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호 마루대문 드라마 <정년이>가 불러온 ‘여성국극’의 시대
드라마 <정년이>가 불러온|‘여성국극’의 시대
글 백은영
tvN 드라마 <정년이>가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정년이>는 1950년대 한국전쟁 후를 배경으로 최고의 국극 배우에 도전하는 ‘타고난 소리 천재’ 윤정년을 둘러싼 경쟁과 연대, 찬란한 성장기를 다룬 드라마다.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정년이>는 지난 10월 12일 첫회 시청률 4.8%를 시작으로 6회차 시청률이 13.4%를 돌파하며 ‘정년이 신드롬’을 낳고 있다.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동시에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여성국극의 뒤안길> 북콘서트 포스터
여성국극 <옥중화> 포스터
한국의 오페라 ‘여성국극’
여성국극은 여성들이 남자 역까지 맡아 노래와 연기, 춤을 펼치는 공연예술로 1950~196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여성국극의 뿌리는 1948년 국악원에서 여성들이 따로 나와 만든 ‘여성국악동호회’로 볼 수 있다.
전설적인 국악인 박녹주(朴綠珠)를 대표로 김소희(金素姬)·박귀희(朴貴姬)·임춘앵(林春鶯)·정유색(鄭柳色)·김경희(金慶姬) 등 30여 명이 조직한 여성국악동호회는 1948년 10월 시공관에서 성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를 다룬 <옥중화(獄中花)>를 창립 공연작품으로 선보였다. 그렇게 여성 소리꾼만의 공연이 시작된 것이다.
한편 여성국극의 탄생을 남성 중심적 소리판에 반발해 태동한 문화로 보는 시각과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했던 권번(기생조합) 출신 여성들의 권익을 지키지 위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여성국극 <햇님과 달님> 포스터
이를 설명이라고 하듯 권번 출신의 명창 박녹주는 1974년 <나의 이력서>라는 글에서 여성국악동호회를 설립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서울에는 국극사, 조선창극단 등 남자들이 이끄는 예술단체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든 운영이 남성 위주였고 여성들은 꽤 푸대접받는 편이었다. 이에 항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내가 주종이 돼서 순전한 여성 단체를 만든 것이다.”
여성국극의 인기는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안한 <청실홍실>, 오페라 <투란도트>를 번안한 <햇님과 달님(1949)>이 성공을 거두면서 창극 공연의 존폐를 위협할 만큼 주목을 받았다.
특히 여성국극은 판소리 다섯 마당이 대표적이었던 기존의 혼성창극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레퍼토리와 판소리를 토대로 하되 연극적인 요소를 고루 갖춘 공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여성국극의 성공적인 요소 중 하나는 극중 남역 배우 역시 여성이 맡았다는 데 있다. 당시 20~30대 여성의 가녀리고 곱상한 외모가 남장을 만나 ‘꽃미남’이 탄생한 것과 남장 배우들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수많은 여성 팬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평양기생의 모습(1920년)
평양기생학교에서 가야금을 배우고 있는 모습이다. 당시 학교 교과 과정은
3년으로 배우는 과목은 학년마다 달랐다. 1년급 아이들에게는 우조(羽調),
계면조(界面調) 같은 가곡과 평시조, 고조(高調), 사설조(詞說調), 사군자
와 한문 운자(韻字)를 가르쳤으며, 그 외에 조선어, 산술 등을 가르쳤다.
2년급 때에는 관산융마(關山戎馬)나 백구사(白鷗詞), 황계사(黃鷄詞), 어부사(漁父詞)와
같이 조금 높은 시조를 가르쳤으며 생황, 피리, 양금과 거문고,
젓대 같은 즉 관현악을 가르쳤다. 3년급 때에는 춤, 승무, 검무 등을 배웠다.
여성들의 자부심이 되다
드라마 <정년이>에서 불같은 성격의 국극단장 강소복은 ‘국극의 왕자’ 임춘앵 선생, 매란국극단의 배우 백도앵은 김경수 선생, 정년의 어머니 채공선은 최초의 여류 스타라 평가받는 명창 이화중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평양기생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
여성국극 스타 고 조금앵 선생(출처: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
당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받아야 했던 차별과 억압은 무대 위 여성국극 배우들의 활약을 보는 것으로 잠시나마 해소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몸소 해내는 남장 배우들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자부심과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여성국극 배우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팬레터의 대부분이 ‘혈서’였다는 것과 이들의 공연 장면을 한순간도 놓치기 싫어 공연 도중 출산한 여성 관객도 있었다고 하니 이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하다.
