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호 문화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

2023.12.24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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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 


글·사진 임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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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산 마르코 대성당 앞 종탑에 올라 촬영한 마르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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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광장에서 바라본 산 마르코 대성당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이고 세계적인 탕아 카사노바가 태어난 곳, 베네치아는 영어로 베니스라고도 불린다.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오래전부터 많은 찬사를 받아 왔던 도시이다. ‘물의 도시’ ‘이탈리아의 진주’ ‘아드리아 해의 여왕’ 등 최상의 수식어가 항상 뒤따랐다.


베네치아의 첫 인상은 아득한 옛날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특히 곤돌라를 타고 좁은 수로를 따라가며 고색창연한 건축물을 볼 때 더욱 그렇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아드리아 해의 북쪽 해변에 거주하던 말라보코인들이 북방의 후할크족을 피해 811년에 갯벌섬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된다.


베네치아는 실크로드로 다니는 해상무역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 경제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며 고유하고 독창적인 문화예술을 발전시켜왔다. 베네치아는 유리세공과 수공예의 장식예술 분야를 비롯해 건축,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세계 문화 애호가들의 교류가 활발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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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 앞 광장에는 많은 인파와 비둘기들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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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 앞 광장 앞 상점들



S자형태의 대운하 주위 117개의 작은 섬들을 400여 개의 다리를 놓아 연결시킨 수상도시로 곤돌라와 같은 작은 배 외에는 소운하로 들어갈 수가 없는 천연적인 요새이며 길이 다리이고 건물과 건물 사이의 운하들이 길이다. 교통수단은 오로지 섬과 섬을 이어주는 바다 위의 수상 버스와 좁은 수로를 다니는 곤돌라와 좁은 골목이나 다리 위를 다니는 미로와 같은 통로들뿐이다. 시내는 자전거조차 다니기 어려운 보행자의 낙원이다.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수상도시인 이곳의 건축물들은 건축의 위대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특히 산 마르코 대성당과 광장은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극찬하는 건축물의 하나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중세 이래 베네치아 공화국 총독의 예배당이었다. 오늘날 베네치아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곳은 산 마르코 광장일 것이다.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호신인 산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이 성당은 832년에 헌당된 이래 긴 역사 속에서 파괴와 재건 그리고 확장을 계속해 왔다. 12세기부터 17세기까지 무려 500여 년간 제작된 모자이크 성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세계에서 여기처럼 다양한 성화가 그려진 곳은 없다고 한다. 높은 천장의 열린 유리창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들어 모자이크 성화를 비출 땐 신비감이 들 정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고자했던 옛 사람들의 노력이 현란한 색채를 띠고 있는 산 마르코 대성당, 그 성당을 소중이 간직하고 있는 베네치아. 그러나 베네치아는 슬픈 운명에 처한 도시이다. 바다로 이어지는 석호 위에 세워진 도시이며 지반이 약해 도시 전체가 점점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산 마르코 광장까지 물이 올라온다고 하니 언젠가는 이 도시 전체가 물속에 잠겨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종탑은 높이가 99미터나 된다. 이 종탑에서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천체를 관찰한 것으로 유명하다.


광장 주변의 많은 상가들은 지금도 ‘베니스의 상인’과 같이 금은 세공, 귀금속과 액세서리 디자인 제품들로 여행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 최대의 건축대학이 있다. 학생 수가 1만여 명이 넘는다고 하니 건축에 대한 이들의 수준을 생각하게 해준다. 건축계획보다는 보존이나 증·개축 분야에 많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아도 그들의 문화의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옛것을 부수지 않고 잘 가꾸고 다듬어 유럽의 전통을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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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 앞 상점과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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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곤돌라와 건축물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과 달리 한국에서 출간된 오세영 작가의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을 통해 그 주인공이 조선인이라는 데 놀라웠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상인으로 유럽에서 실제로 상업에 종사했던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안토니오 코레아 그는 누구인가?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이탈리아에 잡혀간 후 세계 무역의 주역으로 우뚝 선 고려 상인의 후예로 조선의 개성상인이었다. 네덜란드의 화가 루벤스가 그린 한복을 입은 남자에서 비롯됐다.


400여 년 전 유럽 화가가 한복을 입은 사람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니, 그림 속의 남자는 누구이며 어떻게 유럽에 가게 되었을까. 작가는 “지금 로마에 가면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조선 청년을 만날 수 있다”로 끝을 맺는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의 <나의 세계 일주기>를 중심으로 안토니오 코레아와 관련이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모으면서 이 이야기의 뼈대를 구성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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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네치아 운하에서 곤돌라를 이용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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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영구히 변치 않는 돌로 만든 다리가 놓여 있다.



