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호 마루대문 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한글

2022.10.16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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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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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訓民正音) 곧 오늘의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
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국경일인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1926년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로 1928년 ‘한글날’로 개칭됐다. 광복 후 양
력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했으며 2006년부터 국경일로 지정됐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를 담은 훈민정음. 문자를 창제함에 있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의미와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것은 없을 것이다
 
글 백은영



탄생부터 큰 글 ‘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1443년 세종이 창제한 우리나라 문자의 이름인 동시에 이 문자에 대해 한문으로 해설해 1446년에 반포한 책의 이름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의 해설서인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만든 것으로 세종은 이 책의 ‘서문’과 새로운 글자의 발음과 사용법을 담은 ‘예의’ 부분을 지었으며, 나머지 부분은 집현전 학사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이 지었다.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말(음성)이 서로 맞지 않으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만드니 

모든 사람마다 이것을 쉽게 익혀

편히 사용하고자 할 따름이니라. 

 - <훈민정음>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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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의 첫 장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들기 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으나 우리말을 자유롭고 온전하게 표기할 수 있는 문자가 없었다. 지배계층들은 입으로는 우리말을 하고 글을 쓸 때는 한문을 쓰는 이중적인 언어생활을 했다. 반면 한자(한문)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써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했다. 이를 가엾게 여긴 세종은 누구나 쉽게 배워 쓸 수 있는 문자 즉 ‘훈민정음’을 창제해 백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의사소통에 불편함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고전(古篆)을 본받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눠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이 이어(俚語, 속된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쉽고 간단하지만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이름하겠다.” 


- <세종실록> 제102권 

세종 25(1443)년 음력 12월 30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의 창제 목적은 우리의 글자를 만들어 백성을 교화하고 나아가 통치에 편의를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이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또한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여러 일화 중 하나에서도 백성을 생각하는 세종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다. 세종 16년에 진주에서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을 보고 가슴 아파한 세종은 무지한 백성들에게 효와 충을 가르칠 필요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이에 여러 자료를 모아 그림으로 만든 <삼강행실도>를 펴내지만 그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여긴 세종이 한글 창제를 결심하게 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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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 글자의 확장 원리. 소리의 성질이 더 세지 않

음에도 자음 기본글자에 획을 더해 만들었으므로 

특별히 ‘이체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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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자음 기본 글자 제자 원리 (출처: 디지털한글박물관)




한마디로 말해 훈민정음은 백성을 위한 글이다. 이런 훈민정음이 한글로 불린 시기는 1910년대 초로 주시경 선생을 비롯한 한글학자들 사이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한글 즉 훈민정음은 사람이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글자인 표음문자(表音文字)로 한국인뿐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자다. 누구나 한글을 쉽게 익힐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는 한글의 초성과 중성, 종성의 만남의 원리에도 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에서 자음의 17자와 모음의 11자를 새로 만들고 ‘제자해’에서 각 글자들을 어떤 원리로 만들었는지를 밝힌 바 있다. 


자음자의 첫 번째 제자 원리는 ‘상형’의 원리로 사람의 신체 그중에서도 발음기관의 모양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형상을 본뜬 것이다. 마찬가지로 ‘ㅁ’은 입 모양을, ‘ㅅ’은 이(치아) 모양을, ‘ㅇ’은 목구멍의 둥근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훈민정음은 이 다섯 글자를 기본글자 소리가 강해지면 획을 하나씩 더해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람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는 다섯 가지 기본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으로 이것이 한글의 기본글자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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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두 번째 제자 원리는 ‘ㄱ→ㅋ’ ‘ㄷ→ㅌ’ ‘ㅂ→ㅍ’ ‘ㅈ→ㅊ’처럼 획을 하나씩 더하는 ‘가획’의 원리다. 소리를 낼 때 좀 더 거세어지는 특징을 획이 하나 늘어나는 것으로 반영한 방식에 해당한다. 모음의 제자 원리는 하늘의 둥근 모양과 땅의 평평한 모양,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 둘 이상의 것을 합친 ‘합성’이 있다. 즉 천(天), 지(地), 인(人)을 상형한 ‘ ●’ ‘ㅡ’ ‘ㅣ’를 기본자로 해 초출, 재출, 합용의 원리로 탄생했다. 한글을 과학적이며 창조적인 문자라고 하는 이유다.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사용 방법 등을 한문으로 해설한 책 <훈민정음>은 국내외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대한민국 국보 제70호로 지정됐으며 199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글, 아픔을 이기다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평가받는 한글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일제는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펼치며 우리의 말과 글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한국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만을 가르쳤고, 일상생활에서도 일본어 사용을 강제했다. 민간인의 민원서류 등에도 모두 일본어를 사용토록 강요했으며 한글로 된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과 잡지(<신동아> <문장>)를 폐간시키기도 했다. 이렇게 일제의 억압이 극심하던 시절 한글을 지킨 이들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곳이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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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사건을 다룬 영화 <말모이>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우리의 말과 글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한글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1443년 한글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되긴 했지만 ‘국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점은 1894년 갑오개혁 때부터다. 당시 고종이 공문서를 국문으로 작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오면서 한글이 본격적으로 사용됐지만, 얼마지 않아 일제강점기를 맞게 되면서 한글을 제대로 연구하거나 보급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의 우수성을 알리고, 올바른 한글 사용을 위한 맞춤법 통일안 마련에 힘쓴 조선어학회의 활동은 민족의 암흑기에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조선어학회는 1931년 우리의 말과 글을 연구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 현재의 한글학회다. 조선어연구회(1921년 12월 3일)로 시작됐으며 장지영·김윤경·이윤재·이극로·최현배·이병기 등을 회원으로 해 연구발표회와 강연회 등을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전해 왔다. 1927년 2월부터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으며, 1929년에는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에 착수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출판하지 못했다. 이후 1931년 학회 이름을 ‘조선어학회’로 바꾸고 2년 뒤인 1933년에는 오늘날까지도 한글표기의 기준이 되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다. 1942년에는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될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해방 이후 1949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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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한글>. 주시경의 제자로 한국어

