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호 마루대문 그 시절 추억 소환 만화로 보는 민족성·종교성
그 시절 추억 소환
만화로 보는 민족성·종교성
글 백은영
지난 시간들이 언젠가는 다시 추억으로 소환되고 ‘레트로(retro)’라는 말로 ‘트렌드(trend)’가 되는 시대다. 1970~1990년대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지낸 이들에게 TV만화(영화)는 그야말로 최고의 오락물 중 하나였다. 일요일 오전에도 일찍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바짝 달라붙어 보던 만화영화들은 어느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기억 저편에 묻혀버렸다.
오늘은 기억 저편에 있던 추억의 만화영화를 몇 편 소환해 권선징악이 주를 이룬 그 시절의 만화영화들 속에 스며있는 우리민족의 선과 악에 대한 가치관과 종교성에 대해 살펴본다.
나라와 민족마다 고유의 문화가 있다. 삶의 방식과 민족성이 다른 만큼 그들의 문화 속에는 그 민족만의 독특한 색채가 가미돼 있다. 그렇기에 각 나라마다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다른 느낌의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이 만들어진다. 같은 슈퍼히어로라고 해도 다른 성격, 다른 성향의 캐릭터가 탄생하듯이 말이다.
2012년 EBS에서 방영된 <신 머털도사>의 한 장면
<머털도사>의 한 장면
머리카락으로 도술 부리는 <머털도사>
만화영화 <머털도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이두호(1943~) 선생의 작품으로 작가는 이 만화영화에 한국적인 정서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다. 도사와 도술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선과 악의 대결을 재미나게 그렸으며, 권선징악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결말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머털도사와 108요괴> <머털도사와 또매> <뛰어야 벼룩이지> <머털도사님> 등 몇 가지 스토리로 구성된 <머털도사> 시리즈는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머털도사>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도술을 배우기 위해 산으로 스승을 찾아 떠난 순수한 ‘머털이’와 그의 스승인 도술의 대가 ‘누더기 도사’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을 소탕하는 내용이다.
2012년 EBS에서 방영된 <신 머털도사>의 한 장면
10년이 지나도 물 긷는 것과 머리카락 세우는 기술만 가르쳐주는 누더기 도사에게 불만을 품기도 했지만 심성이 착한 머털이는 묵묵히 스승의 구박을 견디며 도술을 차근히 배워 나간다.
반면 착한 머털이와 누더기 도사와 대립각을 이루는 인물로 ‘꺽꿀이’와 ‘질악마을’에 사는 ‘왕질악 도사’가 등장한다. 꺽꿀이 역시 처음에는 도술을 배우기 위해 누더기 도사를 찾아갔지만 그 심성이 악함을 본 누더기 도사에게 쫓겨난 후 왕질악 도사를 찾아가게 된다. 꺽꿀이가 도술에 재능이 있음을 파악한 왕질악 도사는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지만 심성이 악한 꺽꿀이에게 결국 배신을 당해 죽게 된다.
이 과정에서 머털이와 꺽꿀이의 도술 대결이 펼쳐지고 위험에 빠진 제자 머털이를 구하려던 누더기 도사가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렇지만 본래 선의 편에 있던 누더기 도사는 신선이 돼 다시 머털이와 함께 요괴를 무찌른다. 이것이 <머털도사>의 대략적 줄거리다.
이 만화영화 속 주인공인 머털이는 더벅머리에 납작코를 가진 못생긴 얼굴이지만 대단히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도술에는 탁월한 소질이 없었지만 10년 동안 물 긷는 것은 물론 스승 누더기 도사의 심부름만 하면서도 꿋꿋이 그 삶을 인내하고 이겨내 결국 도술을 터득하게 된다.
이 만화영화는 아무리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고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어도 그 심성이 곱지 못하면 선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없음을 은연중에 말해 주고 있다.
이는 우리민족의 심성이 선(善)한 것을 좋아하고, 악(惡)을 행하는 사람은 결국 벌을 받게 된다는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애매하게 받는 고난은 언젠가는 풀어지고, 그 업(業)에 따라 상벌을 받게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고자 함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도술과 신선이라는 말은 도교(道敎)에서 사용하는 말로 도술은 도를 닦아 여러 가지 조화를 부리는 요술이나 술법을 의미하며, 신선(神仙)은 중국 도교에서 도교의 의식과 가르침에 따라 심신을 수양해 신성(神性)을 얻은 불멸의 존재를 뜻한다.
