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호 역사 인류의 이동과 어업을 위한 고대 배의 역사Ⅰ
인류의 이동과 어업을 위한
고대 배의 역사Ⅰ
글·사진 이명우 운룡도서관·운룡역사문화포럼 회장
경남 창녕군의 비봉리 패총전시관에 전시된 유적 모습 (출처: 뉴시스)
인류의 이동 경로
인류는 구석기시대부터 산이나 들에서 수렵생활을 하면서 강이나 바닷가 근처 해안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으며 조개를 줍고 해초를 따며 살아왔다. 수만 년 동안 식량으로서 물고기를 잡는 어업을 해왔는데 기록상 남아있는 배를 이용한 가장 오래된 원양어업은 참치어업을 하던 동티모르의 한 동굴 거주 부락에 의한 것으로 4만 5000년 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6만 5000년 전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출발하여 사우디아라비아 반도에서 갈라져 유럽과 중앙아시아를 거처 동쪽으로 가는 북쪽 루트와 아시아 남부 해안지대 쪽으로 가는 남쪽 루트로 갈라져 이주를 시작하였다. 인도를 거처 태국, 베트남에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를 거쳐 오스트레일리아로 향하는 지역은 빙하기에는 대부분 연결되어 있었지만, 완전한 육지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약간의 바다가 남아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뉴기니아와 오스트리아 대륙 사이에는 해협이 100m정도 깊었기 때문에 땅이 연결되지 않았다. 남쪽 루트로 이동한 인류는 5만 5000년 전 무렵에 뗏목이나 통나무배 등을 이용하여 뉴기니아에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으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뗏목은 물위를 떠다니게 하는 이동수단으로 가장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작은 통나무 여러 개를 섬유질 밧줄로 나란히 묶어서 평평하게 만들고 물위에 띄운 후에 사람이 장대로 밀어서 늪지나 호수 및 강에서 낚시를 하거나 물건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통나무배(카누)는 아주 큰 나무를 잘라서 양 끝 부분이 막히고 안을 날카로운 도구로 파거나 내부를 불로 태워서 만든 속이 빈 나무 몸통이다. 통나무배를 물위에 띄우고 사람이 몸통 안에 타고 노를 저어서 물길을 빨리 헤쳐 나가게 하는 장점이 있어 낚시를 하거나 원거리 항해에 편리하게 사용되었다.
이집트 피라미드 벽화의 고선박
신석기 문화로서 토기의 사용은 아프리카에서는 기원전 1만 5000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중동과 같은 서남아시아의 신석기 시대는 기원전 1만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신석기인은 새로운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업 활동에 적합한 각종 도구를 사용하고 이를 기술적으로 발전시켰다.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효율적인 식량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이나 동물뼈, 조개껍질 혹은 교역을 통해 획득한 흑요석 같은 소재를 이용하여 일상생활과 생업 활동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만들었다. 도구는 쓰임새에 따라 크게 수렵용·어로용·채집 농경용·일상용구 등으로 나누어진다.
수렵·어로용으로는 화살촉·창·작살·결합식 낚싯바늘·그물추·빗창이 있으며, 식물 채집 및 농경용으로는 타제 돌괭·갈돌·갈판·돌낫 등이 있다. 그 밖에 식료 가공 및 의복 제조에 필요한 석도·조개 칼·뼈바늘·방추차·가락바퀴·뚜르개·긁개·토기 등은 일상도구로 사용되었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신석기시대의 자료를 볼 때 신석기문화는 약 8000년 전부터 시작되는데, 사람들은 강이나 바닷가에서 움집을 짓고 살며 주로 조개를 채취했기 때문에 먹고 버린 조가비들이 모여 조개더미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도토리·밤 등의 열매를 많이 이용했으며 이른 시기부터 좁쌀 등의 잡곡 농사를 지었다.
