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문화 지지고 볶아 먹을수록 좋은 채소! 당근
지지고 볶아 먹을수록 좋은 채소! 당근
글·사진 허북구 (재)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국장
당근은 집에서 요리할 때 흔히 사용되는 재료이다. 아삭아삭하고 맛있는 당근은 주황색이 예쁘고,
영양이 풍부해 남녀노소 모두로부터 사랑받아 온 뿌리채소이다. ‘비타민 A의 황제’라고 불리는 당근은 채소로뿐만
아니라 캐릭터로도 활용될 정도로 친숙하다. ‘당연하지’를 나타내는 말인 ‘당근이지’와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보상과 처벌을 함께 사용하는 것을 비유한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것이 당근이다.
외래식물, 당근 이름
산형과의 뿌리채소인 당근의 이름은 ‘단맛이 나는 뿌리(糖根)’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당나라에서 들어와 당근(唐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중 당근(唐根)이라는 이름은 당나라(618~907)에서는 당근을 재배한 사실이 없고, 원나라(1271~1368) 초기에 중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전래되었으므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남송 시대(1127~1279)의 <소흥본초(紹興本草)>에는 당근이 “어디에서나 생산된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외지(胡地)에서 왔으며, 무와 같은 맛이 나기 때문에 ‘호나복(胡蘿蔔)’이라고 명명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호나복(胡蘿蔔)처럼 외지에서 도입된 것에는 이름 앞에 ‘오랑캐 호(胡)’자를 사용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호박, 호떡처럼 외지에서 도입된 것에는 ‘호(胡)’자나 중국에서 도입된 것에 대해 당혜(唐鞋), 당황모(唐黃毛)처럼 ‘당(唐)’자를 사용했었다. 그러므로 당근은 단맛이 나는 뿌리여서 당근(糖根)이라는 이름이 명명되었다기보다는 중국에서 도입된 것에서 당근(唐根)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 고문헌에서 당근은 홍나복(紅蘿匐), 호나복(胡蘿蔔) 및 당근(唐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인조 때 김육(金堉, 1580~1658)이 명나라에 다녀온 사행일기인 <조경일록(朝京日錄)>에는 홍나복(紅蘿匐)으로 표기되어 있고, 신유(1689~1665)의 <죽당집(竹堂集)>에 당근(唐根)으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숙종 때 청나라를 다녀온 김창업(金昌業, 1658~1721)의 사행일기인 <연행일기(燕行日記)>에는 “호나복(胡蘿蔔)은 일명 당근(唐根)인데 가장 흔하고, 당근은 빛깔이 붉어 붉은 무 같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 순조 때의 문신 이해응(李海應, 1775~1825)이 동지사 서장관으로 중국 연경에 갔을 때의 견문을 기록한 책인 <계산기정(薊山紀程)>에서는 “호나복(胡蘿蔔)은 다르게 당근(唐根)이라 부른다”라고 했다.
중국에서는 당근을 호나복(胡蘿蔔), 황나복(黃蘿蔔), 홍나복(紅蘿匐)이라고 하는데, 나복(蘿蔔)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무 앞에 호(胡), 황(黃), 홍(紅)이라는 접두어가 사용되는데, 호(胡)는 외국 유래의, 황(黃)은 노란 당근을, 홍(紅)은 적색 당근을 나타내는 말이다. 당근은 과거부터 보라색, 노란색, 적색, 백색이 있었다. 일본에서 당근의 이름은 인삼(人蔘, ニンジン)과 같은 이름이 사용되는데, 이는 16세기 중국에서 일본으로 당근이 전래되면서 ‘인삼(人蔘)’이라는 한자 이름이 사용된 데서 연유된 것이다.
당근의 학명은 Daucus carota subsp. sativa이다. 학명 중 속명 Daucus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종자를 먹으면 몸이 훈훈해진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종명의 carota와 영명인 Carrot은 켈트어의 Celtic에서 유래된 것으로 색깔이 붉다는 뜻이다.
색색의 당근
오늘날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당근은 주로 주황색인데, 재배 초기에는 흰색이나 연한 노란색을 띠다가 재배 후에는 노란색과 보라색을 띠게 되었다.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당근은 10세기경에 유럽에, 12세기경에는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유럽으로 전해진 것은 서양계, 인도를 거쳐 중국에 전래된 것은 동양계이다.
