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호 마루대문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줘” 생성형 AI가 쏘아올린 저작권 논란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줘”
생성형 AI가 쏘아올린 저작권 논란
글 백은영
한동안 SNS(Social Network Services/Sites)를 중심으로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한 그림을 공유하는 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여전히 각종 메신저나 SNS를 보면 지브리 스타일로 변환된 사진들이 프로필을 장식한 경우가 많다.
따스한 색감과 섬세한 감정선 등이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결과물에 열광하는 것이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열풍처럼 분 ‘지브리’ 바람은 또 다시 AI 생성물에 대한 ‘저작권’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챗GPT로 생성한 지브리풍의 이미지
‘화풍’… 보호받을 수 있나
챗GPT를 비롯해 다양한 생성형 AI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디즈니 스타일’ ‘픽사 스타일’ 등 인기 애니메이션 화풍으로 바꾸는 것이 유행이다.
특히 ‘지브리풍’ 사진 변환은 오픈AI가 지난 3월 25일 신규 이미지 생성 AI 모델인 ‘챗GPT-4o 이미지 생성’ 기능을 출시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만의 순수하고 따뜻한 느낌의 작법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말 기준으로 챗GPT 주간이용자수(WAU)가 5억 명을 돌파한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3억 5000만 명 수준이던 이용자 수와 대조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분 지브리 열풍과 함께 ‘저작권’ 문제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원작자의 동의가 없으므로 저작권이 침해된다는 비판과 ‘지브리 스타일(화풍)’임을 밝혔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찬반 논쟁이 이어졌다. 특히 만화나 웹툰, 애니메이션과 같이 콘텐츠를 창작하는 직업군에서는 AI가 창작물을 도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챗GPT로 생성한 아톰 스타일의 이미지
저작권 침해 논쟁은 챗GPT 출시 이래 끊이지 않고 있다. 오픈AI를 상대로 한 저작권 침해 소송 목록이 꾸준히 늘고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런 소송에 대해 오픈AI는 “공개적으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를 기반으로 AI모델을 학습시켰기에 공정 이용(fair use)이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다시 지브리 ‘화풍’에 대한 논란을 살펴보자. 전문가에 의하면 화가의 독특한 그림체를 일컫는 ‘화풍’은 저작권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항목이다. 국내를 포함해 여러 국가의 저작권법 원칙인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에 따르면, 현행 저작권법은 실제 사용된 제작물 자체인 ‘창작물’에 대한 표현은 보호하지만 ‘화풍’ 즉 어떤 ‘느낌’이 나는 그림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풍’을 도용한 것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는 제기할 수 있지만, 저작권법으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챗GPT로 사진을 변환한 이미지 중에는 한글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오류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관련,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과거 인공지능(AI)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접한 뒤 이를 “생명에 대한 모독”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바 있으나 해당 작품에 대해 별도의 법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저작권 보호에 민감한 것으로 잘 알려진 디즈니 역시 현재까지 AI 콘텐츠와 관련해 공식 입장 발표나 소송 제기 등의 구체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다.
상상력 확장인가, 도용인가
일명 ‘지브리 스타일’ 열풍과 관련해 챗GPT를 만든 오픈AI(OpenAI) CEO 샘 알트먼(Sam Altman)은 최근 미국 한 테크 컨퍼런스에서 공식 입장을 밝혔다. 그는 “AI는 사람들이 상상력을 확장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며 “다만 기존 창작물의 스타일이나 고유한 미감을 그대로 차용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AI의 발전이 창작자와 기존 예술 세계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즉흥적인 흥행에 휩쓸리기보다이 흐름이 문화 생태계 전반에 미칠 장기적 영향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발언은 현재 AI 기업들이 맞닥뜨린 딜레마를 적나라 하게 드러낸다. 기술의 발전은 놀랍지만 그에 비해 법과 윤리의 준비는 아직 더딘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특히 이번 ‘지브리 스타일’ 열풍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 ‘AI시대 창작자의 권리’라는 중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새로운 결과물을 만든다. 그리고 그 학습 데이터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땀과 시간이 깃든 결과물이다. 이 점에서 ‘AI가 만들어낸 창작물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실제로 지브리 애니메이션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가 수년간 공들여 그린 수작업 그림들과 감독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담긴 디자인이 필요하다. 수 많은 창작자들의 수고로 만들어진 창작물이 AI의 학습 자료로 무단 활용되고, 단 몇 초만에 유사한 스타일로 복제되는 현실을 과연 어떻게 봐라봐야 하는가.

인공지능 AI 이미지 생성기 미드저니로 제작한 제이슨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2022년)>. 디지털 아트.
콜로라도 순수미술전에서 신인 아티스트 경쟁부문의 ‘디지털 예술/디지털 사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AI가 모방하는 스타일 자체도 창작자의 지적 재산”이라며 “향후 AI 서비스들이 명확한 라이선스를 체결하거나 일정 수익을 원작자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스타일은 법적으로 보호되기 어렵다”며 “창작자들이 ‘AI 시대’에 맞춰 새로운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창작자와 AI의 만남
도용과 창작 사이의 논란을 뒤로 하고 AI와 창작자의 협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예술도 태동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AI 작가다. 한국AI작가협회는 인공지능과 문화예술 간의 상호작용 연구와 창작을 통해 새로운 예술 경험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설립됐다. 이외에도 웹툰이나 편집, 디자인 등 AI를 활용한 문화예술의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그럼에도 AI 창작물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는다. 한 예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가 ‘2023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대상(대통령상)으로 선정한 포스터(인쇄물) ‘멸종위기 1급 대한민국’이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만든 작품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포스터는 텍스트를 통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미드저니’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포스터는 동물원의 펭귄처럼 여자아이가 ‘멸종위기종’으로 표시돼 전시된 듯한 역설적 상황을 표현, 저출산 위기의 심각성을 조명했다. 아이디어는 참신했으나 아이의 손가락 관절이 잘 두드러지지 않았으며, 귀 등을 그린 선이 매끄럽게 표현되지 않아 의혹이 제기됐고, 확인 결과 미드저니를 이용해 이미지 소스를 만들고 포토샵 작업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2023 대한민국 공익광고제 대상(대통령상) 수상작 ‘멸종위기
1급 대한민국’ (출처: 공익광고협의회)
이외에도 지난 2022년 미국 콜로라도주립 박람회 미술대회 디지털 아트 부분에서도 미드저니를 활용한 작품이 선정돼 논란이 됐다.
이러한 논란 이후 공모전마다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AI활용 여부와 범위를 명확히 밝히도록 권고하는 등 규정을 만들기도 했다. 반면 한쪽에서는 생성형 AI를 활용할때 인간이 얼마나 개입했는지에 따라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으며, 아이디어의 독창성을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처럼 아직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지만 AI 기술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다. 이번 ‘지브리풍’의 인기는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당면한 과제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또한 AI가 예술을 소비하고 창작하는 방식을 어떻게 바꿀지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 창작자의 가치는 어떻게 지켜야 할지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AI는 놀라운 도구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샘 알트먼의 말처럼 기술과 예술의 새로운 동거는 이제 막 그 첫발을 뗐다. 이 둘의 동거가 어떤 끝을 맞을지는 우리 모두의 역할에 달렸다.

챗GPT로 생성한 지브리풍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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