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호 마루대문 작은 곳에서 발견한 수려한 경관 비옥진 땅으로 향하다

2023.04.20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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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곳에서 발견한 수려한 경관

비옥진 땅으로 향하다 


글 이예진 사진 이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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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강이 비단강임은

많은 강을 돌아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그대가 내게 소중한 사람임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겠습디다.


- 나태주 <금강가에서> 中



우리나라 6대 하천 중 하나인 금강은 장수군 신무산에서 시작해 군산에서 서해안까지 흐른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금강(錦江)은 비단처럼 매우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며 낙동강, 한강 다음으로 크면서 오늘날 충청도의 다양한 곳의 생활용수로 활용 중이다. 이러한 금강이 흐르는 충청북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접하지 않는 완전한 내륙지역이다. 이렇게 다양한 특징을 지닌 충북으로 지난 2월 탐방팀은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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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부소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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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소정



강 위에 떠 있는 산

충북 옥천은 산세가 수려한 곳 중 하나다. 조선시대 남수문은 “산이 높고 물이 맑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산이 푸짐한 곳”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옥천(沃川)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물이 맑고 굽이치며 땅이 기름진 지역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부소담악’은 가장으로 손 꼽는 곳이다.


‘부소담악’은 부소무늬 마을 앞 물가에 떠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이미 예로부터 우암 송시열이 금강산을 축소해놓은 것과 같다하여 ‘소금강’이라고 부를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으나 최근 대청호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각광 받기 시작했다.



옥천, 물이 맑고 굽이치며 땅이 기름진 곳 ‘부소담악’ 물 위에 산이 떠 있는 것 같아 병풍바위가 줄지어져 수려한 경관 자랑 ‘추소정’ 정자에 서서 멋진 풍광 즐겨 부소담악은 이름 그대로 물 위에 산이 떠 있는 것과 같이 병풍바위가 줄지어져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번 탐방팀이 찾았던 2월에는 인근 호수가 얼어 물에 비친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물이 풍부한 계절에 찾으면 호수에 비친 병풍바위가 일품인 곳이다. 끝부분에는 ‘추소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파노라마로 멋진 풍광을 즐길 수 있다.


대청호는 1980년에 완공돼 대전과 청주를 책임지고 있는 한국에서 세번째로 큰 규모의 인공 호수다. 호수가 조성되면서 홍수를 방지하고 생활용수,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것 외에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이 되고 있다. 대청호 주변으로는 야산과 수목이 펼쳐져 있어 많은 이들이 드라이브 코스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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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7경인 금강유원지 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 (제공: 옥천군청)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 정지용 <향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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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 생가 옆 정지용문학관


옥천은 정지용(鄭芝溶, 1903~1950·사진) 시인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옥천에는 그의 시 제목을 딴 ‘향수길’이 있을 정도이며 옥천읍에는 생가가 복원돼 있다. 본래 생가는 1974년에 허물어지고 다른 집이 세워지기도 했으나 1996년 7월 30일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그리고 복원된 집 옆에는 정지용문학관이 함께 설립돼 있어 그의 문학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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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은 섬세한 이미지 표현과 서정적인 언어구사로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휘문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동인지 <요람(搖籃)>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시작(詩作) 활동은 휘문고보 졸업 후부터 했다. 일본 교토 유학 중에도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을 발표했으며 이후 <다알리아(Dahlia)> <홍춘(紅椿)> 등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에 임했다.


그의 생애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다사다난하다. 일본 유학 후 휘문고보 교사로 근무했던 정지용은 시 외에도 평론, 기행문 등 산문도 발표하는 등 활발한 문학 활동을 보였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내용의 시인 <이토>를 발표한 후 작품 활동을 중단한 채 은거 생활에 들어가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화여대에서 한국어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기도 했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북한군에 의해 납북됐다가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납북된 이유로 한동안 공개 적으로 언급될 수 없었던 그의 문학들은 1988년에 해금(解禁)되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작 <향수>는 1927년 3월 <조선지광(朝鮮之光)> 65호에 발표됐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빗대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하는 소망이 담긴 이 작품은 가요로도 만들어져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시 중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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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의 생가



