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호 마루대문 갑진년 ‘희망의 해’가 떠올랐다

2024.01.07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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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년 ‘희망의 해’가 떠올랐다 


글 백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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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도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바뀌었다고 오늘 떠오른 태양이 어제의 것과 다르진 않겠으나 한해의 첫 여명을 밝히는 태양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해마다 1월 1일이 되면 일출 명소마다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것만 봐도 새해 첫 일출이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육십간지의 41번째인 갑진년(甲辰年) 즉 ‘푸른 용의 해’이다. 용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유일하게 하늘을 날 수 있으며 변화무쌍한 초자연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그려진다. 새로운 한해를 맞아 2024년 갑진년 ‘청룡의 해’가 갖는 의미와 민속문화 속 용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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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서 강서대묘 현실 동벽 청룡 벽화 모사도




사신(四神)의 하나 ‘청룡’

오행사상에서 청색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동쪽을 상징하기 때문에 동양에서 ‘청룡’은 사신(四神)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신(四神)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다스리는 청룡(靑龍),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 4마리의 영수(靈獸)를 통칭하며, 네 방위에 따라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를 뜻한다.


사신의 개념은 중국 고대사회에서 우주를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관념에서 출발한다. 여기에 따르면 현무는 황도상의 북방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며 뱀과 거북의 합체로 표현된다. 백호는 황도상의 서방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며 호랑이로 표현된다. 청룡은 동방의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며 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주작은 남방의 일곱 별자리를 상징하며 봉황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오행 중 나무와 봄을 관장하며 비와 구름, 바람과 천둥번개를 비롯한 날씨와 기후, 식물도 다스린다고 여겨졌다. 물을 다스린다고 해 바다를 다스리는 신을 용왕(龍王)이라 부르며, 바닷가 어민들이 전통신앙으로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백제 무왕이 죽은 후 백마강의 청룡이 됐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수원화성의 동문인 ‘창룡문’은 푸를 창(蒼)자를 쓴 ‘창룡(蒼龍)’에서 따왔다.


사마천의 <사기> 천관서(天官書)에 ‘동궁창룡 남궁주조 서궁함지 북궁현무(東宮蒼龍 南宮朱鳥 西宮咸池 北宮玄武)’라고 기록해 그 방향을 지시했고,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의어 사전이자 언어 해석 사전인 <이아(爾雅)>에는 ‘청위 창천하위주명 추위백장 동위현영(靑爲 蒼天夏爲朱明 秋爲白藏 冬爲玄英)’이라 해서 그 색(色)을 규정했다.


한편 ‘사신도(四神圖)’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쌍영총과 대안리 1호분, 강서대묘, 중묘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평안남도 강서군에 있는 ‘강서대묘’는 고구려 벽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화가의 모사본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있으며, 일본 동경예술대에서 벽화를 실측 모사해 전시할 정도로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민속문화 속 용의 모습

“안 본 용은 그려도 본 뱀은 못 그린다.”는 속담이 있듯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실존의 동물처럼 그려지는 일이 많다. 용의 모습에는 아홉 동물의 특징이 담겼는데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 발톱은 매,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전해진다. 용(龍)의 상징성은 동양과 서양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서양 문화와 전설에서 용은 ‘악마’ ‘사단’ ‘괴물’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입에서는 불을 내뿜고 일종의 무기와 같은 꼬리를 갖고 있다. 중세시대 용은 악의 상징이었고 <성경>에는 ‘용’을 ‘사단’ ‘마귀’로 표현했다.


전 세계적으로 용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인도의 나가, 그리스의 히드라(hydra), 서양의 드레곤(dragon)과 고대 오리엔트 문명 속 괴물들도 용으로 번역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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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풍어제 띠배(출처: 국립민속박물관)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악과 어둠의 상징인 용을 퇴치하면 영웅이 되는 반면 용을 수호신처럼 여기는 동양에서는 용의 보호를 받으면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우리 민속에서 용은 비와 물을 상징하는 수신(水神), 우신(雨神) 등으로 나타난다. “비바람 따라 구름가고, 구름 따라 용도 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조상들은 농사에 필요한 물을 얻기 위해 용에게 비를 빌었고,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기 위해 용에게 풍어와 안녕을 빌었다.