서아시아에서 전래된 당근은 17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짙은 보라색이나 검은색이었다(때때로 빨간색이나 흰색 품종도 있었다). 당시 보라색 당근은 향이 강하고 달콤했지만 색이 바래고 옷이나 냄비, 프라이팬에 쉽게 얼룩이 지기 때문에 노란색 당근을 선호했다는 기록이 있다.
서양계 당근은 네덜란드 등에서 품종이 개량되어 다양한 품종을 만들어졌다. 그중에서 특히 심까지 주황색인 품종은 인기를 얻었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당근이다.
주황색 당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역사적인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주황색 당근을 육성한 네덜란드의 왕실의 상징색은 주황색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먹을 수 있는 당근은 노란색, 보라색, 흰색, 빨간색 당근이 있었는데 네덜란드 왕실의 색이 주황색이었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은 주황색 당근을 활발하게 재배하고 식용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네덜란드의 원예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그들이 육성한 주황색 당근은 맛과 품질이 뛰어나 인기가 많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당시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의 설립으로 인해 네덜란드가 동부 국가를 식민지화하고 약탈하여 무역 지위가 크게 향상되어 국제적인 영향력이 커서 주황색 당근이 세계 곳곳으로 보급되었다는 것이다. 당근은 오늘날 주황색 일색에 가까우나 동양계의 당근 중에서는 여전히 보라색, 노란색, 흰색, 빨간색 등 다채로운 색상의 당근이 재배 및 이용되고 있다.
당근의 영양
당근은 영양이 풍부하다. 탄수화물, 지방, 휘발성 오일, 카로틴, 비타민 A, 비타민 B1, 비타민 B2, 안토시아닌, 칼슘, 철 및 기타 영양소가 풍부하다. 당근의 영양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카로틴으로 당근 뿌리에는 알파, 베타(대부분 외피에 숨겨져 있음), 감마, 델타-카로틴 등 카로티노이드가 함유되어 있다. 카로틴은 야맹증을 치료하고 호흡기를 보호하며 어린이의 성장을 촉진하는 기능이 있다. 또한 당근에는 비타민과 칼슘, 인, 철분 등의 미네랄과 전분, 셀룰로오스 등의 탄수화물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당근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무나 다른 채소에 비해 30~40배 이상 많아 50~170㎎/kg에 달한다.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베타카로틴은 성장과 발달을 촉진하고 정상적인 시력을 유지하며 야맹증, 안구건조증, 상기도 질환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으며 상피 조직 세포의 건강을 보장하고 병의 발생을 예방 및 치료할 수 있다. 미국 워싱턴병원 전문가들은 임상시험에서 베타카로틴 제품을 장기간 사용하면 협심증, 관상동맥경화증의 병력이 있는 고위험 환자의 재발률이 현저히 감소함을 확인했으며, 또한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심근경색, 뇌졸중 등 주요 심혈관 질환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해서도 중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타민 A는 사람들의 정상적인 시각 반응 유지에 중요하다. 하지만 비타민 A에는 화학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특정 부작용이 있으며 비타민 A를 과다 복용하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단순히 비타민 A를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베타카로틴은 비타민 A의 공급원이다. 베타카로틴은 인체에 들어온 후 일련의 효소의 작용에 의해 비타민 A로 전환되어 부작용 없이 체내에 흡수되어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베타카로틴은 인체에 없어서는 안 될 비타민이다.
당근의 건강 효능 7가지
중국 <기춘현지(蘄春縣志)>에 의하면 “<본초강목(本草綱目)>을 저술한 이시진(李時珍)이 약을 구하러 산에 갔을 때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한 백발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은 얼굴이 붉고 손발이 빨랐다. 그 노인은 수 년 동안 당근을 먹어왔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후 이시진은 영감을 받아 <본초강목(本草綱目)>을 편찬했다”라는 내용이 있다.
당근은 이처럼 예로부터 건강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크게 일곱 가지 효능으로 구분할 수가 있다. 그 첫째는 간에 이로움을 주고 시력을 향상시킨다. 당근에 다량 함유된 카로틴은 비타민 A의 공급원이 되어 간에 영양을 공급하고 시력을 좋게 하며 야맹증을 치료할 수 있다.
