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폭 투하와 원폭 피해자 문제 

글 이정은

원자폭탄의 버섯구름(왼쪽: 히로시마, 오른쪽: 나가사키)

1945년 8월 6일 원자탄으로 파괴된 히로시마의 돔 건물(1949)

히로시마 및 나가사키 원폭 투하

78년 전인 1945년 8월 6일 오전 2시 45분 폴 워필드 티비츠 2세(Paul Warfield Tibbets, Jr.) 중령이 조종하는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Enola Gay)호가 2기의 동료 공군기와 함께 태평양상의 괌 북쪽 티니안섬의 미 공군 기지에서 이륙하였다. 에놀라 게이는 조종사 키비츠의 어머니 이름으로, 자신이 조종하는 B29 폭격기에 붙인 애칭이었다. 그는 이날의 비밀임무를 위해 1944년 12월 편성된 제509혼성비행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폴 워필드 티비츠 2

세 ( P a u l Wa r f i e l d

Tibbets, Jr). 히로시마

원폭 투하 B29 조종사

이후 네바다주의 사막의 비밀 기지에서 이날의 임무를 위한 훈련을 진행했고, 이듬해 부대는 태평양상의 티니안섬으로 이동했다. 제509혼성비행대는 펌킨 폭탄이라는 모의 폭탄을 사용해 교토, 히로시마, 니가타, 기타큐슈 등을 폭격하며 이날을 위해 연습했다. 이날 실제 투하하는 장소는 상부에서 히로시마로 선정했다. 히로시마는 혼슈 서부의 근대산업 중심도시로서 청일전쟁(1894~1895), 러일전쟁(1904~1905) 및 제1차(1914~1918) 및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등 침략전쟁에서 핵심 역할을 한 대표적 군사도시였다.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에는 인류 최초로 투하되는 원자폭탄이 실려 있었고, 따르는 두 대의 공군기 중 한 대는 촬영, 다른 한 대는 과학적 측정 임무를 띠고 있었다. B-29는 북쪽 일본 본토를 향해 7시간을 비행하여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시 상공에 도착했다.

일본군은 3대의 미 공군기가 일본 본토에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 공습경보를 울렸다가 곧 취소하였다. 대응 전투기 발진도 하지 않았다. 항공기 3대의 편대가 위협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 승무원들은 목표 지점 도착 30분 전에 폭탄의 안전장치를 제거했다. 히로시마 상공에 도착하여 고도 9750m에서 인류 최초의 핵무기인 ‘리틀 보이’를 투하했다. 투하된 폭탄은 57초 뒤 자동 폭발 고도에 도달하여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하였다. 은백색 섬광이 번쩍하고 빛남과 동시에 폭풍이 몰아쳤으며, 고열로 인해 시가지에 화재가 발생했고, 버섯구름이 18㎞ 상공까지 치솟으며 태양을 가려 깜깜한 어둠이 한동안 히로시마 일대를 뒤덮었다.

1. 원폭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 시가지

2.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의 집앞에서 타고 놀다 원폭을 만난 4살짜리 아이 신이치 테추타니의 세발자전거

3. 몸체가 녹아 없어진 히로시마의 불상(폭심에서 500m)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 모든 것이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반경 3.5㎞ 안, 총면적 11㎢가 피해를 입거나 화재가 발생하였다. 건물의 90%가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파괴되었다. 히로시마 인구 약 25만 5000명 중 7만 명이 초기 폭발 때 사망하였다. 그 후 방사능 피폭으로 또 그만큼의 숫자가 죽어갔다. 모두 12만 6000명의 민간인, 약 2만 명의 군인, 억류 중이었던 전쟁포로 12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후에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사망과 질병은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사흘 후인 8월 9일 두 번째 원자폭탄이 일본의 해군기지이며 미쓰비시 중공업을 위시한 조선업과 방위산업 중심지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약 6만~9만 명의 민간인, 150명 이상의 군인, 8~13명의 연합군 포로가 4개월 이내에 사망했다. 두 차례의 원자폭탄 투하로 12만 9000~22만 6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G8 정상회의 참석차 히로시마를 방문했던 기간 중 5월 21일 오전 7시 30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 있는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했다. 기시다 총리가 지난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당시 윤 대통령에게 제안한 것이라 한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두 정상은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추모하고 생존 피해자들에게도 위로의 뜻을 표시하는 한편, 미래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일 양국이 함께 협력해 나가자는 의지도 표명했다”고 설명했다. 두 나라 정상의 합동 참배에는 10명의 우리 동포 원폭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며, 한일 정상이 공동으로 참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대변인은 이번 참배에 대해 “두 정상이 한일관계의 가슴 아픈 과거를 직시하고, 치유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가사키에 떨어지고 있는 원자폭탄 ‘팻맨’

지난 5월 21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히로시마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