이렇게 용이 강우를 지배하는 수신으로 신앙되면서 많은 용신신앙이 발생했다. 신라시대 사해제와 사독제, 고려시대의 사독제, 조선시대의 각종 용신제와 기우제 등이 모두 용을 대상으로 한 국가적인 의식으로, 생명의 원천이자 농경의 절대요건인 물의 풍족함을 기원하는 제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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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 제문



일반 민가에서는 이름에 ‘용’자가 들어간 지형지물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용이 잠들면 가뭄이 온다고 생각해 그 적수인 호랑이나 고양이처럼 호랑이를 대신할 만한 짐승을 연못에 집어넣어 용을 깨우기도 했다.


또한 민간에서는 집을 지을 때 상량문의 양쪽에 물을 상징하는 용 ‘룡(龍)’과 거북 ‘구(龜)’를 써 넣어 불을 막아 집을 보호하려는 바람을 담았다. 2001년부터 시작된 경복궁 근정전 중수공사 때는 화재 예방을 위한 부적 2점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하나는 붉은색 장지에 작은 크기의 ‘龍’ 글자 1000여 개를 써서 크게 ‘水’자 형태가 되도록 만든 부적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같은 붉은색 장지에 발톱이 다섯 개 달린 오조룡(五爪龍)를 그린 부적이었다. 이 또한 목조건물인 경회루와 근정전을 화재로부터 막기 위해 물을 다스리는 용의 힘을 빌린 것이다.


이외에도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나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처럼 ‘용’은 입신출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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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동의 용단지(출처: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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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이성계 어진



왕권과 호국룡의 상징

용의 또 다른 상징은 바로 ‘왕권’이다. 일찍이 왕이나 황제 같은 최고 권력자는 곧잘 용에 비견됐다. 하늘 기후의 순조로움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던 농경문화권에서 군왕과 용은 자연스럽게 동일시됐다. 이러한 관념의 순환을 통해 용은 왕권이나 왕위의 상징이 됐고, 임금과 관계되는 것에는 거의 ‘용’이라는 접두어를 붙였다. 이에 따라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자리를 용상(龍床), 임금의 옷을 곤룡포(衮龍袍), 임금의 즉위를 용비(龍飛)라고 불렀다.


고대신화에서는 왕통의 신성성을 확보해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용을 차용하기도 한다. 이는 대표적인 건국신화 중 하나인 ‘주몽신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는 천신으로서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지상에 내려와 유화의 아버지 하백이 사는 수중에도 들어간다. 용이 이끄는 수레는 아무나 탈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한 마리도 아니고 다섯 마리의 용이 수레를 끈다는 설정은 지상의 존재인 황제와 차별화해 해모수에게 천상의 존재라는 신성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


백제의 무왕(武王) 서동은 부여 남쪽 연못가에 살던 과부가 용과 사통해 출생했으며, 후백제를 세운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구렁이와 교혼해 태어났다.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과 용녀 사이에서 태어난 용건의 아들이다.


한편 용은 불교의 수호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가 삼국통일 이래 독자적인 호국신앙으로 발전함에 따라 용도 ‘호국룡’의 성격을 띠게 됐으며, 이는 <삼국유사> ‘만파식적조’에 잘 나타나 있다.