이들 중 조금앵 배우는 여성국극이 시작된 1948년부터 2012년 8월 작고하기 전까지 60년 이상을 남자 역할로 무대에 올라 뛰어난 액션 연기와 칼싸움 솜씨를 선보이며 ‘미남배우’로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다. 한 팬의 부탁으로 신랑 역을 맡아 가상 결혼식 사진까지 찍은 일화는 유명하다.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년들> 스틸컷
1950년대 여성국극 <귀향가> 공연 모습. 왼쪽 둘째가 임춘앵, 앉아 있는 사람이 조영숙이다.(출처: 여성국극제작소)
여성국극의 쇠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뭇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여성국극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영화와 텔레비전이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여성국극을 비롯한 뜨거웠던 공연 예술계에 겨울이 찾아왔다.
이때 박정희 정권은 ‘전통문화 지원사업’을 시행해 위기에 처한 전통예술을 지원, 서양에 뒤지지 않는 힘 있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국극은 배제됐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남편이나 동거남, 사업부 남성들이 극단의 실제 운영권과 회계 관리를 점유했기 때문에 여성국극인들이 자본을 축적할 수 없었고 배우들 간의 안정적인 결집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여성국극이 여성 공연물이라는 이유로 1960년대 초반부터 국가적 지원과 정책적 보호로부터 제외됐다. 여성만으로 이루어진 장르가 나라를 대표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던 당시의 옹졸한 편견도 여성국극을 쇠퇴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여성국극은 전후 공연 예술계가 정체됐던 시기에 전성했던 과도기적 장르였으나 지속적인 지원과 제도화가 뒷받침됐다면 ‘전통예술’로 계승, 발전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물론 당시 여성 배우들이 받은 사회적 압박도 배제할 순 없다. 무대 위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왕자도 되고, 공주도 될 수 있었지만 무대 밖에서는 결혼과 출산의 압박을 받는 1950년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배우들이 결혼과 출산으로 국극단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찬란했던 여성국극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여성국극은 계속된다
웹툰과 드라마 <정년이>로 생소하게만 느껴졌던 여성국극이 대중들이 입에 오르내리며 연신 화제가 되고 있지만, 사실 여성국극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지난 2019년 4월 1일 연재를 시작해 2022년 5월 16일 연재를 종료한 네이버 웹툰 <정년이>는 드라마로 제작되기 전인 2023년 3월 국립창극단의 창극 공연으로 먼저 무대에 올랐다.
지난 2011년에는 여성국극발전공동추진위원회와 남산예술원 주관으로 햇님여성국극단이 여성국극 <대춘향전>을 선보였으며, 2008년에는 여성국극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창작 여성국극 <영산홍>이 공연되기도 했다.
코믹한 감초 연기로 큰 인기를 누렸던 여성국극 1세대인 조영숙 명인은 아흔의 나이로 지난 7월 27~2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열린 <조 도깨비 영숙> 무대에 섰다. 20세기 여성국극의 전성기에 활동하던 그가 21세기 관객과 호흡하며 여성국극 전성기의 화려한 매력을 재해석 해 선보이는 자리였다.
이날 조 명인은 제자 4명, 악사 3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국극 <선화공주>의 왕부터 서동과 선화공주를 포함해 1인 5역을 소화했다. 조 명인은 1951년 여성국극 최고 스타 임춘앵(1924~1975)의 여성국극동지사에 입단하며 여성국극을 시작했다.
이외에도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가 제작한 여성국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왕자가 된 소녀들(2013, 감독 김혜정)>은 역사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여성국극의 발자취를 되짚었다. 조금앵, 김혜리, 박미숙, 허숙자, 이옥천 등 고령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성별과 지역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만의 독특한 여성 문화, 생활 공동체가 가진 해방적 에너지와 그 한계가 그려졌다. 영화는 여성국극과 평생을 함께한 배우와 팬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생소했던, 아니 어쩌면 무관심했던 여성국극. 드라마 <정년이>의 인기가 여성국극의 제2의 전성기를 불러올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어리석은 것일지도 모른다. 다만 해방 후 전쟁으로 황폐했던 그 시절,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들었던 ‘여성국극’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 이 시대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여성국극의 제2의 전성기는 시작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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