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호 문화 K컬처 진화의 신호탄이 된 <케데헌>
K컬처 진화의 신호탄이 된 <케데헌>
케이팝 데몬 헌터스
글 백은영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 2025)>의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지난 6월 20일 공개된 직후 5주 만에 누적 시청 수도 1억 회를 돌파하며 <케데헌>은 지금까지 넷플릭스가 제작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중 하나가 됐다. 뿐만 아니다.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은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다.
한국의 전통문화에서 현대문화에 이르기까지 K-컬처에 대한 이해와 고증은 물론, K팝(K-POP) 특유의 감성이 담긴 OST까지 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는 평이다. 당연히 K팝 팬덤(Fandom)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단순히 K팝을 소재로 한 오락물로 소비되기보다는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치밀한 고증, K팝 감성의 진정성 있는 구현, 팬덤 문화를 세계관으로 통합한 창의적 서사 구조가 지금의 <케데헌>을 탄생시킨 것이다.
낙산공원 서울성곽길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악귀를 소탕하기 전 라면을 먹고 있는 헌트릭스의 모습
영화의 심장이 된 OST
<케데헌>은 공개 단 하루 만에 한국, 미국, 영국, 일본 등 18개국에서 넷플릭스 영화 부문 1위를 기록, 이후 총 41개국에서 1위에 오르며 글로벌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 속 보이그룹인 사자보이즈의 음원은 미국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도 TOP1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한이 작품은 K팝이라는 장르에 액션, 판타지, 퇴마 서사를 접목하며 참신한 세계관을 완성했다. 특히 두터운 글로벌 K팝 팬덤의 힘을 극대화한 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지난 7월 25일(현지시간) 공개된 최신 차트에 따르면 <케데헌> OST가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톱100’에서 상승세를 보였다. 영화 속 인기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Golden)>이 4위로 5주 연속 싱글차트에 진입했으며, 극중 헌트릭스와 경쟁하는 보이그룹 사자보이즈의 <유어 아이돌(Your Idol)>은 14위에 올랐다. 같은 달 22일자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는 OST 8곡이 동시 진입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가상의 아이돌 그룹이 실제 K팝 차트를 장악하는 이례적 현상까지 연출된 것이다.
이러한 <케데헌> 성공 비결에 대해 BBC는 “무엇보다 이 영화의 성공 비결은 바로 음악이다. K팝은 영화의 심장이고,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초자연적 무기가 돼 감동의 순간을 더욱 증폭시킨다”고 말했다.
유럽의 한국 문화 전문가 라샤이 벤 살미는 BBC에 “다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음악을 상업적인 요소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음악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풍성하게 만들었다”라고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극중 서사를 이끌어가는 핵심 도구이면서 K팝 특유의 감성을 잘 담아낸 OST는 영화가 끝난 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묘한 매력까지 갖췄다. 왜, 극중에서도 악귀인 사자보이즈의 노래를 듣는 헌트릭스의 어깨도 들썩이지 않았는가. 그만큼 중독성도 강한 노래다.


전통과 현대의 융합… 한국 문화의 세계화
<케데헌>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작품 전반에 녹아든 한국전통문화다. 남산타워, 기와집, <작호도> 속 호랑이, 무속신앙 등 디테일한 문화 재현이 돋보이며 현대 K팝 산업과 전통적 오컬트 세계관의 절묘한 조화가 차별화된 매력을 선사한다.
‘혼문(魂門)’이라는 설정을 통해 K팝 팬덤의 열기와 영적인 힘이 연결돼 악귀를 봉인하는 에너지로 작용하는 세계관은 창의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영화 전반부 콘서트장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라면과 김밥을 거의 흡입하다시피 먹는 모습, 국밥을 먹기 전 테이블 위에 화장지를 깔고 젓가락을 올려두는 모습 등 디테일한 부분에서 ‘한국’ ‘한국인’ 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을 적재적소에 잘 반영시킨 것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데뷔를 앞둔 악귀 사자보이즈가 저승사자를 연상케 하는 옷을 입고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 위트와 재미에 웃음이 절로 터져 나왔다. 한국 전통문화와 전설 등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나올 수 없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낙산공원 서울성곽길
케데헌 명소·박물관 호랑이도 인기
영화 속에 등장한 서울의 풍경이 전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며 북촌 한옥마을과 서울 명동거리 등 이른바 ‘케데헌 명소’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울 관광 코스도 생겨났다.