“문무왕이 평소 ‘짐은 죽은 후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기를 원한다.’라고 했다. 그 유언으로 문무왕의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大王岩)이라 이름하고, 절 이름을 감은사(感恩寺)라 했으며, 후에 용이 형상을 나타낸 것을 보던 곳을 이견대(利見臺)라 이름하였다.” 호국룡 신앙의 관념은 백제에서도 확인된다. 백제 30대 무왕(武王)이 된 서동(薯童, ?~641)이 지룡(池龍)의 후손이었다는 기록이나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 595~667)이 백제를 공격할 때 용신 또는 의자왕이 용으로 변해 백제를 보호하자 소정방이 백마를 미끼로 용을 낚아 제거했다는 ‘조룡대(釣龍臺) 전설’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불교와 관련해 용은 창사전설(創寺傳說)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의상대사가 창건한 경상북도 영주에 있는 부석사(浮石寺)다. 의상대사가 당나라에 유학가서 머물던 집의 주인 딸 선묘는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는 의상이 탄 배가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용이 돼 도왔다. 신라에 돌아온 의상은 영주 봉황산에 절을 짓고자 했지만, 이곳을 먼저 차지한 무리의 위협을 받게 되자 선묘가 이번에는 큰 바윗덩이로 변해 무리 위로 떨어질 듯 말 듯 하자 무리가 혼비백산해 달아났고, 그로 인해 ‘떠 있는 돌’이라는 의미의 ‘부석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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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20일 제주 서귀포시 성산포항 앞바다에 ‘용오름’ 현상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회오리가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승천하는 모양 같다고 해서 용오름이

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현상은 토네이도와 같은 기상학적 현상으로 대기 불안정이 강할 때 발생한다. (출처: 뉴시스



단어로 본 용

국토지리정보원의 통계자료(2021년)에 따르면 전국 고시 지명 약 10만 개 중 열두 띠 동물 관련 지면은 4109개로 나타났다. 이 중 용과 관련된 지명은 1261개로 가장 많다. 용두산(龍頭山), 용두암(龍頭岩) 등 지형적 형태에서 유래한 용 관련 지명도 많다.


우리나라에서 용을 지칭하거나 용과 관련된 말로 ‘미르’ ‘이무기’ ‘이시미’ ‘미리’ ‘영노’ ‘꽝철이’ ‘바리’ 등의 단어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다양한 용 문화가 존재했음을 짐작케 한다.


일종의 기상 현상 중 하나인 ‘용오름’은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 붙여졌다. 용오름이라는 기상 현상을 용의 승천으로 본 사례는 기록과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1436(세종 18)년 제주 안무사(按撫使)로부터 “제주 정의현에서 다섯 마리의 용이 일시에 승천하였으며, 그중 한 마리가 되돌아와 수풀을 휘감다가 다시 올라갔다.”는 보고가 있다.


이를 두고 조정에서는 용인가 아닌가를 두고 4년 동안 논쟁을 거듭한 끝에 상세한 조사 보고를 다시 안무사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또한 “용이 하늘로 승천하더라.” “이무기가 용으로 변하더라.” 같은 유형의 설화도 전국 곳곳에서전승되고 있으며, 용에 관한 목격담들의 공통점은 승천, 뇌우 동반, 지표물 파괴, 고기비(魚雨)를 내린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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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청룡 조형물(출처: 뉴시스)



용과 관련된 속담을 보자. “개미떼가 용도 잡는다.”는 말은 약한 사람들도 단결하면 강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용도 타고 범도 탄다.(막강한 권력을 가졌다는 뜻)” “용도 하늘에 너무 오르면 떨어지게 된다.(무슨 일이나 지나쳤을 때는 다시 하강하게 된다는 뜻)” 등의 속담이 있으며 “꿈에 금 보면 딸이고 용이나 은을 보면 아들이다” “꿈에 용과 뱀이 사람을 죽이면 크게 나쁘다”


“아기를 낳을 때 청룡꿈을 꾸면 아들을 낳는다.”와 같은 속신이 있다. 동양 철학에서 갑(甲)은 10개의 천간 중 첫 번째로 ‘시작’을 의미하며 동방을 상징한다. 여기서 동방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곳 즉 시작을 의미하니 2024년 갑진년 새해가 청색의 푸름을 만나 여느 해보다 더욱 힘차게 웅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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