개성상인의 아들 유승업은 임진왜란 중 왜군에게 부모와 여동생을 잃고 숙부 집에 맡겨진다. 5년 후 왜군이 다시 침입하자 19세 청년 승업은 왜병에게 부모형제를  잃은 사람들로 편성된 분의복수군 일원으로 출전하지만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하여 포로로 잡히게 된다.


이후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며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던 중 일본에 귀화한 조선인 서여스님과 명나라 상인 담신민의 주선으로 일본에 와 있던 이탈리아 사람 카를레티를 소개받고 그의 노예 신분으로 일본을 떠나게 된다.


일단 명나라로 간 후 그곳에서 조선으로 갈 길을 모색해보려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결국 프란체스코 카를레티와 함께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승업은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이름을 갖고 베니스의 콤파니아 델 로치의 창고 서기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회계원이었던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배웠던 지식이 빛을 발해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안토니오는 델 로치 상사 회계부 서기로 발탁되고 이어 교황청 유리 입찰 건에서 발군의 활약을 하면서 정식 대리인으로 승진한다.


이후 그는 한국인 특유의 타고난 성실성과 불굴의 열정으로 유럽 상권을 누비며 뛰어난 업적을 쌓고 마침내 델 로치 상사 총지배인 자리에까지 오른다. 조선시대 이미 유럽에서 무역을 하던 조선인이 있었다니, 조선시대 유럽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니,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놀랍다.


유럽은 조선에서 얼마나 먼 거리였을까? 16세기에 유럽에 실재했던 ‘안토니오 코레아’ 유럽에서 한복을 입은 조선 상인의 이야기를 <베니스의 개성상인>이라는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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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네치아 건물과 건물 사이들은 돌로 만든 다리들이 연결되어 있다.



베네치아의 돌 다리

베네치아에는 산 마르코 광장과 리알토를 연결해 주는 유명한 리알토 다리가 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시의 중심지이고 주변에는 상가들이 꽉 들어차 있다. 처음에는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들어올리는 목조 다리였지만 16세기 초 화재로 불타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다리를 새로 놓을 때 베네치아 사람들은 격론

끝에 영구히 보존할 수 있도록 돌을 재료로 사용하기로 했다.


다리의 설계에 공개경쟁이 붙여졌다. 미켈란젤로, 팔라디오같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경쟁했지만 결국 무명의 ‘안토니오다 폰테’라는 건축가의 독창적인 설계안이 당선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 위에 한 개의 아치형의 석교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파리의 퐁네프 다리, 이탈리아의 리알토 다리뿐 아니라 유럽의 어느 도시의 다리를 가보아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베네치아에서의 사진촬영은 도보로 다니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산 마르코 광장에는 많은 비둘기 떼가 몰려와 사람들의 시야를 가릴 정도였다.


내 눈은 지칠 겨를도 없이 풍경을 잡아내고 손은 셔터를 눌러댔다. 하지만 좁은 길과 운하 사이에 서 있는 건물을 찍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칫하면 답답한 사진이 될 수 있음으로 운하를 왕래하는 곤돌라를 타기로 했다. 수상도시 베네치아가 넓은 시야에 들어와 한결 사진 찍기에 편했다. 곤돌라를 타고 건물과 건물 사이로 여러 곳을 다녔다. 필름을 갈아 끼우는 일이 귀찮을 정도였다.


곤돌라는 운하가 좁아서 다른 곤돌라와 부딪치기 쉬운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뱃사공들이 이상한 휘파람을 불었다. 이것은 안전하게 운행하려는 그들만의 교통신호인 셈이다. 특히 운하의 교차지점에서는 상대편의 곤돌라가 보이지 않아 부딪칠 위험이 많았지만 이 신호 체계로 인해 편안하게 운행했다.


베네치아는 예술가들에 의해 이처럼 아름다운 수상 도시로 만들어 졌고 건축가들에 의해 다시 기능적인 도시로 꾸며졌다고 표현한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에서 다시 가장 이상적인 도시인 아모르토를 베네치아와 비교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였다. 셰익스피어의 원작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베네치아는 아름다운 삶이 있는 촉촉한 매력의 도시로 표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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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정박 중인 곤돌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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