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호 문화 다문화 음식열전Ⅶ 외국에서 전래된 식재료와 고추장
다문화 음식열전Ⅶ
외국에서 전래된 식재료와 고추장
글 김성회 (사)한국다문화센터 대표
고춧가루를 만들기 위해 햇살에 고추를 건조한다.
그럼에도 일본의 <대화본초>나 <물류칭호> 등에서 고추가 한반도에서 전해졌다고 기록된 것은 고추의 특성 때문으로 보인다. 즉 고추는 번식력이 매우 강한 식물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품종으로 개량된다. 또 개량된 품종들이 서로 교배하여 다른 품종으로 진화하는 특성이 있다.따라서 한반도에 전해진 후에 다양한 품종이 만들어졌고, 그에 따라 청양고추(청송, 양양지역 고추) 등 지역에 따른 특이 품종들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인지 한반도의 고추 품종은 동남아시아나 멕시코 등지의 고추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매운 정도는 약하지만 당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고추는 위 등 인체에 흡착되어 강도가 오래 지속된다. 동남아나 중국의 고추가 입은 얼얼하지만 속이 쓰리지 않고, 우리의 고추는 입도 매울 뿐 아니라 속까지 쓰
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또 고추는 남미 등 더운 지방에서는 여러해살이 식물이지만, 겨울이 추운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살이 식물이 되었다. 지금도 멕시코나 동남아 등지의 고추는 ‘고추나무’로 불리며, 해마다 열매처럼 고추가 열리고 따는 식으로 재배된다. 초기에 고추는 ‘고초(苦草)’라고 불릴 정도로 외면받던 식재료였다. 소주에 고추를 타먹다가 죽었다는 기록이 나올 정도로 ‘독초’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애용하는 식품이 되었다. 고추에 들어있는 ‘캡사이신’이 젖산균의 발육을 돕고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기능하기 때문이다. 또 비린내나 음식의 ‘잔 맛’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고추장에 각종 식재료를 넣어 고추장 장아찌를 만든다.
여기에 우리나라 고추의 높은 당도는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좋은 재료였다. 또 고추의 붉은 기운이 ‘잡귀신’을 물리친다는 관념까지 가미되어 간장 등을 담글 때도 숯과 고추를 띄우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집 대문에 고추와 소나무 가지, 숯을 걸어놓는 풍습까지 생겨났다.
그런 이유로 고추는 우리 음식에서 빼놓으면 안 되는 중요 식재료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김치는 물론, 국을 끓이거나 음식을 만들어먹을 때 고춧가루는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 되었다. 여기에 우리 특유의 창조성이 가미되었다. 우리 전통의 장(간장, 된장)의 하나로 고추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추장이 만들어진 것은 1700년대 후반쯤으로 알려져 있다. 1800년대 초에 정리된 <규합총서> 등의 책에는 순창과 천안의 고추장이 지역의 명물로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1765년에 지어진 <증보 산림경제>에는 “콩으로 만든 말장 가루 한말에 고춧가루 세 홉, 찹쌀가루 한 되를 재래식 간장(청장)에 침장한 뒤 햇볕에 숙성시킨다”며 고추장 담그는 방법이 기재되어 있다.
이렇게 담근 고추장은 재료에 따라 ‘찹쌀고추장’ ‘밀가루고추장’ ‘보리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등이 있으며, 음식을 먹을 때 초고추장, 쌈장 등으로 변형되어 각종 식재료를 찍어 먹는 ‘소스’가 되었다.
고추장은 각종 찌개나 탕 등을 만들 때 사용하고 때로는 떡볶이, 닭갈비, 돼지고기 등을 볶을 때 사용한다.
또 무, 마늘 등을 고추장에 담가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 수단이 되었고, 비빔밥이나 비빔국수 등을 만드는 ‘소스’가 되었다. 그리고 고추장과는 다르지만 발효되지 않은 고춧가루 버무림(다대기)을 만들어 음식에 넣어 먹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된장’ ‘간장’과 함께 ‘고추장’은 가장 기본적인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해외여행을 갈 때 반드시 고추장을 챙겨갈 정도로 우리 입맛을 장악했다. 조선 초에 전해진 배추, 100여 년밖에 안 된 결구배추로 만들어진 김치가 우리의 식탁을 장악한 것처럼, 고추도 국내에 들어온 지 400~500년 만에 식탁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고추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만든 최고의 발명식품이 아닐 수 없다. 즉 외래 식물인 고추의 특성과 우리의 전통인 발효식품 만들기(장 담그기)가 결합되어 ‘고추장’이라는 아주 훌륭한 다문화 융합식품이 탄생된 것이다. 그리고 고추장을 가지고 만드는 ‘떡볶이’ 등의 음식이 세계인의 길거리 음식으로 주목받고 있
다. 또한 각종 비빔밥과 비빔국수의 ‘소스’로 활용되고 김치찌개나 닭볶음탕을 끓일 때 사용되고 있다.
고추와 배추 외에도 우리 식탁을 장악한 외래 식재료는 대단히 많다. 그중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수박은 5000년 전부터 이집트에서 재배되기 시작해서 고려 말에 전해졌다. 즉 소주와 수박은 몽골이 중동을 지배하면서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수박은 처음엔 ‘서과’라고 불렸다. 즉 서쪽 과일이라는 뜻이다. 최초로 재배한 사람은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이었다. 원나라 황실에서 보내준 수박씨앗을 기철이 재배하여 대신들에게 나누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것이 조선시대에 들어와 궁궐과 양반가에서 재배된 것이다.
왼쪽부터) 남미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된 감자. 중남미 더운 지방에서 재배된 고구마. 중남미 국가의 주요 식량자원이었던 옥수
수박과 함께 여름에 많이 먹는 토마토는 원산지가 아메리카이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으로 16세기경 스페인과 이탈리아에 전해졌다가 17세기경에 일본을 거쳐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토마토를 ‘남만시’로 기록하고 있다.
그 외 구황작물로 감자와 고구마가 있다. 감자와 고구마 역시 원산지는 아메리카로 중남미 지역에서 재배했다. 감자는 안데스산맥 등 고산지 또는 온대지방에서 재배했기에 북쪽이나 산간지방에서 재배되었다. 그래서 강원도 지역에서 많이 재배되어 강원도 사람들을 ‘감자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고구마는 중남미 더운 지방에서 재배되었으며 감자보다 고온에서 잘 자란다. 고구마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서 생산되다가 필리핀과 중국 남부지역으로 전해지고, 이것이 일본을 거쳐 한반도로 전해졌다. 감자와 고구마는 전분을 이용할 수 있어 국수로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다. 감자국수라든지, 고구마를 사용한 쫄면이 그것이다.
감자와 고구마 외에 친숙한 것이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중남미 인디언들이 주식으로 재배했던 식품이다. 인디언의 역사를 보면 옥수수 재배량이 많을 때는 인구가 늘었지만, 옥수수 재배량이 줄 때는 인구가 감소했을 정도로 옥수수는 중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이렇게 외국에서 전해진 식재료는 때로는 구황작물로, 때로는 간식거리로 우리 식탁을 풍부하게 해왔다. 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은 식량이 모자랄 때 우리의 배를 채워주고, 토마토와 수박 등의 과일은 식사 후 먹는 간식이나 제철 과일의 하나로 애용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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