1945년 8월 당시 히로시마에는 약 7만, 나가사키에는 3만 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 또는 취업, 학업 등으로 살고 있었다. 이들 중 약 5만 명이 원폭으로 인하여 그 연말까지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생존 5만 명 중 4만 3000여 명이 남한으로, 약 2000명이 북한으로 귀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회원은 4966명으로 이중 사망자는 3089명이며 현재 회원은 1877명이다. 등록하지 못한 이도 적지 않으므로 한국인 원폭피해자 중 생존자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이 낳은 자녀 중 약 7500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원폭피해자는 직접피폭자, 입시피폭자, 사체처리 및 구호 종사자, 태내피폭자 등으로 분류된다. 직접피폭자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또는 8월 9일 나가사키의 일정구역에서 직접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입시피폭자는 원자폭탄 투하 후 2주 이내에 히로시마 또는 나가사키의 일정구역으로 들어간 사람이다. 사체처리 및 구호 종사자는 원자폭탄 투하 당시 또는 그 후 사체처리, 피해자 구호 등에 종사하여 원자폭탄 방사능의 영향을 받을만한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다. 태내피폭자는 위 1, 2, 3의 사람 몸속의 태아였던 사람으로 히로시마의 경우 1946년 5월 31일 이전 피폭자에게서 출생한 사람, 나가사키의 경우 1946년 6월 3일 이전 피폭자에게서 출생한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도에 가서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처음으로 원폭피해자 실태조사를 했다. 그때 조사한 <원폭피해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원자폭탄 폭발 후 시가지를 뒤덮은 먹구름

나가사키 폭심에서 1㎞에 있었던 가스 탱크

원폭 투하 후 거리의 노인과 어린이들

히로시마의 합천 사람들

심진태(74)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1940년대 히로시마에선 ‘한국인을 만나면 고향을 묻지 마라. 어차피 합천 사람이니까’라고 할 만큼 합천 출신이 많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강제징용·근로정신대 등으로 일본에 간 합천 사람 대부분이 히로시마로 갔다 한다. 김일조(88) 할머니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2살 때 히로시마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만난 합천 출신 남편과 1944년 결혼했고 다음 해 피폭됐다.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번쩍하며 엄청난 폭발음이 났다. 집은 그대로 폭삭 무너졌고, 온 가족이 건물 더미 아래에 깔렸다. 불빛을 찾아 밖으로 겨우 기어 나왔을 때, 길거리에는 사방에 주검이 널브러져 있었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김도식씨는 1945년 소학교 3학년 때 피폭됐다. 그는 “이사를 가려고 8월 3일 학교에 전학계를 내고 집에서 며칠 지내고 있었는데, 8월 6일 원자폭탄이 터졌다. 내가 다니던 소학교는 완전히 부서졌다. 전학계를 내지 않았더라면, 나는 1학년이던 첫째 동생과 함께 학교에서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귀국 이후 김 할아버지의 부모는 모두 암에 걸려 사망했다. 누나와 막내 동생도 암에 걸려 치료를 받고 있는데, 그는 피폭 후유증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이상 최상원 기자, 합천은 ‘한국의 히로시마’…“나 죽기 전 사과받고 싶다”, 한겨레신문, 2016. 5. 22에서 인용)

원자병 환자

피폭자의 절반 이상은 1945~1946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생존한 경우라 하더라도 여러 가지 후유증으로 고통스런 삶을 살아야 했다. 가장 일반적인 후유증이 화상, 타박상, 위장장애, 배변곤란, 두통, 신체기형, 빈혈, 백혈병, 시각장애, 백내장, 심장 허약, 언어 호흡장애, 신경통, 탈모증 등 다양한 양상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다.

1996년 10월 경남 합천에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건립되었다. 원폭 피해자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이다. 피폭 후유증이 심한 사람은 이미 모두 사망했고, 후유증이 덜하지만 각종 노인성 질환을 앓는 피해자 100여 명이 남아있다. 건립비용 40억엔 전액을 일본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지원했고, 한국 정부는 운영비를 부담하고 있다.

최대 11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복지회관 뒤뜰엔 숨진 원폭 피해자 1055명의 위패를 모신 위령각이 있다. 1997년 일본 시민단체 태양회가 세운 것이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진 8월 6일에 해마다 위령제가 열리는데, 2010년까지는 위령제 비용도 태양회가 부담했다.(한겨레신문, 위와 같음) 

1945년 8월 6일 그날, 미국 대통령 트루먼은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무기는 지금부터 8월 10일 사이에 일본을 상대로 사용될 것이다. 나는 전쟁부 장관인 스팀슨에게 군사 목표물과 군인과 선원들이 목표물이 될 것이며, 여성과 어린이들이 목표물이 되지 않도록 사용하라고 말했다. 비록 일본인들이 야만인이고 무례하며 무자비하고 광신적이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세계의 지도자로서 보편적인 복지를 위해 일할 것이며, 폭탄을 옛 수도 ‘교토’나 새 수도 ‘도쿄’에 그 무서운 폭탄을 투하할 수 없다. 그 점에 있어 그와 나는 의견이 일치했다. 목표는 순전히 군사적인 것이 될 것이다.

원폭 투하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 일본군으로 인해 미군이나 일본 군인과 국민의 희생을 막고 전쟁을 일찍 끝내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1931년 만주사변 이래 15년간 만주, 중국내륙, 하와이를 비롯한 동남아, 태평양지역으로 침략전쟁을 확대하여 피와 공포와살 육의 전쟁을 확대해 온 일제의 침략행위에 눈 감고 원폭 피해만 부각하는 것도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우리 역사와 사회 일각에 단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있었다는 사실 하나 때문에 원폭 희생자가 되고 피폭자가 되어 고통의 삶을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폭심에서 2㎞ 떨어진 곳에서 입은 원폭 화상 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