으며, 예술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시계 수집광’이라고 불렀지만, 결국 그의 열정은 하나의 역사적 공간으로 이어졌다.



1961년 그의 방대한 수집품은 팡가레이시에 인계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박물관이 탄생하게 된다. 박물관이 자리한 곳은 타운 베이슨(Town Basin) 마리나 근처. 항구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만나는 시계 박물관은 그야말로 ‘시간’과 ‘여유’라는 두 개의 축을 완벽히 아우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과거의 시간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똑딱이고, 울리고, 회전하며 자기 존재를 주장한다. 그러하기에 누구나 아날로그의 향수에 젖을 수밖에 없다.


뻐꾸기시계의 째깍이는 소리, 태엽을 감는 손맛, 유리 너머로 보이는 진자추의 흔들림. 하지만 몇 걸음만 더 내딛다 보면 이곳에 전시된 시계들은 단순히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를 넘어 그 자체로 창의력과 상상력의 결정체임을 깨닫게 된다. 어떤 시계는 기계장치의 움직임이 예술처럼 느껴지고 또 어떤 시계는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독특하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의 시계들이 단순히 보기만 하는 전시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박물관은 시계 작동 원리와 역사에 대한 해설을 곁들여 관람객들에게 교육적 즐거움도 선사한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과 체험 요소들이 준비돼 있어 그냥 한 번 들러봤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 정도다. 시계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클랩함 시계박물관은 우리에게 아주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시계는 늘 우리를 재촉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시계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느끼고, 미래를 꿈꾸라”고 한다. 어쩌면 진짜 박물관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난 ‘여유’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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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볼드 클랩함. 그는 시계를 만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계를 사랑하고, 아끼고, 고치고, 수집하고, 수리했던 사람이었다. 1903년 그는 영국 요크셔를 떠나 뉴질랜드로 건너왔다, 젊은 시절부터 시계에 매혹된 그는 작은 시계부터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는 수리 도구가 들려 있었고, 마음속에는 시간이 흐르는 방식에 대한 경외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생 동안 400여 개의 시계를 모았고 그 시계들은 하나의 박물관으로 이어졌다. 그의 열정이 만든 이 박물관은 올해로 64주년을 맞았다. 그의 이름을 따 ‘클랩함 내셔널 클락 뮤지엄(Claphams National Clock Museum)’이라 불리는 이곳엔 시간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천천히, 꾸준하게 흐르고 있다. 시민들의 기부로 시계는 어느새 1400여개로 늘어났고, 전시장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수십, 수백년 전의 시간들이 고요히 울리고 있다.


독일 블랙 포리스트에서 제작된 나무 시계를 보자. 섬세한 조각된 외형, 놀라울 만큼 정교한 기계장치, 단순히 시간을 알리는 도구가 아니라 예술품이라 불릴 만하다. 하나의 시계가 품고 있는 시간의 결, 기술의 역사 그리고 장인의 손길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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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랩함은 시계를 만들지 않았지만, 그의 손을 거친 시계들은 지금도 멈추지 않고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이곳의 시계들은 똑같이 1초를 알리지만 똑같은 시간을 말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기술, 다른 나라에서 온 시계들이 자신만의 언어로 ‘시간’을 말한다. 이 시계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에서 벗어나 시간의 형태가 보존된 박물관이자, 한 수집가가 만들어낸 느림과 여유의 신상한 장소다.


눈동자가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를 볼 수 있다. 믿기 힘들겠지만 진짜다. 이 시계는 1930년대 독일 오스왈드(Oswald)에서 제작된 제품으로 시간이 되면 눈동자가 방향을 바꾼다. 한쪽 눈은 시간을, 다른 눈은 분을 가리키며마치 “지금 몇 시인지 궁금하지?”하고 눈짓을 보내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정적인 듯 보이는 시계에 이처럼 장난기 어린 요소를 담았다는 게 당시로서는 꽤 혁신적인 디자인이었다. 게다가 이 시계는 단순히 시각적 유머를 담은 것이 아니라 꽤정확하다. 관람객들이 “지금 몇 시야?”라고 물으면, 직원은 시계를 가리키며 “눈을 보세요”라고 말한다. 누가 시간을 이렇게 알려준단 말인가?


1850년대 제작된 모니서트리 시계(Monastery Clock)를 보자. 이름에서 보듯 수도원에서 사용되던 이 시계는 6시간 마다 한 번씩 벨을 울려 시간의 흐름을 알렸고, 정해진 시간마다 뻐꾸기가 나와 “뻐꾹” 소리를 낸다. 수도사들의 규칙적인 일과를 지키기 위한 이 장치는 단순한 알람 그 이상이었다. 그 속엔 시간에 대한 존엄, 규율 그리고 묵상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번엔 블랙 포리스트(Black Forest)의 조각 시계를 보자. 1866년부터 18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이 시계는 섬세한 나무 조각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시계라기보다는 예술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기계적 정밀함과 수공예적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그야말로 시간의 조각이다. 이 시계박물관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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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단지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다. 시계는 그 시대의 상상력이고 기술이고 예술이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시계, 벨을 울리는 수도원 시계, 조각이 살아 숨 쉬는 블랙 포리스트 시계. 이 모든 것이 한 공간에 모여 있다는 사실은 시간이 단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이야기되고 살아 있는 것임을 우리에게 증명해 준다.


