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마루대문 성난 아시아인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다

2024.02.19 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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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아시아인들

전 세계인의 관심을 받다 


글 이예진


“작품 초반 등장인물의 자살 충동은 사실 제가 겪었던 감정들을 녹여낸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자신의 어려운 경험을 털어놔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가끔 느끼기에 세상은 사람들을 갈라놓으려는 것 같습니다. 이 시상식에서조차 누군가는 트로피를 가져가고 누군가는 아니죠. 이런 세상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다거나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고 사랑받을 가능성조차 없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성난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조건 없이 사랑해 준 사람들을 만난 것입니다.”


-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을 받은 이성진 감독의 수상 소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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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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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5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피코크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로

<성난 사람들> 포스터 작품상을 받은 이성진 감독 (출처: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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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골든글로브) (출처: 뉴시스)



미국의 시상식, 한국계가 휩쓸다

연말에 다양한 시상식이 진행되는 한국과 다르게 미국은 연초에 큰 시상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드라마·TV쇼·리얼리티쇼 등을 포함한 텔레비전과 관련된 분야에 주어지는 에미(Emmy)상, 음악·음향·오디오북을 포함한 청각 매체와 관련된 분야에 주어지는 그래미(Grammy)상, 영화와 관련된 분야에 주어지는 오스카(Oscar)상, 연극·뮤지컬·코미디를 포함한 극예술에 관련된 분야에 주어지는 토니(Tony)상이 그 주인공들이다.


미국의 시상식이기에 한국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도 이 시상식들에 관심을 보여 오고 있다. 시상식의 주인공에 여태까지 봤던 금발의 백인, 검은머리의 흑인이 아닌 우리의 한국인들이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을 통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배우 윤여정이 영화 <미나리>를 통해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먼 미국 땅에서 한국 이름이 연속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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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성난 사람들> 스티븐 연(에미상)

아래) <성난 사람들> 앨리 웡(에미상) (출처: 뉴시스)



오스카상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전 세계 돌풍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Squeed Game)>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비영어권 최초로 연출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와 같이 올해 에미상에서도 한국계 이름이 호명됐다. 바로 넷플릭스<성난 사람들(BEEF)>이 그 주인공이었다.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은 지난 1월 15일(현지시간)에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에서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작가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캐스팅상, 의상상, 편집상 등 총 8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었다. 후보에 오른 11개 부문 가운데 남녀 조연상과 음악상을 제외한 모든 상이다.


사실 수상에 대한 낭보는 이전부터 들려왔다. 에미상이 있기 일주일 전에 진행된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니시리즈·TV영화 부문에서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에 대한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특히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에서 한국계 배우의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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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제81회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스티븐 연은 “이상하게도 평소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는 고립이나 외로움 같은 거였다. 그런데 이런 곳에 올라오면 이 순간 만큼은 다른 사람들에 관해 생각할 수 있다. 영화 <겨울왕국>의 줄거리처럼 느껴진다”며 “나는 단지 연민, 사랑, 보호, 선의로 이루어진 긴 줄을 이어받은 사람일 뿐”이라고 밝혔다.


감독의 경험에서 살린 <성난 사람들>

이번에 에미상에서 8관왕에 오른 넷플릭스 <성난 사람들>은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까지 진행한 작품이다. 이 감독은 지난해 한국에서 있었던 행사에서

“<성난 사람들>은 몇 년 전 내 경험에서 비롯된 이야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녹색 신호등이 바뀐 걸 보지 못한 나에게 뒤에 있던 흰색 BMW가 멈추지 않고 경적을 울렸고 (운전석에 앉아있던) 백인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난폭운전을 시작해 나도 그를 따면 잡으려 추격전을 벌였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경험은 <성난 사람들> 1화 시작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작품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 대니 조(스티븐 연)와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사업가 에이미(앨리 웡)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1화 첫 시작이 마트에서 후진을 하는 대니 조를 향해 벤츠 SUV에 타고 있던 에이미가 큰 소리를 울리며 조롱하자 대니가 쫓으며 두 차량은 도로에서 난폭 운전을 벌인다. 이 난폭 운전의 장면이 찍힌 영상이 SNS에 올라오면서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고 이야기가 풀어져 나가는데 이 속에 미국에 터를 잡은 이민자들의 삶과 한국의 정서가 얽혀있다.


