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호 문화 마지막 여정의 동반자 ‘꼭두’

2025.03.03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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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정의 동반자 ‘꼭두’


글 백은영 사진제공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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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전통문화 속에는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독특한 상징체계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꼭두’이다. 꼭두는 전통적으로 상여(喪輿)에 부착된 목각 인형으로 사람들은 이 꼭두가 망자의 영혼을 저승까지 안전하게 인도한다고 믿었다. 비록 작은 목각 인형이지만, 꼭두는 우리 민족의 생사관과 민속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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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망자의 벗

상여 위에 앉은 꼭두의 표정은 상여를 뒤따르는 이들과는 사뭇 다르다. 명랑하고 밝은 색감은 물론이요, 드러나는 외형 또한 해학적이다.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라고 하기엔 때로는 익살스럽기도 하고 정감있는 모습이다. 슬픔에 잠긴 상여 행렬을 위로하고 망자의 영혼이 밝은 세계로 향하도록 돕는 역할을 상징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꼭두는 조선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전통 장례문화의 일부로 망자를 저승으로 안전하게 인도하는 것 외에도 상여를 화려하게 꾸미는 미적 요소로 기능해왔다. 한마디로 ‘꼭두’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과 민간신앙이 반영된 중요한 요소였다.


망자가 저승길에서 외롭지 않도록 동반자가 되어 주고, 악귀로부터 보호하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이 꼭두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산 이들에게는 위안을 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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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종 꼭두

시종 꼭두는 낯선 곳에서 두려워하는 망자의 시중을들며, 저승으로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다. 신선과 선녀, 부처와 승려, 무당 등 다양한 모습의 꼭두도 망자를 위로한다.


광대 꼭두

이승의 인연을 더 이상 이어갈 수 없는 망자의 아픔과 안타까움,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진 두려움을 ‘광대 꼭두’가 위로한다.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며 놀이판을 열기도 하고, 장구·북·피리를 연주하며 망자의 마음을 안정시킨다.


호위 꼭두

망자를 저승으로 안내하고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호위 꼭두. 망자가 타고 가는 상여를 호위하기 위해 말이나 호랑이, 혹은 영수(靈獸)를 타고 있으며 험상 궂은 표정으로 무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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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넌 누구니?

일반적으로 ‘꼭두’는 1447(세종 29)년에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주요설법을 뽑아 한글로 편역한 서적인 <석보상절(釋譜詳節)>의 ‘곡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며, 17세기에는 ‘곡두’라고 했다.


꼭두는 지역에 따라 그 모양이 다른 것이 특징이다. 경상도권은 입체적이고 불교조각의 영향을 많이 받아 사람의 형태를 취했다면, 충청도로 가면서부터 평면적으로 가기 시작해 ‘넙적이’라고도 불린다.


딱히 정해진 모양은 없지만 대부분 인물상으로 구성돼 있으며 동물의 모습을 닮은 것도 있다. 종류는 크게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자 ▲망자를 지켜주는 호위 꼭두 ▲저승길까지 시중드는 시종 꼭두 ▲이별의 슬픔을 달래주려 물구나무를 서거나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광대 꼭두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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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에게 저승길을 안내하는 꼭두는 ‘탈것’을 타고 있거나역동적 동작을 취함으로써 움직임과 옮겨감을 표현한다. 나쁜 기운을 물리치며 망자를 호위하는 호위 꼭두는 그 특성상 무기를 가졌거나 위협적인 표정을 하고 있다.


이승에서의 삶과 이별하고 떠나는 저승길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광대 꼭두는 묘기와 재롱을 통해 이러한 망자의 슬픔을 덜고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망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시중을 드는 시종 꼭두는 대개 얌전히 뒤따르는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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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 다시 살아나다

민간에서 장례의 한 문화로 자리 잡았던 ‘꼭두’였지만 하층민의 문화라는 이유로 도외시됐고, 장례문화의 변화로 인해 서서히 그 존재가 희미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평생 꼭두를 모아온 꼭두박물관 김옥랑 관장이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다.


1970년대 후반, 어느 골동품 가게에서 우연히 ‘꼭두’를 만나게 된 뒤 그가 수집한 꼭두만 2만여 점에 이른다. 과연 ‘꼭두 엄마’라 불릴만하다. 훗날 그는 꼭두를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라고 회상했다.


“꼭두는 어느 이름 모를 장인이 만든 우리나라 전통 나무인형으로 그야말로 우리 민중예술의 진면모를 보여주는 예술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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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의 소박하면서도 해학적인 모습에 반해 꼭두를 수집하고, 복원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꼭두 관련 서적도 여러권 냈다. 그에 따르면 꼭두는 우리 조상들이 죽음에 대해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자,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담긴 민중예술 작품인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꼭두가 오늘날 다시 우리네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한 사람의 열정이 빚어낸 결과다. 김 관장은 지난 2023년 국립민속박물관에 꼭두 1100여 점을 기증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우리 민족은 ‘죽었다’는 표현 대신 ‘돌아가셨다’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어딘가 우리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이자,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지라도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을 끝이 아닌 또 다른 여정의 시작으로 해석한 것이다. ‘꼭두’는 바로 그 여정의 시작을 함께하는 벗이자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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