물고기를 잡는 데는 강가에서는 그물추를, 바다에서는 이음낚시를 포함하여 낚시를 가장 많이 한 듯하다. 깊은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뼈들이 출토되어 사람들이 먼 바다까지 나갔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배만들기와 항해술도 발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8000년 전 비봉리 목선뿐 아니라 국보 제285호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그림을 통해서 보면 십수 명이 함께 타는 고래잡이배와 같이 튼튼한 배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최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밝혀진 유적 조성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 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바위에 새겨진 300여 점의 그림 중에서 고래를 사냥하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은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3년 9월 10일 한반도를 휩쓴 제14호 태풍 ‘매미’는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가며 한반도 전역에 130명의 사상자, 1만 채에 가까운 주택이 파괴된 것은 물론 도로와 30개의 다리를 붕괴시키는 등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혔으며 이때 경남 지역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창녕군이 피해복구를 위하여 피해의 원인 조사 시 양수와 배수의 문제라고 결론짓고 태풍 때 완전히 침수됐던 비봉리 양·배수장을 확장하기 위하여 2004년 4월 유수지를 새로 파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때 패총이라고도 불리는 조개더미가 노출되었고 이로 인하여 공사는 즉각 중단되고 국립진주박물관이 현장 조사한 결과 오래된 나뭇가지, 바닷조개,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되어 선사시대 패총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2004년 11월부터 국립김해박물관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했는데 비봉리 패총은 총 5개 층으로 약 8000~4000년 전으로 추정되며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한국 역사상 최초의 똥 화석과 망태기, 장신구, 어패류와 동물 화석 등 당시 식생활을 엿볼 수 있는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반구대 암각화(고래사냥 그림)
위) 비봉리 목선 전시(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아래) 비봉리에서 발견된 통나무배 조각
이때 길이 3.1m, 너비 62㎝의 통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소나무 쪽배를 발굴하였는데 소나무 조각을 떼어 내 전문가에게 자문한 결과 수령 200년 된 소나무로 판명됐었다. 따라서 이 통나무배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8000년 전 신석기시대 배로 공인되었다.
발굴단은 이 배에 ‘비봉리 1호’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숫자 1이 붙은 것은 출토 지점에서 25m 떨어진 곳에 두 번째 배 ‘비봉리 2호’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0년 2차 발굴 때는 약 9m 떨어진 곳에서 배를 젓는 도구인 노까지 출토되었다.
발굴된 배의 원래 선체는 4m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며 치밀하게 가공한 흔적이 역력하다. 배를 만들기 위해 당시 사람들은 통나무를 군데군데 불에 태운 다음 돌자귀 같은 날카로운 석재를 이용해 깎아내고, 다시 갈돌과 같은 기구로 표면을 정리하는 방식을 구사했음이 드러났다. 이를 증명하듯 선박 곳곳에는 불에 그슬려 가공한 흔적인 초흔(焦痕)이 발견됐고 배를 제작하는 데 쓴 나무는 소나무로 밝혀졌다.
후쿠이현 도리하마 1호 목선(일본 최초의 목선)
국내에서 발굴된 선박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8세기로 추정되는 경주 안압지 배보다 680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배이다. 또한 이집트 쿠푸왕 피라미드 고선박보다 3400년 앞선 배이고,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배로 알려진 후쿠이현 도리하마(福井縣 鳥浜) 1호나 이키리키(伊木力) 유적 출토 목선보다 2000년 이상을 앞선 세계 최초의 배이다.
1981년 7월 도리하마 폐총 발굴시 출토된 1호 목선의 년대가 서기전 4000년으로 추정되며 비봉리 목선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로 오래된 목선으로 인정되어 왔다. 후쿠이현 도리하마(福井縣鳥浜) 1호 목선은 삼나무를 안과 밖을 깎고 내부에 불을 태워서 만든 통나무배로서 길이 6.08m, 최대폭 63㎝, 두께 3.5~4㎝, 내부 깊이 26~30㎝이다.
우리나라가 8000년 전 세계에서 최고로 오래된 배를 발굴하였다고 하지만 비슷한 연대의 중국 샹후(湘湖)라는 호수 바닥에서 신석기시대 독목주(獨木舟)를 발견하였다. 이 목선을 발견한 시점은 2002년 11월이어서 비봉리 통나무배보다 몇 년 일찍 발견했고 탄소연대 측정한 결과는 7000~8000년 전으로 비봉리 유적의 목선과 거의 같은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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