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문화 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

2024.11.0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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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처음 생겨난 이야기


글 신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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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옛날, 세상이 처음 생겨나기 전의 일이다.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스 사람들은 그런 상태를 ‘카오스’라고 불렀는데, ‘혼돈’ ‘공허’ ‘거대한 무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어느 날 카오스에서 밤과 어둠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가 나타났다. 이로써 세상에는 땅이 생겨났다.


가이아는 혼자 힘으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바다의 신 폰토스를 낳았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하늘과 땅과 바다가 존재하게 되었다.


까마득히 오랜 옛날에는 하늘과 땅이 지금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사이좋게 맞붙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꼭 붙어살아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자식을 여럿 낳았다.


둘이 처음 얻은 자식은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이었다. 이들은 몸이 산보다 커서 ‘티탄 족’이라 불리었는데, ‘티탄’은 ‘거인’을 뜻한다.


가이아와 우라노스는 또 자식을 낳았다. 티탄 족처럼 몸집이 크고 눈이 하나뿐인 키클롭스 3형제였다.


그 뒤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 또 아이가 태어났다. 팔이 100개나 되고 머리도 50개나 있는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였다.


우라노스는 키클롭스 3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를 보고 기절할 듯이 놀랐다.


‘헉! 내 자식이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니! 저 녀석들이 내게 덤비면 어쩌지?’ 


우라노스는 성격이 거칠고 흉측하게 생긴 괴물 형제들을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을 땅속 깊은 곳에 있는 지옥인 지하 세계에 처넣어 버렸다.


지하 세계는 사실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 몸의 일부였다. 어머니 뱃속에 갇힌 괴물 형제들은 지하 세계가 떠나가라 울부짖었다.


“어머니,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우리를 여기서 꺼내 주세요!”


가이아는 땅속에 갇혀 고통 받는 자식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는 우라노스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자식들이에요. 제발 저들을 풀어 주세요.”


그러나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런 괴물들이 우리 자식들이라니 수치스러운 일이오. 두 번 다시 흉측한 모습을 보고 싶지 않으니 나한테 그런 부탁 하지 마시오.”


가이아는 냉정하게 거절을 당하자 분노가 치밀었다.


‘자식들에게 못되게 굴다니! 용서할 수 없다!’


가이아는 복수를 다짐하고 강철로 큰 낫을 하나 만든 뒤, 티탄 족 자식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자식들을 지옥에 처넣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아버지는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그런 자는 따끔한 맛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자, 누가 나서서 이 일을 하겠느냐?”


티탄 족 자식들은 눈만 멀뚱멀뚱 뜨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 우라노스는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무서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 때 티탄 족의 막내인 크로노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머니,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오, 장하다! 역시 너는 내 아들이구나.”


가이아는 기쁜 얼굴로 크로노스에게 낫을 내주었다.


그날 밤, 크로노스는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잠든 침실로 몰래 숨어들었다. 그러고는 낫을 휘둘러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잘라 버렸다.


“으아악!”


우라노스는 비명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그는 많은 피를 흘렸는데, 그 피에서 복수의 여신인 에리나에스 자매, 거인족인 기간테스, 그리고 ‘멜리아스’라는 물푸레나무 요정들이 생겨났다.


우라노스의 생식기는 바다에 풍덩 빠졌다. 그러더니 생식기에서 흰 거품이 솟아났는데, 이 거품에서 나온 것이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였다.


한편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서 떨어져 나오며 하늘과 땅이 떼어졌다.


하늘은 땅으로부터 멀리 위로 올라갔다.


우라노스는 크로노스의 습격을 받고 죽기 전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크로노스, 각오해라! 앞으로 너도 나처럼 자식에게 쫓겨날 거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쫓아낸 크로노스는 이제 세상을 다스리는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티탄 족의 우두머리로서 티탄들의 도움을 받아 신들의 왕으로 세상을 지배했다.


가이아는 크로노스가 우라노스를 물리치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 이제 내 아들들이 풀려나겠구나.’


하지만 가이아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키클롭스 3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가 끔찍한 괴물이라며 크로노스가 이들을 풀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가이아는 이 사실을 알고 분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아들들이 풀려나기를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 내 뜻을 저버려? 천하에 못된 놈! 네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해 주마!’


가이아는 주먹을 불끈 쥐고 복수를 다짐했다.


크로노스는 신들의 왕이 되자 자신의 누이인 레아와 결혼했다. 그래서 첫 아이인 딸 헤스티아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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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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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크로노스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앞으로 너도 나처럼 자식에게 쫓겨날’ 거라고 아버지 우라노스에게 저주를 들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낳아 봐야 아무 소용없어. 나를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아갈 텐데 뭐.’


크로노스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 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 방법을 쓰면 되겠구나.’


크로노스는 레아에게 달려가 갓 낳은 아기를 빼앗았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레아가 달려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크로노스는 순식간에 아기를 입에 넣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 뒤에도 크로노스는 아기가 태어날 때마다 단숨에 삼켜 버렸다. 헤스티아를 시작으로 데메테르, 헤라, 하데스, 포세이돈 5남매가 차례차례 크로노스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맙소사! 어떻게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잡아먹어?’


레아는 자식들을 모두 잃고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여섯째 아이는 크로노스에게 넘겨 줄 수 없어. 무슨 수를 쓰든지 살려내야 해.’


그 때 레아는 임신 중이었다. 그는 어머니 가이아에게 가서 도움을 청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요. 아기를 살릴 방법을 알려 주세요.”


가이아가 대답했다.


“아기를 낳으면 바로 내게 데려오너라. 내가 너 대신 아기를 맡아 길러 주마.”


레아는 가이아가 시키는 대로 아기를 낳자마자 바로 가이아에게 데려갔다. 가이아는 그 아기를 크레타 섬에 보내 이데 산의 동굴에서 키웠다.


레아는 또 가이아가 일러 준 대로 돌덩이에 아기 옷을 입혀 포대기에 싼 뒤 크로노스에게 갔다.


“제가 낳은 아들이에요.”


“오, 그래?”


크로노스는 레아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포대기를 벗겨 아기를 확인하지 않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그제야 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아가 가이아의 도움으로 겨우 살린 아기가 바로 뒷날 신들의 왕이 되는 제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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