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문화 다문화 음식열전 김치
다문화 음식열전
김치
글 김성회 (사)한국다문화센터 대표
지난 호에서 다룬 춤과 음악 외에 인류의 생활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융합하고 발전해온 분야가 있다. 바로 ‘음식’이다. 음식문화는 식생활이 그렇듯이 특정 환경과 지역에 맞는 농산물로 지어졌기 때문에 지역의 생활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
음식문화를 크게 나누면 이동하기 좋고 간편한 유목민 전통의 음식이 있고, 한곳에서 정착한 농경민 음식이 있다. 오늘날 패스트푸드(fast food) 음식은 대체로 유목민 음식에서 변화된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만두라든지, 햄버거 등은 이동하고 섭취하기 간편한 음식으로 유목민들의 음식에서 변형된 것들이다.
음식 대부분은 이곳저곳에서 들어온 각종 재료가 함께 어울려 맛을 내고 있기에 대단히 융합적인 문화의 하나이다. 우리가 전통음식의 첫손가락으로 꼽는 김치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김치야말로 한국 고유의 전통음식이라고 주장할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에 김치는 다양한 재료들이 융합된 다문화적 음식의 전형이다.
한국의 김치는 역사가 깊은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한국 김치의 종류는 100여 가지나 된다. 한국 음식의 종류가 총 600여 가지라고 하는데, 그중 1/6 정도가 김치인 셈이다. 그 정도로 한국인과 김치는 떼어놓고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주로 소금에 절인 것을 김치라고 하는데 김치에 사용되는 재료는 30여 가지가 된다. 배추·오이·무·열무·갓·미나리·파·부추·고들빼기 등 아주 다양하다. 그중 배추김치만 하더라도 일반 배추김치를 비롯해 백김치·보쌈김치·양배추김치·씨도리김치·얼갈이김치가 있다.
무김치로는 깍두기·총각김치·숙김치·서거리김치·채김치·비늘김치·석류김치·무청김치·나박김치·무말랭이김치·무오가리김치·비지미가 있고 열무로 만든 김치로는 열무김치와 열무물김치, 오이로 만든 김치는 오이소박이·오이송송이·오이깍두기·오이지 등이, 파로 만든 김치는 쪽파김치·실파김치가 있다.
그 외에 깻잎김치·호박김치·미나리김치·시금치김치·콩나물김치·고들빼기김치·부추김치·고수김치·풋마늘김치·도라지김치·가지김치·고춧잎김치·고구마줄기김치·박김치·호박지가 있고, 해조류나 어패류로 만든 김치에는 파래김치·미역김치·청각김치·톳김치·굴김치·대구김치·북어김치·오징어김치·전복김치가, 육류로 만든 김치에는 닭김치·꿩김치·제육김치가 있다.
이외에 담는 방법에 따른 김치의 종류로는 통김치·물김치·깍두기·소박이·보김치·섞박지가 있으며, 계절에 따른 김치로 동치미 등이 있다. 여기에 지역별로 다양한 재료들이 가미되어 수도 없이 많은 김치들이 존재한다. 또 궁중에서 먹던 김치와 사찰에서 먹던 김치가 따로 있으며, 이가 없는 노인들을 위한 김치와 제사상에 올리는 김치가 따로 존재한다.
이처럼 김치야말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김치는 어떻게 생겨났나? ‘김치’의 역사를 보자.
우리가 잘 아는 통배추 김치의 역사는 100여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통배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18세기 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통배추를 만들기 위해 배추가 자랄 때 지푸라기로 묶어주었듯이 실제 결구배추(통배추)의 역사는 오래되지 않는다.
즉 배추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이며, 결구배추(통배추)가 재배된 것은 19세기 말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 김장담그기 행사 등에 기초재료로 쓰이는 절임통 배추의 역사는 100년 남짓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추김치의 역사도 기껏해야 500~600년 정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고추가 조선에 전해진 것도 임진왜란 이후이기 때문에 지금 형태의 배추김치는 500년을 넘지 않는다.