이와 관련, 오세훈 서울시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주행했는데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운 작품”이라며 깊은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작품에 등장한 서울의 주요 명소와 장면마다 자신이 2006년부터 추진해온 도시 정책과 문화 인프라가 녹아 있다는 점에서 <케데헌>을 통해 서울의 매력과 경쟁력이 세계에 제대로 전달됐다는 자부심이 읽힌다.
<케데헌>에서 헌트릭스 루미와 사자보이즈 진우가 만난밤의 성곽길은 종로구 낙산공원 성곽길이다. 원래 이곳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으로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지만, 오 시장은 2006년 낙산의 역사성 복원과 산책로 조성사업을 추진해 2008년 낙산을 오르는 서울성곽길을 모두 복원했다. 2022년엔 낙산공원 성곽길 재정비도 끝냈으니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을 봤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같다. 사자보이즈가 ‘Your Idol’ 공연을 펼친 남산은 과거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는 명소가 됐다.

호랑이와 까치(虎鵲圖)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케데헌> 열풍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기획한 호랑이 기념품도 주목받고 있다. <케데헌>에는 <작호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까치와 호랑이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여기에 나오는 호랑이 캐릭터인 ‘더피’가 <작호도> 호랑이와 비슷해 상품으로 만들어놓았던 호랑이 배지와 소품이 금방 품절되기도 했다.
최근 서울관광재단이 실내에서 청각과 안구를 정화시킬만한 여행지로 국립중앙박물관을 꼽은 것도 <케데헌>의 영향이 크다. 재단은 “<케데헌>의 K-헤리티지 문양이 이곳에 있어서 붐비는데, 막상 와보면 더 많은 매력들이 있어 지구촌에 입소문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있다”고 선정 배경을 전했다.
글로벌 중심이 된 K콘텐츠
<케데헌>은 한국계 미국인 감독 매기 강(Maggie Kang)의 오랜 구상에서 시작됐다. <더 크루즈 패밀리>의 공동 연출자이기도 한 그는 미국 내 아시아계 여성 창작자의 입장에서 K팝과 한국문화가 가진 감정과 에너지를 ‘글로벌 상상력’으로 구현하고자 했다고 밝힌다.
크리스 아펠한스(Chris Appelhans)와 공동 연출을 맡고 해나 맥메찬, 다냐 히메네스가 각본을 함께 썼으며, 성우진에는 김윤진, 이병헌, 대니얼 대 킴, 켄 정, 아든 조, 안효섭, 유지영 등 한·미 양국의 스타들이 대거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매기 강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한국 콘텐츠가 이제 주류 시장을 견인할 수 있는 정서와 감각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물”이라며 “우리는 더 이상 서구의 시선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글로벌 대중문화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단지 ‘잘 만든 애니메이션’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전통과 현대, 현실과 판타지, 음악과 스토리, 팬덤과 정체성이라는 복합적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하이브리드 문화 콘텐츠다.
“이 정도면 실존 아이돌보다 더 강한 존재감”이라는 농담섞인 찬사처럼 가상의 K팝 아이돌이 전 세계 팬덤을 움직이고, 실제 차트를 석권하는 현실을 뚫은 상상력의 결과는 K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한다.
아이돌 팬덤과 애니메이션 팬 모두에게 새로운 ‘덕질’의 장을 열어준 <케데헌>은 한국 문화 콘텐츠가 어떻게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로 향후 한국형 애니메이션과 K팝 서사의 글로벌 확장에도 중요한 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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