구름타고 축지법 쓰는 홍길동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하지 못하니….”
종종 개그 프로에서도 인용되는 이 말은 조선시대 그 이름을 널리 알렸던 의적 홍길동의 대사다.
<조선왕조실록>에 ‘홍길동’이라는 이름이 10번이나 언급된 것으로 보아 연산군 당시 홍길동이라는 실존 인물이 있었으나, 여기에서의 홍길동은 물론 소설 속 가상인물이다.
조선 광해군 때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정승의 아들로 태어나 학식과 인물이 뛰어났으나 서얼로 태어난 탓에 천대를 받던 홍길동이 활빈당을 결성해 의적활동을 벌이다가 만민이 평등한 세상인 율도국을 건설한다는 내용을 담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이다. 또한 이 소설은 당시 사회제도의 결함, 특히 적서차별(嫡庶差別)을 타파하고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려는 의도로 지은 사회 소설로 민초(民草)들에게 작게나마 위로를 전했다.
소설 속 홍길동은 도교적인 둔갑법, 축지법(縮地法), 분신법(分身法), 승운법(乘雲法) 등 도술을 부리며 양반들이 부당하게 취한 재물을 도로 찾아와 백성들에게 나눠준다. 홍길동이 도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유는 모두가 같이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있다.
4K로 복원한 고 신동헌 감독의 영화 <홍길동>의 한 장면. 1967년 1월 극장에서 개봉한 <홍길동>은 한국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홍길동을 소재로 만든 만화영화의 한 장면
서양의 영웅 즉 히어로들이 혼자만의 힘으로 악당과 맞서 싸워 영웅으로서 대접받는다면, 우리 민족에게 있어 영웅은 사람들과 힘을 도모해 하나의 이상향을 꿈꾼다. 또한 서양의 히어로들이 원래 타고난 부와 초능력의 힘으로 사람들을 돕는다면, 우리네 영웅들은 열악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수련(修練)을 통해 당당하게 세상과 싸워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영웅이 바로 ‘홍길동’이다. 허균의 소설 속 홍길동의 삶을 살펴보면 참으로 기구하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이라 하더라도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할 수 없었고, 가족의 품을 떠나 이상향을 꿈꾸는 길동이 가진 비범한 재주가 장래에 화근이 될까 두려워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허나 홍길동은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심지어 도적의 소굴에 들어가서도 힘을 겨루어 두목이 됐으며, 특유의 기계(奇計)와 도술로 의적활동을 벌이게 된다.
어찌 보면, 당시 백성들에게 홍길동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선지자이자 자신들을 차별과 빈곤에서 해방시킬 구원자였는지도 모른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이에게는 핍박과 고난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핍박과 고난을 이겨냈을 때 비로소 우리들이 찾던 낙원, 모든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이 건설된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바로 이러한 희망을 노래한 작품이고, 소설 속 홍길동은 희망을 이루어가는 주인공인 것이다.
효녀 심청, 지극한 효심에 천지가 감동
‘공양미 300석’ ‘인당수’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공양미 300석에 팔려 인당수에 몸을 던져서라도 앞 못 보는 아버지의 눈을 띄워주고 싶었던 효녀 심청.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효녀 심청이의 효심은 효(孝)를 논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되는 이야기다.
우선 <심청전(沈淸傳)>은 연대 미상, 작가 미상인 한국의 고전소설로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청전>의 전체적인 줄거리와 배경 등을 보면 유교적 사상과 불교사상이 혼재돼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유불사상보다 도교사상이 중심이라는 견해도 내세우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적 신앙양식인 무속의 사상적 배경 또한 배제시킬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구전문학, 설화소설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심청전> 또한 구전문학이 글로써 표현된 문학이기에 그 사상적 배경은 모든 종교적 사상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대목에서는 불교적 색채를 엿볼 수 있으며, 용궁이나 용왕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민간신앙을 접목시킬 수 있다.
2005년 넬슨 신의 애니메이션 <왕후 심청>의 한 장면
비록 공양미 300석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었으나 아버지를 위해 자신이 몸을 인당수에 던진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은 하늘을 감동시켰고, 물과 비 등을 관장하는 용왕까지도 감동시켜 왕과 혼인하게 되는 복을 누리게 된다. 거기에 더해 맹인잔치를 베풀어 헤어진 아버지와 만나게 되고 그렇게 소원하고 바라던 아버지의 눈을 띄우게 된다.
