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호 마루대문 “국립중앙박물관이 뜨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뜨고 있다”
글 백은영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말 그대로 ‘인기 급상승’ 중이다. 단순히 전시유물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국중박’은 관람객 수가 증가한 차원을 넘어 젊은 세대와 해외 관광객까지 흡수하며 ‘박물관 트렌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인기’의 중심에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의 성공도 빼놓을 수 없다. <케데헌>은 가상의 K-팝 아이돌 그룹이 악령을 물리치고 노래로 세상을 보호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서울의 다양한 장소들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또한 극중 등장하는 호랑이 ‘더피’와 까치 ‘서씨’가 한국의 전통 민화 <호작도(虎鵲圖)>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이 직접 박물관을 찾아 원형 작품을 확인하려는 움직임까지 생겼다.
지난 9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줄을 서 있다. 지난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432만897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43만 9237명)보다 77.5% 증가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연간 관람객 500만명을 넘길 전망이다. (출처: 뉴시스)
수치로 보는 ‘국중박’의 인기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는 숫자로도 확인 가능하다. 올해 1월부터 지난 10월 15일까지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총 501만 6382명으로 전년 동기 관람객인 295만 5789명보다 약 70% 증가한 수치다. 외국인 누적 관람객 수도 18만 5705명으로 전년 전체 관람객의 93.7%에 도달했다. 이 같은 숫자는 전 세계 박물관·미술관 가위 5위권에 해당한다.
영국에 본부를 둔 미술 매체 <아트 뉴스페이퍼>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프랑스 르부르박물관(873만 7050명), 바티칸 박물관(682만 5436명), 영국박물관(647만 9952명),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572만 7258명) 등 4개 기관이 500만 이상을 기록했다. 이런 추이라면 연말까지 누적 600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
이처럼 연간 관람객이 500만 명대를 기록한 건 1945년 박물관 개관 이후 처음이다. 그 저변에는 ‘K-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과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더헌>의 폭발적인 인기가 자리한다.
<케데헌>은 넷플릭스에서 역대 가장 많이 시청된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됐으며, OST는 미국과 영국의 빌보드 차트에서 동시에 1위를 차지하는 등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작품 속 배경이 된 서울의 명소들이 ‘성지순례’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BTS, 스트레이 키즈 등 K-팝 아티스트들의 글로벌 활동이 맞물리면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관심은 단순 관광을 넘어 문화 체험과 K-컬처 성지순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전시 공간 리뉴얼과 관람객 참여 프로그램을 확대해 이런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와 관련,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관람 환경을 개선하고 문화유산 보존·관리 기능을 강화해 국민이 일상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박물관으로 발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팬들이 캐릭터와 전통 유물을 연결하며 즐기는 경험 자체가 ‘국중박’을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K-컬처와 전통이 만나는 문화 허브로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셈이다.
광복절인 8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내 공식 굿즈 매장 ‘뮷즈샵’이 관람객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뉴시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더헌>의 인기와 더불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문화상품 브랜드 ‘뮷즈’의 ‘까치호랑이 배지’도 매진 행진을 이어갔다.
전시공간 변화와 ‘뮷즈(MU:DS)’의 활약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2021년 국보 반가사유상 2점을 나란히 전시한 ‘사유의 방’ 개설을 시작으로 ‘분청사기·백자실’ ‘청자실’ ‘기증관’ ‘외규장각 의궤실’ ‘선사·고대관’ 등 상설전시관을 잇따라 개편했다. 여기에 디지털 맵핑과 가상현실(VR)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실감영상관이 가족 단위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또한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문화상품 브랜드 ‘뮷즈’가 참신한 디자인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박물관 방문 자체가 하나의 문화 체험으로 자리 잡았다. ‘뮷즈’는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과 상품을 의미하는 ‘굿즈’의 합성어로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전국 16개 국립박물관의 문화재를 활용해 제작·판매하는 통합 브랜드를 말한다. 굿즈 브랜드 ‘뮷즈’의 경우 이번 <케데헌> 열풍 이후 일일 방문자 수가 약 7000명에서 60만 명 수준으로 급증하기도 했다. 특히‘까치 호랑이 배지’는 10월 기준 약 5만 개 이상 판매됐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다양한 특별전 역시 관람객의 접점을 넓히는 데 한몫했다. 2006년 <루브르박물관전>은 52만 관객을 기록했고, 2022~2023년 개최된 <합스부르크 걸작전> 약 33만 명,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약 36만 명, 고 이건희 기증 1주년을 기념한 <어느 수집가의 초대> 약 23만 명 등 굵직한 전시가 연이어 관객을 끌어 모았다.
