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문화 고려의 목판인쇄술과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 Ⅲ
고려의 목판인쇄술과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 Ⅲ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해인사 대장경 판고
대장경 판고는 통풍이 잘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설
계돼 있어, 과학적인 자연 환기 시스템을 갖춘 이상적
인 판목 보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
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8만 1258판으로 1516종의
문헌 6815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판각 기술이 가장 뛰어난 최고(最古)의 목판이다.
고종 18(1231)년에 몽골의 1차 침입이 시작된 이후 고종 46(1259)년 고려와 몽골 사이에 강화(講和)가 이루어질 때까지 거의 30년에 걸친 몽골의 침입은 고려 사회에 큰 피해를 주었다. 고려가 몽골의 1차 침입 직후 최씨정권이 강화도로 천도를 단행하여 몽골에 대한 항쟁 지속하였다.
고려 정부가 몽고군을 피해 강화도로 이전하였으나 몽고군을 조선 땅에서 쫓아낼 가망은 희박해졌다. 고려 정부는 현종 때 거란군을 퇴치를 불력(佛力)에 호소하기 위해 초조대장경을 각판할 때와 같이 이번에도 대장경을 다시 조판하기로 하였다.
고려 고종 23(1236)년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하고 그해부터 각수(刻手)와 필수(筆手) 등 인력과 목재 수집 등에 대한 준비기간 2년과 제작 기간 14년에 걸쳐 대장경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고종 38(1251)년에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완성하였다.
특히 해인사 장경각에 보존된 재조대장경판에는 경판 끝에 각판 연도에 해당하는 간지(干支)가 새겨져 있어서 실제 제작한 연도를 알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연호를 쓰지 않고 ‘고려국(高麗國)’ 이름과 또 황제가 쓸 수 있는 용어인 봉칙(奉勅)이란 글자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몽고와의 전쟁 시기에 대장경 조성을 통해 고려가 자주 독립국이라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부르는 <재조대장경>은 현재 합천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8만 1258판으로 1516종의 문헌 6815권이 수록되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판각 기술이 가장 뛰어난 최고(最古)의 목판이다.
팔만대장경판
<팔만대장경>
대장경 판고 외부
<팔만대장경>이 세계문화유산이 안 된 것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대상은 유적에만 한정되기 때문에 고려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고로 등재한 것이다.
<팔만대장경> 판목들은 해인사의 판고(板庫) 2동에 보존되어있다. 판고는 통풍이 잘되고 습기가 차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판고 앞쪽에는 통풍용 창문을 아래쪽에 내고 뒤쪽은 위에 통풍용 창문을 내었다. 판목들은 옆으로 차곡차곡 끼워 넣으면 일정하게 사이가 떠서 통풍 잘되도록 짜인 판가(板架)에 잘 배열되어 꽂혀 있다.
대장경 판고를 관통하는 공기는 아래 통풍창으로 들어와 넓게 퍼져서 판가 사이에 뚫린 무수한 틈새를 통해서 위로 올라가 뒤쪽 위의 통풍창으로 흘러나가게 되어 있어 아주 과학적인 자연환기 시스템을 갖춘 이상적인 판목 보존 건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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