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호 마루대문 역사를 품고 낙동강은 흐른다 (2)

2023.09.29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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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품고

낙동강은 흐른다 (2) 


글 이예진 사진 이예진, 김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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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 고대국가가 있던 시기 한반도에서는 지금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이 일어났다. 조선시대 후기 육로를 통해 들어왔던 것으로 알았던 기독교가 정말 오래전 바다를 통해 이 한반도를 찾았던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근거들이 곳곳에 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가야는 어떻게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고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던 청도는 어떤 곳인지 이번 호를 통해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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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신비로운 설화와 함께하는 가야

이서국과 더불어 이야기 할 곳이 있으니 바로 김해다. 앞서 김수로왕과 허황후 이야기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김해는 가야가 있던 곳이다. 청도의 이서국처럼 가야(伽耶)는 고구려·신라·백제와 같이 왕권중심의 국가로 성장하지는 못했으나 기세만큼은 엄청난 나라였다. 지금도 김해(金海)의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가야는 철을 기반으로 한 건장한 나라였다. 지금의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던 가야는 총 6개로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성주의 성산가야, 성주의 고령가야가 있었다. 가야연맹체는 1세기부터 6세기까지 존재했다. 그 가운데 김해는 초기가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금관가야가 있던 곳이었다.

   

“龜何龜何 首其現也 若不現也 燔灼而喫也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 <구지가(龜旨歌)> -


<구지가>는 김수로왕 신화와 관련된 노래다. 김수로왕 신화에 보면 나라와 임금이 생기기 전 백성들을 다스리던 시절 통치자 아홉 간들이 구지봉에서 <구지가>를 불렀다고 한다. <구지가>를 부르자 하늘에서 금합이 내려오고 거기에 황금알 여섯 개가 있는데 가장 먼저 사람으로 변한 이가 김수로왕이라고 한다. 남은 다섯은 남은 다섯 가야의 우두머리가 됐다는 신화가 있다.


사실 가야에 대한 설화는 김해에서 조금 떨어진 합천 가야산과도 연관되어 있다. 특히 만물상(萬物相) 코스 중에 나오는 상아덤과 관련이 깊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이곳이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政見母主)와 함께 천신 이비가지(吏批訶之)가 노닐던 곳으로 소개된다. 그래서 이름도 여신을 의미하는 ‘상아’와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져 ‘상아덤’이라고 부른다.


신화에서 정견모주는 성스러운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녔으며 백성들이 가장 믿는 여신이었다. 백성들을 사랑한 정견모주는 백성들이 살기 좋은 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고자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기도를 들은 천신 이비가지는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상아덤에 내려왔다.


그곳에서 정견모주와 이비가지는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는데 형은 이비가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붉었으며 동생은 정견모주를 닮아 갸름하고 하얀 얼굴을 가졌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이라고 했고 동생은 ‘뇌질청예(惱窒靑裔)’라 불렀다. 이후 뇌질주일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됐고 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됐다.


이 설화가 있는 가야산은 경남 합천과 경북 성주에 걸쳐 있는 산이다. 특히 고려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품고 있는 산으로 유명하다. 설화에 나오는 상아덤에 오르기 위해서는 만물상 코스를 가야 하는데 가야산의 여러 코스 중 가장 아름다운 비경을 자랑한다.


다만 이 아름다운 비경을 만나기 위해서는 시작부터 가파르게 올라야 한다. 곧 줄줄이 늘어진 바위들을 만나게 되는데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번 탐방팀은 무더운 여름에 갔지만 다행히 전날 내린 비와 구름에 태양이 가려 따가운 햇볕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높은 습도와 저 멀리 쿠르릉 치는 천둥소리를 벗 삼아 올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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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상아덤



높은 습도는 탐방팀의 발을 계속 붙잡았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땀이 비 오듯이 흘러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물상은 고고하게 자신의 자태를 뽐내며 자리해 있었다. 바위 위로 올라 내려다 본 가야산의 형세는 가히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역시 우리나라 10대 명산이자 <정감록>에 기록된 해동 10승지 중 하나인 것이 분명했다.