물론 채소를 소금에 절여먹는 것은 매우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시경>에 의하면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채소(오이)를 소금에 절여 먹었으며, 그 음식을 ‘저’라고 표기한 기록이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통일신라 신문왕 때 신부를 맞이하면서 신부 댁에 보내는 폐백 물품으로 소금에 절인 김치(아마도 무를 절여 보낸 듯)가 등장하고 있다. 또한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도 고구려 사람들의 풍속을 전하면서 “소금에 절인 채소를 즐겨 먹는다”는 기록이 나타나 있다.
따라서 소금에 절인 채소를 통틀어 ‘김치’라고 한다면, 그 역사는 기원전 3000년경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된 고구려의 기록과 <삼국사기>에 나타난 통일신라 신문왕의 기록을 볼 때 중국과 한국, 일본 등에서는 채소를 소금에 절여 먹는 풍습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것은 쌀·콩·밀가루 등의 알곡은 저장하기 편리한 반면, 채소는 오랫동안 저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곡은 오랫동안 저장이 가능해 긴 겨울에도 저장해놓고 먹을 수 있었지만, 채소류는 저장이 불가능해서 저장용 음식으로 소금에 절인 채소를 사용한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동양(중국·한국·일본)에는 배추가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로 무·가지·오이·부추·갓 등이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민간에서 주로 먹는 5가지 채소에 대한 기록에서도 배추는 거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불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을 위주로 하는 풍습이 강화되어 채소를 소금에 절여먹는 ‘김치’의 문화는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러다가 단순히 소금에 절여 먹는 수준이 아니라, 후추나 각종 향신료를 곁들여 맛을 내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또한 지역별로 젓갈 등을 곁들이면서 지역의 특성에 맞는 각종 김치들이 만들어진 것 같다. 이때의 김치는 무가 주재료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일명 나박김치나 무짱아찌·오이지 등이 그것이다.
조선 전기도 무를 주재료로 하는 김치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조선 초 중기 배추가 도입되면서부터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전후로 들어온 고추로 인해 김치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초기 고추는 남쪽 오랑캐 음식이며 ‘독초’로 여겨져 별로 반기지 않았다. 하지만 고추가 가지고 있는 저장기능(고추는 음식이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될 수 있도록 해주는 기능이 있다)과 자극적 매력으로 각종 음식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만주와 한반도가 원산지였던 콩을 이용한 된장처럼 고추와 찹쌀 그리고 간장을 이용해 고추장을 담그기까지 했다. 그렇게 가장 많이 애용하는 김치에 빨간 고춧가루가 곁들여지기 시작하면서 배추김치의 원형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1700년대 말 결구배추(통배추)가 들어오게 됨으로써 현재와 같은 김치가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초기의 결구배추는 많이 재배되지도 않았고, 통배추가 되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되어 민간에서 통배추김치를 담아 먹었던 것은 1800년대 말이 되어서야 보편화 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같은 김치의 역사는 10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김치의 이름도 여러 가지로 변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의 <시경>에는 소금에 절인 채소를 ‘저’라고 표기했고,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표현이 많다. 그러다가 조선 초기에 지어진 <훈몽자회> 등에서 김치를 ‘침채(소금에 절인 채소)’라고 명명한 것이 보인다.
즉 이 ‘침채’가 구개음화하면서 ‘딤채’가 되고, 그것이 ‘김치’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즉 조선 초기까지 ‘저’라는 이름이나 ‘침채’라는 말이 함께 혼용되다가 침채가 딤채로 그리고 김치로 변화되었다. 그와 함께 ‘저’라는 단어도 ‘오이지’ ‘무짱아찌’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지난 2019년 11월 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서울김장문화제’에서 김장을 하고 있는 외국인들. (출처: 뉴시스)
이렇게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 ‘김치’는 전 세계 어떠한 음식보다 화려한 색깔과 맛을 자랑하고 있다. 초기 해외 동포에 의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김치가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으며 김치가 가지고 있는 효능(발효식품)으로 전 세계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발전해온 김치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전통음식’이라고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김치의 역사를 보면, 김치야말로 ‘다국적 재료’들이 창조적으로 어우러진 ‘다문화 융합 콘텐츠의 전형’임을 알 수 있다. 문화는 배척되거나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어우러짐으로써 창조되는 과정임을 ‘김치’의 역사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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