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호 문화 오이디푸스와 그 가족의 비극(上)

2025.06.06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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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와 그 가족의 비극(上)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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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 왕 라이오스에는 자식이 없었다. 이오카스테 왕비와 결혼한 지 한참 되었지만 자식을 낳지 못했다.


‘자식이 있어야 내 뒤를 이을 텐데. 나는 언제나 자식을 얻을 수 있을까?’


라이오스 왕은 이런 생각을 하다가 델포이 신전에 사신을 보내 신탁을 물었다. 그런데 사신이 가져온 신탁의 내용은 참으로 끔찍한 것이었다.


‘왕비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자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라이오스 왕은 너무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긴단 말인가?’


라이오스 왕은 불행한 운명을 피해 가기로 했다. 그래서 아들을 낳지 않기로 결심하고 왕비를 멀리했다.


그러나 왕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생기지 않던 자식이 왕비의 뱃속에서 자라기 시작했고 달을 채워 세상에 나온 것이다.


왕과 왕비는 아들을 낳았어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신탁의 예언 때문에 공포에 휩싸였다.


‘불행한 운명을 피해 가려면 이 아이를 죽여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왕은 자신의 양떼를 돌보는 늙은 양치기를 불러 아기를 넘겨주며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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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기를 깊은 산속에 내다버려라.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어야 한다.”


라이오스 왕은 아기가 맹수들에게 잡아먹히도록 맹수들에 던져 주라고 명령했다.


늙은 양치기는 아기를 받아 안고 궁전에서 나왔다. 아기는 양치기와 눈이 마주치자 방실방실 웃었다.


‘이렇게 귀여운 왕자님을 맹수들의 밥이 되게 할 수 없어.’


양치기는 아기를 깊은 산속으로 버리러 가지 않고 친구 양치기 집으로 데려갔다. 친구 양치기는 코린트 왕의 양떼를 돌보고 있었다.


“자네 내 부탁 좀 들어 주겠나? 이 아기는 우리나라 임금님의 아들이야. 어찌된 일인지 임금님은 내게 왕자님을 맹수들이 우글거리는 깊은 산속에 내다버리라고 하는 거야. 이처럼 귀여운 왕자님을 죽일 수야 없지. 자네가 왕자님을 맡아서 길러 주게.”


“오, 그런가? 마침 잘 됐네. 우리 코린트 임금님도 자식이 없거든. 임금님에게 이 아기를 양자로 들이라고 드리면 몹시 기뻐하실 거야.”


친구 양치기는 아기를 받아 안고 아기 이름을 ‘오이디푸스’라고 지었다. 그리고 아기를 코린트 왕에게 바쳤다.


코린트 왕과 왕비는 크게 기뻐했다.


“우리한테 자식이 없어 근심이 많았는데, 신이 우리에게 선물을 보내 주셨구려.”


“정말 그래요. 우리가 이 아이를 잘 키우도록 해요.”


코린트 왕과 왕비는 오이디푸스를 양자로 삼아 정성을 다해 길렀다.


오이디푸스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잘 자랐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는 자신에게 진짜 부모가 있고 자신이 양자로 들여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루는 사냥을 떠났다가 델포이 신전 앞을 지나게 되었다. 오이디푸스는 문득 자신의 장래가 궁금해져서 신전으로 들어가 신탁을 청했다.


“아폴론 신이시여,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삽니까? 제 앞날에 대해 알려 주십시오.”


아폴론이 대답했다.


“참으로 불행한 삶을 살겠구나.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오이디푸스는 까무러칠 듯이 놀랐다.


‘내, 내가 어떻게 나를 낳아 주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결코 그, 그럴 수는 없어.’


코린트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알고 있는 오이디푸스는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그는 저주받은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낯선 땅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이디푸스는 테베로 향했는데 길에서 마차 한 대를 보았다. 마차에는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이 타고 있었다.


마차를 모는 마부가 오이디푸스를 향해 소리쳤다.


“웬 놈이 길을 가로막느냐? 비켜라! 높은 분의 행차시다.”