특히 상아덤에 올라 내려다 본 경치는 흐린 날씨 속에서도 웅장함을 자아냈다. 병풍같이 늘어선 바위들을 보니 힘들게 고생하며 올라온 보람을 느꼈다. 저 웅장한 자연의 세계, 수많은 시간을 고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의 세계를 보면 한낱 인간은 자그마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만물이 고대하는 존재가 있다고 했으니 바로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이후 비슬산에서 언급할 ‘도통군자’를 이 웅장한 자연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의 발상지, 청도

청도는 앞서 말한 것처럼 ‘맑은 길(물)’의 의미를 갖고 있다. 또 그 뜻에는 물, 산, 인심이 맑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곳에서 우리의 역사를 지탱할 정신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청도에서는 삼국을 통일하게 만들었던 신라의 화랑정신이 만들어졌다. 신라의 ‘화랑(花郞)’이란 젊은 청년들을 모아 심신 수련 및 교육을 진행한 제도다. 이들은 실제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으며 신라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진평왕 22(600)년 수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원광법사(圓光法師)는 청도 운문산에 머무르며 화랑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에게 세속오계(世俗五戒)를 가르쳤다. 세속오계는 화랑정신의 뿌리가 돼 신라의 삼국통일에 큰 힘이 됐다. 원광법사가 세속오계를 가르친 곳이 바로 청도의 운문산 자락에 위치한 가슬갑사(嘉瑟岬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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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구지봉에 있는 고인돌. 김해 구지봉은 수로왕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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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문산 가슬갑사



대부분 운문산의 운문사(雲門寺)를 많이 알고 있지만 가슬갑사는 생소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는 펜션이 모여 있는 곳 귀퉁이에 작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광법사가 있었을 당시 많은 화랑들이 찾아오며 번창했겠지만 현재는 삼국시대에 폐사된 후 조용히 있다. 복원도 되지 않은 채 몇몇의 스님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속오계(世俗五戒)>
사군이충(事君以忠): 충성으로 임금을 섬겨야 한다
사친이효(事親以孝): 효도로 어버이를 섬겨야 한다
교우이신(交友以信): 믿음으로 벗을 사겨야 한다
임전무퇴(臨戰無退): 싸움에 임해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한다
살생유택(殺生有擇): 산 것을 죽임에는 가림이 있어야 한다

고대의 청도는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정신이 생겨난 곳이라면 근대에 들어서는 “잘 살아보세”를 외쳤던 ‘새마을운동 발상지’가 됐다. 사실 ‘새마을운동 발상지’가 된 것에 대한 일화가 또 있다.

1970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낙후된 농촌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사회 개발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전통적인 농촌을 현대화시켜 농촌경제 발전과 농가소득 향상을 목표로 했다. 이를 계획한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한 곳이 바로 청도다.

1968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은 경상도 수해지역을 시찰하기 위해 부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청도군 신도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제방을 복구하는 광경을 본 박 대통령은 열차를 멈추게 했다. 단순히 수해복구 현장만 본 것이 아니라 마을이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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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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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에 있는 신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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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거역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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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발상지



사실 신도마을은 예로부터 3가지가 없는 ‘3무(三無)마을’로 통했다. 일찍 노는 사람이 없고, 술독에 빠진 사람이 없고, 노름하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였다. 그만큼 마을 주민들의 협동심이 강했으며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를 본 박 대통령은 어떻게 마을이 이렇게 깨끗한지 물어보자 “기왕에 복구할 바에는 좀 더 잘 가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자고 마을총회에서 결의하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동해 이뤘다”는 말을 들었다.


이를 들은 박 대통령은 1970년 한해대책 지방장관회의에서 농민의 자조노력을 강조하면서 청도의 신도마을을 예로 들면서 자조, 자립정신을 바탕으로 새마을운동을 말했다. 이렇게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현재 아프리카 등으로도 뻗어 나가고 있다. 새마을운동을 통해 이뤄낸 한국의 변화를 세계 각국에서 알아보고 벤치마킹을 하러 오는 것이다.


이렇게 청도는 예로부터 정신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었다.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세속오계’의 정신부터 조선시대에는 고고한 선비들의 정신이 살아있는 많은 서원들과 근대에 이르러 새마을운동까지. 청도는 시대마다 중요한 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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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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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석빙고. 현재 남아있는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됐다.



청도에는 대구와 맞닿은 경계에 높은 산이 있다. 비슬산(琵瑟山)이다.

이름 그대로 산의 형세가 신선이 마치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과 같다.

