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호 문화 항저우에서 드러난 북한 스포츠 정책의 민낯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하는 북한 스포츠

2023.11.15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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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에서 드러난 북한 스포츠 정책의 민낯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하는

북한 스포츠 


글 전경우 스포츠저널리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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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북한 측 응원단이 축구팀 응원을 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촌스러움 그 자체였다. 외모나 옷차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매너가 문제였다. 지난달 폐막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보여준 북한 선수단의 모습이 그랬다. 국제대회에서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선수들 간의 예의와 존중, 규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입을 막겠다며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 불참했고, IOC로부터 징계를 받아 2022년까지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다. 북한 선수단이 국제 종합 스포츠 대회에 참가한 것은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이후 5년 만이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 선수들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그러나 결론은 ‘역시나!’였다.


국제행사에서 각 나라의 대표로 참가한 사람들의 언행을 통해 그 나라의 수준을 알 수 있다. 말한 마디 행동 하나가 그 선수단은 물론 그 나라의 품격이 어떠한지 바로 알 수 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폐쇄성과 후진적 사고방식과 태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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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

민국과 북한의 경기. 대한민국 박지수가 골밑슛을 할 때 북한 로숙영이 수비하며 막고 있다. 두 선수는 5년 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에서 남북 단일팀 멤버로 활약하며 단일팀 골밑을 함께 책임졌다.

(출처: 연합뉴스)



북한 선수들은 물론 감독들조차 마음 놓고 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감독관으로 나온 사람이 선수와 감독을 대신해 대답을 하는가 하면, 기자들의 짧은 질문에 응답하는 믹스트존(Mixed zone) 인터뷰에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면 믹스트존을 통과해 대기실로 가게 돼 있다. 그것이 올림픽 등 국제대회의 규칙이다. 경기를 막 끝낸 선수들의 소감과 경기 상황 등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해 주기 위한 장치다. 믹스트존 인터뷰에 응할지 말지는 선수단의 몫이다. 선수단이 기자들의 질문에 반드시 대답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이 믹스트존 인터뷰에 성실하게 임한다. 경기 결과와 함께 선수 당사자의 심정이나 컨디션 등을 팬이나 자국민들에게 알려주는 창구로 활용하려 한다. 무엇보다 국민들을 대신해 현장에 나온 취재진들을 존중해 주는 마음도 있다.


그런데 북한 선수들은 믹스트존을 통과할 때 굳은 표정으로 일절 입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뿐 아니라 평창 동계올림픽 등 많은 국제대회에서 늘 그런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라도 듣고 싶어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은 북한 선수단의 냉랭한 태도에 허탈해 하기일쑤다. 북한 선수들은 너희들이야 허탈하건 말건 우리 알 바 아니라는 태도다. 믹스트존을 통과할 때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인물이 반드시 동행하기 때문에 북한 선수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입을 열고 말을 하는 것이 원천 차단된다.


5년 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대회에서 대한민국과 북한은 한 팀으로 출전했다. 우리민족끼리 한편을 먹고 대회에 나갔던 것이다. 당시는 남북한 관계가 좋을 때였다. 물론 속임수에 지나지 않은 기만적인 평화 정책이었지만, 그럼에도 남북한은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친한 사이인 것처럼 행동했다. 온 세상이 홀라당 속아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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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30일 중국 원저우 스포츠센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8강전 한국과

북한의 경기. 지소연이 파울을 당하자 한국선수들이 심판에 항의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자카르타 대회에서 한 솥밥을 먹었던 남북한 선수들이 5년 만에 항저우에서는 적으로 만났다. 두팀은 농구 여자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격돌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거친 경기였다. 대한민국이 81-62로 승리했다. 하지만 경기 전은 물론 경기가 끝난 뒤에도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경기의 승패와 상관없이, 북한 선수단의 매너 때문이었다.


북한의 로숙영, 김혜연 등이 5년 전 자카르타 대회 때 대한민국의 박지수, 강이슬, 박지현 등과 함께 단일팀으로 뛰었다. 그러나 이들은 경기 전부터 경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 선수들과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차갑게 시선을 외면했다. 경기 중에는 죽기 살기로 덤벼들었다. 정말 거칠게 나왔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였고, 그들에게는 스포츠로서의 농구가 아니라 전투였다.