문을 연구하고자 한 사람들이 동인으

로 참여하여 최초로 간행한 한국 어문 

연구 잡지 (출처: 국립한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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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신문>




사실 조선어학회의 역사는 주시경 선생 등을 중심으로 1908년 8월 창립된 ‘국어연구학회’를 시초로 볼 수 있다. 이후 ‘배달말글몯음’ ‘한글모’ ‘조선어강습원’ 등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1931년 1월 ‘조선어학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1940년 조선어학회는 <우리말 큰사전> 편찬에 노력을 기울여 1942년 원고를 출판사에 넘길 예정이었으나 조선어학회를 독립단체로 간주한 일제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일제는 이들이 힘들게 모은 원고 2만 6000여 장을 압수했으며, 1942년부터 1943년 4월까지 한글학자 33명을 체포하고 조선어학회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고유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이다.”


일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체포된 이들 중 유죄를 선고받은 이들에게 내려진 결정문이다.


“말이 오르면 나라가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가 내린다.” 


한글 연구의 기초를 세운 주시경 선생의 말이다. 36년의 일제강점기 아래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켜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렇게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낸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편 1896년 7월 서재필, 이상재, 윤치호를 중심으로 지식인들이 뭉쳐 우리나라의 광복과 개혁을 주장하는 ‘독립협회’를 조직해 독립문을 건립하고 1898년 만민공동회를 개최했다. 또한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자 한글 전용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신문은 총 4면 중 1~3면은 순 한글로 작

성됐고, 마지막 한 면엔 영문기사를 실었다. <독립신문>은 단순히 언론지 역할을 넘어 당시 우리 국민을 계몽시키고 자주 광복에 지대한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익숙함에 속아 글을 지켜내기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들에게 작은 인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독립은 선전만으로 될 수 없고 허장성세만으로 될 수 없다. 독립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각성한 민중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중교양에 총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2천만 민중이 총궐기하여 독립을 부르짖게 되면 한국의 독립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이는 서재필 선생의 신조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글신문을 발행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국어연구에 있어 개척자이자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주시경 선생에 얽힌 일화가 있다. 을사늑약으로 주시경 선생은 더욱 동분서주했다. 그는 우리의 말과 글, 더 나아가 우리 얼이 사라지지 않도록 뛰고 또 뛰었다. 특히 국어교육을 강조했던 그는 청소년들이 있는 곳이라면 보따리를 들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이 학교 저 학교를 왔다갔다 하는 통에 ‘주보따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눈물을 머금은 ‘주보따리’는 언제나 동대문 연지동에서 서대문 정동으로, 정동에서 박동으로, 박동에서 동관으로 돌아다녔다. 스승은 교단에 서시매, 언제든지 용사가 전장에 다다른 것과 같은 태도로써 참되게, 정성스럽게, 뜨겁게, 두 눈을 부릅뜨고 학생을 응시하고, 거품을 날리면서 강설을 하셨다. 스승의 교수는 말 가운데 겨레의 혼이 들었고, 또 말 밖에도 나라의 생각이 넘치었다.” 

- 제자 최현배의 회고 中


10월 9일. 올해로 한글날은 576돌을 맞았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10월 4~10일까지 ‘2022 한글주간’ 행사를 진행한다. ‘고마워 한글’을 주제로 국립한글박물관, 국립국어원, 세종학당재단 등과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는 선보일 예정이다. 이 기간만이라도 ‘한글’을 창제하고, 핍박 속에서도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익숙함에 속아 글을 지켜내기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들에게 작은 인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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