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역사 고려 최무선의 화약 발명과 화약병기Ⅱ
고려 최무선의
화약 발명과 화약병기Ⅱ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세계 해전사에 있어 최초로 화포가 사용된 최무선 장군의 진포대첩을 재현하는 행사 (출처: 뉴시스)
최무선(崔茂宣, 1325~1395년)
고려시대 화약과 화약병기를 발명해
왜구 등과의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
무관이자 발명가
최무선은 중국에서 국가 기밀로 화약 제조기술의 유출을 금지하고 있고 화약을 수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자체적으로 화약 제조기술을 알아내기로 하였다. 여러 가지 문헌과 수소문 끝에 화약을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즉 초석, 유황, 숯(분탄) 중에서 유황과 숯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초석을 만드는 것이 가장 어렵고, 이 세 가지 재료의 배합기술을 알아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을 파악하였다.
그는 화약을 만들어서 널리 실전에 사용하고 있는 중국으로부터 기술 정보를 입수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중국 상인들의 왕래가 잦은 무역항 벽란도에 가서 중국에서 오는 상인들 중에서 초석(염초)의 제조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을 찾던 중 중국의 강남지방에서 온 이원(李元)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이원으로부터 염초 제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친교를 맺으며 정성껏 환대하여 그의 마음을 얻어 흙으로부터 염초를 추출하는 방법을 배웠다. 최무선은 초석, 유황, 숯을 여러 가지 비율로 배합하여 2000여 번의 실험 끝에 양질의 화약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고려 말기의 소형 화기인 ‘고총통(古銃筒)’ (출처: 국립청주박물관)
<고려사>에 의하면 우왕 3(정사년, 1377)년 10월 “판사 최무선의 건의에 따라 처음으로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최무선이 같은 마을에 사는 원나라 염초 기술자인 이원을 잘 구슬려 그 기술을 은밀히 물은 다음 부하 몇 명으로 하여금 익혀 시험해 본 후 왕에게 건의해 설치하게 된 것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정부의 무관이 획기적인 무기를 개발하고 정부에 건의하여 추가 개발과 제조를 위한 생산 공장을 갖춘 정부 기관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서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 체계로 보아도 빨라야 2∼3년 이상 걸릴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제7권, 태조 4(1395)년 4월 19일 ‘검교 참찬문하부사 최무선의 졸기’에 최무선이 여러 해에 걸쳐 정부에 진언하여 화통도감을 설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의 화통도감 설치 시기(1377년 10월)로 보아 최무선이 화약을 개발하고 현장 시험을 실시하여 개발에 성공한 시기는 대략 공민왕 21∼23(1372∼1374)년으로 판단된다.
고려 정부가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최무선을 제조(책임자)로 삼아 마침내 화약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 화포는 대장군포(大將軍砲)·이장군포(二將軍砲)·삼장군포(三將軍砲)·육화석포(六花石砲)·화포(火砲)·신포(信砲)·화통(火㷁)·철령전(鐵翎箭)·피령전(皮翎箭)·질려포(蒺藜砲)·철탄자(鐵彈子)·천산오룡전(穿山五龍箭)·유화(流火)·촉천화(觸天火)·화전(火箭)·주화(走火) 등의 이름이 있었다. 기계가 이루어지매 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또 전함의 제도를 연구하여 도당에 말해서 모두 만들어 내었다.
삼총통·사전총통·팔전총통
경신년(557년) 가을에 왜선 300여 척이 전라도 진포에 침입했을 때 조정에서 최무선의 화약을 시험해 보고자 하여, 무선을 부원수에 임명하고 도원수 심덕부, 상원수 나세와 함께 배를 타고 화약무기를 싣고 바로 진포에 이르렀다. 왜구가 화약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하고 배를 한곳에 집결시켜 힘을 다하여 싸우려고 하였으므로, 무선이 화포를 발사하여 그 배를 다 태워버렸다. 배를 잃은 왜구는 육지에 올라와서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노략질한 후에 운봉에 모였는데, 이때 태조(이성계)가 병마 도원수로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운보에 있는 왜구를 한 놈도 빠짐없이 섬멸하였다.
화약을 이용한 화약무기는 성능과 기능에 따라 여러 종류의 화포가 주류를 이루었고 그 외에 보조 역할로 화전과 주화 및 기타 용도의 폭탄이 있었다. 화포는 길고 커다란 쇠통 속에 화약을 장착하고 그 안에 돌이나 철 덩어리 또는 화약을 넣은 포탄을 넣어서 화약의 폭발력으로 포탄이 날아가게 하는 병기이다.
화전
최무선이 발명한 화포는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육화석포·화포신포·화통·철령전·피령전·질려포·철탄자·천산오룡전·촉천화·유화·화전·주화 등이 있었다.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육화석포·화포·신포·질려포 등은 모두 크기와 성능이 조금씩 다르고 사용 용도의 차이에 따른 화포의 종류이고 철탄자는 포탄의 일종이다. 철령전·피령전·천산오룡전은 강력한 쇠뇌에 사용되는 크기가 다른 화살로 추측된다.
최무선이 제작한 화약병기 중에는 화전·유화·주화·촉천화 등이 있다. 최무선이 제조한 화전은 그 당시 중국에서 제조된 화약을 사용하는 화전(火箭)과 다른 화시(火矢)의 일종으로 불화살과 같은 개념이었다. 화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한 화공무기로 화살의 앞부분에 솜을 매달고 솜에 기름을 묵혀서 불을 붙인 다음 활로 쏘는 것을 말한다. 화시는 적진의 막사나 진지를 불사를 때 또는 공격하는 기병을 혼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화살이다. 유화도 화시의 일종이다.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에서 주유와 제갈공명의 군대가 조조의 거대한 함선들을 화공으로 공격할 때 사용한 불화살이 바로 화시이다. 고려와 조선 초에는 이런 불화살에 기름 묻힌 솜 대신 화약을 사용하여 화약이 들어 있는 기다란 통을 화살에 장착한 후 불을 붙여서 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1474년 조선시대에 편찬된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실려 있는 ‘화전’의 그림과 설명은 바로 화시와 같은 것으로 화살의 앞부분에 긴 화살촉이 달려 있고 화살촉 바로 뒷부분에
화약을 둥그렇게 뭉쳐 붙인 형태의 화살이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신기전
최무선의 독자적이며 창조적인 화약 발명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 세계 최초의 2단 로켓인 ‘산화신기전(散火神機箭)’의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교육부에서도 에디슨이나 제임스 왓트의 예를 들어 과학 교과서에 최무선이 화약을 발명하였다고 기술하여 자라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주어야 한다. 고려시대 최무선의 화약 발명에 앞서 삼국시대에도 화약을 만들어 전투에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데 역사적 사실 근거가 미약하지만 어쩌면 화약을 최초로 발명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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