경기 후 우리 대표팀 주장 김단비는 “손도 내밀어주지 않은 것 같다”는 취재진의 질문에 “오늘(우리가) 많이 안 넘어진 것 같다”고 돌려 답을 했다. 우리 선수들은 오히려 북한 선수들을 비난하거나 원망하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의 장신 센터에 대해 칭찬도 해 주었다. 품격 있는 매너였다.


우리 팀 센터 박지수는 “5년 만에 북한 선수들과 만난다고 해 반가울 줄 알았는데 따로 인사도 하지 못했다”며 “북한 선수들이 정말 준비를 많이 해온 것 같다. 우리가 부족한 부분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반가웠다. 5년 만에 만난 것이고 같은 팀을 했던 사이다”며 아쉬워했다.


박지수의 마음과 달리 북한 선수단은 시종 차가웠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한국 취재진이 북한 센터 박진아(키 205㎝)를 향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취재진을 찬바람을 일으키며 쌩 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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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의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농구 대한민

국과 북한의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연습을 마친 대한민국 선수가 북한 정성심 감독과 북한 코칭스태프 앞을 지

나며 목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코치진과 선수들은 시선을 피하며 외면하고 있다. 북한 정성심 감독은 직전

대회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여자농구에서 코치로 활약한 바 있다. (출처: 연합뉴스)




이날 경기 후 공식기자회견도 가관이었다. 한국 기자가 북한의 응원단과 중국 음식 등에 관한 가벼운 질문을 하자 정성심 북한 감독 옆에 있던 정체불명의 인사가 “우리는 ‘North Korea’가 아니다. 우리는 ‘D.P.R. 코리아’다. 당신이 우릴 ‘North Korea’라고 칭한 건 좋지 않다. 아시안게임에선 모든 나라에 정확한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내 말이 맞지 않나?”라고 언성을 높였다. 사과하라고까지 했다. 어이없는 반응이었다.


다른 종목에서 같은 상황이 이어졌다. 사격 남자 10m 러닝 타깃단체전에서는 은메달을 딴 북한 선수단이 금메달을 딴 한국 선수들의 단체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시상식 때 애국가가 울릴 때는 굳은 표정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도 남자 73㎏ 16강전에서는 북한의 김철광이 한국의 강헌철에게 승리했다. 패자 강헌철이 김철광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외면했다. 탁구 혼합복식 16강에서는 한국의 장우진-전지희 조가 북한의 함유성-김금영 조와 만났지만 분위기는 살벌했다. 북한은 남자 축구 8강전에서 일본에 1-2로 패하자 경기 후 심판에게몰 려가 완력을 쓰고 욕설을 해대는 추태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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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중국 항저우 푸양 인후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사격 10m 러닝타

깃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의 정유진과 선수들이 북한 선수들에게 함께 기념촬영할 것을 요청했지만

은메달을 획득한 북한 선수들이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국제 스포츠 종합대회에 5년 만에 전격 복귀했지만 경기 중계는 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와 노동신문, 대외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간단히 전달하고 말았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 중계권을 지원받아 경기를 송출하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당시 ‘한반도 중계권’을 가진 지상파 3사가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을 통해 들어온 북한 협조 요청을 받아들여 중계권 지원이 성사됐다.


북한은 그간 TV 중계권료가 비싼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의 경우 중계권을 지원받아 방송을 내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경우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상파 3사로부터 ‘한반도 중계권’을 양도받아 북한에 지원했다. 북한이 이번 아시안게임을 중계하지 않은 것은 중계권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핵개발하고 미사일 쏘아댈 돈으로 인민들에게 경기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스포츠를 철저하게 체제 선전의 수단으로 이용한다. 북한의 장웅 IOC 위원은 “스포츠는 정치 밑에 있다”고 대놓고 말한 바 있다. 북한에서 스포츠의 가치와 정신 따위는 없다. 오로지 체제 선전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목격한 북한 선수들의 태도는 북한의 스포츠 정책의 정체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북한의 스포츠는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변한다. 약속을 지키거나 국제 규범을 준수하는 일 따위는 상상할 수도 없다. 스포츠만 그런 게 아니다. 압도적인 힘이 그래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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