효녀 심청이의 지극한 효심은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기적으로 이어졌고, 아버지의 소원과 뜻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버릴 각오가 된 그 마음이 결국은 행복한 결말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편 공양미 300석을 요구했던 스님을 통해 우리는 어느 시대라도 신앙심을 이용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했던 이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앙은 나와 신앙의 대상과의 일대일 관계라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신앙의 대상이 되는 절대자의 생각과 뜻을 읽고 깨달을 수 있어야 사람에게 속지 않고, 그로 인한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한 장면. 깊은 산속에서 태권도를 연마하고 있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이름에 담긴 뜻 ‘신성을 받은 자’
1976년 라디오방송에 나온 작품을 1977년 임정규 감독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이 바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이하 태권동자)>이다.
당시 라디오 극장의 히트작이었던 <태권동자>는 매일매일 소년소녀들을 라디오 앞으로 모이게 만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았다.
파란해골 13호와 마루치, 아라치의 긴박감 넘치는 모험을 그려낸 연속극은 사람들의 사랑에 힘입어 극장판으로 만들어졌고, 당시 관객 동원수가 10만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인기가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는 1976년 <로보트 태권V>나 <마징가 Z>와 같은 로봇이 나오는 만화가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을 때라 로봇이 등장하지 않은 <태권동자>가 큰 흥행을 누린 것도 이슈였다.
그 흥행의 주된 요인 중 하나는 우리의 민족적 정기의 상징인 ‘태권도’로 적을 무찌른다는 통쾌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여느 만화영화와 마찬가지로 결국은 선(善)이 이긴다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라인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줬다.
특히 서울 88올림픽의 영향을 받아 1988년 다시 탄생한 TV시리즈 <태권동자>는 우리 민족의 국기(國伎)인 태권도의 용맹스러움과 자랑스러움을 알리는 데 한몫했다.
<태권동자>의 기본적인 내용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산 속에 살던 마루치와 아라치가, 양사범과 인연을 맺고 하산한 후 문명에 적응하다가 스승의 원수인 파란해골 13호와 싸워 이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태권동자>를 주목하는 이유 중 하나는 태권소년 ‘마루치’와 태권소녀 ‘아라치’의 이름에 깊은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스토리의 전반을 이끌어가고 있는 태권소년 ‘마루치’는 ‘마루’와 ‘치’라는 두 낱말을 조합한 것으로 ‘마루’는 산마루, 고갯마루와 같이 ‘꼭대기(머리)’를 뜻하며, 우리 민족에게는 아주 ‘신령스러운 곳’을 의미한다.
‘치’는 벼슬아치, 장사치와 같이 어떤 말의 뒤에 붙어 ‘그 일을하는 사람’을 뜻하므로 ‘마루치’의 이름을 풀어보면 ‘신성을 받은 자’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소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라치’의 ‘아라’가 ‘아름답다’의 옛말 ‘아람답다’의 ‘아람’을 미화해 다듬은 말로 ‘아라치’는 ‘아름다운 사람’을 뜻한다. 또한 ‘아라’는 ‘알(卵)’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이 ‘알’에서 탄생한 신령스러운 존재이듯이 ‘아라치’ 역시 마루치와 마찬가지로 ‘신성을 받은 자’로 표현하기도 한다.
즉 마루치와 아라치는 대한민국에서 으뜸가는 소년과 소녀, 신에게 택함 받은 존재로 태권도를 통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악당을 물리치는 주인공임을 이름에서부터 밝혀두고 있는 것이다. 이 둘은 또한 텔레파시를 주고받아 서로의 위험을 알리고 힘을 하나로 모아 선을 도모한다.
이 만화영화에서도 보이는 바와 같이 우리네 민족은 예로부터 무술을 연마하거나 도를 닦을 때는 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도인으로부터 특별한 재능과 함께 자신들이 민족과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비록 그 받은 사명이 어렵고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아 서로 협력함으로써 모든 난관을 헤쳐 나가는 우리의 태권동자 마루치와 아라치. 진정한 힘은 육체적인 강인함이 아닌 정신적인 강인함과 소망을 이루고자하는 간절한 마음 그리고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만화영화가 아닌가 한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한 장면. 파란해골 13호와 대결하는 태권동자 마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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