그런데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름에 ‘王’이 4개나 들어가는

비슬산은 ‘약속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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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참꽃군락지. 봄이면 참꽃이 가득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


크게 보고 느끼고 깨닫다

이러한 정신에 힘입어 청도에는 대구와 맞닿은 경계에 높은 산이 있다. 비슬산(琵瑟山)이다. 이름 그대로 산의 형세가 마치 신선이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과 같다. 그런데 한자를 보면 알 수 있듯 이름에 ‘王’이 4개나 들어가는 비슬산은 ‘약속의 산’이라고도 불린다. 어떻게 ‘약속의 산’이 된 것일까. 이는 비슬산의 산신 정성천왕에 대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정성천왕은 어느 날 꿈을 꾸게 되는데 성인들이 비슬산 곳곳에서 깃들여 빛이 나타나는 꿈이었다. 


그 모습이 봄날의 진달래같이 아름다운 모습에 정성천왕은 꿈으로만 두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부처님에게 “발원하니, 지금 바로 성불하지 않고 앞으로 비슬산에서 1000명의 성인이 나올 때까지 성불을 유보하겠습니다. 1000명의 성인을 본 후 성불해 남은 과보를 받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이에 비슬산에서는 성인(王)이 나타나는 약속의 산이 됐다.


그래서인지 비슬산에는 성인 이야기가 많다. 그 가운데 비슬산에 있는 도성암과 관기봉에 관련된 ‘관기와 도성’ 이야기가 있다. 관기와 도성은 친구로 함께 신이 되고자 수련하는 처지에 있었다. 비슬산 끝과 끝에 자리를 잡은 이들은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바람을 통해 소통을 했다. 그러다 도성이 먼저 모든 것을 깨닫고 하늘에 오르게 되고 관기 역시 열심히 수련해 함께 하늘로 올랐다.


이러한 비슬산 자락에 대견사(大見寺)라는 절이 있다. 대견사는 810년에 보당암으로 창건돼 이후대견사로 개칭됐다. 일연스님이 승과 장원급제 후 첫 주지로 22년 동안 있었던 대견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크게 보고, 크게 느끼고, 크게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北봉정(안동 천등산에 있는 절), 南대견’이라고 할 만큼 큰 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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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 앞 삼층석탑



하지만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고 1371년 중창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비슬산의 산세와 대견사의 기운이 대마도를 당기고 일본의 기를 꺾는다며 일제가 1917년에 강제 폐사시켰다. 이후 약 100년 동안 폐사지로 방치됐으나 지난 2014년 복원이 돼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 됐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느끼고, 깨달아야 하는 것일까. 먼저 비슬산에 약속된 성인에 대해 생각해보자. 성인은 유교에서 말하는 도통군자(道通君子)이자 신선(神仙)과도 같으며 하늘로 올라간다 했으니 신(神)과 같은 존재다. 신은 <성경>에 보니 말씀을 받은 자(요 10:35)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이 마지막 때에 시온산에 모여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은 새 노래를 한다(계 14장). 여기서 새 노래라는 것은 새로운 말씀을 의미하기에 결국 말씀을 받은 자들이 시온산에 모인다는 것과도 같다.


그리고 신선이 되기 위해서는 도(道)를 닦아야 하는데 이 도(道) 역시 말씀(요 1:1)을 의미한다. 결국 <성경>을 통해 보면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신이될 수 있으며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갈고 닦아야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로마서 1장 20절의 말씀처럼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을 수 있다고 했으니 결국 비슬산을 바라보면서도 이치를 깨닫는 자는 시온산에서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일 것이다. 결국 마지막 때, 우리는 새노래가 나오는 시온산을 찾아야 한다. 귀 있는 자는 이미 새노래가 불리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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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사에서 대견봉으로 올라가는 길. 운무가 가득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실 대견사를 가면 그 앞으로 펼쳐진 광활한 비슬산의 모습에 겸허해지는 분위기다. 특히 비슬산은 청도군민들에게 어머니의 품과 같은 안식처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그래서 대견사를 지나 대견봉까지 오르면 저 멀리 낙동강과 더불어 대구까지 보인다. 정말 어머니의 품처럼 너르게 모든 것을 품고 있는 형세였다. 또 탐방팀이 갔을 당시 밤새 내린 비가 그친 후 운무가 자욱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 운무가 너무나 자욱해 우리를 감싸는 것 같아 잠깐이나마 마치 우리가 산의 일부, 신선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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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 부처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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