둘째, 횡격막을 돕고 장을 넓혀준다. 당근의 식물성 섬유질은 장내의 충진물질로서 장의 연동운동을 강화시켜 횡경막을 촉진하고 장을 확장시키며 완하제 및 암 예방효과가 있다.
셋째,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영양실조를 해소한다. 비타민 A는 뼈의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에 필수적인 물질로 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돕고, 신체 성장의 요소로 영유아의 성장과 발육을 촉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넷째,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카로틴은 비타민 A로 전환되어 신체의 면역기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며, 상피세포암 예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당근의 리그닌은 신체의 면역 메커니즘을 향상시키고 암세포를 간접적으로 제거할 수도 있다.
다섯째, 혈당과 지질을 낮춘다. 당근에는 혈당 강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당뇨병 환자에게 좋은 식품인데 설포네이트, 캠페롤 등 일부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관상동맥 혈류를 증가시키고 혈중 지질을 낮추며 에피네프린 합성을 촉진하고 혈압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고혈압 및 관상동맥 심장 질환 환자에게 좋은 식이요법이
된다.
여섯째, 빈혈을 개선한다. 카로틴은 조혈 기능이 있어 인체에 필요한 혈액을 보충해 빈혈이나 냉혈을 개선할 뿐만 아니라 칼륨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 일곱째, 뼈 성장을 촉진한다. 당근의 비타민 A는 정상적인 뼈 발달에 필수적인 물질이며 세포 재생 및 성장에 유익하다.
당근의 활용 시, 4가지 유의점
당근은 건강에 유익하지만 활용 시 유의 사항도 있다. 대표적인 네 가지 중 첫째는 비타민 C 분해효소가 있다는 점이다. 비타민 C 분해효소가 있으므로 비타민 C 함량이 높은 다른 채소와 혼합하면 비타민 C를 분해한다. 다만 비타민 C 분해효소는 50℃에서 파괴되므로 당근을 익히면 된다.
둘째는 당근에 함유된 베타카로틴은 지용성이므로 기름에 튀기거나 고기와 함께 요리하는 것이 좋다.
셋째는 무와 함께 요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에는 각종 효소, 머스타드 오일, 리그닌, 인터페론 유도물질 등이 함유되어 있어 소화 촉진, 항암, 항바이러스, 신체 면역력 향상, 인터페론 생성 등에 좋은 효능이 있다. 그러나 위의 물질은 내열성이 없으며 70℃의 고온에서는 파괴된다. 당근은 정반대로 생으로 먹으면 70% 이상 카로틴이 흡수되지 않으므로 식용유에 볶아서 먹어야만 카로틴의 흡수와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당근에는 비타민 C를 분해하는 효소가 들어 있으므로 무와 함께 먹으면 무의 비타민 C가 파괴된다.
넷째, 당근은 술안주로 사용하면 안 된다. 당근에 들어있는 카로틴과 알코올이 함께 인체에 들어가면 간에서 독소를 생성해 간 질환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따라서 술과 함께 당근을 먹는 것은 건강에 해롭다. 특히 술을 마시고 당근 주스를 즉시 마시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당근 요리
사람들은 채소를 먹을 때 신선한 것을 잘게 썰어 생으로 먹는 것이 좋다는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다. 그런데 당근은 기름에 지지고, 고기와 함께 볶아 먹을수록 좋다. 당근의 주요 영양소인 베타카로틴은 지용성 영양소로 물에 잘 녹지 않아 일반적으로 인체에 직접 소화, 흡수되기 어렵다.
인체 내 베타카로틴의 소화 흡수율은 요리에 사용되는 기름의 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충분한 식용유를 사용하여 조리하면 베타카로틴의 체내 소화 흡수율이 90%까지 된다. 따라서 당근의 영양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당근을 잘게 썰어 양념을 넣고 볶은 뒤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볶는 것이 좋다.
당근을 잘게 썰어 양념을 추가해도 좋다. 돼지고기, 쇠고기, 양고기 등을 압력솥에 15~20분간 볶으면서 당근과 공기의 접촉을 줄이면 베타카로틴의 이용률을 97%까지 높일 수 있다. 한마디로 당근은 신선한 것보다 열과 기름에 지지고 볶아서 요리해 먹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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