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칼럼 버려진 것의 새로운 시작, 건설 폐기물에서 찾은 희망
버려진 것의 새로운 시작,
건설 폐기물에서 찾은 희망
글·사진 박춘태 박사
뉴질랜드의 햇살 가득한 어느 건설 현장. 반짝이는 철근과 목재, 바쁘게 오가는 작업자의 손길 속에서 우리는 평소 잘보지 못하는 또 하나의 풍경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건물의 기초가 다져지기도 전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는 건설 폐기물이다. 콘크리트 파편, 남은 목재, 사용되지 못한 자재들… 이 모든 것은 집 한 채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부산물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 ‘버려진 것들’은 정말 끝내 버려질 수밖에 없는 존재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기다리는 잠복된 자원일까?
뉴질랜드의 Waste & Recycling 보고서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한다. 뉴질랜드에서 배출되는 폐기물 중 건설 현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40~50%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 무게를 일반적인 주택 한 채로 환산하면 무려 약 4톤에 달한다. 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 밟고 서는 땅과 하늘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이며,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남겨질 부담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 현실은 또 다른 기회를 말해준다. 바로 ‘순환의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미트10(Mitre10)회사가 추진하는 ‘현장 지속가능성 추진사업(The initiative, Sustainability On-Site)’은 이러한 고민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 자재를 단순히 버리는 대신 분리·보관하고 재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건축업자와 작업자들이 보다 친환경적인 실천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전처럼 번거롭고 복잡한 절차가 아니기에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낭비 대신 순환’의 흐름 속에 동참할 수 있다.

폐기물을 재활용해 제작한 보드로 벽면을 장식한 모습(출처: 세이버보드(Saveboard) 홈페이지)
건축업계 관계자들은 이야기한다. “무슨 대단한 기적을 바라기보다는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못 박을 때 남은 목재 조각, 남은 콘크리트 자투리, 그것들을 모아 재활용하는 단순한 선택이 모여 거대한 변화를 만듭니다.” 바로 그 ‘작은 선택’이 순환 사회로 이동하는 첫걸음이다.
또 다른 뉴질랜드 기업 ‘세이버보드(Saveboard)’는 건설폐기물 순환의 희망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들은 건설 현장에서 버려진 일회용 커피컵과 플라스틱 포장재를 모아 전혀 새로운 건축용 자재인 보드(flooring product)로 재탄생시켰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최초의 사례로 꼽히며, 단순히 ‘재활용’을 넘어서 ‘새로운 가치 창출’의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콘크리트 또한 재활용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 한때 ‘절대 다시 쓸 수 없는 폐기물’로 여겨졌던 콘크리트는 이제 분쇄 과정을 거쳐 도로 기반 자재로 재활용되고 있다. 사용 후 사라진 듯 보였던 물질이 결국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나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인생에서 한 번의 실패가 끝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무너진 자리에서 또 다른 희망이 싹텄듯 폐기물도 새 길을 찾아 나선다.
폐기물을 재활용한 건축용 자재(출처: 세이버보드(Saveboard) 홈페이지)
건설 폐기물 문제는 단순히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도시와 건물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하게 하는지를 묻는 거울이기도 하다. 우리는 안락한 집과 멋진 빌딩을 원하면서도 그것을 짓고 난 뒤 남겨진 ‘보이지 않는 잔해들’에는 무심하다. 그러나 지구는 우리 무심함을 오래 받아주지 않는다.
기후변화 위기와 맞물리며 건설 산업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지속가능성을 외면하면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이 메시지를 뉴질랜드의 건축계는 이미 깊이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현장에서는 새로운 친환경 자재 개발뿐 아니라, 설계 단계에서부터 자원 낭비를 최소화하는 방식이 적극 도입되고 있다. 더 이상 쓰레기를 줄이는 작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가 된 셈이다.

종이를 재활용한 건축 자재로 석고보드나 합판을 대신해 사용 가능하다.
(출처: 세이버보드(Saveboard) 홈페이지)
한 작업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일 현장에서 버리는 것이 줄어드는 걸 보면 단순히 쓰레기가 줄었다는 게 아니라 미래가 조금 더 가벼워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말 속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거대한 기후 담론이나 법률보다 결국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작은 현장에서 실천되는 ‘작은 변화’라는 것이다. 그 변화가 모여 업계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나아가 지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버려진 것들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인간의 선택과 시선에 따라 그것은 쓰레기로 남아 매립지에 묻히거나 새로운 자원이 되어 다시 생명을 얻는다. 건설 폐기물의 재활용은 단순히 건축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새롭게 설정하는 과정이자 다음 세대를 향한 책임의 선언이다.
세이버보드 생산 공장(출처: 세이버보드(Saveboard) 유튜브 캡처)
뉴질랜드 건설업계가 지금 보여주는 작은 희망은 결국 전 세계가 걸어가야 할 큰 길의 일부다. 낭비의 문화를 넘어 순환의 사회, 지속의 문명으로 나아가는 길. 그 길 위에서 버려진 것들의 새로운 시작은 곧 우리 인간 자신의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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