1690년경 영국에서 제작된 찰스 그레톤(Charles Gretton)의 시계를 보자. 335년째 시간을 견뎌온 ‘할아버지 시계’다. 놀라운 것은 그 ‘시간의 깊이’만이 아니다. 당시 대부분의 시계는 제작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침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 시계는 다르다. 초침과 날짜 표시 기능까지 갖춘,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고급 시계다. 335년 전의 기술로 만들어진 이 정교한 시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박물관 안에서 시간을 정확히 알리고 있다. 한 번쯤 생각해본다. 이 시계가 지나온 세기 동안 얼마나 많은 세월의 전환을 목격했을까? 전쟁, 과학혁명, 산업화 그리고 디지털 시대까지…. 그 모든 걸 고요히 바라보며 그는 오직 ‘시간’을 지켰다.


시계박물관을 천천히 걷다 보면 소박하지만 뭔가 뭉클한 감정을 일으키는 시계 하나가 있다. 박물관 한쪽에 조용히 자리한 이 시계는 번쩍이는 태엽도, 정교한 톱니바퀴도 없다. 대신 물과 작은 구멍 하나가 전부다. 양초시계라는 이름의 이 장치는 물을 가득 채우면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물이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시간을 알려준다, 이 단순한 시계는 인류가 ‘시간’을 처음으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붙잡기 위해 고안했던 초기 발명품 중 하나다. 너무 원시적이라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지한 사유와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양초가 타들어가며 생명을 소진하듯, 이 시계의 물도 조용히 그러나 끊임없이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물의 줄어듦이라는 형태로 감각할 수 있도록 만든 이 장치는 마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고 조용히 속삭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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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너무도 많은 시간 측정 도구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손목시계, 벽시계 등. 하지만 정작 그 속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감각은 잊고 지낸다. 그저 눈에 띄는 숫자만 따라가며 바쁘게 하루를 보낼 뿐이다. 속도가 아닌 리듬으로, 효율이 아닌 여유로, 그 옛날 사람들이 시간을 바라보던 그 따뜻한 시선을 잠시나마 함께 느껴본다.


유리돔 안, 하나의 시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작고 둥근 금속 케이스 속 시간이 고요히 멈춘 듯하지만 그 안엔 오랜 세월의 울림이 살아 있다. 1713년 제작된 주머니시계다. 이 시계는 오늘날처럼 12시간이 아닌, 24시간이 표시되어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낯설지만 당시 사람들의 시간 개념이 지금과 달랐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다. 무엇보다이 주머니시계는 단지 시간만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한 시대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는 장신구였다.


시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주머니시계는 1510년경 독일의 시계 제작자 ‘피터 헨라인’에 의해 탄생했다. 그의 발명은 시계를 교회 탑이나 벽에서 ‘개인의 손안’으로 옮겨놓은 혁명적인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시간이란 개념은 우리 삶 속으로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게 시작된 ‘시계의 개인화’는 권력과 연결되기도 했다. 실제로 이 박물관에는 1903년까지 뉴질랜드 국회의사당에 걸려 있었던 시계도 전시돼 있다. 이 시계는 국회의장이 사용했 던 것으로 당시 정치의 중심에서 시간이 권위를 어떻게 보조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다.


또 하나 주목할 시계는 거친 파도를 헤치며 바다를 누비던 선박 시계들이다. 항해 중 정확한 시간은 생명을 지키는 정보였다. 광활한 바다 위, 나침반과 별자리에 의존하던 시대에 이 시계들은 바다의 리듬에 맞서 싸우며 선원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이번엔 뻐꾸기시계를 보자. 벽면을 가득 메운 이 시계들은 멀리서 보면 단순한 장식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하나하나 정교한 예술품이다. 특유의 목조 장식, 세밀한 조각 그리고 매시각 뻐꾸기 인형이 톡 튀어나와 지저귀는 정겨운 소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뻐꾸기시계를 스위스산으로 알고 있지만 그 진짜 본고장은 독일의 블랙 포리스트 지역이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전시실 한편엔 음악이 흐른다.


지금은 블루투스 스피커 하나로 쉽게 음악을 듣는 시대지만 1890년대의 선박에서는 뮤직박스가 음악을 책임졌다. 그중에서도 ‘폴리폰’이라는 이름의 뮤직박스는 당시 최고 인기 모델 중 하나였다. 독일 동부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제작된 이 뮤직박스는 코메트라는 브랜드명으로 뉴질랜드까지 건너왔고, 테임즈와 오클랜드 사이를 오가던 크루즈선에서 사용되었다.


당시 이 배는 전기선으로 약 3시간 15분 동안 운행했다. 승객들은 차와 샌드위치를 곁들여 먹으며 배 한쪽에서 흘러나오는 폴리폰의 클래식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은 마치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조용하고도 낭만적인 풍경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곳에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시계가 전시되어 있다. 알람 기능이 있는 시계인데 단순히 시간을 깨워주는 도구가 아니다. 시계 위에는 작은 주전자와 찻잔이 놓여 있고, 물을 넣고 찻잎을 준비한 뒤 알람을 맞춰둔다. 아침이 되면 자동으로 따뜻한 차 한 잔이 준비되는 ‘티메이커 시계’다.


19세기 말 뉴질랜드의 선박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었다. 음악이 있었고, 따뜻한 차가 있었으며 그 속에 시간을 함께 보내는 여유가 있었다. 시계가 시간을 알리고, 뮤직박스가 음악을 들려주고, 티메이커가 아침을 준비하던 시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한때 사람들의 일상에 작은 사치와도 같은 낭만을 선물해주었다.


지금,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 너머로 바라보는 이 시계들은 단지 오래된 기계가 아니라 우리에게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가’를 묻는 작고도 깊은 역사다. 시간을 측정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지만 그 정교함과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시계는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는 예술 작품이자 인류의 역사를 담은 기록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인간이 어떻게 이해하고 기록하고 시각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인류의 집념과 상상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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