이외에도 화제를 모았던 ‘2025 국중박 분장대회’처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부대행사도 인기를 끌며 딱딱하고 어려울 것만 같은 박물관의 진입 장벽을 나췄다는 평이다.
박물관 문턱 낮추기
국중박은 2025년을 기해 ‘공감의 박물관, 열린 박물관, 융합의 박물관, 공존의 박물관’이라는 4대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특히 ‘융합의 박물관’으로서 전통 유물만을 보여주던 방식에서 벗어나 디지털·미디어·대중문화와의 접목을 강화하고 있다. 한 예로 ‘서예실’의 개편 계획, 보존과학센터의 인공지능·디지털 통합 구축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단순히 ‘가치 있는 유물 전시’에서 ‘체험·공감·참여 가능한 문화공간’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젊은 세대가 박물관을 찾는 경향이 그간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중박의 변화는 의미가 크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 준비, 디지털 실감 영상관, 대중문화 콘텐츠 연계 등이 ‘즐길거리 있는 문화공간’으로서 박물관의 이미지 변화를 보여준다.
또 해외 K-컬처 팬들과의 연결도 눈에 띈다. 한국 전통문화 유산을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 박물관 한국실 지원 사업등을 통해 확산시킬 계획이다.
이처럼 전통문화의 ‘보존’이 아닌 ‘활용’으로의 전환이 관객 확보의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문화콘텐츠 → 체험공간 → 기념상품’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젊은 층 및 해외 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박물관 내부에는 인스타그램·틱톡 등의 ‘인증샷’ 포인트가 늘어나고 있다. 미디어 파사드, 가상현실(AR) 체험, 감성휴식공간 등이 젊은 관람객의 니즈에 맞추어 설계되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언급한 <케데헌> 이외에도 K-팝, K-푸드, K-패션 등 한류 연계 요소가 박물관 문턱을 낮추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올해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25.6~8월)>, <Connect 20: 사람을 잇다, 기억을 엮
(’25.7~12월)> 등을 준비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또한 국중박 측은 보존과학센터 개관(’25.10.28.)을 포함해 미래지향적 시설 확장을 선언했다.
한편 관람객 수가 급증함에 따라 박물관 측은 관람 동선, 보존·안전, 예약제 도입 등을 적극 검토 중이다. ‘하루 최대 약 1만 8000명 수용 설계’임에도 최근 인파 급증으로 여유로운 관람에 제약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어린이박물관 공간 확장(25~29년 추진), 가족친화형 휴게공간 조성 등이 기획돼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수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문화시설로서 박물관의 기능 확대’를 염두에 둔 것이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과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메기 강 감독이
8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어흥, 호랑이’ 디지털 실감 영상을 보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은 국중박의 이러한 변화를 반긴다. “국중박의 변신”이라며 변화를 이끈 주역들에게 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박물관은 변화를 위해 내부적으로 보존과학부, 디지털미디어팀, 문화상품개발팀 등의 역할이 강화되는 움직임이다. 이는 유물 수집·보존·활용을 담당하는 기존 학예연구직 인력에 더해 ‘콘텐츠·미디어·브랜드’ 역량이 핵심 축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보존·전시하는 정적인 공간이었다. 과거의 국립중앙박물관 역시 역사책 속 유물을 감상하는 공간에 그쳤다면, 지금은 전통을 공유하고 체험할 뿐 아니라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으로 기능을 확장하고 있다.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 전통적 박물관의 역할을 넘어 ‘K-컬처’의 새로운 허브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관람객과 소통하고 역사와 현대문화가 공존하는 창조적 공간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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