어우러져 흘러가는 곳

옥천의 남쪽에 있는 영동군은 충북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곳에 있어 분지 지형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인 추풍령이 인접하고 있다. 영동도 우암 송시열과 관련이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월류봉(月留峯)’이 그곳이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라는 의미를 가진 ‘월류봉’은 달밤의 전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 맑은 물이 휘감아 흘러가는 모습이다. 우암 송시열은 이곳에 머물면서 작은 정사를 짓고 학문 연구를 했다. 이에 월류봉 아래에는 우암 송시열을 기리기 위한 한천정사와 송우암 유허비가 있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는 돌다리를 통해 강을 건널 수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많은 이들의 염원이 담긴 돌탑들이 즐비해 있다. 다만 월류봉에 있는 육각정으로 오르는 길은 폐쇄돼 있어 올라갈 수 없다.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니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을 부른다. 특히 영동과 금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산’이라고 불린다. 높이는 714.3m로 크게 높지는 않으며 암릉 구간이 많음에도 산세가 부드럽고 웅장해 산악인들이 계절 구분 없이 즐겨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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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류봉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하는 곳이니만큼

자연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을 부른다.

특히 영동과 금산에 걸쳐 있는

천태산은 ‘충북의 설악산’이라고 불린다



총 4개의 등산로를 통해 올라갈 수 있는 천태산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으로 꼽히는 곳은 75m 높이의 암벽 코스다. 밧줄에 의지한 채 절벽을 오르는 이 암벽 코스 외에도 다양한 암릉 구간이 곳곳에 즐비해 있다. 대부분 A코스로 등반해 D코스로 하산을 하며 B코스는 위험해 폐쇄돼 있다.


천태산은 한 마디로 밧줄과 함께하는 산이었다. 하지만 힘겨운 밧줄과의 싸움 끝에는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기에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곳 같았다. 그리고 이러한 암릉 구간 외에도 삼단폭포 등이 눈을 즐겁게 한다. 다만 천태산 표지석이 있는 정상부에는 나무로 둘러져 있어 등하산 길에서 조망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 좋다.


천태산 아래에는 ‘영국사(寧國寺)’가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사 앞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약 1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키가 30m에 달한다. 나라에 큰일이 났을 때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등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있다.


이러한 영험한 은행나무를 앞에 두고 든든한 천태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국사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大覺國師)가 국청사(國淸寺)로 일컬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영국사’라는 이름은 고려 말 홍건적의 난으로 피신했던 공민왕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며 불사를 올린 것에서 비롯됐다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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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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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 암릉 구간 곳곳에 밧줄이 설치돼 있다.
밧줄과의 싸움 끝에 정상에 오르면 이내 멋진 풍경이
등산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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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사 앞에 있는 약 1000년 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223호)


천태산을 비롯해 옥천과 영동은 수려한 경관으로 눈이 즐거운 지역이었다. 보통 충청도라고 하면 충주와 청주를 떠올림에도 옥천과 영동은 또 그만의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저작은 산골같아 보였지만 비옥진 땅을 의미하는 ‘옥천’과 소백산맥의 늠름함을 지니고 있던 ‘영동’은 끝없는 매력을 발산했다. 특히 천태산은 천태(天台)라는 비범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마치 산에 오르면 하늘의 별을 가까이 한다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겠으나 막상 산에 올라 보니 이미 산에 별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험해 보이지만 곳곳의 암릉이 산을 든든하게 지탱하고 있었으며 그 앞으로 펼쳐진 탁 트인 풍광은 멀리 보여도 천태산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였다. 이처럼 이번에 떠났던 옥천과 영동은 사실 따로 있는 것 같아 보여도 함께 하는 자연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결국 귀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더라도 때가 되면 발견된다. 마치 <성경>에 창조주 하나님이 자연 만물을 통해 신의 뜻을 숨겨놓았다는 말과도 같다. 언젠가 때가 되면 보이겠다고 한 신의 뜻을, 우리는 천태산 탐방으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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