오이디푸스는 마부의 무례함에 화가 치밀었다.


“마부 주제에 내게 욕을 해? 용서할 수 없다!”


오이디푸스는 마차에서 마부를 끌어내렸다.


그러자 마차에 타고 있던 라이오스 왕이 화가 나서 소리쳤다.


“어린 것이 길을 가로막고 웬 행패냐? 높은 분의 행차라 하지 않느냐? 어서 사과하고 길을 비켜라!”


“나한테 사과하고 길을 비키라고? 내게 높은 분은 아버지와 신들밖에 없다. 내가 지나갈 테니 너희들이 길을 비켜라!”


“어린놈이 정말….”


두 사람은 동시에 칼을 빼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더 검술이 뛰어나서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뿐만 아니라 마부, 시종들까지 모조리 죽여 버렸다. 그리하여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다는 신탁의 첫 번째 예언이 이루어졌다.


오이디푸스는 걸음을 계속 옮겨 테베의 어느 산 중턱에 이르렀다.


당시에 테베에는 스핑크스 때문에 사람들이 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인간 여자의 얼굴에 사자의 몸, 독수리의 날개, 뱀의 꼬리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런데 이 괴물은 산중턱에 있는 큰 바위에 앉아 있다가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려운 수수께끼를 냈다.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잡아먹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수수께끼를 푼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스핑크스는 오이디푸스가 산 중턱에 이르렀을 때 그를 불러 세웠다.


“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말해라. 틀린 답을 말하면 너를 잡아먹을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걸음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스핑크스가 큰 바위에 걸터앉아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내었다.


“아침에는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오이디푸스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정답은 사람이다. 사람은 아기 때는 네 발로 기다가 커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에 의지해 세 발로 걷는다.”


“헉! 맞았다!”


스핑크스는 자신의 문제가 풀린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워, 바위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이디푸스가 테베의 성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은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그가 스핑크스를 물리쳤기 때문이다.


“오오, 당신은 지혜만으로 우리 테베를 구해냈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우리들의 진정한 임금입니다.”


때마침 테베는 라이오스 왕의 죽음으로 임금 자리가 비어 있었다. 테베의 백성들은 오이디푸스를 임금으로 모셨고 친어머니인 이오카스테가 왕비가 되었다. 그리하여 아들이 자라서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의 두 번째 예언이 이루어졌다.


오이디푸스 왕은 왕비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낳고 행복하게 살았다. 자식들은 건강하게 자랐으며 궁전에서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가 다스리는 동안 테베는 강한 나라가 되었으며 백성들은 아무 걱정 없이 잘살았다.


오이디푸스 왕은 이제 자신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자식들이 모두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나라에 큰 위기가 닥쳤다. 전염병이 퍼져 많은 백성들이 죽어 나갔던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어떻게 하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지 델포이 신전에 사신을 보내 신탁을 물었다. 사신이 가져온 신탁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사람을 찾아내어 테베에서 쫓아내라. 그러면 전염병이 금세 물러갈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장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사람은 누구인지 신의 뜻을 물어 알아내라고 명령했다.


테이레시아스가 잠시 물러갔다가 다시 돌아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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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잘라베르가 그린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 1842>



“왕이시여, 저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라이오스 왕을 죽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아내인 왕비는 당신의 친어머니이기도 합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느냐? 나는 테베의 왕자가 아니라 코린트의 왕자였다.”


오이디푸스 왕은 코린트로 사람을 보내 테이레시아스의 말이 맞는지 알아오게 했다. 코린트 왕과 왕비는 오이디푸스 왕이 친아들이 아니라 양자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했다.


‘이럴 수가…. 내가 길가에서 마주쳐 칼로 찔러 죽인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고 나와 결혼한 왕비가 나의 어머니였다니…. 비극의 운명이 나를 사로잡아 내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구나.’


이오카스테 왕비는 충격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왕은 제 눈을 찔러 장님이 된 뒤 큰딸인 안티고네와 함께 테베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며 방랑길에 나섰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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