남자 주인공 대니 역의 스티븐 연은 서울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국계 배우다. TV 시리즈 <워킹 데드>부터 한국 영화 <옥자> <버닝>으로 한국에 얼굴을 알렸으며 영화 <미나리>로 국내 팬들에게 더욱 각인을 시켰다. <미나리>를 통해 그는 동아시아계 배우 중 처음으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게 스티븐 연이 연기한 <성난 사람들>의 대니는 한인 3세이자 미국에서 모텔을 하다 망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 부모님을 다시 부양하고자 하고 백수 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감을 가진 장남으로 나온다. 국내 팬들은 대니를 향해 “책임감 있는 한국형 장남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에이미 역을 에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앨리 웡 역시 중국-베트남계 배우다. 극 중 에이미 역시 아시아 출신의 성공한 여성 사업가이자 워킹맘으로 앨리 웡과 비슷한 결을 가졌다. 앨리 웡은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2016년 넷플릭스 스탠드업 쇼<베이비 코브라>를 통해 입지를 굳혀갔다. 아이를 가진 만삭 때도 딱 붙는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오르며 임신한 여성 코미디언이 받는 차별을 당당하게 나타내며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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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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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가운데) 감독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피코크 극장에서 열린 제75회 프라임타임 에미상 시상식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로 작품상을 받은 후 출연진과 함께 무대에 올라 소감을 말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이외에도 넷플릭스 영화 <우리 사이 어쩌면>을 직접 극본을 쓰고 출연하기도 하면서 입지를 넓혀갔고 이번 <성난 사람들>로 새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이번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아시아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게 됐다. 그는 “작업 초기 과정에서부터 이성진 감독에게 여러 번 말했는데, 이 작품은 내가 그동안 무대 위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만든 <성난 사람들>에는 재미교포의 모습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대니 역의 스티븐 연 외에도 많은 한국계 배우들이 등장하고 장면마다 한국 문화가 많이 담겨 있다. 일을 마치고 들어간 식당에서 뜨끈한 설렁탕에 빨간 깍두기를 먹는 모습, 영어와 한국을 섞어 쓰는 말투, 동생과 간식으로 계란이 들어간 라면과 김치를 먹고,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부모님에게 잔소리 듣는 장면 등 재미교포의 모습을 잘 연출했다. 또 이민자들의 커넥트가 되는 한인 교회나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카카오톡 등을 등장시키고 이민자들의 고달픈 삶을 디테일하게 녹여내면서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런 부분 외에도 <성난 사람들>은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넷플릭스에서 공개 5일 만에 전 세계 넷플릭스 TV쇼 부문 2위에 올랐으며 뉴욕타임스(NYT)는 “근래 들어 가장 활기차고 놀랍고 통찰력 있는 작품”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바뀐 할리우드의 시선

이렇게 한국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것에는 할리우드 등 전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 감독은 “할리우드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처음 데뷔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이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를 고민 했지만 이젠 아니다”라며 “K팝, 드라마, 영화뿐 아니라 한국인의 집단적 경험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표현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처음에는 ‘성진’이라는 이름이 썩 좋지 않았다. 미국 선생님들이 출석을 부를 때, 카페 직원이 내 이름을 말할 때 늘 발음을 잘못했고 주변에서 웃었기 때문에 스스로 부끄러웠다”며 “커리어 중반까지도 ‘써니’라는 이름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을 따라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기생충> 이후 미국 사람들의 흐름이 바뀐 것을 이 감독은 느꼈다. 그는 “<기생충> 이후 미국인들은 봉준호 감독 이름을 발음할 때 실수하지 않는다”며 “좋은 작품을 만들면 그들도 더는 한국 이름을 듣고 웃지 않고 그 이름을 기억할 거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이 감독은 ‘쏘니’라는 이름 대신 ‘이성진’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고집하고 있다.


이런 할리우드의 흐름은 특히 최근 몇 년간 다양성에 집중을 하고 있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 <미나리> 윤여정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 지난해 오스카 7관왕에 올랐던 <에비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을 통해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은 미국 할리우드만의 흐름이 아니다. 띄엄띄엄 칸으로 향하던 한국의 영화들은 이제 매년 칸에 초청받기 시작했다. 칸의 첫 시작은 1999년 송일곤 감독의 <소풍>이었으며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한국 영화 처음으로 장편 경쟁 부문에 올랐다. 이후 임 감독은 <취화선>으로 2002년 감독상을 수상했다.


배우 전도연이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칸의 여왕’으로 불릴 만큼 국내에서 화제가 됐다.


이렇게 프랑스 ‘칸 영화제’는 국내에서도 익숙해졌고 지난해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경쟁 부문에, 배우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인 <헌트>는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브로커>를 통해 송강호는 한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

상을 수상하는 등 한국 이름이 전 세계적인 시상식 곳곳에서 불리면서 올해에도 한국의 문화 작품들이 전 세계적인 무대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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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칸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인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의 <브로커> 포스터

2. 칸 국제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송강호

3. 칸 국제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찬욱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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